이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


불과 20살이 되었던 여인, 아멜리아는 검을 틀어쥐며 그렇게 생각했다.


-카가가각.


철검 두 자루가 부딪치며 불똥을 튀겼다. 손끝을 타고 오르는 아릿함에도 무너지지 않는 자세는 그녀의 탄탄한 기본기를 증명하였다.


허나 단지 기본기가 뛰어날 뿐.


-카앙!


오러.


갑옷을 때려도 뼈를 쉽게 부러트릴 수 있고, 주먹에 두르는 것만으로도 철퇴와 가까운 파괴력을 발휘한다. 그런 것을 안 그래도 살상력이 높은 철제 대검에 두른다면, 그곳이 구태어 급소가 아니더라도 치명상이 될 수도 있었다.


그것을 증명하듯. 정면에서 흘려냈을 터인 공격의 충격에 폐부가 꿰뚫린다.


"카학...!"


170cm에 가까운 신장, 날카롭게 벼려진 칼날이 갑옷 틈새를 파고든다. 푸삭, 하고 핏물과 함께 살갗이 찢어지는 소리만 들어 보아도 적은 면이 베어져 나간 것은 아니었다.
 
만약 저게 목이나 급소에 맞았다면 그대로 즉사하고도 남으리라.

하지만 몰려오는 고통 보다도 찌르르, 울리는 가슴팎의 고통에 그녀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고인 눈으로 그들을 쏘아보았다.
 
용사의 동료들은 대개 귀족 위주의 출신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재능인들은 아카데미를 거쳐 좋은 가문의 뒷배를 지고 지원을 받으며 성장한 우수한 인재들이니까.
 
허나. 정작 아멜리아, 용사인 그녀는 평민 출신 이었다.
 
그녀는 시골에서 용사의 자질을 찾는 성소에서 데려온 인재. 결국 그 뿌리는 천민 출신이다. 그들이 보기엔 천하기 짝이 없는 출신에, 어머니 아버지를 눈앞에서 여의었고, 그녀가 가진 자산이라곤 단단한 정신과 근성 뿐이었다.
 
이후 입단한 기사단에서조차 그녀는 괴롭힘 받는 일상이 이어졌다.
 
그저 자질을 가진 몸이었을 뿐. 귀족들의 눈엔 그저 자신들과 조금 친해져 보려 수작을 부리고 있는 평민 출신 1에 지나지 않았고. 어중간하게 유명한 재능 탓에 그들의 시기와 질투가 따랐다.


양팔은 이미 난도질이라도 당한 것처럼 베인 자상의 흔적과 곰팡이라도 묻은 것 마냥 푸른 멍이 들어있었다.


숱한 괴롭힘들의 흔적이었다.


이곳 열차 안에 있던 옛 동료들이 일제히 그녀를 노린 결과였지.



 
“....”

“푸흣, 너. 지금 표정 뭐야?”
 
“...클, 레아.”
 
“왜? 억울하니? 막 분하고 그러니?”


부르르, 아멜리아의 주먹이 떨린다.
 
억울하지 않은게 이상했다. 고작 신분이 천하다는 이유로, 부모를 잃은 고아 라는 이유로.
 
자신의 일평생을 바치며 피눈물과 함께 쌓아온 자리에서 밀려나는 것도 모자라.
 
믿었던 이들마저 모두 가면을 쓴 연극이었다는 차가운 현실이, 그녀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억울했다.
 
오죽하면 평소 잘 나오지도 않던 눈물이 저도 모르게 차오를 정도로.

‘…어째서.’

간신히 검을 쥔 그녀가 벼랑 끝에서 멍하니 두 눈을 깜빡거렸다.

하루이틀도 아니고 무려 8년이다.

제대로 용사가 되어보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스스로를 채찍질 해오며 달려왔다. 용사 후보가 됐다고 해서 노력하는 게 힘들지 않을 리가 있나. 고통을 뛰어넘는 초인적인 근성이 있었기에 겨우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강철 같던 정신에도 슬슬 한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
 
허나. 그녀가 쌓아올린 것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귀족들의 유희거리로 무너졌다.

나라에게 버려진 전쟁 영웅? 그게 무슨 소용인가. 정작 나라에서 쫓겨나 죽게 생겼는데.
 
도망쳐 도달한 타국에서도, 그녀는 만인의 역적일 것이고. 이 중상을 치료할만한 인맥도 가지고 있지 않다. 다시 말해, 만에하나 ‘기적적으로 이곳에서 살아돌아간다 해도’ 그녀는 평생 오늘날 생긴 후유증을 안고 평생 살아가야 한다. 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소리지.
 
그 사실이 아멜리아의 마지막 희망마저 무자비하게 난도질 했다.

방 내부에 튄 그녀의 피를 역겨눈 듯 손수건을 꺼내 제 입가를 막은 공녀가 아멜리아를 내려다봤다.
 

“천출이라서 그런지. 죽기 직전에도 방 주변을 더럽게 만드니?”
 
 
그럼에도 아멜리아는 휘청이는 몸으로 떨어진 성검을 처량하게 다시금 손에 쥐었다.
 
용사가 되고 싶었다. 신분이라는 벽에 차별받지 않고, 천출인 자신도 남들이 모두 비웃으며, 시시덕 거릴 때에. 그녀는 검을 휘둘렀다. 그렇기에 기적이 찾아왔다고 줄곧 믿었다.
 
오로지 그 한자리만을 꿈꾸며 평생에 딱 한번 있을 꽃다울 나이를 하나도 남김 없이 모두 바쳤다.

허나- 지금, 모두 끝났다.
 
온갖 비난과 조롱을 견디며, 버텨온 그녀의 결실이. 결국 그들의 발에 짓밟혀 시들어 버렸으니까.
 
그래. 지금 눈 앞에 있는 공녀는, 아무렇지 않게 그것을 부쉈다.

고작, 전쟁이 끝났으니. 이런 고아 출신 용사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병신 같은 이유로.
      
분노에 사로잡힌 울분이 그제서야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썩을 귀족들이.”
 
“항상 너 같은 천출고아 출신이 딱, 그런 말을 하지.”
 
치가 떨리는 조롱에 아멜리아는 그녀를 쏘아보았다.
 
그런 눈을 마주친 공녀는 가소롭다는 듯 푸흣, 조소를 품으며 또각, 또각, 아멜리아의 앞까지 다가와 머리채를 잡아당겼다.
 
“이 독이 뭔지 알아?”
 
“...”
 
모를 리가 없었다.
 
천천히 인간의 신체를 썩게 만드는 독. 그 방식으로 예전엔 사형을 집행했었으나, 그 방식이 너무나도 잔인해서 금지됐다고 하는데.

"왜? 무서워?"

아멜리아는 분노에 떨리는 눈으로 그녀를 쏘아보았다.

그러나 이내 무언가 실망스럽다는 눈치로 변한 그녀가 아멜리아의 머리에 그 액체를 전부 쏟고 말을 덧붙였다.



“너, 마지막엔 좀 재밌는 표정을 보여줄 줄 알았더니... 역시 천출이라 그런지. 노예를 죽일 때랑 별반 다를 것도 없구나.”
 

주르륵, 아멜리아의 은빛 머리카락을 끝으로 떨어지는 극독.

...아니, 이건 독이 아니다.

처음부터. 그녀는 그저 아멜리아를 가지고 놀기 위해 그런 짓을 벌였던 것이었다.

아멜리아가 눈물을 흘리며 발 아래에 올지 안 올지 한번 가지고 놀아본 거겠지.

그러나 아직도 독하게 버티고 있는 아멜리아를 보곤 그녀가 결정할 일은 딱 하나다.

 
“한스, 그냥 저 녀석 모가지 까지 잘라버려.”
 
“알겠습니다.”
 
 
차가가각, 바닥에 질질 끌려오는 거대한 양날도끼가 천천히 다가온다.

상처 부위들이 타는 듯 하였다.
공녀가 말했던 독은, 이곳 모두. 그녀의 동료들의 무구에 이미 발라져 있었다.

이곳에서 적어도 그녀가 살길 바라는 이는. 아무도 없다는 뜻이 됐겠지.

 
“...”
 
이내 눈을 질끈 감은 찰나-
 
 
!!!!!!!!!!!-


별안간 열차가 흔들림과 동시에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
 
 
-열차 위로 마수가 들러붙었습니다!!
 
-젠장, 사이젠은 도대체 뭘 하고 있는거야!
 
-잠시만, 용사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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