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에서 돌아온 기념으로 이 갈고 열심히 썼음. 근데 망작임


슬슬 이 아이도 학교를 가야 했고, 은빈이가 내게 학교에 가고 싶다고 했기에 간단히 학용품을 챙겨주고 가방을 사줬다. 듣자하니 부모란 놈들은 늘 후줄근히 아이를 학교에 보냈다고 한다. 학교에는 최소 출석일만 챙기고 늘 현장체험학습을 신청했다고 한다. 아이를 가르치는 교사들도 하나같이 포기했고 결국 그대로 방치했다고. 참나, 이것도 다 방임 아니냐


새로 맞춰 알록달록하게 제 색을 뽐내는 가방을 메고 은빈이는 생글생글 웃었다.


"감사해요 아저씨!"


"됐으니까 빨리 다녀오기나 해"


잠깐만요! 다급히 내 바지가랑이를 붙잡더니 몸을 숙여달라고 했다. 허리를 접고 무릎을 꿇었다.


-쪽- 작은 무언가가 내 뺨에 닿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은빈이 무척이나 용기를 내 저질렀다는 듯, 옷자락을 꽉 쥐고 어쩔 줄 몰라했다. 


"헤헤 다녀올게요?"


쉴새없이 손을 흔들고 은빈이는 학교로 향했다.



"그럼 나도 나가볼까"



나도 업무가 들어왔기 때문에 총과 칼을 챙기고 집을 나섰다


-


집 앞 버스 정류장에서 내가 탈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중, 한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남학생이 궁금함을 가득 머문 얼굴로 날 빤히 보고 있었다


"있죠 아저씨. 어떻게 하면 아저씨처럼 키 클 수 있어요?"


"우유 많이 먹고, 고기 먹어. 그리고 하루도 빠짐없이 계단으로 다녀"


"우리 엄마가 고기 많이 먹으면 비만된데요"


"몰라 난 고기 많이 먹어서 키 컸어"


멋지다! 날 동경의 눈으로 바라보는 유치원생의 모습을 슬쩍 쳐다봤다. 노란 교복에 노란 모자, 그리고 검은색으 실내화 가방. 딱 그 나이대의 유치원생의 모습이었다. 날 존경의 대상으로 본 것인지 그 아이는 쉴새없이 내게 질문 폭탄을 날렸다. 어린 애에게 화를 낼수도 없고. 내 딴에 최대한 열심히 답을 해주었다


"그나저나, 너희 엄마가 모르는 아저씨랑 대화하면 안된다고 하지 않으시던?"


그 아이는 자기 엄마 얘기를 꺼내자 토라졌다는 듯 볼을 가득 부풀렸다


"우리 엄마는 늘 잔소리만 해요. 저도 이제 다 컸는데 채소 먹으라고 하고, 일찍 자라고 하고. 밥 먹기 전에 손 씻으라 하고... 친구와 더 놀고 싶어도 일찍 끝내고. 저희 엄마는 절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요"



어렸을 적부터 어둠의 세계에 발을 들여서일까. 그 나이대의 즐기지 못한 것들이 많았다. 친구집에 놀러가 함께 게임한 적도 없고, 몸이 흙범벅이 되도록 축구를 한 적도 없었다. 둘이서 파자마파티를 밤새 한 적도 없었다. 친구가 다니는 태권도장에서 떡볶이 파티에도 가본 적 없었다. 시험 점수를 못 받아 엄마에게 혼난 적도 없다.


내게 나름대로 인생의 고충을 풀어내는 유치원생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 모든 게 널 생각하는 어머니의 사랑이야. 오히려 그 나이대니까 들을 수 있는 특권인거라고 "


"에이. 말도 안되요."


"그러지 말고 네 엄마의 좋은 점도 생각해봐. 너희 어머니가 설마 네 말대로 안 좋은 점만 있겠어?"



"그래요? 음..."


내 말에 아이는 깊은 고민에 빠진 듯 손을 턱에 댄채 우웅 거리고 있었다


우리 엄마는 좋은 점도 많다는 게 생각났어요! 항상 맛있는 요리를 해주고, 늘 절 우선으로 신경 써주고, 다치면 조심히 치료해주면서 사랑한다고 말씀해주세요.


그리고 아주 쉽게 자신의 어머니의 장점을 얘기하고 있었다


"그래, 사람은 단점이 있으면 그만큼 장점이 있는 법이야. 늘 네 어머니가 널 사랑한다는 걸 잊지 마라"


"아저씨, 고마워요! 덕분에 기분이 한결 좋아진거 같아요. 이따 유치원에 갖다 오고 엄마한테 사랑한다고 할거에요!"



내가 탈 버스가 도착한 뒤, 난 그 아이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그리고 좌석에 앉아 내게 인사를 하는 아이에게 한참을 맞인사를 해줬다.


-


오늘의 임무는 한 분식집의 사장을 죽이는 것. 의뢰인의 말에 따르면 이 가게의 사장은 이전에 주식에 미쳐 모든 전재산을 주식에 투자해버렸고. 그 주식은 완전 망했다. 그로 인해 그의 재산도 다 날아가 버리고. 결국 생활비를 얻기 위해 사채를 써 돈을 빌려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돈을 한참동안이나 갚지 않았고. 결국 내가 그 자를 죽이라는 것이었다


진짜, 어느 놈이고 그놈의 주식에 모든 걸 놈들 있단 말이야. 그깟 그래프가 뭐라고 사람이 살고 죽는 것일까. 그런 도박에 전재산을 걸고 탕진한 자들, 내가 죽인 사람중에서도 꽤나 많았다. 하나같이 추하고 같잖았다. 개중엔 날 책망하는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도 사람인데 어쩜 그리 매몰차냐며, 재개의 기회도 주지 않는 거냐며. 그럴 때마다 난 그들의 머리에 총알을 박으며 얘기한다. 목숨을 걸었으며 그 대가를 치루라고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거리에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애초에 사장의 가게를 제외하고 모든 상권이 죽은 듯, 하나같이 셔터가 내려가 있었다. 자리 보는 눈도 지지리 없는 거 같다.


"네 어서오세요~"


"이명선씨. 맞죠?"


나이가 꽤 있는 듯한 여사장은 자신을 부르는 낯선 남자의 등장에 의구심을 품은 듯 했다. 

 


"아 네. 저 맞는 데 누구세요?"


"빌리신 돈 1억, 연체일이 한참 지났는데 지급하지 않으셨더군요."


여사장은 그 말에 자신이 사채업자로 안 것이지 우당탕 정신없이 뛰어와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제,제발요. 부디 시간을 주세요. 꼭 갚을 테니 제발..."


"전 당신이 돈을 자들에게 고용된 살인청부업자입니다. 그리고 전, 지금 당신을 죽일 겁니다"


우선 가게문을 클로즈도 바꾼 뒤 철문을 내렸다. 누가 보면 곤란했기에 시야 차단이 우선이었다. 그리고 총을 꺼내 사장에게 겨눴다.


"히익! 부, 부탁드려요. 꼭, 꼭 갚을 테니까 제발 자비를..."


"죄송하지만 돈을 빌리고 갚지 않은 것 전적으로 본인 책임이라서요. 절 원망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총알 장전하고 머리를 겨누려던 순간, 여사장은 필사적으로 내 다리를 붙잡고 하소연을 했다


"흐윽 제발요 살려주세요. 돈에 미쳐 주식으로 모든 돈을 날리고, 남편에게도 버림받았어요. 남은 건 금쪽같은 제 아들뿐이에요. 제가 만약 죽으면... 그 가여운 아이는 세상에 혼자 남아요."



순간 가게 벽에 걸려있는 사진이 보였다. 부인과 남편, 그리고 환하게 미소짓는 한 아이. 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순간 손에서 총을 놓칠 뻔했다

아까 전 내게 호기심을 가지고 만났던 그 유치원생이었기 때문이다


'이 여자 자식이었던 건가. 우연도 이런 우연이..'


머리가 지끈거렸다. 늘 일을 할 때는 예외를 둬선 안됐다. 철저히 한길만을 걷고,후한을 남겨두는 것은 금물. 십년을 일하며 나와 새긴 맹약이었다


"제발요 제발 부탁이니. 제가 세상에서 가장 아끼는 아들을 혼자 두지 않게 해주세요. 돈은 평생에 걸려서라도 갚을 테니."


내 다리를 붙잡고 오열하는 여사장의 모습에 무언가 끊어지는 느낌이 났다



"... 정말 한심한 부모구만. 부모는 자식이 기댈 수 있는 기둥이여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 부모가 이 모양인데, 어떻게 자식을 키운다는 건지"


내 독설에 여사장도 적잖이 충격을 받은 듯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아까 전 내게 웃으며 자기 엄마의 좋은점을 얘기하던 그 아이가 떠올랐다. 그리고 대화 중 나왔던 그 아이의 말, "있죠... 요즘 우리 엄마가 많이 힘들어요. 항상 열심히 일 하시는데 늘 돈이 없어보이고. 또 가끔 검은 옷 입은 나쁜 아저씨들이 엄마 괴롭히는데 그럴때마다 화가 나요. 으! 내가 좀만 키가 컸어도 우리 엄마 지켜줄 수 있는데" 슈퍼맨 펀치를 날리며 얘기하는 그 아이의 모습이, 지금 내 앞에서 목숨을 구걸하는 사장의 모습과 비교가 됐다


"당신 자식은, 누구보다 당신을 사랑하고 지키고 싶어해. 당신을 가장 따르고 사랑하는 자식한테 평생 본보기가 되는 삶을 살아. 다신 주식 같은 거에 목숨 걸지 말고."


결국 그대로 몸을 돌렸다. 닫힌 문을 열고 셔터를 올리며. 난 정말 살인청부업자로써 실격인 행동을 한 것이다. 의뢰인과의 약속을 어기고 타겟을 살려놓다니. 늘 냉정하게 움직이고 행동하던 나 답지 않았다.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잠깐의 변덕이었을까. 아니면 그 아이의 미소 때문이었을까. 어쩡쩡한 얼굴로 날 바라보는 사장을 뒤로 하고 난 돌아갔다.



-


"그래서 타겟이 도망갔다?"


"안타깝게도 그랬읍니다. 유감이군요"


"흠... 이상하네 자네는 지구 어디에 있어도 찾아내는 사람 아니었나?"


사무소에 돌아와 의뢰인에게 임무 실패를 전달하는 동안 최대한 거짓말에 속아넘어가게 하기 어려웠다. 말을 하는 중에도 목안에 담긴 진실을 감추긴 어려웠다


"그래서 사과의 의미로 선물을 드렸습니다. 통장을 보십시오"


내 말의 의뢰인은 통장을 가져오라는 지시를 내렸다. 잠시 후 그는 가격을 확인하곤 살짝 놀라는 듯 했다.


"뭐야 이거 1억이잖아?"


"사장님께서 원하시는 건 빚을 갚으시는 것이겠죠? 이걸 사과의 의미로 받아주시길 바랍니다. 혹 이자가 필요하다면 말씀해주세요"


"하하!! 자네가 그리 말한다면 그냥 넘어가도록 하지"


간신히 관심을 돌린 뒤, 전화를 끊었다. 아무도 없는 칙칙한 사무실에 퍼지는 담배 연기만이 눈에 띄었다. 


"흐읍...하아, 난 진짜 미친건가"


요 머칠 새 계속 나답지 않은 모습에 스스로도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평생 남을 위해 돈을 쓴 적 없는 내가 1억을 갚은 것이다. 담배를 끊까지 빨고 꽁초를 바닥에 던졌다. 거칠게 밟고 있는 꽁초에 내 근심이 담겨 있었다.


정말 내가 죽어야 할 때가 온걸까. 


어쩌면 이건 최후의 심판일지도 몰랐다. 내 반복되는 범죄에 하늘에서 단계적으로 날 죽이기 위한 단계를 밟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요새 내 운세는 최악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머리 아파하며 있던 중, 곧 은빈이의 학교가 끝날 시간이 됐다.


데려가야 할까 고민하던 중, 사무소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아저씨 저 왔어요"


"그래. 학교 생활은 어ㄸ.."


그리고 보았다. 만신창이가 된 은빈이의 모습을



-



"... 누구랑 싸우고 온 거지?"


"저 보고 거지년이라고 했어요"


은빈이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푹 숙이고 울음을 참고 있었다. 팔다리에 든 멍과 얼굴에 난 손톱자국이 그 증거를 보여주었다. 


누가봐도 은빈이는 울고 있었다. 조그만 눈물방울들이 달팽이가 지나가고 난 후의 흔적처럼 짠내나는 흔적을 남기며 뚝뚝 떨어지고 있었으니 그렇다. 


아마 학교에서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한 거겠지. 분명 부모가 죽고 한동안 학교에 나오지 않았으니 교내에 소문이 돌았을 것이다. 루머란건 쉽게 생기고 빠르게 퍼지는 법이다. 그 진위여부의 상관없이, 사람들은 본래 남을 흉하는 걸 좋아한다.

그 사람을 어두컴컴한 밑바닥으로 떨어뜨려 그들의 날개가 찢어지고 짓밟는다. 그 구덩이 속을 나갈 수 없게 하도록. 다만, 이 아이에겐 모든 것이 가혹했다. 12살짜리 여자아이가 감당해야할 주변의 손가락질은 단순한 애들 싸움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그들에게 있어서 늘 거지처럼 후줄근하고 맞고 사는 여자아이는 그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좋은 유흥거리일 것이다.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과의 재회에 기뻐하는 은빈이의 모습, 그리고 자신의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울음을 참는 은빈이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쓰레기한테서 태어난 자식은 똑같이 쓰레기래요. 저는 인간도 아니라고"


아니 확실히 이 아이는 울고 있었다. 하지만 본인은 자신이 눈물 흘리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 같맜다 눈물에 옷이 적셔지는 것도, 가슴과 팔에 떨어지는 눈물도 느끼지 못했다. 이 아이가 흘리고 있는 눈물은 그저 감당하지 못할 만큼 고였기에 내보내고 있는 눈물일 뿐이었다


"소문이란 건 소리소문 없이 퍼지는 법이야. 네가 이겨내야 돼"


잔인한 말이지만 이게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무감정적이고 이성적인 조언일것이다. 평생을 남과 싸우고 죽이며 살아온 나 같은 괴물은 아이가 다쳐 돌아올때 포근히 안아주는 어머니가 아니다. 다른 어머니처럼 다친 자식을 안아주며 "그래그래 우리 딸, 고생 많았겠구나. 엄마가 있잖니? 걱정하지 마렴" 라고 말 할 정도로 공감능력이 뛰어난 사람도 아니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저 인생 선배로써 앞으로 본인이 헤쳐갈 수많은 장애물을 견디기 위해, 더욱 난 매몰차게 ㅁ말할 수 밖에 없다


-끄덕- 은빈이는 이미 이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얼굴 아래를 향해 떨어지는 눈물은 수도꼭지로 잠근 듯 점차 줄어들었고, 다짐을 한 듯 두 눈에 힘을 팍 주었다. 그리고 먹잇감을 사냥하듯 다가서는 호랑이처럼 내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그래서 물러서지 않기로 결심했어요. 절 향해 욕하는 사람들에게 맞서도록. 아저씨가 그러셨죠?"


은빈이는 괴롭힘을 당하던 중, 자신의 말을 떠올리고 그대로 덤볐다고 한다. 물론 상대는 수가 수였기에 일방적으로 은빈이 맞았지만, 오히려 은빈은 피를 빨아먹어 상대를 말려 죽이려는 거머리처럼, 배에 붙어 악착같이 살아남으려는 따개비처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싸웠다고 한다.


"연약할 줄만 알았는데 제법이네. 잘했어"


"이젠 울지 않을거에요. 강해질 꺼니까"


12살짜리한테 나온 말 치곤 꽤나 성숙하고 기특한 말이었다. 단순 부모와 집안 규칙을 정할 때 하는 맹세가 아니라, 이것은 자기 자신과 하는 맹약이기도 하다. 나약한 자신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하는 전연의 맹약. 이 시간후로 은빈은 강해지겠다 선언한 것이었다.


보면 볼수록 당찬 아이였다. 지금은 작고 연약하지만 이 아이의 눈에는 강한 투지가 느껴졌다. 절대 멘탈적으로 여기저기 흔들릴 아이가 아니였다


내가 그렇게 만들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