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죠 아저씨”

 

 “왜 불러”

 

 “아저씨는 가족 없어요?”

 

 흠칫, 서걱서걱 갈리던 사과껍질 소리가 멈췄다. 손에 과육이 묻어 닦아내지 않으면 나중에 끈적해지겠지만 지금은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과도를 내려놓고 내 건너편의 아이를 바라봤다.

 

 한 끗의 악의도 느껴지지 않는 저 눈동자, 좋은 것만 보고 자라고, 사랑을 받아야 할 자리에 세상에 대한 절망과 슬픔만이 자리한 그 동공을 보니 도저히 화를 낼 수 없었다.

 

 “없어 그런거. 부모가 누군지도 모르겠고, 설령 안다 해도 만나고 싶지도 않고”

 

 날 주워준 고아원 원장 말에 의하면, 비가 내리던 어느 날 고아원 앞에 4,5살의 어린아이가 버려져 있었다고 한다. 그때 내 표정은 모든 편을 잃어버리고 가시밭길로 홀로 던져진 것 같았다고. 하지만 뭐 이젠 상관없다. 부모라는 작자들이 살았든 죽었든.

 

 “아저씨...”

 

 “동정할 필요 없어. 너무 예전 일이라 기억도 안 나니까”

 

 물론 어렸을 땐 그저 그들이 원망스럽고 미웠다. 다른 또래의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부럽고 질투가 났다. 하지만 지금 

와서 그들을 미워한다 해도, 현재 난 내 부모라는 사람들과 비슷, 아니 오히려 더한 놈이다. 배경이 어떻든 그게 살인을 정당화 할수도 없는 것이니. 분명 다시 만날 날이 오는 건 지옥에서 뿐이려나

 

 “그러면 친구는요, 친한 사람들은 없어요?”

 

 “가족도 없는데 그런게 있겠어? 친구라고 해봤자 같이 더러운 일이나 하는 놈들 뿐이지.”

 

 더 이상 대답하다간 분위기가 처질 것 같아 내려논 과도를 들고 사과를 깎았다. 빨간껍질을 벗겨내며 내 사고를 둘러싸고 있는 응어리와, 족쇄들도 같이 깎아냈다. 미련을 남기는 자는 살아남을 수 없다. 날 가르쳐준 전직 살인 청부업자의 말이었다. 과거는 과거일뿐, 지나간 과거를 생각해봤자 다가올 미래는 바꿀 수 없다.

 

 

 투둑, 남아있던 미련들이 쟁반 위에 쌓여갔다. 태양처럼 붉은 과일의 속은 누구보다 하얗고 투명했다. 하지만 누구든 살아가며 속이 변색될 수 있다. 난 그저 변색의 시기가 이르게 찾아왔을 뿐

 

 “그러면, 제가 아저씨의 절친이 될게요”

 

 포부에 차고 당당한 얼굴의 은빈이는, 돌연히 주먹을 꽉 쥐며, 걱정말라는 식으로 장담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제가 아저씨의 절친이 될거라고요! 그러면 아저씨도 저도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가 되는 거잖아요?”

 

 소꿉놀이도 아니고 갑작스런 선언에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났다. 1,2살 차이도 아니고 친구라니. 애초에 난 얘가 조카벌로 밖에 보이질 않는다.

 

 “난 성인이고 넌 초등학생이잖아. 무슨 친구가 돼”

 

 “왜요! 친구란건 나이가 상관없잖아요. 학교에서 그랬어요”

 

 그저 애들 장난인거 같았다. 이 아이에겐 미안하지만 난 아직 이 아이를 완벽히 믿을 수 없었다. 내가 데려온 아이긴 하지만 혹여 기회를 봐서 날 죽이려 할지도 모르니

 

 그래서 고개를 돌린채, 참외를 깎고 있던 중 이전까지와 다른, 차분하고도 분명한 소리가 들렸다.

 

 “저도.. 친구가 없어요. 어렸을 때부터”

 

 그 말에 약간 관심이 생겨 옆을 쳐다보았다. 아까까지의 생기 있던 모습은 어디 가고 공허하고 고독함이 담긴 오라가 은빈이 주위를 둘렇다.

 

 “부모님이 학교에 보내는 것말고는 집에만 가둬놓고 있어서. 또래 친구들과 접촉이 없었어요. 설령 학교를 간다해도 후줄하고 거지라며 놀리고. 그나마 친했던 친구들도 이젠 저를 피해다녀요.”

 

 초점이 없던 은빈이의 눈에는 곧 밝아지기 시작했다.

 

 “근데 아저씨 덕에 전혀 그런게 아깝지가 않아요. 아저씨랑 있으면 하루하루가 즐겁고 또 행복해요!”

 

 이 아이가 내게 이런 감정을 가지고 있을 줄 몰랐다. 나로썬 그저 일말의 죄책감 때문에 데려왔고, 그 이상을 생각해 본 적 없지만. 은빈이에게 있어서 난 그 이상이었던 것이다. 혼란스런 모습을 겉으로 보이지 않았지만 이미 머릿속은 실로 엉켜 제대로된 사고가 되지 않았다. 내 상태를 아는지 모르는지 은빈이는 덥썩 내 손을 잡고 똘망똘망하게 쳐다보았다.

 

 “아저씨, 그러니까 저희 친구해요. 제가 아저씨 덕에 행복한 것처럼. 아저씨도 저 때문에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해주실거죠?”

 

 너무나 반짝이는 얼굴에 누군가 뒤에서 무대 조명이라도 킨 줄 알았다. 원래였다면 이런 말을 딱 질색인데. 내게 미소를 보여주는, 한치의 흑심도 없는 입고리에, 그리고 설탕처럼 달콤한 그 목소리에 난 거절할 수 없었다.

 

 “에휴, 알겠다. 네 맘대로 해라.”

 

 “아싸!”

 

 뭐가 그리도 좋은지 방방장처럼 온 집안을 쾅쾅 뛰어다니고 있었다.

 

 “시끄럽고 와서 사과나 먹어”

 

 “아, 잠깐만요! 기다려보세요”

 

 무언가 보여줄게 있다며 잠시만 손으로 눈을 가려보라고 했다. ‘절대로 뜨면 안돼요!’ 라고 신신당부하던 건 덤으로. 

 

 

 “야 얼마나 이러고 있어야 해”

 

 “이제 눈 떠보세요”

 

 두 손을 치우니, 잠시 세상이 하얗게 보였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다가 점점 선명해져 갈 때 손목에 무언가 채워진 기분이 났다. 거추장스런 무언가가 있어 왼쪽 손목을 보니 팔찌가 있었다. 그것도 색종이와 싸인펜으로 치장이 되어있는, 그리고 가운데에는 내 이름이 박혀있었다. 옆에 하트가 그려진채

 

 “뭐냐 이건”

 

 “우정 팔찌에요. 저랑 아저씨의 친구인 기념”

 

 그러곤 은빈이 자신도 손목에 찬 팔찌를 보여주었다.

 

 “...너 그 손”

 

 “예? 뭐가요?”

 

 은빈이는 무해하게 웃고 있었지만 내겐 보였다. 손가락 사이사이 보이는 상처들이, 그리고 색종이 조각들과 풀자국이. 아마 처음 만드는 것이라 이래저래 시행착오가 있던 모양이었다.

 

 “헤헤 처음이어도 예쁘죠?

 

 구슬에 실을 넣고 묶고 이 모든 과정을 혼자했을 생각을 하니 퍽 기특했다.

 

 ”이제 저흰 베스프 프랜드에요!“

 

 ”그러든가“

 

 왠지 모르게 이 아이한테 말려버린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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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 살려주세요.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어요. 그저 누군가에게 납치당해 몇년째 군만두만 먹고 있다는 것뿐. 그리고 500화까지 연재하지 않으면 빛 한번 못 보게 만든다는 협박만 있어요. 지금 이 글을 보는 사람은 누구라도 신고해 주세요. 앗 그놈이 돌아오고 있어요. 제발 살려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