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러의 일상 채널



사실 여기에서 적지 않은 양의 글을 썼는데 실수로 창을 닫아버려서 전부 지워졌다. 대충 내가 이렇게 된 것은 내 탓이 절반이고 세상의 탓이 절반이기 때문이라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나는 오판과 강박에 자주 빠지며 그것이 큰 문제라고 생각했다. 헤어지게 되면 혼자가 되고 그러다가 누군가를 만나게 되며 같이 있다가 다시 헤어지게 되고 또 누군가를 만나게 되는데 나는 빨리 헤어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그것은 강박이며 때로 헤어짐이 지연되고 또 다른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전개될 수 있지만 나는 처음의 위치에서 그리 멀리 가지 못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나는 멀리 가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세상에는 두가지 극점이 있는데 남극과 북극이 있고 삶의 시작과 죽음이 있다는 식의 진부한 이야기였다.

 그게 왜곡되긴 하였으나 대충 전부였다. 창문을 열어두었다. 그러니까 조금은 시원하다. 창밖의 공기는 엄청난 크기의 하늘을 매우고 있다. 그것이 나 자신에게는 비록 잘 와닿지 않는다. 누군가가 나를 방해하는 것이 대채로는 기분 나쁜 일이기는 하나 밤공기가 나를 건드리는 것은 꽤 기분 좋음으로 예외다. 밤하늘의 별을 만약 보게된다면 세상이 꽤 정교한 장치라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이 역시 누가 앞서 생각했겠지. 내가 밤하늘 속 공기 분자가 된다면 어떨까? 도로를 달려나가는 자동차 소리가 밤하늘을 울리는데 나도 거기에 따라서 울리지 않을까? 100년 전에도 이곳에는 다른 공기분자가 있었겠지. 한시간 전에도 그렇고. 아무튼 이 하늘에는 오로라같은 것은 발생하지 않는다. 이곳은 극지방이 아니니까 말이다. 여기에서는 그냥 전통적인 우리나라 기후를 경험할 수 있다. 최근 들어 지구온난화인지 뭔지 해서 기온이 확실히 오르긴 했지만. 따지고보면 빙하기 때에는 이곳도 엄청 추웠고, 또 어떤 지질시대에는 기온이 엄청 높았다고 하니까. 대충 '어떤 지질시대'라고 얼버무리니까 기분이 좋다. 확실한 자료조사가 되지 않는 글은 평균 미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뭐 내용만 적당히 전달되면 상관없지 않을까.

 나는 일렉트릭 음악에서 킥을 너무 강조하는 것이 약간은 싫은 사람이다. 내가 아무 일렉음악이나 막 듣기는 하지만, 그래 뭐 클럽에서 방방 킥을 울리고 싶긴 하겠지만 소리가 적당히 커야지. 아니 대다수 곡들은 괜찮은데 몇몇 인디음악들은 거슬린다. 제대로된 음악감상이 힘들다. 나는 우리집을 클럽처럼 울리게 하고 싶지 않다. 그저 혼자 조용히 내 방에서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고 싶을 뿐이라고. 다른 악기소리도 좀 더 크고 명료하게 듣고싶어.

 사람들과 만나는게 싫은 것은 아니다. 솔직히 좀 싫은 건 사실이지만 이제는 뭐가뭔지 모르겠다. 반사적으로 사람들에게 내가 보이는 태도가 있다. 스스로도 학습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긴 한데 고치기가 쉽지 않다. 나는 내 머릿속에서 망상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것은 대게 비생산적이다. 마치 밤하늘의 공기처럼 말이다. 그렇다. AI가 언어를 학습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언어모듈을 갖추고 있어햐 한다. 인간도 머릿속에 언어학습기계를 내장하고 있다하지 않는가. 그것이 다른 동물들이 사람들과 같이 자라도 언어를 배우지 못하는 한가지 이유가 된다고 한다. 뭐 나도 언어라는 것을 배웠으니까 적어도 나쁘지 않은 생산성을 보이는 망상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뭐 아무튼.

 알다시피 여기의 국장은 차단당했다. 부국장도 없는 것으로 안다. 그 말은 내가 여기에서 무슨짓을 해도 글이 오랬동안 살아있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일단 국장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ㅇㅇ, *ㄴㄴ든 별 달린 운영자들이 와서 삭제해야 한다. 그 사람들이? 이 변방 조용하고 시골스러운 중소 채널에 들러줄까? 물론 신고채널에 신고를 하면 삭제가 되긴 하겠지. 그렇지만 국장이 바로 문제를 파악했을때 곧바로 일이 처리될 경우의 수는 적다. 그는 자신의 채널이 테러당하는 것을 그저 지켜봐야만 한다.

 세계여행을 해보자.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떠난다. 내려봤는데 포천 공군훈련장이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 이비자로 가자. 햇볓이 내리쬐고 스피커가 울리는 이비자로 가보는 것이다. 모나코에도 가보고 싶다. 바다를 바라보고 싶다. 물론 우리나라 하늘과 뭐 크게 다를게 있을까? 솔직히 자연환경이 엄청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결과적으로 가장 큰 차이는 사람들의 문화이다. 문화의 차이를 경험하고 싶은 것이겠지. 우리나라 문화도 뭐 익숙하긴 하다만. 적어도 신선하지는 않으니까. 신선한 느낌을 받고싶어서 여행을 하고 싶은거잖아. 관광 도시이기도 하고. 우리동네가 관광지구는 아니니까. 왜 우리동네는 관광지구가 아닐까?

 아 안녕 친구여. 나는 새벽에 눈을 뜬다. 새벽의 밤하늘은 어둡다. 내 방은 작은 우주같다. 솔직히 우주라고 하기에는 조금 밝긴 하지만. 어둡다는 것은 공통점이 있다. 하늘이 약간 밝아오고 있거든. 적어도 우리동네는 잠들어있다. 아 창밖에서 달리고 있는 저 멀리 차도위의 자동차들은 잠깐 무시하자. 사람들도 자고있다. 나는 나 자신이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사회기류 위에서 부유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뭐 내가 종교를 믿고 있지는 않다. 방금 내 말 한마디로 나는 ISIS의 표적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 무서운 세상. 목숨도 위협받을 수도 있는 세상. 너무 잔인하고 위협적이다. 위험천만하다. 그렇다고 해도. 하늘이 점점 밝아오고 있다. 어두운 상공이 점점 밝아오고 있다. 햇빛에 의해 일깨워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고요하다. 새벽의 고요.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마저 들리지 않는다. 나의 의식은 어째서인지 깨어있다. 아침이 아슬아슬하게 다가오고 있다. 그 긴장감을 나는 느끼고 있다. 밤이 점점 사라지는 것. 시간은 계속 지나간다. 이때는 뭘 믿고 싶어진다. 창밖으로 입사되는 빛은 아마도 대기에서 산란되어 여기까지 온 푸른 빛. 그 빛은 창문에 부딧쳐 창 밖으로 반사되기도 하고 창 안으로 들어오기도 한다. 다수의 빛은 커튼에 막혀 집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다. 극히 소수의 광자만이 방 안을 밝히고 있었다. 방 어딘가에서 반사된 빛이 내 눈으로 들어와 시신경을 자극하고 그 자극이 머리로 이동하여 시야가 된다. 사실 나는 고민이 있다. 괴로운 일도 있다.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이런 방안에서 혼자 아침을 맞이하는 이 시간은 무엇인지 일상에서 유리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 여러 빛들의 거동을 찾아 헤메이는 것이 나쁘지는 않은 일이다. 적어도 스스로가 위로받는 느낌이니까. 나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한다. 하지만 늘 한계에 부딧친다. 그 결과로 스스로를 벼랑 끝으로 내몬다. 그러니까 이런 생각들은 절반 정도만 의미있는 것이다. 참 아쉽게도 말이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수백가지로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은 실제로 행동하는 사람들이니까. 스스로 그런 사람이 되지 못했다고 좌절하는 방법이 있고, 그런 사람이 되는 방법이 있고, 그런사람이 되지는 못하겠지만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이 있다.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더라도 그냥 인생을 사는 방법도 있고. 아, 그런데 이야기가 이렇게 진행되면 안되었다. 적어도 새벽을 이야기하고 있었을 때는 새벽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