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폐막: Synthesis


 강렬한 산탄총의 총탄에 직격당한 자물쇠는 손잡이와 함께 뜯겨져 나갔고, 더 이상 자신을 고정해줄 것을 찾지 못한 문은 스스로 열려 그 내부를 들어냈다.


 NKVD 요원들은 이 허름한 폐허에 간신히 붙어 있던 문짝을 발로 차 넘어뜨리고는 내부로 진입했다. 그러기를 대략 1분 뒤, 안으로 들어갔던 NKVD 요원들 중 가장 직책이 높은 자가 밖으로 나와 고개를 끄덕였다. 사전에 무엇인가 정해지지 않았음에도, 그들은 그 끄덕임의 의미를 짐작할 수 있었다.


 허름한 폐허의 끝자락, 원인 모를 이유로 박살나 존재하지 않는 문 너머에는 이곳에 모인 모두가 아는 이가 서 있었다. 무너져내린 벽의 틈새로 새어들어오는 햇빛은 조명과 같이 서재로 보이는 방의 안을 밝혀주었고, 이곳에 모인 다섯의 이들은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있게 되었으나 그 누구도 쉬이 입을 열지 못했다.


“오랜... 만이오. 트로츠키.”


 이 장엄하기 그지 없는 침묵을 부숴내고 서로를 마주하도록 한 인물은 니키타 흐루쇼프였다. 복잡한 감정이 얼굴에 확연이 들어나는 것이 정치인으로 지낸지 벌써 수년이 지난 그에겐 어울리지 않는 표정이었으나 이 자리엔 그의 표정에 대해 뭐라할 이가 없었다.


“흐루쇼프. 잘도 살아남았군.”


 흙먼지가 묻어 더러워진 옷과 산발이 되어 뻗친 머리카락, 눈 밑에 심연처럼 드리워져 있는 다크서클을 봤지만 흐루쇼프는 딱히 그를 동정하진 않기로 했다. 그 성격상에 동정해 봤자 긍정적인 답이 돌아올 것 같진 않았으니.


“그래. 난 살아남았고, 자넨 이곳에서 죽을 운명이지.”


 트로츠키는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오른쪽 안경알에 금이가 망가진 안경을 벗어 다리가 부러진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바로 죽이지 않는 걸 보면 내가 뭐라도 말해주길 바라는 모양이지?”


 트로츠키는 책상에 기대 팔짱을 끼고 평소와 같이 삐딱한 말투로 그를 비꼬았다. 이런 연출에 화가 난 주코프가 앞으로 나서려 했으나 바실렙스키가 팔로 그의 몸을 막은채 고개를 저었다.


“... 그래. 축하해. 네가 이겼어. 그러니까... 내가 틀리고, 네가 옳았다는 거겠지.”


트로츠키는 크게 한숨을 내쉬고 말을 이었다.


“난 운명 따위는 믿지 않아. 그건 너무 모순이 심하거든.”


 그런 것에 얽매인다면 대의를 그르치기도 하고. 이런 그의 말을 이해한 이는 없는지 다들 의문스러운 표정이었다.


“하고 싶은 말이 뭐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인상을 구긴 주코프가 허리춤에 차고 있던 홀스터를 만지작 거리면서 묻자 트로츠키는 코트의 안쪽에서 반짝이는 권총을—


//탕!//


 트로츠키의 품 속에서 반짝이는 무언가를 보자마자 반응한 주코프는 그대로 트로츠키의 손을 쏴버렸고, 주코프의 권총에서 발사된 총탄은 트로츠키의 뒤에 기다란 혈흔을 남겼다.


 자리에서 쓰러진 트로츠키는 붉은 피를 뿜으면서도 미소를 지어내는 그 광경에 티모셴코는 결국 몸을 돌려 서재를 나가버렸다.


“크흐... 재미있게 되었어... 앞으로 전개를 보지 못한다는 것은 아쉽지만, 그래도 너희가 절망할 그 순간을 상상하니 기분이 좋군.”


 주코프가 권총을 다시금 트로츠키의 이마에 겨눴으나 그는 그 강렬한 눈동자로 흐루쇼프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운명을 받아들여라. 흐루쇼프. 그래, 끝없는 군대의 파도에 질식해 죽을 그 운명을.”


 보다 못한 주코프는 결국 방아쇠를 당겼고, 트로츠키의 이마에 선명한 붉은 점을 새겨 넣어 주었다. 마치 혁명의 깃발과 같은 붉은 색이 트로츠키의 얼굴을 타고 흘러내려 땅바닥에 떨어졌다.


 제3의 로마를 지배하던 폭군은 결국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했으나, 이 자리의 누구도 그의 눈을 감겨줄 생각은 하지 않는듯 그저 몇초간 정적이 이어졌을 뿐이다. 그리고 주코프는 이 정적이 마뜩잖다는 듯이 자신의 권총을 툭툭 치며 뒤를 돌았다.


“바실렙스키. 내가 트로츠키를 잡이서 육시를 내버린다고 했지? 결국 해냈는데... 그럼 내기는 내가 이긴건가?”


 주코프가 약간의 너스레를 떨며 나가자는 제스처를 취하자 바실렙스키가 약간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따라갔고, 마지막에는 결국 흐루쇼프만이 서재 안에 남게 되었다.


“페로 선생.”


 지금은 쓰이지 않는 그의 옛 필명을 나지막히 불러본다. 흐루쇼프가 천천히 트로츠키에게 다가가 눈을 감겨주었고, 그는 자신의 만년필을 헌화 하듯이 그의 옆에 놓아두었다.


“그곳에선 행복하시오. 부디, 다음에는 파란만장한 청춘을 찾을 수 있기를.”


 흐루쇼프는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다는 듯이 심호흡을 하고는 건물의 바깥으로 나왔다. 그러자 겨울철의 날씨와 어울리지 않게 따사로운 햇빛이 그를 맞아주었다. 그리고 그의 동료들도.


흐루쇼프는 동료들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었다. 고작 이곳에서 만족할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리고, 아직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으니까.





ㅖㅏ 트로츠키는 흐루쇼프가 말한 것처럼 키보토스에 선생으로 환생해 파란만장한 청춘 이야기를 쓰고 있다눼요


내가 소설 쓰는 사람이 아니라서 이런건 너무 힘드네


@게오르기_주코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