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신문의 보도가 나온 이후, 대학병원 앞 사람들은 많이 달라졌다.
 벤치에 앉아 허망한 표정으로 담배를 입에 무는 것이 아니라, 피켓을 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순봄을 처벌하라! 처벌하라!"
 딸의 이름이 누군지도 모를 사람들에게 불려지는 것이 썩 좋지는 않았다.
 나는 다시 대학병원으로 갈 수 없었다. 그들도 내가 순봄이의 아버지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들의 분노는 나를 죽일 듯 불타오를 것이였다.
 확진자에 대한 신원은 공개되지 않는다. 동선이나 성별, 나이 등은 공개될지 몰라도 이름이 공개되는 것은 엄연한 불법이다. 그 신문사에 가 따져야한다. 그래서 어떻게든 정정보도를 받아내야한다. 그래야 퇴원할 딸에게 조금이라도 무언가를 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신문사에서 몇 시간을 대치해 겨우 만나게 된 기자는 난처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우선 저희가 확진자분의 신원을 공개한 것에 대해선 개인적으로 죄송하지만, 그렇다고 정정보도는.."
 "왜 힘듭니까? 잘못된 것이 있으면 그걸 바로 잡아야죠. 그에 대한 책임은 져야하는 것 아닙니까?"
 "하지만 정정보도라는게.. 저희 신문사의 신뢰성 문제도 있습니다. 그러니 정정보도까지 가시지는 마시고, 제가 개인적으로 사과드릴테니.."
 "우리 딸은 전국적으로 비난을 받고 있어요! 우리 딸을 죽여버리겠다고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 아십니까? 그런데도.. 그 신뢰성 때문에 못하시겠단 말씀이십니까?"
 "..."
 "긴 말 들을 필요 없습니다. 정정보도 해주십시오."
 끓어오르는 화가 터져나올 것 같아 그대로 뒤를 돌아 나오려던 참에, 그 기자가 뒤에서 외쳤다.
 "사실 그 분께서도 잘못하신 것 아닙니까?"
 ".. 뭐라고요?"
 "그 분이 슈퍼확진자이고, 많은 분들 감염시킨건 사실입니다! 그 분이 그만큼 다른 분들한테 민폐를 끼쳤는데 고작 그 기사 하나로.. 오히려 저는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순간, 무언가 이성의 끈 같은 것이 뚝하고 끊긴 듯 했다.
 내 주먹이 기자의 얼굴에 꽂혔다는 것을 손의 아픔이 오기 전까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성과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순식간에 나가떨어진 기자의 멱살을 붙잡고 소리쳤다.
 "국민의 알권리? 그 권리가 사람 하나 쓰레기 만들어서 인생 조져놓으라고 만들어진거야?"
 그는 어안이 벙벙한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정순봄.. 이 세 글자.. 이거 공개한다고 바이러스가 죽기를 하냐?! 아니면..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서 돌아오는거냐고?! 이건 그냥 국민의 알권리가 아니고, 그냥 만만한 사람 하나 놓고 실컷 물어뜯으라고 만든 거 아냐?!"
 뒤늦게 달려온 보안직원이 내 팔을 붙잡고 질질 끌고갔다.
 나는 끌려가면서도 아직도 쓰러져있는 기자에게 절규하듯 소리쳤다.
 "이런 쓰레기같은 새끼들아!"

 뚜벅뚜벅, 대학병원 앞에 걸어서 도착했다.
 피켓을 들고 목청을 높이던 사람들은 나의 등장을 알아차리곤 험악한 표정으로 다가오다 이내 내 손에 들린 것을 발견했다.
 나는 병원으로 오는 길에 산 휘발유통을 높이 들어 그대로 몸에 끼얹었다.
 사람들이 혼비백산하며 흩어지기 시작했고, 병원을 지키거던 의사들도 놀라 허둥지둥 무전기를 찾았다.
 나는 호주머니에 넣어둔 라이터를 손에 쥐고 높이 들었다.
 ".. 부탁 하나만 합시다. 우리 딸.. 만나게 해주세요."
 한 경찰이 당황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 아버님, 심경은 잘 알겠으니.. 우선 그것 좀 내려놓으시고.."
 "그냥 들어보내주십시오. 조금이라도 더 다가오거나 하시면 그대로 불 붙이겠습니다."
 "아버님.."
 "제가 허풍을 떠는 것처럼 보이진 않으실 겁니다."
 경찰들 여럿이 모여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다 말했다.
 ".. 만일 만나셔도, 바로 격리조치 되실겁니다."
 "상관 없습니다. 만나게 해주세요."
 경찰들이 며칠을 막고 있던 그 선이 마침내 무너졌다. 경찰들이 비켜선 그 사이로 몸에서 휘발유가 뚝뚝 떨어지는 한 중년의 사내가 지나갔다.
 의사들의 안내를 따라 도착한 한 병실의 문을 열자, 못 본 사이 야윈 딸이 놀란 듯 말했다.
 "아빠.. 아빠도.. 감염된거야?"
 나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 웃음 사이로 울음이 묻어나와, 기쁨의 웃음은 미안함의 울음으로 변했다.
 "아빠 왜 그래.. 괜찮아, 괜찮아.."
 딸은 휘발유로 범벅이 된 아빠를 꼭 껴안았다. 그러면서 아이를 달래듯이 등을 토닥토닥 두들겼다.
 서로의 기름이 묻은 얼굴을 보며 나와 딸은 한참을 웃었다.
 한바탕 폭풍처럼 휘몰아친 순간이 끝나고, 나는 딸을 바라보며 말했다.
 ".. 순봄아."
 "응?"
 "너 여기 계속 있는거 힘들지?"
 딸은 잠깐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외로워, 다른건 다 참을 수 있는데.. 아빠 얼굴을 못 보는거.. 그게 힘들더라.."
 ".. 나도."
 딸이 어느새 새빨갛게 변한 두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순봄아, 아빠랑 쭉 계속 있었으면 좋겠지?"
 "응.. 옛날처럼, 다른건 기대 안하고.. 나도 안 아프고, 아빠랑 같이.. 쭉 계속 있었으면 좋겠어."
 엄마가 죽은 이후 어린 시절을 줄곧 아빠에게 의지하던 딸이였기에, 딸의 진심어린 말이 더욱 깊게 다가왔다.
 "그럼.. 순봄아, 아빠 조금만 도와줄래?"
 "뭘.. 도와줘?"
 "그냥, 아빠 앞에만 서 있어줘."
 "어.. 알겠어."
 딸이 내 앞에 서자, 나는 한 손으로 딸의 배를 감싸고, 다른 한 손으론 라이터를 손에 쥐었다.
 가만히 지켜보던 의사 한 명이 당황한 듯 외쳤다.
 "잠시만요! 이게 무슨.."
 "우린 감염자입니다. 가만히 계시다가 우리한테 전염되시던지, 아님.. 조용히 길을 비켜주시던지."
 당황해 혼비백산하며 도망치는 의사들을 바라보며 딸에게 말했다.
 "순봄아, 이렇게 나가도 괜찮지?"
 잠깐 고민을 하던 딸이 결심한 듯 말했다.
 "다른 사람들한테.. 피해만 안 주면."
 "괜찮아, 다른 사람들한테 피해 없어. 마스크 잘 쓰고, 최대한 사람들이랑 멀찍이 떨어지자."
 딸과 나는 그렇게 꼭 붙은채로 병원의 입구로 내려갔다.
 병원 앞에서 장사진을 이루고 있는 기자들과 사람들, 그리고 경찰들까지 혼비백산하며 흩어졌다.
 마치 벌레가 된 것 마냥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큰 상관은 없었다. 나는 지금 딸과 이 지긋지긋한 곳을 나가고 있으니 말이다.
 모세가 반으로 갈라진 홍해를 가로질러 건넌 것처럼, 나와 딸은 반으로 갈라진 인파를 가로질러 병원 앞 도로로 향했다.
 방금 막 차를 타고 도착한 한 기자는 환자복을 입은 딸을 보더니 다른 사람들처럼 놀라 자동차 키도 꽂아둔 채 도망쳤다.
 나는 도망치는 그의 뒤통수에 대고 소리쳤다.
 "차 고맙습니다!"
 그대로 딸을 조수석에 태우고, 나는 운전석에서 창 밖의 풍경을 바라봤다.
 너무나도 놀라 잡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경찰들과, 관심을 가지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기자들이 뒤엉켜 있는 모습이 우스워, 딸과 함께 실컷 웃었다.
 그리고 미련 없이 자동차 시동을 걸었다.

 자동차는 어느새 고속도로를 진입했다. 차에 탄 이후 오랜만에 보는 바깥 풍경에 창 밖만을 바라보던 딸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아빠는 왜 이렇게 무모하게 온거야?"
 "왜? 그래서 싫어?"
 "아니.. 그건 아닌데.. 아빠도 감염되었을 수도 있잖아.. 그럼 아빠도 위험한건데.."
 나는 아직까지도 아이 같은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너도 결혼해서 애를 낳아보면 알겠지만, 어떤 이유에서든지 자식을 버리는 부모는 없어. 아무리 자식이 못되고, 정말 나쁜 짓을 하더라도, 부모는 언제나 자식의 최후의 지지자야."
 "멋진 말인데, 어디서 들은거야?"
 "아빠도 생각이란걸 하거든?!"
 온 몸에 휘발유를 뿌린 아버지와 환자복을 입은 딸이 같은 차에서 웃으며 이야기하는 모습은 기괴했지만, 그러면서도 아름다웠다.
 "아빠, 목적지는 어디야?"
 "모르겠다, 그냥 길이 우리를 이끄는대로 따라가는 수 밖에는."
 "그래 뭐, 어딘가 목적지는 생기겠지."
 "딸, 아빠한테 노래 한 곡 불러주라."
 "왜? 딸 노래가 그렇게나 듣고 싶어?"
 "우리 딸이 가수 뺨치게 노래 잘 부르잖아? 아빠 슬슬 잠 오려고 하는데, 노래 한 곡 불러주면 아빠가 더 힘을 내서 운전을 하지."
 "핑계는, 무슨 노래 듣고 싶은데?"
 "음.. 가을 아침. 그게 갑자기 듣고 싶네."
 딸은 알겠다는 듯 목을 가다듬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 작은 새들 노랫소리 들려오면

 언제나 그랬듯 아쉽게 잠을 깬다

 창문 하나 햇살 가득 눈부시게 비쳐오고

 서늘한 냉기에 재채기할까 말까 음

 이렇게 평생, 딸과 노래를 부르며 살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