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열리게 된 연회에 황태자는 참석하지 못했다.
 그에게는 조금 의아한 일이였다. 자신의 뒤를 이을 황태자인 그를 국가행사마다 참석하도록 해 황위계승을 공고히 해야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그였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대신들 모두 불러모은 이번 연회에서는 황제가 그는 참석하지 않아도, 아니 참석해서는 안된다고 말한 것이였다.
 황태자는 약간의 아쉬운 마음을 가진채 자신의 방에 틀어앉아 태국으로 시집을 간 자신의 여동생에게 쓸 편지의 문구를 이리저리 바꿔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작스레 호기심이 발동한 황태자는 조용히 몸을 일으켜 연회가 열리는 곳으로 걸어갔다.
 한 밤 중인데다, 오늘은 이상하게도 황궁을 순찰하는 친위대도 없어 그는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연회장으로 갈 수 있었다.
 그는 연회장에서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 것을 보곤 연회가 끝이 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발을 돌리지는 않았다. 어차피 연회도 끝이 났으니, 아버지에게 인사라도 하고 갈 참이였다.
 그리고 그는, 연회장의 문을 열었다.

 연회장에는 많은 신하들이 술에 거나하게 취한채 있었다.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음식들과 여러 고급 술들이 긴 식탁 위에 올려져있었고, 음악대의 연주가 연회의 분위기를 띄우고 있었다.
 모두가 붉게 물든 얼굴로 술을 마시거나, 음식을 먹고, 옆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동안 딱 한 사람. 황좌에 앉은 황제만이 굳은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그는 음악대의 음악소리에 집중하지 않았다. 옆에 앉은 황후와 이야기를 나누지도 않았다. 무표정한 얼굴로 연회장 안에 서 있는 그의 정예부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밖에 잠시 나갔던 정예부대의 장군이 다시 안으로 들어왔다. 그것은 신호였다.
 황제는 잠시동안 갈등하며, 그의 오른손에 쥐어진 술잔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그는 두 눈을 감고 술잔을 떨어뜨렸다.
 술잔이 부서지는 소리에 대신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황좌를 바라봤다.
 "폐하, 괜찮으십니.."
 한 대신이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연회장을 둘러싸고 있던 정예부대의 병사들이 창을 뽑아들고 연회장 안으로 달려들어왔다.
 그리고 살육이 시작되었다.
 병사들은 자신이 해야할 일을 충실히 해내고 있었다. 그 긴 창으로 흰 두루마기를 입은 신하들을 베어버렸다.
 비명소리와 고함소리가 연회장을 가득 채웠다.
 오늘 일어날 일을 전혀 알지 못한 황후 역시 두려움과 공포에 떨며 황제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황제는 그 눈을 애써 피했다.
 도망가려는 자들의 목이 베어지고, 반항하던 자들의 몸이 두 갈래로 베어졌다.
 그 피 튀기는 살육 속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한 노인이 있었다. 그는 황제의 장인어른이자, 황후의 아버지였다.
 그제서야 이 모든 상황을 알게된 황후는 황제 앞에 울며 머리를 조아렸다.
 그녀의 아버지를 살려달라고 빌었다. 귀양을 가도 좋고, 자신이 폐위되어 쫒겨나더라도 좋으니, 목숨만은 살려달라는 것이였다.
 황제는 말이 없었다. 그저 창을 든 병사가 그 노인의 목을 베는 것을 가만히 지켜볼 뿐이였다.
 아버지의 죽음을 눈 앞에서 본 황후가 울부짖었다. 쓰러진채 오열하는 황후에게 다가서는 병사를 제지하였다.
 그리고, 그가 늘 몸에 품고 있던 검을 꺼냈다.
 엎어져 울고 있는 황후를 일으켜 세우고, 그는 속삭이듯 말했다.
 "날 저주하시오."
 이윽고 검이 그녀의 배를 관통했다.
 황제의 어깨를 부여잡은 황후의 손아귀의 힘이 서서히 약해지며, 황후는 그의 앞에서 쓰러졌다.
 황제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의 명령을 받은 병사들이 모든 남벌파의 대신들을 살육했다. 방금 전까지 음악 소리로 가득찬 연회장이, 피와 시신으로 가득찼다.
 황제가 피 묻은 자신의 검을 바라보는 그 순간, 연회장의 문이 열렸다.
 ..황태자였다.

 황태자는 자신의 눈 앞에 펼쳐진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피범벅이 된 연회장, 피를 흘리며 쓰러진 대신들, 그리고.. 쓰러진 어머니와 피 묻은 칼을 든 아버지.
 황태자는 어머니에게 달려가 맥박을 살폈다.
 이미 차갑게 식은 시신에는 맥박이 뛰지 않았다.
 이윽고 어머니의 배에 난 큰 상처를 바라본 황태자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아버지가 든 검을 봤다.
 "아니..아니시지요?"
 황태자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아니시지요..?"
 "..."
 황태자가 또 물었으나 황제는 대답하지 않았다.
 "왜 아니라 말씀하지 못하십니까!"
 황태자가 절규했다.
 황제는 피 묻은 검을 움켜쥐곤 말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였다."
 "무슨 어쩔 수 없는 일이기에 어머니를 죽이고, 이 많은 대신들을 살육했다는 겁니까?!"
 황태자가 일어나 황제를 노려봤다. 황태자의 두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너도 잘 알지 않느냐, 다들 남벌파의 신하들이다. 이 아비에게 매일같이 남벌을 하라며 협박을 하던 자들이다! 이 황좌에 위험이 되는 자들이란 말이다!"
 "그 황좌를 위협하는 자에.. 어머니도 포함되는 겁니까..?"
 "..너도 저 황좌에 앉게되면 알게될거다. 저 황좌를 지키기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그리고, 저 황좌를 지키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하는지.. 어머니는 남벌파 수장의 딸이였다. 남벌파 신하들의 강요로 하게된 결혼이였고, 만일.. 살려두었다면 큰 화가 되었을거다."
 "그럼.. 어머니가 원치 않는 사람이였다면, 저 역시도 원치 않는 자식이였습니까?"
 황제는 말문이 막혔다.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그 황좌를 지키기 위해.. 사랑하던 사람을 배반하고, 또 이런 일까지 저질러야한다면.. 저는 그 황좌를 물려받지 않겠습니다."
 황태자는 뒤를 돌아 연회장을 나갔다.
 연회장의 문을 열려는 황태자에게 뒤에서 황제가 소리쳤다.
 "지금 여기서 나간다면, 너 역시도 반역을 저지르는거다! 나는 이 황좌를 지키기 위해 뭐든지 할게다, 그게 이 화령을 위한 일이라면!"
 황태자는 뒤를 돌아 말했다.
 "..옥체 보전하십시오."
 황태자는 그대로 연회장을 나갔다. 피바람이 분 연회장에는 황제 혼자 허망히 황좌에 앉아 있었다.

 ..황태자가 지방 양반들과 손을 잡고 민병을 일으킨 것은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