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옥도 자신의 직위를 스스로 내려놓은 장군들 중 한 명이였다.
 종전 발표 이후, 신하들 뿐만 아니라 장군들 역시 종전협상의 내용에 분노를 토로했다. 이러려고 목숨 바쳐서 싸운 것이 아니라는 것이였다.
 많은 장군들이 사의를 밝히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김명옥도 마찬가지로 사의를 표하는 서신을 황궁으로 보내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어린 소녀일 때 떠났지만, 돌아올 때에는 성년이 되어 있었다.
 그녀가 몸을 의탁했던 양반집의 소식은 끊겼었다. 긴 전쟁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을 끊기 마련이였다.
 마을은 아직도 죽은 듯이 조용했다. 어쩌면 정말 마을이 죽었을지도 몰랐다. 그녀가 이 마을을 떠났을 때보다 화령은 훨씬 힘든 상황에 놓였다.
 그녀는 갈 곳이 없었다. 의탁할 곳도 없었다.
 하늘 아래 내가 마음을 놓고, 발 붙이고 살아갈 곳이 없다는 사실은 그녀를 서글프게 하였다.
 그러다보니 그녀는 점점 종교에게, 신에게 의지하게 되었다.
 전쟁으로 지친 몸과 마음을 오직 신만이 치유해줄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일말의 의심도 없이 신을 믿어오던 그녀의 마음에 작은 의심이 싹을 틔웠다.
 아무도 없는 빈 성당에서, 그녀는 십자가에 걸린 예수상을 바라보며 말했다.
 "신이시여, 신께선 제게 신탁을 내려주시며 원과 일본을 이 땅에서 몰아내라 명하셨습니다."
 그녀는 팔을 걷어 상처를 내어보이며 말했다.
 "신의 명에 따라 목숨을 걸고 싸웠고, 한사코 신탁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울분이 차오르는 듯 잠시 멈추곤 다시 말을 이었다.
 "왜 신께선 이런 결과를 낳으셨나이까? 원과 일본을 몰아내라하셨는데, 그 말이 이런 결과를 말하는 것이셨습니까? 자비로운 신께선 어찌하여 굶어죽어가는 이들을 내버려 두십니까?"
 그녀는 마침내 절규하듯 외쳤다.
 "신이시여..! 저는.. 신을 믿을 수 있겠나이까? 저는 신께서 가지신 그 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나이다.. 저는.."
 그녀는 감정이 북받혀 오른 듯 도망치듯 성당을 뛰쳐나왔다. 마을의 강가에 쪼그리고 앉아 두려움과 외로움, 그리고 분노에 사로잡혀 그녀는 꽤 오랫동안 울었다.
 울음을 그친 그녀는 다시 차분히 생각했다.
 그녀는 동앗줄이라도 잡고 싶었다. 그녀가 인생을 바쳐 믿은 신이 거짓되었다면 그녀의 삶 역시 거짓된 삶이 되는 것이였다.
 그녀는 신을 부정하려 한 자신을 스스로 꾸짖으며 한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구라파. 선교사들이 왔다는 그 구라파에 가고 싶어졌다.
 그 곳에 간다면 그녀 자신의 마음을 휘감고 있는 이 복잡한 생각의 해법을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녀는 곧바로 짐을 챙겼다. 가벼운 짐과 말 한 필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을 듯 했다.
 그녀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녀의 마음에 자리를 잡으려 하는 그 작은 의심을 떨쳐낼 수만 있다면, 그녀는 악마에게라도 영혼을 팔 수 있었다.
 그렇게 그녀는 말을 이끌고 떠났다. 신의 가호가 그녀 자신의 여행길에 있기를 기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