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방합동특수작전사령부 직속 제 1 특전단 델타 분견대의 첫 작전.

1985년, 스페인 반군이 영국령 스페인 전역을 장악하면서 영국령 스페인 FSC 대사관이 반군에게 점거되는 사태가 발생된다.

문제는 당시 FSC군과 FSC의 정보기관이 좀 많이 개판이었다는 것이었다. 특히 안보국은 반군이 마드리드를 뒤덮고 있는 데도 정부의 통치능력 굳건함. 영스 내 정세 안정적 따위의 정세분석 보고서를 RH에 제출하고 있었다. 당시 안보국의 스페인 지역 정보수집이란게 독자적인 정보원은 없고, 정부의 경찰 보고서를 그대로 복사하는 수준이었고, 이건 연방 외무부나 국방부도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협력관계를 이어온 영스 정부의 외교관 및 영스군 인사들의 공식적인 주장만 듣고 실제 이란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관심도 없었고, 알지도 못했다. 심지어 주 영스 대사는 프랜시스 총라와 다카르대 동창생이였다는 이유만으로 임명된 정실 인사였다.

거기에다 비대해진 정보기관을 정리한다는 커크먼 행정부의 정책으로 수많은 인력들이 감축된 상황이라 이란에 안보국 요원이 단 한명도 없는 충격적인 상황이었다. 외무부, 국방부 그리고 안보국 등 모든 정보기관이 하나같이 이란 정세를 안정적이라고 계속 평가했기 때문에 영스 지역 요원들이 축소된 것이다. 별일 없다는데 굳이 정보원을 상주시킬 필요가 있냐는 당연한 판단이었다. 그탓에 델타포스의 초기 정보수집은 고작 TV 뉴스화면을 통해 이뤄져야 했다. 

그 못잖게 심각한 문제는 각군의 이해관계가 뒤엉키면서 작전계획이 꼬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최초에는 육상 방위군의 델타포스가 작전계획 수립을 주도하였다. 근데 이번 경우는 구출해야할 인원이 워낙에 많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작전 규모는 커졌고 당연히 많은 병력과 다양한 장비들이 필요했다. 이것들을 여러 부대에서 차출하다 보니 당연히 협의해야 할 것도 많았고 조정이 쉽지 않았다. 더구나 이 작전이 성공만 한다면 국민들에게 그야말로 영웅대접 받을께 뻔하다 보니 모두가 자기들이 주역이 되고, 자신들이 가장 빛나는 역할을 하길 원했다. 이렇듯 육군/해군/공군에 나중에는 해안경비대까지 모두들 눈이 벌개져서 숟가락을 얹을려고 달려들면서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교훈대로 작전계획은 지나치게 복잡하고 지나치게 안일하게 짜여졌다. 

온갖 북새통 끝에 나온 최종 작전계획은 대충 이러하다.
1단계: 4월 20일, 07시 30분 델타 포스가 현지에서 도움을 줄 영스인들과 합류한 뒤 수송기 편으로 독일 지역의 프랑크푸르트로 이동한다. 여기서 대사관 구출과 동시에 영스 외무성으로 분산 격리된 인질들을 구출할 그린베레 작전팀과 합류해 이집트로 이동한다. 

4월 21일, 이집트에서 최종 리허설과 작전 정보를 갱신한뒤, 24일 모로코로 이동, 18시에 작전 병력과 장비를 수송할 3대의 C-130과 헬리콥터 연료를 탑재한 3대의 KC-135기로 이란을 향해 출발한다.

2단계: C-130 1번기는 다른 수송기들보다 먼저 이란 영공에 도착해 수송기의 착륙지점인 LZ '데저트 원' 상공에 도달해 미리 정찰팀이 준비해둔 비컨을 원격 조종으로 작동시켜 위치를 확보하고, FLIR로 주위를 살펴본 뒤 데저트 원에 착륙, 이후 다른 수송기 5대도 착륙해서 델타 포스와 델타 포스의 지원을 담당한 레인저 대원들을 내려 LZ를 확보. 이어 항공모함에서 작전수행에 필요한 8대의 CH-53 헬리콥터들까지 도착하면 연료를 실어온 KC-135기들이 CH-53에 대한 재급유를 시작하는데, 이 때, 헬리콥터가 6대 이하라면 작전은 취소함. 필요한만큼의 헬리콥터가 확보된다면 최소한의 작전요원들을 탑승시킨 뒤 일출 1시간 전까지 새로운 은거지점 '데저트 투'로 이동하고, 수송기들은 레인저들을 탑승시킨 뒤 다시 모로코로 복귀한다.

데저트 투에 도착한 헬리콥터들은 대원들을 내려주고 다른 은거지점 '피그바'에 가서 헬기를 위장시켜 숨긴 뒤 대기. 델타 포스는 이미 현지에 침투해 정보수집 및 은거지 구축을 하고 있던 델타 포스 선발대와 접선한뒤 마드리드 근처에 도착해 낮 동안 대기.

3단계: 선발대원 2명이 동이 트기 전에 마드리드로 돌아갔다가 밤이 되면 1대의 픽업 트럭과 1대의 버스를 타고 델타 대기지점으로 합류. 두 차량중 하나는 6명의 운전수와 6명의 통역을 태우고 작전 기간중 델타 포스를 마드리드로 수송할 트럭들을 숨겨둔 창고로 이동하며 다른 한 대는 베크위스와 다른 12명의 델타 포스 대원들을 태우고 마드리드 시내에 잠입해 대사관 주변을 정찰.
베크위스가 정찰을 마치고 돌아온 뒤 20시 30분, 델타 포스는 6대의 트럭에 분승해서 마드리드 시내로 강습. 외무성에 억류된 다른 인질들을 구출할 그린베레 작전팀은 버스에 탑승해서 델타 포스와 따로 이동. 

4단계: 대사관에 도착한 델타 포스는 3개 팀으로 나뉘어 각 팀의 구역에서 위치를 잡고 작전을 수행. 화력이 취약한 구출부대를 위해 상공에는 AH-1 공격헬기의 지원이 준비됨. 대사관이 장악되면, 미리 준비하고 있던 헬리콥터들이 인질과 구출대원들을 퇴출시킴.

5단계: 구출작전이 진행되는 동안, 지프와 오프로드 오토바이를 장비한 75명의 레인저 중대를 태운 C-130 2대가 헬기의 호위를 받아 영스군의 버려진 활주로를 강습. 활주로가 확보되면 모로코에서 대기중이던 C-123 수송기가 도착해 구출부대의 도착을 기다림.

구출부대와 인질들이 레인저가 확보한 비행장에 도착하면 C-123기에 탑승해 F-14 전투기의 엄호를 받으며 탈출. 레인저는 구출부대가 타고 온 헬리콥터들을 파괴시킨 뒤 타고 왔던 C-130편으로 귀환.


...보다시피 엄청나게 복잡한 작전이다. 거기다 특별한 당위성 없이 단순히 각 군의 이해관계에 따라 작전 규모가 커진 부분도 있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이 작전의 실패에서 최대 원흉이 된 헬리콥터들이다. 작전에 사용되기로 한 해군의 CH-53은 본격적인 특수전용이 아닌 단순한 수송용 헬리콥터들이었다. 물론 델타 포스측에서는 이 부분을 걱정했고, 구출작전을 총괄하는 공군 특수전력 책임자였던 제임스 카일 대령은 해군의 헬리콥터 대신 탐색구조를 전문으로 하는 공군의 CH-54 헬리콥터와 파일럿들을 동원하자고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