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대공분실로 처음 들어가게 될 때였다. 

"오호? 이거, 오랜만입니다. 비서실장님. 아니, 전 비서실장 김명희 씨. 여기서 다시 만나게 되는군요."

안영환은 날 선 말투로 김명희를 비꼬고 있었다.

그녀는 손발이 묶인 채 조용히 안영환을 바라보고 있었다.

"솔직히 반공주의자였던 당신께서 이런 일을 벌이실 줄은 몰랐습니다만... 뭐, 전 제 할 일을 해야겠지요."

안영환은 잠시 고민하다가, 이윽고 말했다.

"일단 제가 배가 고프니, 우선 밥부터 먹고 시작하시죠."

그러면서, 그는 전화기로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거기 중국집이죠? 매운 짬뽕 세 그릇만 주쇼. 태광실업 앞으로. 어딘지 알죠?"

그리고 그는 그동안 김명희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순순히 말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우선, 왜 그 공산주의 범죄자를 탈출시켜 줬습니까?"

김명희는 잡아떼고 있었다.

"....저도 제가 왜 그녀를 탈출시켰는지 모릅니다."

"모른다고요?"

안영환의 말투가 거세지기 시작했다.

"하, 어이가 없구만. 자기가 왜 탈출시키는지도 모르고 탈출시켜주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입니까? 그것도 공산주의 빨갱이 자식을?"

"......"

"대답해! 어서! 공산당들과 내통한 거지?"

"......"

"대답할 생각이 없구만, 이거. 그렇다면, 사람을 불러오는 수밖에 없겠지."

안영환은 그의 동료에게 김명희를 맡긴 채 휴게실로 들어갔다. 

잠시 뒤, 그의 동료가 들어왔다.

그는 순박해 보이고, 선한 인상의 젊은 청년으로 보였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제 이름은 진수일이라고 합니다."

"...예."

"그 분을 이해해 주십시오. 신의주 사태 당시에 가족들이 희생된 이후 공산주의의 공 자만 나와도 흥분하시는지라...."

"괜찮아요."

"일단, 본론으로 들어가죠. 지금 당신이 저지른 행동이 어떤 짓인지는 알고 계시지요?"

"...넵."

"일단 심문받고 있던 범죄자를 탈출시킨 것은 큰 죄입니다. 또한, 신의주 지역에 무단침입하셨다는 건데...."

"그렇습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곳에 들어가셨는지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래도 뭔가 사정이 있어서 그랬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런가요?"

"네. 그녀를 신의주로 보냈다고 해도, 전직 비서실장이셨던 분이 이런 일을 괜히 저지르진 않을 테니까요."

"그래서요?"

그는 숨을 잠깐 쉬고, 계속 신사적인 태도로 이야기하였다. 

"실은, 부탁이 있습니다. 이 진술서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 세세히 작성하실 수 있습니까?"

그는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여기에 있는 진술서에 최대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사실적으로 쓰시고, 당신이 백설하 씨에 대해 아시는 것들을 적어 주시면 별 무리는 없이 끝날 듯 합니다."

"...사양하겠습니다."

"...부탁입니다. 저는 당신이 고문으로 인해 상처 받는 것을 원하지 않아요. 진술서에 정확하게 작성을 하셔야 사건을 종결시킬 수 있습니다."

김명희는 잠시 고민하더니, "알겠습니다." 하고 말했다.

몇 분 뒤, 그녀는 작성한 진술서를 진수일에게 건넸다.

"다 적으셨으면, 사장님께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그러고서 그는 안영환에게 발걸음을 옮겼다.

다시 몇 분 후, 안영환이 문을 쾅 열며 김명희에게로 다가왔다.

"김명희 씨, 당신의 진술서를 읽어봤는데요. 일단 상황이 어땠는지는 대략 알겠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어딘가 모르게 모순되는 부분이 있단 말이죠."

"...네?"

"경고합니다. 사실과 다른 내용을 한 줄이라도 쓸 시에는,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다시 써 오십시오."

김명희는 그 부분을 고쳐 다시 건넸다.

"...허어. 보자보자하니까 이 년이?"

안영환은 봉을 가져와서 김명희의 머리를 내리쳤다.

"악!"

"아까 경고했는데도 더럽게 말을 안 들어쳐먹는구만. 헛소리를 하고 있어."

그 말을 하면서, 안영환은 김명희를 구타하기 시작했다.

중국집 배달부가 문을 두드렸을 때, 비로소 그는 구타를 멈추었다.

"허튼 수작 말라 이거야. 마침 짬뽕도 왔으니 쉬고 있으라고."

김명희는 축 늘어져 있었다.

그때 진수일이 다가와,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대체 왜 그러신 겁니까...? 진술서를 제대로 작성하셨어야지요...."

"아....아..."

김명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신음만 내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다시 종이를 내밀며 말했다.

"어떻게든 사장님께 좋게좋게 이야기해 드릴 테니, 이번에는 제발 제대로 작성해 주세요.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픕니다."

"...질문이요..."

"네?"

"당신 같은 사람이, 왜 이런 데에서 근무를 하고 있는 거죠...?"
"...그건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진수일은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사실 김명희에게 호의를 보이는 이러한 행동도, 안영환과 합의된 고문의 일종이었다.

소위 '당근과 채찍' 방식으로, 호의적으로 접근하는 진수일과, 거세게 접근하는 안영환.

물론 그는 안영환처럼 반공주의자는 아니었고, 고문을 즐기는 사람도 아니었으며, 

범죄심리학자를 꿈꾸던 그는 범죄자들을 가까이서 탐구해 보고 싶다는 마음에 이 곳에 자원하게 된 것이었다.

자신이 고문에 일조한 것에 대한 죄책감은 있었으나, 이를 연구의 일종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치부하기에 바빴다.

"대답을 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그녀는 진술서를 다시 그에게 건넸다.

"그럼 사장님을 불러오겠습니다."

잠시 뒤, 안영환이 한껏 일그러진 얼굴을 한 채로 들어왔다.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이었나? 안 그래?"

김명희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아니, 할 생각도 없었다는 편이 정확했다.

"마침 짬뽕을 다 먹어서 말인데, 좋은 생각이 떠올랐군 그래."

잠시 뒤, 그는 배달된 짬뽕 그릇을 들고 왔다.

뻐얼건 국물이 흥건히 담겨 있었다.

"사실대로 말해."

요원들이 그녀를 제압한 채, 안영환은 빨간 국물을 김명희의 콧 속에 집어넣기 시작했다.

"아... 아아......"

김명희가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진수일은 차마 보지 못했다.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하지만 연구를 위해서는 당신이....'

그녀는 그녀의 체액을 눈물, 콧물, 침, 가리지 않고 모두 쏟아내고 있었다.

이윽고 완전히 그녀가 혼절하고 나서야, 안영환은 쓰러진 그녀를 내버려 둔 채 돌아갔다.

이 날은 그저 김명희가 겪은 고문 중 하루에 해당하는 일이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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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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