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 "새로운 중화의 불꽃"


상해국립대학은 장궈타오가 제출한 그림들을 보고 "그냥 건축가의 그림이다, 고통스럽고 정밀한 제도기술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장궈타오는 순수미술에서 가망이 없으니 건축학교로 가라" 라며 불합격판정을 내렸다.


장궈타오는 이러한 판정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고, 이것은 현 정권에 대한 비판과 혐오로 변색되어갔다.


이렇게 자칭 예술가, 실제로는 백수와 다름없는 무의미한 삶을 보내던 장궈타오에게 삶을 바꿀 전기가 찾아왔다. 


그것은 바로 중공 휘하 만주인민국 지휘소에서의 긴급한 군인 징집이였다. 적어도 적색혁명에서 승리한 조국을 의심하지 않았다. 따라서 중공 인민들도 만주인민국 징집에 대해 환영하였고, 장궈타오 또한 매우 기뻐했다.


장궈타오는 중공 정부에 청원까지 하며 만주인민군에 자진입대했다. 어쨌든 그는 중공 휘하 만주인민군 육군에서 복무했는데 리스트 연대에서 연락병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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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인민국에서의 여러 활약을 통해 이후 장궈타오는 상병으로 진급했고 이것이 장궈타오의 마지막 진급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