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트 비상행정부 / Notfallverwaltung Baltikum


 "발트"는 넓게는 발트해에 인접한 중유럽, 북유럽 그리고 동유럽 일대를 모두 가리키는 단어이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독일 문화권과 러시아 문화권의 영향권이 서로 충돌하는 북유럽의 일부 지역을 가리킵니다. 이 지역은 발트족 계열의 라트비아인과 리투아니아인은 물론이고 동방식민정책의 일환으로 이주해 온 독일인들과 단일된 루스 국가가 서쪽으로 팽창해 올 때 옮겨온 러시아인들, 그리고 북쪽의 핀-우그리아 계열로 분류되는 에스토니아인들, 그리고 일부 스웨덴인들까지 매우 다양한 인종 구성을 자랑합니다.


 그 때문에 발트 지역은 다채로운 문화 스펙트럼을 자랑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끊임없는 갈등과 불안정이 계속되는 지역이기도 합니다. 한동안 이 일대는 여러 가지 사상과 민족들이 끊임없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벌이는 무질서한 혼돈이었으며, 이해관계의 변동에 따라 셀 수 없는 집단들과 군벌들이 동맹과 배신을 반복하며 역사가들이 미처 기록하기도 전에 짧은 생을 마쳤습니다. 고통 앞에 영웅은 없듯이, 무르만스크 앞바다만큼 냉혹한 현실 앞에 가장 뜨거운 이상주의자들마저도 차갑게 식어 대지에 잠들었습니다. 사상은 따르는 자가 있는 이상 불멸이라 하지만, 발트에서 이상은 망각 속에 천천히 가라앉았습니다. 집단 간의 차이를 해소하고 발트를 단결시킬 위대한 사상가들이 멸종된 후, 발트에 통합이란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많은 사람들에게 각인되었습니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발트의 혼돈은 그것이 찾아온 만큼 갑작스럽게 끝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시작은 프로이센의 건국이었습니다. 물론 프로이센 정부 당국은 동쪽의 무법지대에 대해 별로 큰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어떤 조직에서라도 승인되지 않은 사소한 장난질이 거대한 후폭풍을 몰고 오는 것은 생각보다 흔한 일이죠. 발트 지역의 독일인들은 프로이센 동부 주둔군과 많은 교류를 하기 시작했고, 발트 독일인들이 "안전 보장"을 위한 무기 지원과 군사 고문을 요청했을 때 프로이센 동부 주둔군 사령관은 그리 깊은 생각 없이 이를 승인했습니다.


 물론 프로이센에서의 무기 지원은 그 품목이나 수량 모두 아주 특수한 경우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독일인들은 발트에서 가장 단결된 집단 중 하나였고, 이는 프로이센 군사 고문의 자문과 강력한 시너지를 냈습니다. 발트 독일인들이 체계적인 지도 아래 창설한 무장조직 "동방 독일인 연맹" (Deutsche Vereinigung der Ostland, DVO) 은 발트의 서쪽에서부터 천천히 세력을 확장했습니다. 리투아니아에서 출발한 동방 독일인 연맹과 리가를 중심으로 라트비아 북부와 에스토니아 남부에 세력을 뻗친 리보니아 독일인 형제단 (Deutsche Bruderschaft Livoniens, DBL) 이 미타우 (라트비아어: 옐가바) 에서 상봉하며 연합했고, 그 후 20개월 안에 발트는 독일인들에 의해 평정되었습니다.


 러시아계 사회주의자들의 마지막 거점이었던 나르바가 함락되며 발트 지역 대부분의 통제권은 독일인들의 손에 들어갔습니다. 가장 오랫동안 독일인들의 거점이었던 리가에는 "발트 비상행정부"로 이름지어진 새로운 행정부가 들어섰고, 독일인들과 일부 협력자들이 빠르게 행정 체계를 조직하며 겉으로 발트는 안정되는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발트 곳곳에 이 '비상행정부'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은 너무나도 많으며, 적당한 외부 지원이 있다면 이들은 독일인들의 정부를 무너뜨리기 위해 목숨도 기꺼이 바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