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게이머 네모 자서전 

굳게 믿는 힘(思い込む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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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기 위해 늘 고민해왔다



‘되고 싶은 자신’이 없어도 미래는 선택할 수 있다

지금까지 저는 ‘좋아하는 일’, 즉 게임을 ‘직업’으로 삼았다는 것. 그리고 지금까지 어떤 길을 골랐고, 어떤 선택을 해 왔는지를 적었습니다. 제 경우에는 이 ‘좋아하는 일’이 게임이었지만, 분야는 달라도 같은 고민을 품고 계신 분은 저 말고도 많이 계실 겁니다. 예를 들어 제가 처음 근무했던 회사의 선배는 회사 일을 하는 동시에 밴드 활동을 계속하기도 했고, 요즘엔 회사에 다니며 인터넷에 만화나 일러스트를 올리시는 분, 음악을 업로드하시는 분도 여럿 계십니다. 그런 분들 중에는 과거의 저처럼 “좋아하는 일로 생계를 유지할 만큼 돈을 벌 수는 없어. 하지만 그만두고 싶지는 않아. 일과 취미의 밸런스를 어떻게 잡아야 할까?”라며 고민하는 분도 계실 테죠.

그와 별개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나 나아가고 싶은 방향이 보이지 않아 고민인 분도 계실 겁니다. “지금 하는 일은 좋지만, 이것만으로 괜찮을까?”라든가 “좀 더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나 “하지만 그걸 찾아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등의 고민 말입니다.

양쪽 다 타입은 다르지만, “나 자신이 되고 싶은 미래”를 모른다는 점은 같습니다. 결국 커리어에 대한 고민은 누구나 하고 있다는 얘기죠. 특히 앞으로 펼쳐질 시대엔 정직원이 되어도 안주할 수 없고, 이직이든 겸업이든 당연한 일이 될지도 모릅니다. 다른 사람들은 자신의 꿈이나 커리어를 똑바로 향한 채 발전해 가는데, “나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라며 방황하는 건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저도 프로게이머로 활약하는 동료들을 보면서 “나는 지금부터 어떻게 해야 하지”라고 생각한 적이 몇 번이나 있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제가 드리고 싶은 얘기는, “‘되고 싶은 자신’이 없더라도 미래는 선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몇 번이나 되풀이하는 얘기지만, 예전의 저는 게임이 직업이 될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고 프로게이머가 된 제 모습 또한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학생 때에는 ‘나중에 되고 싶은 것’이나 ‘하고 싶은 일’ 같은 미래상 자체를 전혀 생각하지 않던 타입이었죠. 막연하게 “게임은 계속할 수 있으면 좋겠네”라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처음으로 제 미래를 상상해 보게 된 것은, 처음 들어간 회사의 상사에게 “게임을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을 리는 없지 않겠나”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입니다. 저는 게임 대회에 나가는 것, 같은 게임을 좋아하는 전 세계의 플레이어와 대전하는 것, 그 대회에서 우승하기 위해 매일 노력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즐거웠습니다. 그런데 그런 생활을 계속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러면 재미없겠는데”, “뭐라도 해야겠어”라고 마음먹었습니다. 지금의 생활 속에서 제가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는 장소를 잃어버리고 싶지 않다는 마음을 자각했을 때, 처음으로 나아가고 싶은 방향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부터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어서 일직선으로 달려온 건 아니었단 얘기죠.

이 ‘좋아하는 일’, ‘좋아하는 장소’를 제가 주도적으로 찾아낸 것은 아닙니다. 게임은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지만 남에게 권유받기 전에는 게임 대회에 나간다는 발상 자체를 해 본 적이 없었으니, 처음에는 “나가 봐”란 말을 듣고 “그럴게”라고 대답하곤 별생각 없이 나가봤을 뿐이었죠. 해외 대회에 나가게 된 것도 당시 열심히 플레이하던 게임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주위에서 “모처럼의 기회니까 해외 대회에 나가 보지 그래?”라는 조언을 많이 듣게 되자 마음이 동했던 것뿐입니다. 그리고 그런 생활이 계속해서 이어지다 보니 어느새 게임 대회에 나가 우승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즐거워졌고, 그것이 인생을 살아가는 보람이 되었던 거죠.

요즘은 여러 매체에서 “커리어 플랜을 설계해 보자”라든가 “10년 후의 내 모습을 상상하며 행동하자” 같은 메시지가 넘쳐나고 있습니다. 물론 그건 중요하지만, 누구나 자신의 미래상을 쉽사리 상상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애초에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신형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확대되기 전까지는 직업이라고 하면 회사에 가는 게 당연한 일이었고, 해외 대회가 있으면 언제나 비행기를 타고 날아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 몇 년간은 재택근무가 확대되고, 해외에도 쉽사리 갈 수 없는 환경이 되고 말았습니다.

“장래에 어떻게 되고 싶은가?” “무엇을 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쉽게 답을 못하시는 분은, “지금의 나는 이런 게 좋다”라든가 “이걸 하고 있을 때가 즐겁다”, 거꾸로 “이걸 못하게 되는 건 싫다”라는 눈앞의 사정에서부터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자신에게 중요한 일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지금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는 것부터도 미래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저는 때때로 후배에게 상담을 부탁받을 때가 있습니다. 이전에 어떤 플레이어에게서 이런 고민을 들은 적이 있었죠. “올해에는 대회에 나갈 수 있어도 내년에는 무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회사에도 다니고 있고 결혼까지 생각하는 애인도 있다 보니, 장래를 생각하면 게임을 그만둬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요.

이 질문에 제가 해 주었던 조언이 “그러면 일단 내년 대회에 나가기 위해 무엇을 하면 좋을지 생각해 보는 게 어떨까?”였습니다. 무엇 때문에 고민하는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고민은 지금의 자기 환경만 보고서 “내년에는 나가지 못할 거 같아”라면서 쉽사리 단정 짓고 있을 뿐이었죠. 중요한 것은 “나가고 싶다”라는 의지가 있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먼저 환경을 바꿔볼 수는 없을지 시도해 보는 편이 좋습니다. 포기하는 건 일단 무언가를 시도해 본 다음에 해도 늦지 않으니까요.

더욱 자세히 얘기를 들어보니 회사에는 아직 게임 대회에 나간다는 사실을 얘기하지 않았다고 하기에, “가장 먼저 지금 다니는 회사에 그 얘기를 해 보는 게 좋지 않을까, 그리고 부서를 바꿀 수 있을지 물어보는 건 어떨까, 그리고 지금 회사에서 불가능하다면 대회 스폰서를 맡는 기업으로 이직이 가능한지 상담을 해본다던가, 다른 e스포츠에 이해가 깊은 기업으로 이직을 문의해 보는 건 어떨까. 아무튼 주변에 지금 고민을 부딪쳐보는 게 좋다. 어떤 일이든 행동으로 옮겨보면 상황을 바꿀 수도 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포기하는 것은 아깝다”고 얘기했습니다.

프로게이머로 전향하는 것, 그리고 그 이후로 계속해서 게임으로 생계를 꾸린다는 목표는 무척이나 멀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내년에도 대회에 나가고 싶다는 눈앞의 목표를 이루는 방법이라면 구체적인 계획을 짤 수도 있고 행동으로 옮기기도 쉽습니다. 결국, 내년이라고 해 봐야 현재의 연장선에 있을 뿐이니까요. 너무 먼 미래의 일만 바라보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시점을 좀 더 가까운 곳으로 옮겨보면 선택지가 보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미래는 싫어”라는 소거법에서부터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생각해 보는 방법도 있다는 얘기죠.


각각의 장소에서 자신의 ‘가치’를 생각한다

겸업 프로게이머 시절, 저는 회사원과 프로게이머라는 완전히 다른 활동을 했지만 각각의 장소에서 제가 발휘할 수 있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늘 의식하며 행동했습니다. 회사원이면서도 게임 활동도 계속하는 저의 입장을 이해받기 위해서는 회사 사람들에게 제 가치를 인정받아야 할 필요가 있었고, 프로게이머로서 스폰서 기업의 서포트를 계속 받기 위해서도 기업에 계속해서 어떠한 가치를 제공해야만 했으니까 말이죠.

특히 회사원 시절에는 다양한 방법을 모색해 봤습니다. 첫 회사는 애초에 취미로서의 게임을 계속하기 위해서 입사한 것이었고, 게이머로서의 활동도 그다지 많아지기 전이었기 때문에 업무 시간에는 시스템 엔지니어라는 입장에서 제게 맡겨진 일을 제대로 처리하는 것만 생각했죠. 스퀘어 에닉스로 이직할 때는 제가 프로게이머로서 하고 싶은 활동이나 그러기 위해 필요한 업무 방식 등을 회사와 조율한 후에 입사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좀 더 의식해야 할 필요성이 생겼죠.

스퀘어 에닉스에서는 품질관리와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등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게임 제작 프로세스에서 필요한 품질관리의 코스트를 줄이고, 업무를 수월하게 진행하기 위하여 개발 상황에 맞추어 태스크를 관리하거나, 인원, 작업 시기를 최적화하는 것이 제가 맡은 역할이었죠. 이러한 업무는 솔직히 말해 저보다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편이 나은 케이스였습니다. 해외 대회가 있으면 저는 회사에 휴가를 내고 떠날 수밖에 없다 보니 아무리 다른 사람에게 업무를 떠넘기지 않으려 노력해 봐도 밀리는 부분이 생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되자 다른 사람과는 다른, 제가 가진 강점이나 가능성을 회사에 제공하며 공헌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죠.

이 무렵 염두에 두고 있던 것이, 앞에서도 여러 번 적었던 실업팀 소속 선수 같은 업무 방식입니다. 회사 중에는 실업팀을 보유한 기업이 여럿 있지만, 그러한 회사에 소속된 선수들은 기업이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거나, 광고 선전에 관련된 영업 활동을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나아가 미국의 게임 관련 기기 메이커에서는 스트리머로 활동하는 사원이 있어서, 자사 제품의 프로모션 방송을 하는 사업부가 있다는 얘기도 들은 적도 있었죠.

실제로 제가 그러한 활동을 할 수 있었을까요?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회사에는 다양한 입장이 있고, 사업으로서의 제약도 있습니다. 하고 싶다고 시도해 보다 포기한 일도 잔뜩 있죠. 한편으로는 그러던 와중에도 이벤트 해설자로서 참가해 보거나, 인터넷 방송을 진행하는 등 실현해 낸 일도 있습니다. 스퀘어 에닉스에 입사할 때는 프로게이머인 저를 살리는 활동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 어떤 커리어를 쌓을 수 있을지를 시험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어디까지 가능하고 무엇이 어려운지를 알게 된 것은 무척이나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제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1장에서 적었던 게이머를 대표해서 제작사와 게임 커뮤니티를 이어주는 일이나, 프로게이머의 은퇴 후 진로 문제를 모색하는 일)를 명확히 인식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죠.

어떻게 하면 자신의 가치를 발휘할 수 있을지 늘 고민하는 습관은, 회사원이든 아니든 간에 중요합니다. 이러한 습관이 자신의 강점을 인식하고,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것으로도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죠. 제 경우에는 사회인이 된 직후부터 게임 쪽 활동을 회사에 이해 받을 필요가 있었던 것, 업무를 하면서 프로게이머로서의 활동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늘 생각해야만 했던 것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런 자세를 몸에 익히게 되었습니다. 이건 저에게 큰 행운이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