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마 여기에 다시 오게 될 줄은..."


카드 아카데미. 카드 배틀을 위해 단련하고, 싸우고, 배우는 학생들을 위한 브롤러 기관. 그리고 내가 한때 꿈을 접었던 장소.

다시 오긴 싫었지만 이곳만큼 훈련시설이 잘 발달한 곳은 없었다. 학생증만 있으면 출입이 가능했기에 졸업생이나 나처럼 자퇴한 학생도 일단 다니기만 했다면 얼마든지 출입할 수 있었다.

훈련시설이 잔뜩 모여 있는 배틀 에어리어에 들어서자 많은 학생들이 보였다. 대부분 내 후배들이었지만 가끔 나와 함께 다녔던 동기들도 보였다. 카드 아카데미는 4년제 학원이라 아직 내 동기들도 이곳에 다니고 있었다.


"... 빨리 용건만 마치고 나가자..."

[시스템 카드의 학생증 정보를 스캔합니다... 아, 오랜만입니다. 로스트 학생.]


비어있는 트레이닝 룸에 들어서자 시스템 카드에 저장된 내 학생증 정보를 읽는 트레이닝 AI. 내 학생증을 스캔한 그는 반갑다는 듯 인사를 건넸다. 어쩐지 들떠 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


"응, 오랜만이야."

[2년 전, 마지막 트레이닝 데이터를 불러옵니다. 마지막 데이터. F+ 랭크의 트레이닝 코스 확인. 다시 불러올까요?]

"아니, 그냥 가장 약한 몬스터로 소환해줘. 그게 적당해."

[... 알겠습니다. F- 랭크의 트레이닝 코스를 불러오겠습니다.]


트레이닝 룸 안에 배틀 필드가 전개된다. 잠시 서서 기다리고 있자 홀로그램으로 이루어진 자그마한 생명체가 구성되고 있었다.


[꼬뀨우웃!]

"... 그래, 오래간만이다 전기 쥐."


전기쥐. 갓 카드 배틀을 익힌 브롤러가 상대하기 좋은 약하디 약한 몬스터. 하지만 오늘은 이기기 위해 온 게 아니다.

나는 덱 케이스의 모든 카드를 빼 가방에 넣고 미리 준비해온 덱을 케이스에 넣었다.


"몬스터와의 카드 배틀은 오랜만인데... 한번 시작해 볼까?"

[꼬뀨웃!]

"덱 전개, 스타트 드로우!"


내가 덱 케이스의 코어에 손을 올려 카드를 드로우하자 시작되는 배틀. 전기 쥐를 보자 전기 쥐가 공격 준비를 하는 게 보였다. 전기 쥐의 머리 위에 생겨난 슬롯 하나. 몬스터와 헌터의 배틀은 몬스터가 먼저 사용할 공격을 정하면 그 공격에 관한 카드가 헌터에게 보인다. 그리고 헌터는 그 카드에 대항해 자신의 사용할 카드를 고른다. 이런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렇게 서로 마주 보니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아카데미에서 지급하는 보급형 카드로 이기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기억.

나는 내 패를 내려다 보았다. 부실한 방패로 가득 차 있는 패. 나는 피식 웃으며 카드를 장착했다.


"의도치는 않았지만 공격이랑 유틸 카드를 얻었다면... 수비 카드도 얻어줘야 하지 않겠어?"

[꼬뀨웃!]


내가 방패를 장착하자 내 손 위에 생겨나는 방패. 내가 방패를 들고 수비 태세를 취하자 전기 쥐가 볼을 부풀리더니 나를 향해 도토리를 발사했다.

도토리 연사. 전기 쥐가 사용하는 공격 기술이다. 도토리 3개를 발사해 1 X 3의 피해를 가하는 기술. 첫 번째 도토리와 방패가 부딪히자 방패가 파괴되며 내 자세가 흐트러졌다. 가드 브레이크. 방어력을 지닌 카드를 사용했을 때 방어력 이상의 피해를 받으면 자세가 무너지는 현상이다.

미처 자세를 다잡기도 전, 내 몸에 직격하는 도토리 두 개. 나는 뒤늦게 방어 자세를 취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헤헤... 늦어버렸네... 이거 생각보다 어렵다. 아무래도 좀 오래 걸릴 것 같은데... 어울려 줄 거지?"

[... 꼬, 꼬뀻...]


내가 실실 웃으며 부탁하자 어째선지 뒷걸음질 치는 전기 쥐의 홀로그램. 나는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다음 턴의 준비를 시작했다. 새로운 카드를 드로우하자 나오는 부실한 방패. 나는 전기 쥐의 다음 공격을 보며 미소 지었다. 수비 카드를 만들 수 있게 될 때까지 내 도전은 끝나지 않는다.


[... 상당한 괴짜가 되어 돌아왔군요... 로스트.]


*


[트레이닝 코스 (F-)를 종료합니다. 결과, 실패.]

"아고고... 아파라... 아무리 홀로그램이라지만 수십 번을 두들겨 맞으니 삭신이 쑤시네..."


나는 이곳저곳 쑤시는 몸을 두들기며 중얼거렸다. 수비 카드를 얻기 위해 가드 브레이크 직후, 후속타를 맞기 전에 자세를 고쳐 수비 자세를 취하는 것을 몇 번째 반복하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대략 한 배틀에 5 ~ 6 턴 정도 걸렸으니 어림잡아 50번은 걸렸을 것이다.

그래도, 성과가 없지는 않았다. 나는 내 손에 쥐어진 동색의 카드를 보며 미소 지었다.


[수비 자세(銅)]

[자세 고치기: 피격시 이 카드를 재사용한다. 가드 브레이크 현상을 무효화한다. 이 카드의 방어력은 중첩되지 않는다.]

[cost: 2]

[def: 2]


"... 헤, 피격 시 재사용이라... 어마무시한 카드가 나왔네."


비록 방어력은 낮지만 연속 공격류의 카드에 매우 효과적인 효과가 붙어있는 카드. 나는 작게 감탄하며 덱 케이스에 넣었다. 이걸로 쓸만한 카드 5장이 모였다. 비록 내 실력에 비해 뛰어난 카드기에 쓸만할 뿐, 조금만 더 강한 상대를 만나도 맥을 못 추게 되긴 하지만...

나는 덱 케이스에 들어있는 카드들을 보았다. 펀치(銅), 수비 자세(銅), 집중(銅), 버티기(銀), 봉인된 검(金). 배틀을 위한 최소 카드 개수 조건은 갖추었다. 5 턴, 아니. 집중 카드는 장착 시 즉시 발동이기에 4 턴이면 다 바닥나는 개수긴 했지만... 개수야 계속 만들어가면 됐다.

나는 덱 케이스를 주머니에 넣고 몸을 일으켰다.


"이제 여기 올 일은 없겠지..."

[떠나시는 겁니까?]

"응, 이 정도면 됐어."

[... 당신의 열정, 당신의 꿈이 불타던 시절을 기리며, 재방문을 기원하겠습니다. 로스트.]

"... 너 원래 그렇게 감정이 많은 AI였냐?"


트레이닝 AI가 문을 열며 한 말에 나는 그에게 물었지만 이미 문이 열리며 작동이 멈춘 듯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여기서 1년 동안 미친 듯이 수련하면서도 본 적 없는 모습이기에 의아해하며 트레이닝 룸에서 나오자 누군가 내 앞을 막아섰다.


"이야, 오랜만이다? 네가 도망친 이후로는 처음 아닌가? 로스트."

"... 넌..."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얼굴을 들이미는 거대한 체구의 늑대 수인. 나는 그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에르가. 내가 이곳에 오기를 꺼린 이유 중 큰 이유를 차지하는 녀석이었다. 이곳에 다니는 1년 내내, 나는 이 녀석의 괴롭힘에 시달려야만 했으니까.

에르가. 나와 동기인 녀석이다. 본인도 아카데미 기준으로 평균 이하의 실력인 주제에 자기보단 약한 녀석을 찍어 괴롭히는 것을 즐기는 쓰레기 자식. 나는 주먹을 꽉 쥐며 발걸음을 돌렸다.


"너랑은 할 얘기 없어."

"어라어라, 이거 왜 이러실까~ 오랜만에 본 친구한테 너무 쌀쌀맞은 거 아냐? 응?"


내 어깨를 꽉 쥐며 멈춰 세우는 에르가. 나는 인상을 확 찌푸렸다. 항상 이런 식이었다. 카드 배틀 실력은 떨어져도 육체 능력만큼은 평균 이상. 그렇기에 폭력으로 강제로 끌고 가 괴롭히기를 좋아하던 녀석이었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카드 배틀, 해야 하지 않겠어?"

"... 칫..."

"마침 배틀 코트도 비어있고 말이지~ 아, 오랜만에 돌아와서 그런가, 고작 전기 쥐 따위한테 쩔쩔대는 모습 잘 봤어. 그런 너한테 내 본래 덱을 쓰기는 미안하니까 아카데미 표준 덱으로 상대해줘야겠네~"


키득키득 웃으며 배틀 코트로 향하는 에르가. 나는 덱 케이스가 든 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이 광경을 배틀 에어리어에 모인 학생 대다수가 보고 있었다.

... 도망치는 건 무리인가.

나 또한 배틀 코트로 향했다. 에르가의 맞은 편에 서자 펼쳐지는 배틀 필드. 나와 에르가는 덱 케이스를 꺼냈다.


""덱 전개, 스타트 드로우!""


나와 에르가가 동시에 외치며 첫 드로우를 시작한다. 나와 에르가의 앞에 나타나는 5장의 카드. 배틀 필드의 중앙 상공에 나와 에르가의 스테이터스가 표시되었다.


[이름: 에르가] vs [이름: 로스트]

[HP: 20] vs [HP: 10]

[슬롯: 1] vs [슬롯: 1]

[cost: 5] vs [cost: 3]


에르가의 덱 케이스는 죽도의 형태를 갖추었다. 죽도의 중간 부분에 있는 붉은색의 코어가 그것이 덱 케이스라는 것을 알리고 있었다.


"뭐야, 네 덱 케이스는 아직도 형태 변환 못 시켰냐?"

"네가 신경 쓸 건 아니잖아. 너 먼저야. 빨리 세트해."


에르가의 말에 나는 내 손에 들린 덱 케이스를 보며 말했다. 안쪽에 카드가 몇 장 남았는지 가리기 위해 카드를 넣는 홈 부분이 사라졌을 뿐, 덱 케이스는 본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내가 그 사실에 살짝 신경질을 부리자 에르가는 나를 비웃으며 자신의 카드를 확인했다.


"... 흠... 쯧, 역시 아카데미 보급 덱은 영 그렇단 말이지. 유틸 카드가 너무 적어. 하아... 훈련용 방패 장착."


에르가가 훈련용 방패를 자신의 슬롯에 세트한다. 훈련용 방패. 코스트 2짜리의 방어구 카드다. 방어력은 3. 나는 씩 웃으며 펀치 카드를 내 슬롯에 등록했다. 그러자 시작되는 배틀 페이즈. 에르가는 한 손으로 훈련용 방패를 들며 공격을 막을 준비를 했다.


"어차피 너도 아카데미 보급 덱이나 들고 있을 거고... 네 cost로는 이 방어구의 방어력을 뚫을 무기 카드를 못 쓸 텐데. 그냥 종료나... 응? 뭐야, 너 왜 아이템을 안 들고..."

"후우... 간다!"


나는 주먹을 꽉 쥐며 에르가에게 달려들었다. 내 덱이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챈 에르가가 방어를 굳힌다. 하지만 의미는 없었다. 훈련용 방패와 펀치의 공격력, 방어력은 동일. 즉, 내 주먹과 훈련용 방패가 부딪히는 순간 훈련용 방패는 사정없이 박살 나고 만다.


"가드 브레이크 효과, 발동."

"...! 끄윽?!"


방패를 부순 내 주먹에 붉은 기운이 맺힌다. 나는 그 주먹을 에르가에게 내질렀다. 왼손을 뻗어 가슴을 가격한 후, 오른손으로 에르가의 턱을 갈겼다. 단숨에 쭉 빠지는 에르가의 HP. 배틀 페이즈가 종료되며 부서진 방패의 조각이 사라진다. 나 또한 내 자리로 돌아가 다음 페이즈를 기다렸다.


"크윽... 로스트 주제에...! 감히 내 HP를...!"

"HP가 반 이상 날아가 놓고 주제라는 표현은 이상하지 않아?"

"닥쳐! 드로우!"


에르가가 소리치며 새 카드를 드로우한다. 나는 고개를 들어 에르가의 상태를 확인했다. 남은 HP는 고작 8. 펀치가 기초 공격력이 낮아서 그렇지 가드 브레이크 효과가 지나치게 좋았다. 하지만... 문제라면...


"뭐하냐? 넌 드로우 안 하냐?"

"... 남은 카드 같은 거 없어."

"... 하...? 풉... 크흡... 푸하하! 고작 5장 들고 나한테 덤볐냐? 차라리 아카데미 보급 덱이 더 좋았겠다!"

"......"


내게 남은 공격 카드가 더 없었다. 봉인된 검이 있긴 하지만 봉인된 검의 효과는 남은 cost를 전부 소모해 그 두 배의 피해를 가하는 것. 내 현재 cost는 3. 아무리 최대 피해를 입혀도 6이 한계였다. 이 전투를 이기기는 불가능했다.

나는 살짝 입술을 깨물며 수비 자세 카드를 슬롯에 장착했다. 내 카드가 뭔지도 확인하지 않은 채 카드를 등록하는 에르가. 배틀 페이즈가 시작되자 에르가의 양손에 훈련용 쌍 단도가 생겨난다.

나는 나를 향해 달려드는 에르가를 바라보며 옅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어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