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가


  대관령 눈밭에 눈이 시릴 때쯤 아무말도 않고 나란히 걷던 네가 갑자기 건넨 말은 퍽 충격이었다.


"이제 난 따로 갈게."


  길도 따로 나 있지 않은 이 허허벌판에서 뭘 따로 가겠다는건지, 어디로 가겠다는건지. 아무런 답도 주지 않은 채 나를 그저 세워놓고 너는 스스로를 박차 멀어질 뿐이었다. 이게 무슨 상황인건지 당황스러워 감히 쫓아갈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한참을 그저 서있었다. 이 백색 도화지에 홀로 남은 게 겁이 날 즈음 네가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 실감되어 나는 입을 헉, 하고 벌렸다.


"그게, 무슨. 어딜 따로 간다는거야? 왜? 갑자기?"


  이 상황이 하나도 이해가 되지 않아 무수한 질문만을 던져대며 네 뒤를 쫓았다. 허나 내 말을 듣긴 하는지 아무런 반응없이 너는 묵묵히 앞서나갈 뿐이었다. 슬슬 숨이 차올라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한 가지 생각조차 온전하게 떠올릴 수 없을때 쯤 나는 네가 다시 보였다. 너의 발걸음은 당당했다. 또 올곧았고, 힘찼다. 꽉 쥔 두 주먹은 결연했고, 보이진 않았지만 네 눈동자도 또렷했으리라. 발뒤꿈치에서부터 발 끝까지 사뿐히 디디는 듯 하지만 네가 밟고 간 그 발자욱은 너무나 선명했다.

  찬 공기가 내장에서부터 바깥에서까지 나를 몰아세우는 탓에 되려 냉정해지지 못한 마음은 애타게 너를 갈구했다. 손을 이리저리 흐느적 거리며 너를 세우려고 하고, 분노와 혼돈, 침과 핏물같은 것이 속에서부터 올라와 목소리를 틀어막는데도 너는 멈추지 않았다.


"제발 무슨 말이라도 해봐! 무슨 의민데? 제발 멈춰줘. 제발!"


  그러다가 내 목소리가 닿았던 덕일까, 아니면 그저 네가 멈추고 싶었을 뿐이었을까. 너는 뚝 멈춰 그 자리에서 그대로 나를 돌아보았다. 눈은 역시나 반짝인다. 하지만 동경의 반짝임이 아니다, 저건. 저건 인사야. 난 앞으로 잘 지낼테니 너도 잘 지내라는.


"너는 이제야, 내 눈을 봐주는구나."


  그 말에 숨이 턱 막혔다. 네가 맞아. 우린 나란히 같이 걷고 있었고, 나는 우리가 무척 행복하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우리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어. 마치 영원히 계속될 이야기처럼. 그렇지만 나는 항상 앞만 보고있었어. 우리는 나란히 있었지만, 나의 시선과 말은 오로지 앞을 향해있었어. 너는 항상 옆을 보고있었을테지. 자신을 바라봐주지 않는 나를 바라보다가 그제서야 결심한거야.


"무슨 생각이 들어?"

"네 눈이 그렇게나 예뻤구나 하는 생각."

"왜 그렇게 생각했어?"

"무척이나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아서. 아니, 어쩌면 처음일지도 모르겠다."

"네 눈도 마찬가지였어."


"그래서 네가 바라보던 방향을 나도 바라보기로 했을 뿐인거야."


"단지 그뿐인거야."


  그러고는 넌 다시 등을 돌려 앞으로 멀어져갔다. 나는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가만히 너를 바라볼 뿐이었다. 수평선을 넘어가는 배가 돛대를 서서히 감추듯, 네 그 씩씩한 발부터 꿋꿋한 주먹을 지나 휘날리는 머리까지 하나 둘 사라져갔다. 나는 평생을 한 곳만 바라봤던 터라 그 또한 눈을 돌릴 수 없었다. 시간이 얼마간 지나고, 다시금 나는 전과 달라진 게 없이 되었다. 단지 고요해져서 슬펐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