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 앤틱

 

*-*-*

 

캐드버리 남작 영지 내성 분수대 오른쪽 골목에서 왼쪽으로 꺾어서 보이는 꽃집 기준 7번째.

그 가게의 정문에 작은 철제 명패로 가게 이름이 적혀있다.

 

[바 앤틱.]

 

아름답게 드리운 은은한 저녁의 어둠을 곳곳에 놓여있는 적갈색 마석등이 밝히며 고풍스럽고 묵직한 분위기의 나무색이 주를 이루는 바에서 살짝 곱슬거리는 백발이 특징적인 검은 산양의 바텐더 슈브 릴림은 한창 술과 칵테일에 들어갈 얼음들을 깎고 컵들을 닦으며 개시 준비를 하고 있다.

 

어떤 것은 둥글게 때때로 보석처럼 깎아서 마석등에 비춰본다.

유려한 곡선을 가진 유리잔도 이물질은 없는지 매번 확인한다.

혹여 자신의 털이 묻었을까금이 가서 써먹지 못할까 확인을 하고 냉동고에 넣어 차갑게 보관한다.

직접 깎은 얼음과 얇은 유리잔들이 바 앤틱의 트레이드 마크.

 

이 가게의 특이한 점이 있다면 캐드버리 영지의 특성상 영주부터 용병에서 올라온 용병왕에 그 여파인지 온갖 용병이 모이는 영지에서 이렇게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바라니그것도 무려 유리잔만 쓰는 바라니누가 봐도 잘못된 장소에 개업을 한건 아닐까?라고 생각할법한 이 바는 개업할 때와 다르게 영지 안에 은은히 녹아들어 갔다.

 

그리고 그렇게 녹아들어 간 지 올해로 3년이 조금 넘은 해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

 

오후 7시 45.

 

바의 문이 벌컥열리려다 잡고 있는 손에 의해 가까스로 멈춘다.

 

주인장오늘은 좋은 독주로 달라고축하연이다!”

핀레이정숙.”

이런미안하네오래간만에 크게 벌어서 답지않게 너무 들떴나 봐큭큭이봐서있지 말고 앉자구!”

 

문을 열고 들어온 가죽 갑옷에 근육질 체형인 시베리아 호랑이 수인 용병 핀레이는 오래간만에 번 큰돈에 동료들을 다 데리고 바에 찾아왔다.

너무 들뜬 탓일까바의 규칙 중 하나인 일상 대화의 목소리를 조금 넘어서버렸다.

이에 주인장이라 불린 슈브는 핀잔의 의미가 담긴 눈빛과 약간의 주의를 주었고 핀레이는 가슴께에 손을 올려 합장하며 사과했다.

핀레이는 데려온 3명의 동료수인들을 테이블에 데려가 앉혔다.

 

저기 대장… 여기 진짜 싸고 맛있는 술집이 맞아요지금 테이블에 전부 마석등이 있는데요…”

바닥에 기름칠이 완벽하게 되어있군나무 하나하나 전부 칠한 건가?”

솔직히 말해 핀오늘 번거 다 쓰려고 온 거지우리가 아무리 오늘 은화 180닢이나 벌었다고 해도 여긴 너무 비싸 보이잖아내일 우리가 돌아갈 돈은 남겨야지!”

 

작은 체구의 스코티시 폴드 고양이 수인 마법사는 테이블에 있는 마석등을 보며 안색이 희게 질렸고 은회색의 시베리아 늑대 검사는 바닥의 나무를 보며 그 관리 상태에 조용히 탄성을 지른다.

핀레이와 형제로 보이는 또 다른 시베리아 호랑이 수인은 커다란 방패를 내려놓고 핀레이의 어깨를 잡아 흔들며 당황해한다.

 

다들 걱정할 필요 없어분위기는 비싸 보여도 가격은 한 잔에 비싸야 은화 1닢이니까 마음껏 시켜형도 오늘은 마음 놓고 마시자!”

정말요?!”

싸군요…”

거참… 그렇다면 돈에 상관없이 마신다?”

 

핀레이는 형의 손을 어깨에서 내리고 팔짱을 낀 채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에 서로 놀람과 감탄과 체념 비스름한 감정을 보이며 주문을 하-.

 

그런데 여긴 뭐가 있지?”

“…주인장여기 메뉴판 같은 게 있나?”

네가 데려와놓고 네가 모르면 어쩌자는 건데…”

하핫나도 사실 매번 추천 받은 술만 마셔버려서…”

 

-려다가 형의 질문에 그도 평소에 아무거나 추천해달라고 해서 마셨기 때문인지 당황하며 메뉴판을 찾았다.

그 모습에 형은 어이가 없는지 차갑게 식은 눈으로 멍청한 동생을 본다.

 

슈브는 4명이 있는 테이블로 다가와 작은 나무판 하나를 건넨다.

 

[바 엔틱.]

 

안주 

웰컴 넛츠 동 2’

과일 접시 동 10’

치즈 접시 동 30’

 

맥주 

에일 동 5’

라거 동 7’

 

하우스 와인

한 잔 동 7’

한 병 동 70’

 

[기타 주류는 주인에게 상의하시면 가격을 책정해 계산합니다.]

 

어라전에 마셨을 땐 여러 가지로 시켰는데?”

그건 당신이 바에 앉아서 내 뒤에 있던 술들을 보이는 대로 주문해서 그런거다우리 가게는 종류가 많아서 하나하나 적어두기 힘들거든마시고 싶은 술이 가게에 있다면 내오지.”

그 정도로 많이 있다면혹시 늑대의 이슬도 있나?”

 

핀레이가 메뉴판을 보고 고개를 갸웃하자 슈브는 가게의 사정을 설명한다.

이에 늑대 수인볼핀스키는 고향에서 종종 마시던 보드카를 주문한다.

 

두달전에 하나 들였던걸로 기억하는데 한번 찾아보지다른 분들은 더 주문할 거 없나?”

여긴 처음이라 동생 녀석이랑 비슷한 걸로.”

저는 추천하시는 과실주로 부탁드려요웰컴 넛츠도 하나 주세요!”

나는 전에 마신 그 달달하고 꽃 냄새나는 걸로 한 병 줘!”

 

슈브는 그렇게 말하고 메뉴판을 집어 들며 다른 수인들을 보자 핀레이의 형핀로이는 동생과 비슷한 술을 고양이 수인아서는 과일주와 웰컴 넛츠를 핀레이는 전에 마신 술을 부탁했다.

슈브는 고개를 끄덕이곤 술이 놓인 선반으로 돌아갔다.

 

너는 전에 뭘 시켜 먹었길래 술에서 달고 꽃 냄새가 난다는 거야혹시 이상한건 아니겠지?”

이상한 거면 내가 시켰겠어나 좀 믿어봐이 술은 진짜 맛있어!”

그렇게 말해놓고 나한테 엄청 쓴 약초 술을 먹인 게-”

아니 3년 전 이야기를 왜 지금 꺼내!”

 

호랑이 형제는 티격태격하고

 

늑대의 이슬을 다시 마시다니 벌써 집에 돌아온 것 같네.”

저도 어떤 과일주가 나올지 기대되네요그러고 보니 볼핀스키씨는 집에서 나오신지 꽤 됐다고 하셨죠…?”

아마 지난 14일이 7년째 되는 날로 기억해.”

꽤 오래되셨네요… 저도 정식 마법사가 된지 올해로 2년이 조금 넘었네요.”

 

늑대와 고양이 수인은 각자 잡담을 하며 술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이윽고 슈브가 술이 담긴 쟁반을 들고 테이블로 다가왔다.

 

여기 주문한 술오늘의 웰컴 넛츠는 피칸과 페로 열매야.”

오우딱 맞춰 나왔구먼자자한번 마셔봐~”

빛깔은 꽤 이쁘네어디 한번… 엄청 맛있잖아…?!”

크으그래 이 목 넘김이야이건 다른 술집에서 파는 에일에서 절대 맛볼 수 없다고!”

 

슈브 릴림이 웰컴 넛츠와 술병들을 내오자 호랑이 형제는 주문한 술발렌티노 15년산을 맛보고 감탄했다.

 

이게 늑대의 이슬이군요안에 뭔가 반짝이는 파도 같은 게 있어서 술이 아니라 포션 같아요!”

내가 사는 지방에만 나오는 약초를 잘게 갈아서 섞으면 이렇게 안에 하얀색으로 회오리치지주인장이건 몇 년산인가?”

“17년산이다.”

훌륭하군.”

 

볼핀스키는 투명한 술 속을 헤엄치는 하얀 파도에 눈을 빼앗긴 아서의 말에 똑같이 하얀 파도를 바라보곤 잠시 설명하고 숙성년도를 듣자 만족한 듯이 웃는다.

 

이건 어떤 과일주인가요?”

야생 복숭아아마 이 근처에서 딴 걸로 담갔지. 2년산이고

복숭아 좋아하는데 마침 잘 됐네요잘 마실게요!”

 

아서의 질문에 슈브는 자신이 직접 근방 숲에서 따와서 직접 담근 술이라고 말하고 병에 적힌 자신의 직인을 보여준다.

아서는 그걸 보곤 슈브에게 인사하고 잔에 따른다.

 

그렇게 4명이서 마시던 차에-

 

-콰앙!

 

어이여기서 제일 좋은 거 가져와!”

 

문을 부수며 한 인영이 들어왔다.

 

죽겠군.”

 

핀레이가 조용히 읊조렸다.

 

*-*-*

 

문을 열고 들어온 인영은 거친 흉터가 가득한 경갑의 사자 용병 패거리였다.

핀레이는 그 모습에 그들이 오늘 자신들과 같이 일했던 용병단이란 걸 깨닫고 쓴웃음을 지었다.

하라는 상단 호위는 하지도 않고 크리쳐가 나타나면 뒤에서 지켜만 보고 있질 않나.

보다 못한 상단 주가 역정을 내며 항의하자 멱살을 잡아 내동댕이쳤다.

용병이 아니라 깡패라 불러도 손색없을 녀석들인데도 약속대로 두둑한 보수를 줬나 보다.

 

어디 비싸 보이는 주점인데 좋은 술이나 가져와 봐!”

대장여기 전부 유리잔만 있는뎁쇼우리를 위해 이리 준비하다니 기특하구먼요!”

뭐야저 녀석 시커먼 산양이잖아크리쳐 같은 놈이 크리쳐다운 가게에서 빌어먹어야지캬악!”

 

사자 용병 패거리는 여기저기 험하게 앉으며 테이블에 발을 올리거나 침을 뱉고 슈브를 모욕했다.

 

… 빨리 마시고 나가야 할…”

아니그럴 필요 없어.”

 

아서는 눈치를 보며 핀레이에게 말했다.

핀레이는 그런 아서를 보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순간 3개의 아이스픽이 패거리 셋의 손톱에 박혔다.

 

으악!! 내 손!!”

이게 무슨-?!”

이 망할-”

 

패거리는 손을 부여잡고 소리를 질렀다.

대장으로 보이는 경갑의 사자 수인은 아이스픽이 날아온 곳을 봤지만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섬뜩-

 

사자 수인의 목에 큼지막한 낫이 드리운다.

슈브는 어느새 등 뒤에 다가가 낫을 당겨 당장이라도 벨 것처럼 천천히 옥죄어간다.

 

공교롭게도 당신은 바 앤틱의 규칙 3가지를 동시에 어겼다첫째출입은 조용히둘째예의를 갖출 것셋째가게를 소중히 대할 것우리 가게는 첫 손님이라고 봐주지 않는다.”

고작 그런 이유로 우리에게 대드는 거냐?! 제껴우린 무적의쿠엑?!”

 

슈브는 조용히 규칙을 읊었고 사자 수인은 목에 칼이 있어도 상관없다는 듯이 패거리에게 소리쳤다.

손톱에서 아이스 픽을 뽑은 패거리들은 각자 창과 도끼를 들고 슈브에게 달려들었다.

슈브는 그들을 보더니 낫을 거두고 앞에 있던 사자 수인을 앞으로 걷어차 그들과 부딪치게 하고 낫으로 창과 도끼를 순식간에 자른 다음 날에 걸어서 가게 밖으로 날려버린다.

무기가 사라진 걸 본 패거리는 주춤하더니 이번엔 주먹과 의자를 들고 달려든다.

 

허나슈브는 낫을 내려두고 몸 안쪽으로 파고들어 손날로 의자를 잡은 손을 쳐내고 의자를 빼내 다른 테이블 쪽에 똑바로 세워지도록 던진다.

곧바로 왼손 손바닥으로 턱을 후려쳐 뇌를 흔들고 오른 주먹으로 목뼈를 정확히 후려친다.

충격으로 순간 기절한 그를 돌려차기로 무기를 날려버린 곳에 똑같이 던져버리고 맨몸으로 달려드는 다른 수인을 돌려차기로 떠있는 발을 그대로 땅에 디뎌 반대쪽 발로 뒤돌려 차기를 날려 늑골을 부순다.

 

카학?! 커윽갑옷이 몸을…”

아악뼈가뼈가 부러졌어! ”

 

땅에 널브러진 둘이 입고 있던 경갑은 발차기를 맞고 형편없이 찌그러진 채 주인을 찔러 괴롭히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패거리 대장은 자신이 자랑하는 롱소드를 꺼내 슈브에게 겨눈다.

 

감히네놈이 우리에게 이런 짓을 하고도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냐!”

하아… 3류 대사 나왔구먼저 녀석은 끝났어.”

 

패거리 대장이 소리치는 말에 핀레이는 잔을 홀짝이며 말했다.

 

뒈져라!!!”

 

패거리 대장이 달려들자 슈브는 아주 쉽게 칼날을 손가락 끝으로 잡아서 멈췄다.

 

“…?”

그리고 네 번째주인에게 위해를 가하지 말 것까지 어겼군이상의 네가지 사유로 당신들은 출입 금지다.”

 

생전 처음 보는 광경에 그가 당황하던 사이 슈브는 마지막으로 어긴 규칙을 말하곤 왼발을 오른발 앞으로 두고 그 발을 축으로 오른발로 원을 그리듯 뒤돌려 차기를 날린다.

 

[릴림식 체술 4번 그믐달]

 

-쩌어엉!!

 

사자 수인은 순식간에 문밖으로 날아가 밖에 있던 패거리와 부딪히고 맞은편에 있는 가게 벽에 처박힌다.

부딪힌 패거리는 안면에 피를 흘리며 쓰러져있다.

 

힘 조절은 했지만 약간 셌나.”

터무니없구먼…”

역시 주인장이야!”

이런 강자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굉장해요!”

 

슈브는 그렇게 말하고 격한 움직임에 흐트러진 정장을 정돈하며 하얀 머리칼을 쓸어넘긴다.

그 아름다운 모습에 핀로이는 경악을핀레이는 잔을 들고 환호를볼핀스키는 의문을아서는 순수하게 감탄한다.

 

약간의 소란이 있었으니 술 가격은 반값으로 해주지.”

에이이런 좋은 걸 보여줬는데 반값이라니 오히려 더 내야지!”

 

슈브는 자신 또한 고객이 있음에도 소란을 일으킨 대가로 영업용 사죄를 했다.

핀레이는 오히려 좋은 구경을 했다며 호쾌하게 말하며 거절했다.

이에 슈브도 영업용 가짜 웃음이 아닌 진짜 감정으로 피식 웃으며 어질러진 가게를 정리한다.

 

저 웃음… 혹시?‘

 

아서는 무엇인가가 생각났는지 턱에 손가락을 댄다.

자신이 아직 견습이던 시절 마법 학교 도서관에서 읽었던 제3차 마법 대전에 대한 역사서에서 저 웃음을 삽화로 본 기억이 있다.

 

아니그럴 리 없지.‘

 

하지만 곧바로 부정했다.

3차 마법 대전은 지금으로부터 300여년전에 일어난 사건인데다 마족일지라도 평균수명이 150살이라 오래 살지 못하니까.

 

아서는 그저 자신이 착각한 것이라 여기며 과일주에 집중했다.

 

야생 복숭아의 과일주는 굉장히 달았다.

 

*-*-*

 

(여담)

 

그래도 문이 부서졌으니 오늘은 여기까지 할 거야.”

?! 연지 얼마나 됐다고?! 조금만 더 있다 가면 안 될까?”

아무리 그래도 부서진 가게에 손님을 두는 건 내 영업방침 상 불가능해그거 다 마시면 계산하고 가.”

히잉…”

 

-*-*-

 

전장의 냄새는 항상 코를 찌른다.

 

화약시취진흙때때로 먼지가 뒤엉킨 비의 냄새가 섞여있다.

 

그곳에서 지쳐버린 나는 포기하기로 했다.

 

무엇을 포기한지도 거의 잊어버렸지만

 

그래도 이 웃는 얼굴만큼은-

 

*-*-*

 

흐읍-!?”

 

가쁜 숨과 함께 눈이 과도하게 크게 떠진다.

붉은 바탕에 금색 홍채는 잠시 주변의 물건들을 살펴보고 자신이 지금 안전하다는 걸 깨닫자 떨림을 멈춘다.

붉은 눈이 다시 정상적인 백색의 눈으로 돌아온다.

 

-끼익

 

슈브는 바의 2층 자신의 방에 놓인 책상 앞에 앉아 와이셔츠만 입은 채 힘겹게 고개를 들고 일어난다.

바로 옆 창문에 떠있는 달의 위치를 확인하니 시간은 적어도 새벽 3시를 10분 정도 남겨두고 있다.

 

…”

 

여전히 그날의 꿈이 이어지고 있다.

 

악몽을 막기 위해 피워둔 아로마는 분명 방을 채우고도 남아 창문 밖에까지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고 매번 먹는 꿈 안정제는 이 이상 독해지기 힘들 정도로 강하게 먹고 있다.

그럼에도 그 기억이 여전히 변하지 않은 채 선명도만 달라질 뿐 아직도 이어지고 있었다.

 

젠장맞을…”

 

슈브는 욕지기를 내뱉으며 책상 옆 서랍에서 약 상자를 꺼내 알약 5알을 집고 신경질적으로 씹어먹는다.

강한 쓴맛과 안정 효과를 가진 수십 가지 향초의 짙은 향이 두근거리는 심장과 떨리는 생각을 바로잡아준다.

 

한참 동안 약의 힘으로 꿈의 잔재를 잊기 위해 눈을 감고 깊게 심호흡을 한다.

이윽고 새벽 4시가 중반쯤 이르렀을 때 겨우 진정되어 다시 의자에서 자려고 했다.

 

-철퍽

 

?”

 

창문 바로 아래에서 대문을 향해 쓰러진 백색의 인영을 발견하기 전까진.

 

*-*-*

 

간단하게 외투를 두르고 나온 슈브는 밖으로 나와 인영에게 다가간다.

 

누가 봐도 강인하고 중급 크리쳐쯤은 손쉽게 주먹으로 때려잡을 근육 덩어리 백호 수인이 고급 기사 갑옷을 입고 자신의 바 앞에 쓰러져있다.

 

피는 흘리지 않고 숨도 규칙적이다.

그저 지쳐서 쓰러진 걸까비가 오지 않았음에도 털이 축축하게 젖어있다.

 

이대로 두기엔 내일 분명히 소란스러울 테고바 영업에도 문제가 있을 것 같아서 자신의 방 옆에 있는 손님용 방에 눕혀두는 걸로 했다.

 

지금의 그는 과거의 흔적이 남아있어도 선인이니까.

 

“[떠올라라.]”

 

슈브는 가벼운 언령 마법으로 그를 띄워 바 안으로 옮긴다

옮기면서 신음소리 하나 내지 않고 잠들어있는 걸 보니 누군가를 닮아서 슈브는 피식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무도 없는 바를 지나술 진열대처럼 위장한 비밀문을 자신이 나왔을 때 보다 더 크게 열어 천천히 계단으로 올라간다.

계단의 폭이 좁아서 옮기는데 조금 애를 먹었다.

 

“-.”

 

방에 도착하고 문을 열자 손님용 방의 침대가 이 수인에겐 조금 작다는 걸 떠올렸다.

간단한 마법으로 늘릴 수 있지만 시간제한이 있어서 함부로 걸 수도 없다.

잠깐 고민하던 슈브는 안 쓰는 깨끗한 카펫 하나를 창고에서 소환해 바닥에 깔고 침대의 매트리스를 바닥에 두고 백호 수인을 눕힌다.

이불은 가로 세로 공간을 재 봐도 무조건 한 부분이 튀어나오기에 세로로 상체부터 종아리까지 덮어주는 걸로 했다.

그리고 편지 하나를 적어서 머리맡에 둔 후 조용히 방에서 빠져나왔다.

 

[눈을 뜨시고 바로 내려오면 간단한 식사라도 대접하지.]

 

슈브는 다시 방에 돌아가 책상 의자에 앉아서 허리를 숙여 팔로 덮고 잠든다.

 

*-*-*

 

앙겔로 미니온은 현재 억울한 누명을 쓰고 도주중이었다.

 

앙겔로는 대대로 룬벨 백작가를 모시기 위해 만들어진 집안에서 태어나 자라왔다.

백작가 충성을 다하며 주인으로 모신 자를 위해 자신의 의지까지 지우는 미니온가의 가장 뛰어난 아이로서 주인과 같이 위대하다 일컬어질 자였다.

 

그러나그가 주인을 섬긴지 2년도 되지 않아 사건이 일어나고 만다.

그의 주인인 백작가의 장남 하인츠 룬벨을 암살하기 위해 계획을 세웠단 이야기가 돌기 시작했다.

주인의 가장 심한 알레르기인 복화초 풀의 수염을 제거하지 않고 차로 끓였다주인의 침소에 독향을 풀었다는 억측이 백작가 내에 자자했다.

 

하인츠 룬벨과 앙겔로 미니온 둘 다 결백을 주장했지만 정도가 점점 심해지자 당주 로시에르 룬벨 백작은 소문을 잠재우기 위해 친히 앙겔로 미니온의 방을 수색했고 수염이 제거되지 않은 복화초 풀 한 자루다른 향초와 조합이 잘못되면 마을 하나를 죽인다는 렐리시온의 잠이란 풀도 세 자루나 나왔다고 한다.

 

반박해봤자 돌아오는 건 배신자위선자백작가를 통째로 죽이려 했다는 말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결박을 주장했던 그는 그의 결백을 알고 있던 주인의 한마디에 모든 생각을 그만두고 도망치기로 했다.

 

가문을 나가렴너는 이곳에 더 있으면 상처만 받을 거야.”

하오나…!”

내가 당주가 된다면 네 결백을 밝힐 수 있어그러니떠나렴이건 내 명령이야

 

자신보다 열 살은 위인 그에게 익숙하지 않다는 핑계로 명령이 아닌 부탁만을 하던 하인츠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앙겔로에게 명령을 했다.

 

미니온가의 일원으로서 룬벨의 절대적인 명령을 어길수 없었던 그는 최소한의 짐을 꾸리고  그의 주인을 지키기 위해 수여받은 갑옷을 입은 채 백작가를 나섰다.

그러다 문지기에게 들켜 백작가의 병사들에게 쫓기고 결국 산맥 너머 캐드버리 영지의 바 앤틱에 도착하여 슈브에게 발견된 것이다.

 

그런 그가 지금 눈을 비추는 햇빛에 조심스레 눈을 뜬다.

 

여기는…?”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천장에 매달린 마석등이다.

주변을 살펴보니 시야에는 매트가 빠진 나무 침대 틀과 자신의 가방이 놓인 작은 티 테이블에 의자가 하나.

촉각은 자신을 덮은 조금 짧은 이불의 감촉과 등에 느껴지는 매트리스의 푹신함을 느끼고.

청각과 후각은 마을의 아침을 준비하는 소리와 맛있는 스튜의 냄새가 맡아진다.

 

직전까지 자신이 기억하고 있던 골목의 흙바닥이 아니란 걸 인지하는 순간 앙겔로는 벌떡 일어난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살펴보니 약간의 풀이 물든 갑옷이 눈에 들어온다.

허리에 맨 롱소드도 그대로 있다.

그제야 자신의 안전을 인지한 건지 한숨을 내쉰다.

 

후우… ?”

 

앙겔로는 일단 자신을 구해준 이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 내려가보기로 했다.

점을 잤음에도 풀리지 않은 피로에 조심스럽게 일어난 그는 티 테이블에 놓여진 슈브의 편지를 발견했다.

 

한눈에 봐도 고급스러운 필체… 혹시 귀족가에서 운영하는 가게인가?’

 

편지를 읽고 그 수려한 필체에 혹여 백작가와 연결되어 있는 집안의 가게인지 한참을 생각하던 그는 결심을 한 건지 가방을 챙기고 [손님용 계단은 왼쪽.]이라고 써진 글씨를 발견해 손님용 계단을 타고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

 

슈브 릴림은 오늘도 여전히 그 사람이 알려준 스튜를 끓이고 있었다.

돼지 고기에 당근감자적양파를 넣고 특제 스톡을 넣어 끓인 간단한 스튜는 단순하지만 깊은 향으로 침샘을 자극하고 있었다.

슈브 릴림은 스튜를 조심스레 덜어 맛을 보곤 약간의 향신료로 간을 하고 불에서 내린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두 개의 접시에 떠서 하나를 막 내려온 앙겔로의 자리에 내려놓는다.

 

룬델 백작가 소속일터인 미니온가의 기사가 어째서 이곳에 흘러들어온건지 묻지 않겠다그저 주인장의 변덕으로 주는 스튜를 먹고 쉬도록.”

감사합니다…”

 

*-*-*


적당히 이렇게 쓰고 다음 내용 뭐 쓸지 싹 잊어버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