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다음부터는 그러지 마요 선생님."

"그래, 고맙다. 정말 고맙다!"


내게 연신 감사 인사를 하는 선생님.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새로운 카드도 만들고, 에르가와의 배틀에서도...


"윽...!"

"로스트?"


나는 갑작스레 느껴지는 두통에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그런 나를 보며 깜짝 놀라 내게 다가오는 선생님. 나는 숨을 헐떡이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몸이 뜨겁다.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강렬한 고통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괜찮아?"

"... 저, 전... 괜찮... 아요... 그냥... 머리가..."

"성장통인가..."

"... 성장... 통...?"

"아, 너는 성장이 처음이던가... 성장한 스테이터스에 적응하기 전에 카드 배틀을 하면 느끼는 고통이야. 보통 3일 정도 시간을 둬야 하는데... 너는 배틀 도중에 성장한 데다가 그걸 다 소진하기까지 해버렸으니 말이지."


선생님의 말에 나는 떨리는 손으로 시스템 카드를 켜보았다. 시스템 카드의 전원이 들어오자 떠오르는 푸른색 홀로그램. 나는 배틀 시스템에 접속해 내 스테이터스를 확인해 보았다.


[HP: 10]

[슬롯: 1]

[cost: 4]


"... 늘었다..."

"그렇지? 정말이지. 놀랐다니까. 배틀 도중에 스테이터스가 성장하다니. 그런 거 듣도보도 못했어."

"... 그런... 가요...?"

"뭐, 지금은 이런 소리 할 때가 아닌가. 잠시 앉아서 쉬고 있어. 마실 거 가져올게."


선생님은 웃으며 나를 의자에 앉힌 뒤 자판기로 향했다. 나는 계속해서 내 스테이터스를 확인했다. 처음이었다. 내 스테이터스가 성장한 것은. 지금껏 꾸준히 노력해왔음에도 한 번도 성장하지 않았던 스테이터스가 처음으로 성장했다는 감격은 내가 상상하던 것 이상이었다.


"자, 이거 마셔."

"아, 감사합니다..."


나는 선생님에게 음료수 캔을 받아 따 마셨다. 마시면 마실수록 목으로 넘겨지는 시원한 음료수. 점차 두통도 가라앉는 것을 느낀 그때였다.


"... 칫, 검의 힘에 휘둘려 자멸하길 바랬는데..."

"? 선생님. 뭔 말 했어요?"

"음? 갑자기 무슨 소리야?"

"... 아뇨, 아무것도..."


나를 저주하는 듯한 말. 그에 나는 선생님을 보며 물었다. 하지만 선생님이 그런 말을 중얼거릴 수인도 아니었고 아까까지 음료를 마시고 계셨기에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누가, 어디서 중얼거린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다는 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내일 언제까지 어디로 모이면 되는 거예요?"

"음... 아침 9시까지 아카데미 입구로 오면 돼. 다 모이면 바로 출발할 거야. 아이스와 크림한테는 네가 따로 부탁해줄래? 내가 말해도 안 믿을 게 분명하니까."

"알겠어요. 그럼 내일 봬요."


나는 선생님께 감사 인사를 건네며 아카데미 밖으로 나왔다. 집으로 가는 길. 나는 시스템 카드를 꺼내 아이스와 크림에게 연락을 보내놓았다. 내일이면 또 보겠지.


*


"진짜 로스트야? 진짜? 내가 꿈 꾸는 거 아니지?"

"으에에... 크림, 아파... 아프다고..."


다음 날 아침. 아카데미의 앞에 도착하자마자 나를 발견한 크림이 내 볼을 마구 잡아당겼다. 내가 아카데미의 현장 체험학습에 참여하게 될 거라고 오면서도 확신하지 못했던 걸까.

아이스도 그런 모양이었는지 조금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희들... 내가 직접 문자까지 보냈는데 안 믿었어...?"

"당연하지! 너 카드 아카데미라면 치를 떨 정도로 싫어했잖아!"

"나랑 크림이랑 밤새 토론했다. 야이바 선생님의 함정인지 아닌지."

"저기~ 너희들한테 내 이미지가 왜 그러니...?"

"무능 선생."

"한량."


야이바 선생님을 향한 짙은 불신감 어린 둘의 언어폭력이 이어지는 가운데, 나는 요정의 숲으로 향하는 버스를 보았다. 요정의 숲은 요정들이 사는 숲이다. 그런 만큼 평상시에는 통행이 금지되어 있다고 한다. 유일하게 통행이 허가되는 것은 카드 아카데미의 현장 체험학습 뿐이고 그마저도 특별 제작된 버스로만 출입이 가능하다고 한다.

요정의 숲으로 향하는 버스는 어쩐지 반짝거리는 녹색으로 도색이 된 버스였다. 그걸 가만히 보고 있자 아이스와 크림에게 시달리던 선생님이 내게 다가와 물었다.


"버스가 신경 쓰여?"

"네? 아, 네... 어쩐지 엄청 반짝거려서..."

"호오, 그걸 알아챘네? 요정의 숲에 가려면 요정 가루를 뿌린 버스만이 갈 수 있거든. 그래서 반짝거리는 거야."

"그렇구나..."


나는 선생님의 설명에 감탄하며 버스에서 눈을 뗐다. 슬슬 버스에 탈 시간인 듯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버스에 타라고 지시했고 나는 아이스와 크림과 함께 가장 뒷자리에 앉았다.


"이야~ 이렇게 셋이 함께 현장 체험학습을 가는 날이 올 줄이야~"

"그러게... 그런데 괜찮은 걸까... 이거 엄연히..."

"그런 거 신경 쓰지 마. 지금은 그냥 즐겨."

"아, 응..."


엄연히 따지면 뭔가 인맥을 통해 들어온 낙하산이라는 생각이 들어 조금 불편했지만 아이스와 크림은 왠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에 의아해하던 나는 곧 둘의 반응이 이렇게 시큰둥한지 알 수 있었다.

둘은 1학년 때부터 주목받던 유망주인 만큼 각 아카데미의 교수들이 자신과 함께 현장 체험 학습에 가자고 졸라댔을 거다. 그러니 이런 부정 정도야 이제 익숙할 만도 했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일상 이야기를 꺼냈다. 아이스와 크림은 아카데미 수업을 병행하며 유적에 도전하려고 준비 중이라고 한다. 쉽다고 알려진 유적을 먼저 돌파할 생각이라고 한다.


"오, 유적인가... 응원할게!"

"유적을 탐사하다가 괜찮아 보이는 소재를 발견하면 맡긴다."

"... 응?"

"맞아, 맞아. 로스트도 경험을 쌓아야 하고 말이지~"

"왜, 왜 그렇게 되는 건데!"


나는 매우 당황하며 둘에게 따졌다. 내가 만들어봤자 망칠게 분명했다. 그걸 몇 번이고 말해지만 둘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실패해도 상관 없어~ 어디까지나 네 경험을 위해서니까."

"... 하아... 알았어..."


결국 나는 둘의 고집에 지고 말았다. 이미 여러 번 탐사된 유적이니 만큼 괜찮은 소재가 발견될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유적의 소재를 다룬다는 건 나름 나쁘지 않은 기회였으니까.

결과물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도 경험이니...

그렇게 소소한 잡담을 하다 보니 버스가 멈췄다. 창밖을 보자 어느새 버스는 푸르른 숲의 한가운데에 세워져 있었다.


"자, 도착했다. 다들 내려라! 내리면서 팔찌 챙기는 거 잊지 말고!"


버스가 도착하자 야이바 선생님의 인솔하에 학생들이 전부 버스에서 내렸다. 나 또한 학생 무리에 섞여 내렸다. 주위를 둘러보자 푸르고 파릇파릇한 식물들이 주위를 가득 에워싸고 있었다. 코 끝을 스치는 신선한 바람. 눈을 감고 요정의 숲의 기운은 만끽하고 있던 때, 누군가 이쪽을 향해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에 눈을 뜨며 소리가 난 쪽을 보자 등 뒤에 푸른 빛의 투명한 날개가 달린 흰색의 고양이 수인이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그 수인의 손에는 보라색의 수정구가 박힌 지팡이가 쥐어져 있었다.


"아, 오셨군요."

"후후, 요정의 숲에 방문한 학생 분들이 누구인지 만나러 와야 하니까요."


척 봐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는 고양이 수인의 모습에 학생들 전원이 긴장한 표정으로 그 수인을 바라보았다. 그런 학생들의 모습을 본 야이바 선생님이 웃으며 그 수인을 소개해 주었다.


"다들 인사해라. 요정왕인 오베론 님이시다. 이분의 허락이 없었으면 이곳에 와서 단련하는 일도 없었을 테니 감사 인사도 잊지 말고."

"안녕하십니까!"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후후, 별일 아니랍니다. 야이바 군은 요정 족의 친우. 그와 그의 제자에 한해서라면 얼마든지 허가해줄 수 있답니다."


요정왕, 오베론 님이 선생님을 바라보며 말하자 선생님은 쑥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그 모습을 보며 학생들이 웃으며 소곤거리기 시작하려던 찰나였다. 오베론 님은 갑작스레 지팡이로 바닥을 내려찍으며 말을 이었다.


"다만, 요정의 숲의 자연을 해치는 학생은 앞으로 영원히 이 숲에 갇혀 헤매게 만들 거니 명심하도록 하세요. 제가 허가한 것은 어디까지나 숲의 견학. 숲의 자연을 해치는 행위가 아님을 명심하시길."


아까까지의 온화한 미소는 없었다. 다소 섬뜩하기까지 한 표정에 학생들이 전원 얼어붙는다. 곧바로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학생들을 응원하며 떠나긴 했지만 학생들의 분위기는 도통 풀릴 기미가 없었다.


"자자, 다들 표정 풀고. 오베론 님의 말씀대로 자연을 해치지만 않으면 뭘 해도 좋으니까. 이곳은 따로 견학할 거리나 코스 같은 게 없으니 주변을 구경하며 놀거나 쉬도록 해라. 그럼 출발 시간 전에 여기로 모이도록. 이상!"

"... 이래도 좋은 거야?"

"뭐, 각자 다른 목적으로 이곳에 왔을 테니까."

"슬슬 점심시간이고... 돗자리 깔고 올게~!"


아무런 인솔도, 소개도 없이 진행되는 현장 체험학습이 맞는 건가 싶었지만 아이스와 크림은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다. 주변을 잠시 구경하러 발걸음을 옮기는 아이스와 돗자리를 깔며 점심 준비를 하는 크림. 점심시간에 모이기로 약속했기에 나도 구경을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요정의 숲은 마치 미로 같았다. 같은 길을 걷는다고 한들 도달하는 장소는 매우 달랐다. 요정들의 마법인 걸까. 그냥 들어오면 길을 잃기 무척 쉽지만 선생님이 버스에서 내리기 전에 나눠준 팔찌 덕에 목적지를 생각하고 걸으면 그곳에 도착할 수 있었기에 별걱정이 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무척 깨끗한 호수를 구경하기도 하고, 요정들의 화단을 구경하기도 하며 요정의 숲에 사는 몬스터들을 멀리서 관찰하기도 했다.


"요정의 숲의 몬스터들은 전부 온순하구나... 하긴, 요정이 들어오는 걸 허락한 존재들이니 당연하려나."


요정의 숲에 사는 몬스터들에 대해 관찰하고 기록하며 신기해하던 도중,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무척 아름다운 선율. 나는 어딘가에 홀린 듯이 그곳을 향해 걸어갔다.

수풀과 나무 사이를 헤치고 나아간 곳에는 하나의 그루터기만이 놓여 있었다. 주위에는 분명 아무도 없음에도 더욱 선명하게 들리는 노랫소리. 의아해하며 그루터기에 더 가까이 다가간 나는 순간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그루터기의 위에 손가락 한 마디보다 작아 보이는 생명체가 앉아 있었다. 등 뒤에 푸른 날개가 달린 새하얀 생명체. 나는 그제야 이곳에 와서 오베론 님을 제외한 요정을 보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어째서 요정이 보이지 않던 것인지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작아서야 근처에 있다고 한들 집중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법도 했다.

가만히 서서 노래를 듣고 있자 서서히 끝을 맺는 노랫소리. 노래가 끝나자 아쉬움이 살짝 섞인 표정으로 요정들을 바라보던 나는 요정들이 나를 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 수인?"

"수인이지?"

"수인이 어떻게 여기에?"

"... 어, 음... 안녕?"


나는 나를 보며 경계하는 요정들을 보며 어색하게 인사를 건넸다. 노래 도중 내가 난입한 탓에 노래가 끊겨 불만스러운 걸까. 나는 요정들과 불편한 대면을 계속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