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 음... 안녕?"

"... 수인이 어떻게 여기에..."

"길이라도 잃은 걸까?"

"그렇지만 이런 깊은 곳까지는 못 들어오게 결계가..."

"... 저기...?"


나를 경계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며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하는 요정들. 이왕 처음으로 요정을 마주친 만큼 허무하게 보내고 싶지 않았던 나는 요정들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그, 나는... 아, 그래. 오베론 님의 허락을 받아서 들어온 거야! 이거 봐봐. 이것 덕분에 돌아다닐 수 있는 거야!"

"뭐야 그건?"

"아, 이거에서 오베론 님의 힘이 느껴져!"

"아, 진짜다~ 거짓말은 아닌가 봐~"


다행히 요정들은 팔찌를 보자 곧 경계심을 풀었다. 수인에 대한 경계심이 강하긴 하지만 경계심이 풀리면 금방 허물없이 대하는 게 요정들의 특징인 걸까.


"근데 근데, 수인이 이 깊은 곳까지는 무슨 일로 왔어?"

"여기부터는 볼거리도 없을 텐데."

"아, 그게... 여기저기를 구경하다가 엄청 예쁜 노랫소리가 들려서..."


내 말에 갑자기 자기들끼리 모여서 소곤거리기 시작하는 요정들. 소리가 너무 작아 도통 들리지 않았지만 떠날 생각은 아닌 것 같았기에 기다리기로 했다. 잠깐 뒤, 대화가 끝난 듯 내게로 다가오는 요정들. 왠지 웃음을 참는 듯 보였기에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자 한 요정이 말을 걸었다.


"우리 노랫소리가 예쁘다고 했지? 그럼 여기 앉아서 우리랑 같이 부르지 않을래?"

"같이...? 난 노래 잘 못 부르는데..."

"괜찮아! 우리가 부르면 따라 부르면 돼! 자자, 어서 앉아!"


나는 내 주위를 날아다니는 요정들의 재촉에 나무 그루터기에 걸터앉았다. 내가 그루터기에 앉자 내 옆에 내려앉는 요정들. 그 요정들이 숨을 고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 노래가 시작되었다.

아까 들었던 것과 같이 아름다운 선율. 과연 이걸 내가 따라부를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지만 조심스레 따라 불러보기 시작했다.

역시나 떨리는 음정과 맞지 않는 박자. 요정들의 아름다운 선율의 발끝조차 따라가기 벅찼다.


"___"

"~~~"


그러나 요정들은 그런 내 노랫소리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노래를 이어 나갔다. 최대한 요정들에 맞춰보려던 나는 문득 어느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요정들의 노래 또한 따로 놀고 있었다. 하지만 그 따로 노는 소리마저 서로 어울려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니 따라 부르는 것 따위 가능할 리 없었다. 셋이 전부 다른 음정을 부르는데 어떻게 따라 하느냔 말이다.

거기에 부르면 부를 수록 어쩐지 머리도 멍해져서 몽롱해지고 있었다.


'아... 이러다간 완전히 놓쳐버릴 것 같은... 그런 기분이...'


정신이 몽롱해질 수록 내가 부르는 노래의 박자가 점차 뒤로 밀리는 것이 느껴진다. 그나마 어떻게든 따라가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망가지기 시작하는 노래. 요정들은 그게 우스웠는지 노랫소리가 작아지며 요정들의 웃음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이대로는 안된다. 기껏 내게 같이 부르자고 제안을 해주었는데 그 분위기를 망치기 싫었다.


'... 어차피 이 노래에 정해진 틀은 없어... 그러니까...'


나는 눈을 감았다. 칠흑 같은 어둠이 찾아온다. 요정들의 웃음소리와 옅은 노랫소리가 들린다.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 비행형 몬스터의 지저귀는 소리, 육지형 몬스터의 발소리, 호수의 물이 흐르는 소리. 자연의 소리가 사방에서 뒤얽힌다. 요정의 노래는 억지로 부르려 해서는 안 된다. 그저 자연의 소리에 맡겨, 그들과 조화를 이룬다.


"~~~!"


그걸 깨닫자 목에서 나오는 소리가 점차 갈무리되어갔다. 더 이상 음색이 떨리지도 않고 박자가 밀리지도 않았다. 사실, 그런 건 신경 쓸 필요도 없었다. 그저 자연과 함께 소리를 주고받을 뿐인 의식이었다.

정신이 점차 맑아진다. 내가 노래를 부르면 자연의 소리가 화답을 해왔다. 몬스터들은 내 주위에 모여 함께 노래를 불렀고 요정들의 웃음소리는 더는 들리지 않게 되었다. 이곳에는 자연과 나만의 소리가 서로 대화를 하며 조화를 이룰 뿐이었다.

한창 노래를 부르고 있던 때, 어디선가 풀을 헤치며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힐끗 눈을 뜨자 아이스와 크림, 야이바 선생님을 필두로 어쩐지 나를 당혹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아카데미 일행이 보였다.


"~~~... 아... 다들 여기는 어쩐 일로... 혹시 시간이 늦었나요?"

"... 로... 스트...?"

"죄송해요. 노래 부르다 보니 점심시간이 된 걸 몰랐네요."


나는 그루터기에서 일어나 일행을 향해 날아갔다. 그러자 어쩐지 놀란 눈으로 뒷걸음질을 치는 아카데미 일행. 그에 고개를 갸웃하자 크림이 떨리는 손으로 나를 가리키며 물었다.


"로, 로스트... 맞... 지...?"

"응? 당연히 나지, 갑자기 무슨 소리야?"

"... 너, 드, 등에..."

"등...?"


크림의 말에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내 등 뒤에서 팔락거리는 푸른색의 날개.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던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요정한테 날개가 달린 것 정도야 별일 아니... 지...


"... 어?"


잠깐 생각의 필터를 거치던 나는 순간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나는 수인인데?

나는 내 등 뒤에서 펄럭거리는 날개를 보며 멍한 표정을 짓다 문득 발밑이 허전하다는 것을 느꼈다. 발밑을 내려다 보자 바닥에서 몇 cm 정도 둥둥 떠 있는 발. 나는 화들짝 놀라며 버둥거렸다.


"으아악! 뭐, 뭐야 이거!"

"로스트! 진정해! 더 위로 떠오른다!"


내가 당황하며 버둥거리자 날개가 더욱 빠르게 퍼덕거리며 몸을 위로 띄우기 시작했다. 그걸 보고 내게 달려와 내 다리를 붙잡는 선생님. 내가 잔뜩 겁에 질려 굳어있자 선생님은 천천히 내 몸을 당겨 바닥에 착지시켜 주었다.

다행히 바닥에 착지하자 퍼덕거리는 것을 멈춘 날개. 나는 당황하며 날개와 몸을 더듬거렸다. 등 뒤에 날개가 생긴 것도 모자라 머리 위에는 작은 더듬이 같은 게 나 있었다. 갑자기 무슨 상황이 일어난 건지 몰라 패닉에 빠져 있자 아카데미 일행 사이로 누군가 걸어 나왔다.


"이게 다 무슨 소란이죠?"

"아, 오베론 님..."

"우으... 저, 저 어떻게 된 거예요...? 갑자기 날개가..."


인상을 찌푸린 채 내 앞으로 다가오는 오베론 님. 너무 놀란 탓에 울먹거리며 묻자 오베론 님은 내 뒤쪽을 바라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 하아... 유, 페이, 도운. 동작 그만."

"힉..."

"들켰다...!"

"그, 그러니까..."


오베론 님이 불러세운 것은 나와 노래를 부른 세 요정이었다. 오베론 님이 지팡이로 바닥을 내려찍자 무언가 걷히는 느낌과 함께 아까까지만 해도 눈에 잘 안 보이는 크기였던 세 요정이 손바닥만 한 크기로 변해있었다. 수인의 눈에 안 띄도록 요정의 크기를 줄여주는 결계였던 걸까.


"제가 분명 요정의 노래의 위험성에 대해 가르쳐 드렸을 텐데요? 요정이 아닌 자가 노래를 부르면 노래에 침식되어서 폭주해 이 숲을 쑥대밭으로 만들 수도 있다고 몇 번을 말씀드립니까!"

"그, 그건 너무 과장..."

"봐요! 저렇게 멀쩡하고..."

"요정이 되면 나쁠 것도 없..."

"저게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는 걸 왜 모릅니까! 보통은 반만 요정으로 변해 괴물이 되어 주변의 생명체를 닥치는 대로 학살하고 다닌단 말입니다! 만약 그렇게 됐으면 가장 먼저 살해당한 것은 당신들이었습니다!"


오베론 님이 진심으로 화를 내자 주변의 식물들이 마구 흔들리며 모여들었던 몬스터들이 혼비백산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세 요정은 완전히 굳어버린 채 울먹이고 있었고 오베론 님은 화를 삭히지 못한 듯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나를 돌아보았다. 내게 화를 내려는 건가 싶어 흠칫 떨자 오베론 님이 내게 다가와 지팡이를 내 이마에 가져다 댔다.


"자연과 하나 되어 동화된 불쌍한 이여.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올 지어다."


오베론 님의 지팡이에서 빛이 나더니 내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등과 머리에서 간지러운 기분이 들더니 점차 사라지는 더듬이와 날개. 하지만 어렴풋이 내 몸에 존재한다는 것은 느껴졌다.


"후우... 일단 임시방편은 취해두었습니다. 당신처럼 요정의 노래에 침식되지 않고 온전한 요정이 되어버린 건 워낙 특이 케이스인지라 완전히 수인으로 돌려드리는 건 불가능합니다. 노래만 부르지 않는다면 날개나 더듬이나 돋아날 일은 없으니 안심하시길."

"아, 네, 네..."

"... 잠깐, 오베론 님. 그게 무슨... 로스트가 요정이 됐다고요? 거짓말이죠?"

"... 저도 거짓말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야이바 군. 하지만 실제로 일어나고 말았으니... 요정의 힘을 억누르는 것만으로도 벅찹니다. 만약 온전한 해결법을 알게 된다면 다시 부르겠습니다."


오베론 님이 미안하단 표정을 지으며 말하자 선생님은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 또한 조금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뭔지 모를 봉변을 당한 셈이었으니까.

그때, 내게 악질적인 장난 친 요정들이 내게 다가왔다. 자칫했다간 내가 괴물이 될 수도 있었다는 사실에 내가 경계 어린 시선을 보내자 셋이 조심스레 내게 다가왔다.


"그, 미, 미안해!"

"우리 장난이 너무 심했지...?"

"......"


각기 개, 고양이를 닮은 요정이 내게 사과를 건네왔다. 족제비를 닮은 요정은 무언가를 품에 껴안은 채 나와 시선을 마주치질 못했다. 그래도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은 얼핏 느껴졌기에 나는 경계를 풀고 사과를 받아주기로 했다.


"... 진심으로 사과하니... 알았어. 다음부터는 그런 심한 장난 치면 안돼."

"너 진짜 좋은 애구나..."

"미안해... 다음부터는 장난 안 칠게..."

"... 저, 저기! 이거... 네가 노래 부를 때 생겨났어... 그러니까 네 거야..."


개와 고양이를 닮은 요정이 울먹이며 미안해하고 있자 족제비를 닮은 요정이 품에 있는 무언가를 내밀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것을 받아서 든 나는 깜짝 놀랐다. 그것은 카드였으니까.


[유&페이&도운(銀)]

[장난꾸러기 요정 삼총사. 장난기가 많은 삼총사지만 친구를 위해서라면 전력을 다할 것이다.]

[우정 기프트: (로스트 전용) 우정을 통해 탄생한 카드. 이 몬스터를 소환하면 [요정의 장난] 마법과 [요정의 축복] 마법 중 하나를 선택해 즉시 발동시킬 수 있다.]

[요정: 무척 작고 날랜 종족. 매우 높은 회피율을 지녔다.] 

[cost: 3]

[HP: 2]

[atk: 1x3]


"... 이건... 고마워, 잘 쓸게."

"헤헤, 우리는 친구니까 필요하면 언제든 불러줘!"

"같이 놀아줘서 고마웠어! 그리고 마지막으로... 미안해!"

"다음에도 같이 놀자..."


내게 인사를 건네며 떠나는 요정 삼총사. 나는 옅게 웃으며 카드를 덱 케이스에 넣었다. 그러자 그 모든 걸 지켜보던 선생님이 내 머리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오랜만에 만나니 신기한 광경 참 많이 보네. 배틀 중에 성장하지 않나, 요정이 돼버리질 않나, 몬스터 카드를 뼈에서 추출한 게 아니라 몬스터 당사자에게 받질 않나... 거기에 네가 쓰던 특이한 카드들도 그렇고 말이야..."

"아하하..."

"자! 다들! 로스트도 찾았으니 돌아간다! 점심 먹고 오후 3시까지 모여야 하는 거 잊지 말고!"


아무래도 나를 찾느라 다들 밥도 못 먹고 있던 듯 여기까지 온 나를 흉보는 소리가 얼핏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들은 아이스와 크림, 선생님의 표정이 살짝 굳었지만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다들 가자며 재촉했다. 굳이 여기서 싸우며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리고 다 같이 버스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던 도중, 나를 제외한 모두가 갑자기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 저기? 나 두고 어디..."


당황하며 주위를 둘러보아도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아카데미 일행. 나는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무슨 일이야 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