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서 나는 이렇게나 약해진 것이지.”


 그랑 사이퍼 위의 자유 훈련장, 자기 자신을 '염제'라고 부르는 남자가 허수아비를 향해 검을 휘두른다. 유려하게 흐르는 불꽃이 검을 휘감고, 그 불꽃은 말 그대로의 꽃이 되어 흐드러진다. 하지만 그 아름다우면서도 완벽한 검술을 구사하는 중에도 그는 중얼거리며 좀처럼 만족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그렇게 한참을 혼자 허수아비를 두드리던 남자, 퍼시벌은 땀으로 젖은 머리를 쓸어넘기며 검을 갈무리했다. 


 그는 도저히 자기 자신의 강력함이 이렇게나 꺾여나간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기공단 내에서 탑급의 공격력을 자랑하던 본인이 그저 '범부'가 되었다는 사실은 그에게 있어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진실이였다. 퍼시벌은 화를 참으며 물을 들이켰다.



 “오늘도 열심히 수련하고 있었군, 퍼시벌.”



 한참 화를 삭히며 물을 들이키던 퍼시벌을 향해 4기사 중 한 명인 지크프리트가 말을 건내왔다. 그는 여느때와 같이 웃는 얼굴이였다. 하지만 지금의 퍼시벌에게는 그 모습이 아니꼽게 느껴졌다. 어디 쓰레기 캐릭터가 감히 자신에게 말을 걸며 겸상을 하려 드는걸까. 



 “아아, 지크프리트. 너도 항상 웃는 얼굴이로군. 보기 좋다.”



이에 퍼시벌은 '너는 웃는 거 밖에 할 줄 아는 게 없다.' 라는, 왕도를 걷는 자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의 더러운 본심을 숨긴 억지 미소를 담아 답했다. 그 사실을 모르는 지크프리트는 고맙다며 검을 쥐어들고 허수아비로 향했다. 퍼시벌은 그 모습 하나 하나가 가소로웠다. 자기가 수련해봤자 얼마나 강해진다고, 진을 갈아끼워 봤자 얼마나 강해진다고 이 기공단의 재화를 낭비하는 것일까. 


 지크프리트의 수련은 한참 이어졌다. 괴력을 뽐내며 대검을 리듬감 있게 휘두르는 지크프리트의 모습은 굉장히 강해 보였다. 그의 대검에 얻어맞은 허수아비가 이리저리 뒤흔들리는 것만 봐도 그랬다. 마침내 힘을 전부 모은 지크프리트는 수련을 끝내기 위해 허수아비를 향해 쇄도했다. '오의'를 사용한 것이다.



 “슈바르츠 팽!”



 “슈붸루추 쀙~”



 “음? 퍼시벌, 방금 뭐라고 했나?”



 그 맹렬하고 용감한 오의를 바라보고 있던 퍼시벌은 자신도 모르게 그를 우스꽝스럽게 따라해버렸다. 자세를 고쳐잡고 땀을 닦아내며 자신에게 되묻는 지크프리트를 향해 그는 다시 억지 미소를 지어보였다.



 “아니, 역시 네 검술은 대단하다고 혼잣말을 했다. 무시무시한 위력의 오의다.”



 “그거 참, 고맙군.”



 휴, 아무래도 듣지 못한 모양인 눈치다. 퍼시벌은 안도하며 다시 속으로 그를 마구 비웃었다. 저딴 메뚜기 뜀박질 따위의 기술이 뭐가 멋있고 용맹하다는 것인지.. 퍼시벌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물 주머니를 마구 구기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런 놈이랑 같이 있으면 본인 성능도 구려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다시 수련을 시작한 지크프리트를 뒤로하고 화도의 숙소로 향했다. 화사한 정원이 딸린, 딱 봐도 비싸보이는 숙소 앞에 도착한 퍼시벌은 콧노래를 부르며 곧바로 샤워실로 향했다.


 남들은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 그리고 단장의 금전 사정에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값싼 숙소를 부탁하거나 아예 그랑 사이퍼에서 머무는 것을 선택했는데, 퍼시벌은 좋은 침대가 없으면 도저히 잠을 잘 수 없다는 말도 안되는 이유를 대가며 단장의 주머니를 털어갔었다. 이 숙소는 바로 그 생떼를 부려 얻어낸 결과물이다. 퍼시벌은 아까의 더러웠던 기분을 온수 샤워로 날려보냈다.



 “하아, 내가 왜 저딴 놈들이랑 같이 겸상을 해야되는거지? 사실 내가 4기사의 리더가 되야 하는 거 아닌가? 내가 제일 센데.”



 그렇게 샤워를 끝낸 퍼시벌은 화장품을 바르고 침대에 누워 중얼거렸다. 들을 사람 아무도 없다 이거다. 그는 인상을 마구 찌푸리며 아까 지크프리트가 수련하던 모습을 떠올렸다. 저딴 게 용살자?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다음, 베인을 떠올렸다. 베인은 퍼시벌에게 있어 그냥 '개' 이상도 이하도 아닌 존재였다. 그리고 다음, 랜슬롯. 이놈은 그냥 괴물 퇴치에 있어 적을 얼려주는 빙결 셔틀이나 다름없었다.


 어떻게 생각해봐도 퍼시벌은 본인이 저 셋보다도 강하고 뛰어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렇게 한참 생각하고 있으니 졸려오기 시작했던 퍼시벌은 꾸벅꾸벅 졸다 눈을 감았다. 어차피 본인이 수련을 예전처럼 하지 않고 게을리 해도 저딴 놈들보다 훨씬 강할테니 퍼질러 자도 상관 없다는 마인드였다.


 그렇게 퍼시벌은 자신이 개쓰레기가 되어간다는 사실도 자각하지 못하고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