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에 군 휴가 나와서 나홀로 여행

광주 출발이라 송정역>익산역에서 시외버스로 군산 도착. 도착하자마자 배부터 채우러 감.



여행목표1. 라멘 좀 제대로 먹고 다닌다는 분들한테는 비수도권 가게 중 인지도 탑급 아닐까 싶은 곳. 나도 여기서 먹고 라멘계에 눈을 떴는데, 이곳 사장님과 사제관계 등 이런저런 친분 있는 분들이 전국적으로 많이 진출한 듯. 특히 전남북 도시 곳곳에도 좀 있어서(조만간 여수에도 오픈) 여행 다닐 때 입을 즐겁게 해주신다.




동국사. 확실히 생긴 게 남다르다.


동국사 바로 옆에 막 생겼던 것. 쌀의 군산! 일제시기 경의경부선 육성 위해 삼선연락운임제도 등으로 만철까지 제치며 몰빵받은 부산항 독점에서 유일하게 쌀만큼은 군산항이 부산항 제치기도 했다던데.



구 히로쓰 가옥







여행목표2. 화교역사관. 여건방 선생님께서 자신이 운영하시던 중국집 용문각 및 갖고 계시던 물품을 시에 대여하며 전시관으로 만든 곳. 여건방 선생님과 아내분에 계셔서 이것저것 설명도 해주시고 되게 좋았음. 중화민국 여권이나 중국집 관련 전시 내용도 나름 재밌었고. 다만 확인해보니 아마 현재는 운영되지 않는 것 같은데 직접 확인은 못하겠다.

한국 화교는 좀 복잡한 문제인데, 내가 아는 대로 간단히 말하자면, 임오군란 이래 청인들 들어오고 특히 북청사변(의화단)으로 산둥 쪽 혼란한 가운데 산둥 사람들이 많이 건너옴. 격동의 근현대사 거치며 국적은 청>중화민국으로 바뀌고 고향 한 번씩 왕래하되 한반도에 정착한 채로 아이도 낳고 기르고 함. 그런데 이제 중화인민공화국 수립되고 중화민국은 대만으로 옮겨버렸는데, 한국은 중화인민공화국 인정 안 하니 한국에서 살려면 중화인민공화국 국적은 불가하고, 한국 귀화는 부계 혈통 중시하는 국적법상 어렵고, 하여 기존 중화민국 국적을 유지. 말하자면 “고향은 중국, 국적은 대만, 사는 곳은 한국”인 상황. 사실 해외 나가는 문제에 있어서 온전한 대만 국적 취급도 못받는 것도 있는데 그건 패스. 박정희 때 화교들 부동산 못 갖게 하는 조치 등으로 인해 사실상 요식업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고 그 결과 화교들의 ‘중국집’이 대량발생했다고.

아무튼 여건방 선생님은 산둥화교 2세대로서 중화민국 지원으로 나름 대만 유학(?)도 다녀오셨다 했던 것 같고, 자녀분들은 한국에서 대학까지 교육 받고 수도권에서 취업해서 잘 살고 있다고.

참고로 화교 자녀 교육과 관련해서 화교학교가 있는데 군산은 화교소학교가 있어서 초등교육은 가까이에서 가능하지만 중등교육부타는 수도권 유학을 하는 것인데, 그나마 이는 사정이 괜찮은 것으로 다른 곳의 화교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자녀를 타향살이 시킨다고도. 한국국적 아닌 화교들이 화교학교만 다녀야 하는 건지 뭔지는 자세히 모르겠는데, 타향살이의 어려움을 생각해보면 특히 어린 나이부터 타향살이 하는 건 여러모로 고통이 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음.



그외 뭐 익히 알려진 근대거리 좀 보다가

다시 버스로 익산 가서 귀가

화교역사관에서 받은 뒤집힌 복. ‘뒤집다(倒)’가 ‘도착하다(到)’와 음이 같아서 중국에서는 ‘복 자를 뒤집은 것=복이 온 것’이라고 보는 문화가 있음. 다들 복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