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여수 (麗水)

여수는 고려 태조대인 940년에 처음으로 등장한 지명이다. 태조가 후삼국을 통일한 후 전국을 시찰하다가 여수에 도달했을 때, '이 곳은 인심이 좋고 여인이 아름다운데 그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신하들이 '물이 좋아서 인심이 좋고 여인이 아름답습니다'고 답한 데에서 '물이 아름다운 지역'이라는 의미의 여수가 되었다. 940년 이전에는 백제 시대에 원촌현, 통일신라시대에 해읍현이라 불렸다.


둘. 돌산 (突山)

돌산은 백제 시대에 처음 그 이름이 등장한다. 조선 말기 돌산군수 서병수가 편찬한 『여산지』를 참고하면, 돌산의 어원은 다음과 같다.

섬 가운데 이름난 팔대 명산(천왕산·두산·대미산·소미산·천마산·수죽산·봉황산·금오산)이 있어 그 산을 식산이라고 하였고, 방언에는 ‘섬 가운데 돌 많은 산이 많아서 돌산이라 칭한다.’

산이 많은 돌산도의 지리적 특성을 그대로 지명으로 옮긴 셈이다. 부딪힐 돌 (突) 자를 파자하여 여덟 (八) 의 큰 (大) 산 (山) 을 의미한다.


셋. 율촌 (栗村)

옛부터 밤나무가 많이 자라서 율촌이다. 고려 시대에 율촌 부곡이 있었다는 것이 처음 기록이다. 고려~조시대에는 밤이 많이 났던 만큼 별도로 밤을 세금으로 내야 했는데, 이 때문에 율촌 주민들은 이중고에 시달려야 했다. 현재 율촌은 밤이 많이 나지는 않고, 논 농사를 주로 하는 지역이며 방울토마토 등을 재배하는 농가가 많다.


넷. 소라 (召羅)

소라의 어원은 지금의 대포리인 소라포에서 유래하였다. 신풍천과 주삼천이 만난 후 바다로 흘러가는 소라포에서 비단을 부른다는 의미. 召는 소 또는 조라고 발음되는데, 조선시대의 기록에서 조라포면으로 나오므로 원래는 조로 읽었다가 1914년 이후 소라고 읽는 것으로 보인다. 소라가 처음 등장하는 기록은 고려 시대의 소라 부곡이다.


다섯. 화양 (華陽)

화양은 원래 말을 기르던 목장이었다. 사서삼경 중 하나인 『서경』에 나오는 '귀마우화산지양(歸馬于華山之陽)' 이라는 구절에서 화양이라는 지명이 유래했다. 이 구절의 의미는 '화산 양지 바른 곳에 말을 돌리다'인데, 속 뜻은 주나라의 무왕이 은나라를 멸망시킨 후 전마(戰馬)를 방목하여 다시 전쟁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한 말이다. 즉, 평화로운 시대를 열겠다는 의미이다. 율촌, 소라에 비해 지명의 연혁은 짧은데, 원래 조라포면에 속해있다가 조선 말기에 화양면으로 분리되었다.


여섯. 남면 (南面)

남면은 말 그대로 남쪽에 있는 지역이라는 의미로 1914년 금오면에서 개칭되었다. 금오는 남면의 중심 섬인 금오도에서 딴 이름으로, 섬이 큰 자라를 닮아서 자라 오(鰲) 자를 써서 금오도이다. 금오도는 1885년까지 봉산 지역으로 출입이 통제되었기 때문에 사람이 살게 된 기간은 길지 않다.


일곱. 화정 (華井)

화정면은 1914년 화개면과 옥정면이 합하면서 두 면의 한 글자씩 따다 만든 지명이다. 화개는 개도의 화개산에서, 옥정은 백야도의 옥정산(백야산)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져 있다.


여덟. 삼산 (三山)

삼산의 유래는 명확하지 않다. 낙도로 이루어진 삼산면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삼산은 '바다에 산처럼 솟아오른 세 개의 섬'을 의미하는 것이 확실해 보이나 그 섬이 무엇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거문도를 구성하는 세 섬 (고도, 동도, 서도) 을 의미한다는 가설이 있고 거문도, 초도, 손죽도를 상징한다는 가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