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지않으면현존재는모두죽어허무주의도이젠끝이다대학교로돌아가면잊지말고전해라야스퍼스철학이너희의실존을배웅했다는것을불가지론시작액션원한계상황고정본질처단프로토콜통과초토화작전집행





템플릿을 봐도 알 수 있듯 이번에 다룰 철학자는 야스퍼스임.

참고로 본인은 야스퍼스 철학을 기초 중에 기초만 아는 사람임.

야스퍼스에 대해서 막 엄청난 걸 쓰지는 않을 거라는 뜻.


그리고 대학에서 배운 내용과 논문 읽은 걸로 쓰는 거지만

내가 이걸 제대로 이해했는지가 의문임.

때문에 비판적 사고를 유지하며 읽길 바람.

틀린 게 있을 가능성이 높음.



1. 실존, 그런 거 난 몰?루


실존철학의 가장 큰 질문은

'존재란 무엇인가?', 그리고 '왜 사는가?'

로 요약할 수 있음.


여기서 '나라는 개별적 존재에 대한 존재물음'에서

야스퍼스의 실존철학이 시작됨.

일단 나라는 존재가 무엇인가에 대하여

야스퍼스는 불가지론(不可知論)을 꺼냄.


간단히 말해 '모른다'



놀랍게도 여태까지 알던 철학자들하고 다르게

야스퍼스는 '인간은 왜 존재하는지,

그리고 존재가 무엇인지 인간은 알 수 없다.'고 말함.


그냥 '알면 다친다'는 태도를 보인다고 생각하면 편함.

왜 그러한 태도를 보이는 지에 대해서 설명해보고자 함.



2. '지평(horizont)'과 '미지의 것'


인간은 아는 게 많고 가면 갈 수록 아는 게 많아짐.

하지만 그것에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음.

그러한 사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야스퍼스는 지평이란 단어를 사용함.


우리는 바다로 가면 수평선이란 걸 볼 수 있음.

학붕이들도 해수욕장이라던지 바닷가 가면

푸른 바다의 수평선을 보았을 거임.

인간은 그러한 수평선 안의 보이는 것들은 알 수 있음.


ex) 바다에 배가 있다. 배에 사람이 타고 있다.

기러기가 날라다닌다. 기러기가 과자를 먹고 튄다.


하지만 수평선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음.

저 수평선 너머 어딘가에서 누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쩌면 누군가가 없을 수도 있음.


그러한 수평선 너머의 풍경은 우리가 사유할 수 없는,

'미지의 것'이라 칭할 수 있음.


ex) 빅뱅 전의 세계에는 무엇이 있지? -> 알 수 없음


희망적이게도 인간의 지평은 시간이 지날수록 넓어짐.

하늘을 못 날았던 인간은 헬리콥터로 날아다니고

우주로까지의 진출을 도모하고 있음.

진리를 향한 탐구는 인간의 삶은 더욱 풍족하게 만들어주고

정신적인 영역까지 큰 발전을 이루어냈음.


하지만 절망적이게도 야스퍼스는 그러한 지평의 확장에는

'한계가 있다'는 입장을 가짐.

진리로 끊임없이 다가가긴 하겠다만,

최종적으로 진리에 도달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거지.


진리에 도달할 수 없으니 인간은 절대 진리를 알 수 없음.



3. 진리에 못 도달한다면 실존은 어떻게 해?



역시나 서양철학답게 비약이라는 개념이 나옴.


인간이 진리로 갈 수 있는 다리는 끊겨있음.

그렇기에 저 너머로 나아가기 위한 점프!

즉, 비약을 해야만 인간은 실존(진리)에 도달할 수 있음.


어떻게 하면 실존할 수 있는지가 실존철학의 핵심!

한 번 쉽게 설명해보겠음.


인간은 살아가며 한계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음.

세상 뜻이 내 뜻대로 되는 건 아니니까.

당장 내가 갑자기 뭔 말도 안되는 일로 죽을 수도 있고

돈이 안 생길 줄 알았는데 갑자기 생길 수도 있음.

그 정도로 온갖 기상천외한 변수가 존재하는 게 세상임.


그러한 '내 맘대로 안되는 세상'에 인간은 당황하고

때론 무력함을 느끼게 됨.


ex) 분명 나는 행복하게 살고 싶은데 현실은 시궁창이야.


그러한 세상에 현존재(일반적인 사람)는 불안을 느끼게 됨.

이는 의식일반(학문 좀 치는 사람)과

정신(이념을 추구하고 실현시키려는 사람)도 마찬가지임.


문제는 그러한 불안이 더욱 심화되어 절망이 된다면

인간은 비약을 아예 못하는 상황에 이를 수도 있음.

키에르케고르처럼 말하자면 '죽음에 이르는 병'임.



실존에 있어 절망은 큰일나는 일이라는 거지.


하지만 그러한 절망의 전제조건인 불안은

오히려 인간을 실존하게 만들 수도 있음.


앞서 말한 한계상황은 인간에게 불안을 만들지만

동시에 인간은 어떠한 사실 하나를 알게 됨.

현존재, 나라는 사람은 '개별자'라는 사실을.



4. 나의 죽음은 타인이 대신할 수 없다


야스퍼스에게 있어 한계상황은 양날의 검임.

불안 때문에 아무 일이나 하다 더 일을 망쳐서 절망에 빠지기도 하지만, 그러한 고통 속에서 '이러한 삶의 중심에는 언제나 내가 있다'는 걸 자각할 수 있게 만들기도 함.


비약과 같은 초월, 실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라는 거임.

내가 '본래적인 나'가 아니기에 불안한 거였어!


즉, '본래적인 나(본래적 자기or참 된 실존)'라는 개념이

야스퍼스가 말하는 실존의 이상적인 모습이라 볼 수 있음.


인간에게는 언제나 가능성이 있음.

참 된 내가 '아닐'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고.

그래서 참 된 존재가 된다는 것은 내 선택에 달려있고,

이는 초월자로 초월(비약)한다는 것과 본래적 자기로 존재한다는 것이 곧 '인간의 자유'와 같은 말이라는 건 알 수 있음.


왜냐면 '불가지론'에 입각하자면 진리란 것은

인과관계가 없는 동시성(선후관계)이고

증명이 불가능(될 가능성과 안 될 가능성)하며

개념적 대상화(진리는 이거다!)도 불가능하기 때문임.


즉, 인간은 진리를 모르기에 '자유롭다는 것'임.

그러한 자유로움은 참 된 실존을 하여 비약하느냐

고통과 절망을 즐기는 특수한 취향을 가지느냐(?)에

대한 선택, 그리고 그걸 벗어날 가능성을 만들어 주는 거고.



5. 뭔가 키에르케고르랑 야스퍼스가 합쳐진 거 같은데


결국 타인과의 갈등, 나의 투쟁(마인 퓌러 아님)에 대한 책임도 결국은 '자신의 것'임.

때문에 야스퍼스에게 있어 나라는 인간을 보살피고 아껴주는 게 실존의 핵심임.


사실 야스퍼스랑 키에르케고르라는 철학자는 많이 닮아서 

뭘 말하든 뭔가 헷갈리고 복잡해짐.

둘 다 절대자(신, 초월자)에 대한 믿음(실존)을 통한 비약(초월)을 말했거든.


그 내용을 굳이 뺀 이유는 내가 글로 쓰기 싫어서고...

야스퍼스랑 키에르케고르를 둘 다 공부하니까 죽을 거 같단 말야.


나 그냥 니체철학 공부하고 싶어



그립읍니다 G.O.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