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이 녹수의 치마폭에서 헤어나질 못하니 자연 모든 권력은 녹수에게로 쏠렸다. 하여 그녀의 발아래 엎드리지 않는 이가 없게 되었다. 다만 일찍부터 연산의 사랑을 받아왔던 전향과 수근비만은 자존심이 있어 장녹수를 무시했다. 장녹수를 지극히 총애하면서도 연산은 전향과 수근비를 버리지 못했다. 


둘 다 녹수에 버금가는 천하절색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전향은 당돌하고 거침없는 성격이 매력이었고, 수근비는 금방이라도 부러져버릴 것 같은 연약함과 다소곳함이 또한 매력이었다. 그것은 녹수에게서 찾아 볼 수 없는 또 다른 매력들이었다. 그래서 연산은 녹수를 사흘 찾으면 전향을 하루 찾았고 다시 수근비를 찾았다.


어차피 뽑아 올리는 미녀들은 연산의 노리개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녹수는 별로 개의치 않았지만 전향과 수근비는 달랐다.


연산에게는 정이 함빡 든 후궁들이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녹수는 마침내 두 후궁을 제거하기로 결심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연산의 말이었다.


「언제 죽을까 두려워서 궁 안에 있을 수가 없어요!」


「누가 감히 우리 녹수를 죽인다더냐?」


「누구긴 누구에요! 전향과 수근비란 년들이지! 나보고 꼬리 아홉 달린 불여우라 합디다. 그리고 언젠간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버린다고 하더이다!」


「어찌 널 죽인단 말이냐? 네가 헛소문을 들은 모양이로구나! 전향과 수근비는 내가 잘 아느니 절대 그런 말을 할 아이들이 아니니라!」

녹수는 연산이 두 계집의 편을 들자 가슴 속에서 질투의 불길이 활활 타올랐다. 홱 등을 돌려버렸다.

「그래, 그년들 말을 믿고 내 말을 못 믿겠다는 말이요?」

언행이나 행실이 방자하기 이를 데 없는 녹수였다.

지존인 임금 앞에서 그런 행동을 했다간 목이 열 개라도 모자랄 판이었지만 녹수에게 흠뻑 빠져버린 연산에게는 녹수의 방자함까지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내 언제 네 말을 못 믿겠다고 했느냐? 네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쓴다고 해도 믿는 내가 아니냐?」


「긴말 할 것 없이 그 두 년하고 나하고 한쪽만 택해요!」


「...」


연산은 입맛을 다셨다. 아름다운 전향과 수근비의 얼굴이 떠올랐다. 더구나 정이 들대로 든 후궁들이었다. 허나 녹수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년들이 아까운 모양이죠? 그럼 내가 나가죠!」


「누가 아깝다고 했느냐? 그럼 어찌해주랴? 목을 쳐줄까?」


「목을 치면 너무 싱거워요! 죽지 않을 만큼 볼기를 때려 산수갑산으로 귀양보내서 죽도록 고생을 시켜요!」


연산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면서도 못내 아쉬운 듯 연신 입맛을 다셨다.


다음날,


「죄인 전향과 수근비에게 곤장 80대씩을 때려 산수갑산으로 귀양을 보내라! 장벌의 집행은 좌승지에게 감독하게 하라!」

연산의 명을 받은 금위군사들이 전향과 수근비의 처소로 우르르 몰려갔다.

수근비는 겁에 질려 아무 대꾸도 못하고 붙들려 나오건만 성질이 괄괄한 전향은 무지한 금위군사들을 꾸짖으며 발악을 했다.

「무엄하구나!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행패냐?」


「우리는 어명을 따를 뿐이오!」

그제서야 전향은 이것이 녹수의 흉계인 것을 알아채었다.


녹수에 대한 분노가 새삼 치밀어 올랐고 더불어 연산의 매정한 처사에 대해 서운함을 금할 길이 없었다.

왕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던 전향과 수근비가 신발도 신지 못한 버선발로 금위군사들에게 끌려나갈 무렵 대전에서는 좌승지가 용상 앞에 부복하고 있었다.

「전하, 소신은 차마 어명을 받들 수가 없나이다.」


「어째서?」연산의 얼굴에 노기가 비친다.


「전하께서는 신더러 두 후궁마마의 곤장형을 감독하라 하셨사온데, 신하된 자로서 감히 거행할 수가 없사옵니다. 통촉하여주옵소서!」

그제서야 좌승지의 속뜻을 알아챈 연산은 빙그레 웃으며,


「그들이 한때 과인의 후궁이었다 하나 지금은 죄를 얻었으니 개의치 말라.」


「전하, 두 분 마마께서 죄를 얻었다하오나 전하의 총애를 받으셨던 후궁이옵니다.」


신하된 자로서 군왕을 모셨던 후궁의 볼기를 때리는 일을 감독하는 것은 신에게 너무나 과중한 책임인지라 신의 이러한 고통을 불쌍히 여기시어 전하께서 친히 감독하심이 어떨까 사료되옵니다.」

「그대는 이미 과인의 명을 받았으니 신하로서 형벌을 감독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대신하는 것이니 더 이상 사양하지 말라!」

연산이 뜻을 굽히지 않는지라 좌승지는 어쩔 도리 없이 대전을 물러 나와 형틀 두 대가 나란히 배치되어 있는 궁중 뜰로 무거운 발길을 옮겼다.

이미 끌려온 전향과 수근비가 각기 자신의 몸이 매어질 형틀 옆에 꿇어 엎드려 있다.

괴로운 표정으로 전향과 수근비를 내려다보는 좌의정과 천하절색의 두 미녀의 눈이 서로 만났다.

두 후궁의 시선을 외면한 채 좌의정은 전교를 읽었다. 연산을 대신해 그들의 없는 죄를 읽어 내려가다 마침내,


"... 죄인 전향과 수근비를 곤장 80대를 때려 산수갑산으로 유배하라!"


전교를 들은 전향과 수근비는 눈을 들어 대전 쪽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그것은 사랑하는 님에게 버림받은 데 대한 원망의 눈물이었다.

실상 그들에게 죄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좌승지는 두 후궁의 눈에서 하염없는 눈물이 흐르자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어찌하랴.. 어명인 것을..

"죄인들을 형틀에 묶어라!"


좌승지의 안타까운 심정과는 달리 금위군사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무지막지하게 죄인들을 번쩍 들어다 형틀에 잡아 엎치고 몸을 결박했다.

범강장달같은 사내들이 섬섬약질인 두 여인을 형틀에 우왁스럽게 잡아매는 것을 보는 좌승지의 눈살은 찌뿌려졌으나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장녹수의 감시의 눈길이 궁 안 곳곳에 퍼져 있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남치마가 벗겨지고 하얀 속치마가 들춰지고 고쟁이와 속곳이 몸에서 떼어져 나갔다.

전향과 수근비는 이미 체념한 듯 사내의 손길이 벌거벗은 볼기짝에 와 닿아도 몸을 움찔거릴 뿐 아무 말이 없다.

금위군사들이 속치마로 드러난 엉덩이를 다시 덮고 그 위에 동이 째 물을 붓자 물에 흠뻑 젖은 얇은 속치마가 두 여인의 탄력있고 풍만한 엉덩이에 찰싹 달라붙어 아름다운 몸매를 그대로 드러내 주었다.



금위군사들은 물볼기를 칠 만반의 준비를 끝내고 한 개의 형틀에 두 놈씩 곤장을 들고 달라붙어 서서 좌승지의 명을 기다렸다.

이때에 돌연 나인 하나가 장녹수의 명을 받고 달려와 좌승지에게 말을 전했다.

"마마께서 죄인들의 볼기를 까고 매를 치라고 하시옵니다!"

"뭐라고?"

좌승지는 난감한 표정이 되었다.


어명에는 분명 곤장 80대라고 했다. 여인에게 곤장형을 가할 때는 살인과 간통죄를 제하고는 물볼기를 치는 것이 국법으로 정해져 있건만, 장녹수는 이들의 볼기를 드러내고 곤장을 치라고 한다.

좌승지는 장녹수가 너무나 방자하고 당돌한 계집이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쉬이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아무리 천한 기생의 출신이라고는 하나 모든 권력을 손에 쥐고 있는 실세였다. 좌승지의 목이 걸린 문제였다.

그때까지 모든 것을 체념하고 형틀에 가만히 엎드려 있던 전향과 수근비도 나인의 말을 듣자 다시금 장녹수에 대한 원한의 불길이 타올랐다.

"요악한 계집이 상감의 성총까지 흐리고 이제는 국법까지 제 마음대로 어기려 하는구나. 대감 어명대로.. 나라의 국법대로 시행하시오!"

전향이 형틀에 엎드린 채, 고개를 번쩍 쳐들고 국법대로 하라는 말에 좌승지는 몸을 움찔했지만, 그는 천성이 겁이 많은 자였다.


장녹수의 말을 무시했다가는 필시 자신에게 불똥이 튈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좌승지는 차마 전향과 수근비를 바로 대하지 못하고, 뒤돌아 서서 명을 내린다.

"죄인들의 볼기를 까고 곤장 80대를 쳐라!"


"이럴 수는 없소! 국법대로 하시오!"

전향은 형틀 위에서 몸부림치며 악다구니를 썼고, 수근비는 그저 형틀에 가만히 엎드린 채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전향의 항거에도 불구하고, 명을 받은 금위군사들은 두 후궁의 아랫도리를 벌거벗겨 놓았다.

임금의 총애를 받았던 고귀한 엉덩이가 뭇 사내들 앞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어서 시행해라!"

좌승지가 재촉을 하고 금위군사들이 서둘러 매를 치기 시작했다.





"하나요! 철썩!"


"으윽!"




"둘이요! 철썩!"


"아흑!"




여릴대로 여린 여인들의 볼기 살인지라, 금새 살이 터져 피가 튀었고..

미리 녹수의 사주를 받았던 금위군사들인지라, 살점이 곤장에 묻어 나오며 허연 뼈를 드러낼 만큼 혹독한 매질이 계속되었다. 결국 80대의 곤장형을 다 받은 두 후궁은 형틀 위에 죽은 듯이 축 늘어져 버렸다.
장록수란 한 여인의 질투(嫉妬).. 실로 그 힘은 대단했다!

연산의 사랑을 끔찍이 받았던 전향, 수근비 두 여인을 죽도록 볼기 때려 산수갑산으로 귀양을 보낸 것은 물론, 그의 집안 식솔들까지 엄형정배 시키는 그야말로 두 집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린 놀라운 파괴력이었다.
자고로 여인의 질투만큼 무서운 것이 없다고 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