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최고의 성군이라 불리우는 세종. 




그리고 세종 치세 동안 오랜 기간 대리청정을 하며 국정을 잘 이끌었던 문종.




얼핏봐서는 조선을 잘 이끈 유래없이 평안한 시기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 시기에도 왕실의 치부는 있었다. 


세자 시절의 문종은 세종이 학문연구에 몰두하는 동안 대리청정을 하며 대신 국사를 돌보았다. 오직하면 문종이 단명한

이유가 젊어서 부터 지나치게 과로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을 정도다. 당시 조선에서 세자는 세자 책봉 이후 일찍 부터

세자빈을 들여 왕위에 등극하기 전 이미 자식을 여럿 두는것이 일반적이었다. 


세종과 소헌왕후는 세자에게 맞는 짝을 찾아주려 노력했다. 첫번째로 선택된 세자빈은 부친은 상호군 김오문 딸 휘빈 김씨였다. 




김오문은 전통깊은 안동김씨 가문으로서 안동김씨는 고려의 개국 공신 가문에, 조선의 건국에 동참한 공신 가문이기도 했다.

또 휘빈김씨의 오라비는 세종의 조카사위였고, 고모는 태종의 후궁이었으며, 이모부는 그 유명한 조선의 개국공신인 

이숙번이었다. 


세종과 소헌왕후는 이처럼 왕실관 탄탄한 연을 가진 안동김씨의 휘빈 김씨를 문종의 짝으로 맺어 줌으로서 문종에게 든든한 

정치적 뒷배가 되게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야사에 따르면 휘빈 김씨는 박색(못생김)이었다. 문종은 박색인 그녀를 마음에 들지 않아하며 언제나 소박 놓았고, 

곁에서 시중을 드는 궁녀들을 더욱 가까이 하였다. 이에 상심한 휘빈 김씨는 문종의 마음을 얻기 위해 무당을 찾아갔다.


무당은 문종이 가장 아끼는 궁녀들의 신발의 앞부분을 잘라 불에 태워 그 재를 문종이 마시는 술에 섞어 마시게 하고, 암수 뱀 한쌍이 교미할 때 나오는 분비물을 손수건에 묻혀 지니고 다니면 문종이 휘빈 김씨를 총애하게 될 것이라 말하였다. 


이게 휘빈 김씨는 자신이 부리는 나인들을 시켜 그대로 했으나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도리어 내시부와 감찰부에서 수상함을 눈치체고 이를 세종과 소헌왕후에게 고하니 소헌왕후는 소박을 맞고 있는 휘빈 김씨를 의삼히게 된다. 세자빈에 관련된 내명부의 일이라 세종은 나서지 못하고 내명부의 수장인 중전, 소헌왕후가 나서게 되었다. 이에 소헌왕후는 감찰 상궁에게 명하여 휘빈 김씨 휘하의 궁녀들을 모조리 잡아들이게 하였다. 





소헌왕후는 궁녀들을 친히 국문하였다.


소헌왕후: 너희가 세자빈의 명으로 세자에게 비방을 한 일이 있느냐?


궁녀들: 중전마마! 소녀들은 모르는 일이옵니다!


소헌왕후: 저것들을 장틀에 잡아 메어라!


소헌왕후의 불호령이 떨어지고 덩치 좋은 감찰부 나인들이 휘빈김씨의 상궁 나인들을 장틀에 엎드리게 하고 묶었다. 

왕족, 그것도 세자를 비방했다면 이는 꼼짝없는 역모죄였다. 그리고 역모죄인을 심문할 때에는 신분고하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노둔하여 치도곤을 사용했다. 곧 궁녀들의 맨볼기 위로 감찰부 나인들이 휘두르는 살인적인 치도곤의 비가 우수수 떨어졌다.




건장한 장정도 견디지 못하는 치도곤인지라 궁녀들은 오래 버티지 못했다. 







궁녀들의 비명과 울음 소리가 울려퍼지고 곧 궁녀들은 이실직고 하였다.


궁녀: 세자빈 마마의 명으로 저희들이 세자저하를 비방하였나이다!


궁녀들의 자백이 나오자 감찰부의 수사에 속도가 붙고, 결국 모든게 밝혀졌다. 세자에 대한 비방이라니 본래라면 안동김씨 가문이 

멸문지화 당할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세종과 소헌왕후는 자신들이 임명한 세자빈이었기에 자신들의 잘못 또한 있다고 생각하였던

것인지 휘빈 김씨를 폐서인시키고 그 아비인 김오문을 파직시키는 선에서 매듭을 지었다. 


다른 임금 때였다면 휘빈 김씨의 명으로 일에 가담한 궁녀들은 모조리 처형되는것이 일반적이었겠지만, 인자한 세종과 소헌왕후는

주도적으로 일을 진행한 호초라는 궁녀 하나만 처형했다고 한다.  


휘빈 김씨를 폐하고 세종과 소헌왕후는 새로운 세자빈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소헌왕후는 지난 일의 발단이 휘빈 김씨가 박색하여

문종이 휘빈 김씨를 박대하였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다음 세자빈 선발에서는 무엇보다 미색을 눈여겨 보았다고 한다.


이렇게 선발된 두번째 세자빈이 바로 순빈 봉씨였다. 




하음 봉씨 가문이자 이조참판 봉려의 딸인 순빈 봉씨는 매우 아름다웠으나, 

지나치게 미색만을 보고 뽑은 것인지 성정이 남자 처럼 거칠고 야심이 컸다고 한다. 문종도 처음에는 아름다운 

순빈 봉씨에게 관심을 보였지만, 곧 그녀의 거친 성정에 질려 다시 멀리하게 되었다. 이에 세종이 문종을 불러 꾸짖었다. 


세종: 너는 대군을 생산하여 왕실의 대통을 잇는 것이 세자로서 막중한 책무임을 알지 못하더냐! 어찌하여 계속 세자빈을 멀리

하는 것이냐!


문종: 아바마마, 소자는 봉씨의 성정을 감당할 수 없사옵니다. 봉씨는 투기가 심하고 성정이 칼날 같으니 만약 제가 봉씨를

총해하여 대군을 생산하게 된다면 봉씨의 위세는 옛 한나라의 여태후 보다 더할 것입니다. 


그렇게 문종은 계속해서 봉씨를 멀리하니 그 기간이 무려 7년이나 되었다. 7년이나 계속된 독수공방 외로움에 순빈 봉씨는

끝내 넘지 말아야할 선을 넘게 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