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압)고문은 정말 쓸모없는 짓인가?에 이은 고문 3부작 마지막편


이번 주제는 정보기관에서 사용하는 고문을 제외한 심문기법&고문에 저항하는 훈련임


일단 제목도 그렇고 고문에 저항하는 훈련을 알려줄 것처럼 써두긴 했지만, 정보기관과 정보부대에서 실시하는 훈련은 정식명칭마저도 보안사항이라 적을 수 없다. 명칭부터가 보안에 걸리니 훈련 내용은 말할 것도 없고(당장 707홍보하는 국방부 공식 영상에서도 몇몇 훈련명칭은 블러처리한다)


따라서 본문에 들어간 훈련 명칭은 임의로 지어낸 가칭, 훈련 내용은 국내외에서 출판된 회고록이나 자서전, 다큐, 기사 등을 통해 공개된 자료를 짜집기 했음을 미리 밝히며 양해를 구하고자 함




문학이든 영화든 첩보물을 많이 봐온 장붕이라면 반드시 한번쯤 봤을 법한 장면이 있다.


붙잡힌 스파이나 범죄자가 고문당하는 장면.


(영화 '테이큰' 속 범죄자를 고문하는 전직 CIA정보관)

(영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속 KGB에게 고문 받는 SIS정보관)

저번편에서 다룬 내용을 기억하고 있다면, 고문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고 있을 것임.


회사가 어떠한 정보를 필요로 하는 상황.

모종의 사유로 최대한 빨리 정보를 습득해야만 할 때.


고문의 '신속성'이라는 진가는 바로 이 순간에 발휘됨. 당장 외국 정보기관에서 고문을 은유할 때 특수'정보추출'기법 같은 표현을 사용하는 것만 봐도 짐작할 수 있겠지?


하지만 장붕이들도 가끔 이런 생각을 해봤을 거야


'고문을 견디고 이기는 방법은 없나?'

'고문 말고 다른 수단은 없나?'


결론만 말하자면 있다. 고문에 저항하는 훈련도 있고, 고문을 제외한 정보를 추출하는 다른 기법들도 많음.


조금 불쾌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메이플이나 던파하는 유저들을 비꼴 때 '밥-똥-겜'이라는 말을 쓰곤 하잖아? 정보기관도 똑같음. 정보 빼먹는 게 직업이고 밥줄인 사람들이다 보니 '밥-똥-정보'만 생각한다.


'에이, 설마 그러겠어?'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군에서 오래 복무한 직업군인들을 붙잡고 한번 물어보자. 기무사(現방첩사) 차출/선발된 동기랑 간만에 만나서 밥 먹을 때 그 사람이 주로 어떤 질문을 던졌는지, 그 사람이 자기 부대 얘기를 자세히 한 적이 있는지. 아마 거의 없을걸?


기본적으로 정보 계통 종사자들은 정보수집&보안을 중요시 여김. 1년 혹은 6개월에 걸친 양성기간 때 귀에서 피가 흐를 정도로 듣기도 하고, 실무 가서도 선배들이 강조하거든. 그래서 술자리에 참석하더라도 가급적이면 회사 얘기를 삼가되, 반대로 무언가 원하는 정보가 있거나 앞에서 이루어진 대화내용을 듣고 흥미가 돋았다면 질문을 최대한 많이 던지고 그럼.

(야ㅋㅋㅋ 어떤 똘추가 저번에 비문 갈아서 부대 뒤집어질 뻔함ㅋㅋㅋ -> 너희 부대 정보과장이 ■■■이었지? 어디 출신 몇 기. 그 비문 갈아버린 애가 누구였어?)


그런데 만약 사적인 자리에서 술에 꼴아가지고 '우리 부대가~' '우리 부대장 좆같은 새끼가~'라면서 나불거린다?


감찰 귀에 들어가는 날엔 죽었다고 복창해야지 뭐.


정보기관 감찰부서는 보안규정 위반을 엄격하게 잡아내고(실제로 FBI 감찰부서는 사내 이중간첩도 잡아낸다), 인사불성이 되어 나불거리는 짓=모든 것을 실토하고 배신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게 정보기관이라서 그렇다.


'그런데 갑자기 이 얘기를 꺼낸 이유가 뭐임? 글의 주제인 고문에 저항하는 훈련, 심문과는 하등 상관 없어 보이는 이야기인데.'


혹시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면 앞서 설명한 예시 말고, 그 위에 적어둔 문구를 읽어보자. 거기 뭐라고 적혀있지? '고문을 제외한 정보를 추출하는 기법들'이라고 적혀있지 않음?


알코올을 먹이고 질문을 던지는 형식의 취조는 실제로 정보기관에서 사용되고 있는 기법 중 하나임.


알코올 자체가 정신을 흐트러지게 만드는 약물이기도 하고, 진짜 약을 타도 티가 나지 않거든.


실제 예시를 보자.


사진 속 인물은 Oleg Gordievsky. KGB정보관으로 영국 지부의 Resident(라틴어 '레지덴투라'에서 기원한 용어로 해외 지부의 최선임자를 의미하는 소련 정보기관 용어)를 역임했던 사람임.


고르디옙스키는 소련군이 프라하의 시위를 진압했을 당시 소련 체제에 대한 회의를 품고 영국SIS에 전향했고, 영국 지부장 시절에는 아예 대놓고 SIS 간부가 매일 방문하는 테니스 클럽의 회원권 끊어서 해당 간부에게 KGB 내부 정보를 제공해줬음. 그러니까 KGB는 영국을 위해 일하는 이중첩자한테 영국 지부 정보망을 전부 맡긴 꼴이 된 거지.


문제는 CIA에 짱박힌 KGB이중첩자(이 새끼는 미국인인데 소련으로 전향함ㅋㅋㅋ)가 'KGB 내부에 SIS를 돕는 배신자가 있다'는 걸 인지, 이를 보고 받은 KGB가 고르디옙스키를 의심하면서 인생이 꼬이기 시작함.


소련으로 돌아오라는 연락을 받은 고르디옙스키는 시골 모처에서 KGB수사관의 고강도 조사를 받았는데.


이때 고르디옙스키는 '자백제가 들어간 술'을 마시고 약 5시간 30분 동안 취조를 받게 됨.


아무리 숙청으로 악명 높은 KGB라고 한들 심증만 가지고 레지덴트까지 맡은 간부를 고문할 수는 없었고, 대신 약물을 사용해 자백을 이끌어내려고 무던히 노력했음. 결국은 실패하고 말았지만.


이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정보기관은 고문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충분히 정보를 추출할 수 있음.


위에서 말했듯 정보관은 밥-똥-정보만 생각하는 사람들이고, 정보기관은 100년 가까이 정보 빼는 것만 연구해온 단체라 오히려 못하는 게 이상한 거다(학자마다 다르긴 한데 '현대 정보기관'의 설립은 보통 1차대전 전후로 많이들 봄.)


심문기법은 예시처럼 약물을 동원한 심문부터 '굿캅 배드캅', 사회과학 계열에서 자주 등장하는 '죄수의 딜레마', '프락치', 거짓말 탐지기나 대질심문 비스무리한 것들 등등... 하나하나 언급하기도 힘들 정도로 많음.


여기서 굿캅 배드캅이나 프락치 활용은 전편의 예시로 등장했다. '기술자'인 파딱A가 나쁜 경찰 역할을 맡으면 '간호사' 역할 파딱B가 좋은 경찰을 맡는 식이지. 만약 두 개의 선택지 중 분탕충이 독방에 갇히지 않고 다른 죄수와 같이 생활했다면? 높은 확률로 그 죄수는 정보관이 심어둔 정보원이거나, 정보관 본인일 거야.


이걸 가장 잘 써먹는 새끼들이 바로 북괴다.


북괴 정보수사기관 새끼들은 수용소에 잡아둔 사상범들이 딴 마음 품었는지 확인할 때 프락치를 많이 씀. 납북 당한 피해자가 보위부 조사 받을 때도 어떤 죄수가 '내가 사실 북파공작원인데...'이러면서 접근했는데 그 인간도 정보원이었지. 아니면 보위부 직원이거나.

☆참고로 보위부에서 탈북자 잡는 놈들은 중국에서도 활동하는데, 얘네는 조선족 공안으로 위장해서 탈북자를 직접 심문하기도 함.

(당신이 탈북한 이유가 뭡니까? ▶ '먹고 살 방법이 없어서 탈북했는데 잡힌거다'라고 대답한 사람은 그나마 괜찮음. 문제는 북한 체제를 비판하거나 사상 문제로 탈북한 사람들인데, 심문과정에서 공안인줄 알고 본심을 털어놨다가 북한 끌려가서 죽도록 고문당한 사람들도 있다.)


이러한 기만, 위장도 정보기관의 심문기법임. 당장 저걸 써먹은 놈들이 북한 정보수사기관이잖아?


예산이 딸리는 좆밥새끼들마저 저렇게 하는데, 냉전 시절부터 댇지처럼 예산을 퍼마시던 정보기관들은 어떻겠어?


참고로 전편의 예시에서 등장한 모래시계 화법을 사용하는 심문기법은 CIA가 가장 잘 활용하는 방식임. 정보수집에 쓰라고 직원들한테 각잡고 교육 시키기도 하고, 퇴사한 CIA정보관은 이걸 사업에도 써먹었음.


그만큼 어떤 상황에서든지 정보를 빼낼 때 쓰기 좋은 기술이라는 얘기고, 고문의 목적이 정보추출인 점을 고려하면 CIA의 심문기법은 상당히 발달되어 있다고 볼 수 있겠지.



https://youtu.be/DgU-q384pO4?si=zQtlGmlBWNLpdKok

FBI도 이런 심문기법을 많이 연구하고 개발했는데, 여긴 법 집행기관의 성격이 강해서 CIA처럼 대놓고 누굴 조지고 팰 수 없기 때문임. 위 영상아나 다른 영상들에 등장하는 전직 FBI정보관들이 언급한 심문기법 몇 가지를 적어보자면


1. 따듯한 온수를 조사대상에게 제공.

→ 온도를 통해 '내가 무해한 사람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알려 심리적 장벽을 허무는 라포(Rapport) 형성 과정의 첫 단추.

2. 적대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기.

→ 고문할 것도 아닌데 고함 지르고 책상 내려치면 반감만 산다. 반발심은 곧 비협조적인 태도로 이어진다.

3. 여러 사람이 동일한 취조실에 들어가지 않기.

→ 이건 고문할 때 동일하게 혹은 반대로 적용되는 원칙이다. 여러 사람이 조사대상을 둘러싸면 주의력이 분산되고(즉, 심문자의 의중을 파악하기 힘들어짐. 신경 써야 할 사람이 늘어나니까.) 압박을 받기 때문.


이런 기법은 대한민국 경찰에도 존재하고, 주로 범죄심리학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아서 취조 절차를 마련해둠.


뭐, 피의자가 수사관에게 무언가를 자꾸 요구하면 반드시 단칼에 거절하라는 식으로.


이때 피의자가 수사관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건, 정말 그게 필요해서가 아니라 쓰잘데기 없는 걸 남에게 시켜서 상황을 통제하려는 심리에서 비롯된 행위임. 이건 연쇄살인 같은 강력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들이 수사과정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반응이고, 영화 '추격자'에서도 하정우 배우의 연기로 잘 묘사되고 있음.


실제로 강력범죄자 새끼들이 뻔뻔하게 요구하는 거 보면 가관이다. 물 달라, 화장실 보내달라, 껌 있냐, 담배 달라(수사관도 못 피는데 니는 씨발) 등등등.


참고로 경찰은 붙잡힌 범죄자들이 이딴 요구를 해오면 단칼에 거부하지만, 의외로 방첩기관은 붙잡은 간첩을 유하게 대우하는 경우가 종종 있음. 라포 형성해서 정보를 캐내려는 심보도 있는데 어떻게 보면 포섭할 각을 재는 거지.


원래 학연, 혈연보다 흡연이 더 끈끈한 법 아니겠음? 물론 흡연자가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만.


어쨌든 이런 심문기법들은 대부분 화술 혹은 심리학에 기반을 두고 있음. 특히 화술은 심문뿐만 아니라 협상에서도 자주 활용되지(각 정보기관은 특정 단체와 협상을 주도하는 협상전문가들을 두는데 외국 정보기관도 협상 대상에 포함된다.)


그래서 외국 정보기관과의 협상을 담당하는 전문가들은 외부적으로는 협상가로 활동하지만, 실제로 회사 내에서는 심문담당관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음. 그냥 몇몇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전부 심문담당관이라고 보면 됨. 정확히 말하자면 심문담당관이 협상을 겸직하는 거ㅇㅇ. 외국 회사랑 협상할 일은 그렇게 많지 않은데 누굴 잡아다가 심문할 일은 굉장히 많으니까.


이런 심문기법은 대체로 심리학을 중심으로 연구되며, 정보기관이 공채 지원자 중에서 심리학 전공자를 우선적으로 선발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음.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국방부가 장교들에게 병과(보병/포병/기갑, 함정/정통/병기, 조종/운항관제/방공 etc)를 부여할 때, 장교의 전공에 따라 순위를 부여한다는 걸 생각하면 이해가 될 거임. 참고로 정보 병과는 심리학이 1순위다.

(※ '정보 장교'가 정보부대/방첩부대에서 일한다는 건 아님! 실제 정보 장교들의 임무는 우리 흔히 생각하는 정보기관이랑 거의 상관 없음. 정보부대나 방첩부대에서 일하는 '군 정보관'들이 정보 병과에서 많이 선발되긴 해도, 이건 과거 기준이고 지금은 정보사나 방첩사 모두 전투 병과라면 지원 가능함ㅇㅇ)



☆결론 : 고문 말고도 정보를 추출할 수 있는 방법은 많다. 어떻게 보면 이쪽이 더 효율적인 방식이다.

▶ 한계까지 몰아세우고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가능한 기깔나는 기술자가 아닌 이상 고문은 정보만 얻을 수 있겠지만, 마음을 어루만지는 심문은 다양한 결과물을 도출해낼 수 있음. 법적인 부담도 없거니와 조사대상이 마음의 문을 활짝 열면 정보원으로 굴릴 수도 있거든.


'그래... 고문 말고 이런 방법도 있었구먼. 근데 고문을 피할 수 없는 상황도 있지 않나?'

- 맞는 말임.


정보기관이 고문을 하는 목적은 결국 당장 정보가 필요하기 때문임. 저 새끼를 족쳐서 어떻게든 정보를 실토하게 만들어야 하는 상황. 이건 간단한 예시로 설명해보자.


■ 노파의 초상, 조화를 이루지 못한 활자, 우거진 수풀 속 헐거 벗은 야수로부터 장르소설 채널을 지키는 장챈정보원(파딱)은 최근 이웃 채널의 정보기관인 가챈정보원으로부터 '악질 분탕종자가 아카라이브를 순회하며 전술핵을 뿌리고 있다'는 정보를 제공 받았다. 해당 악질 분탕종자는 이미 수 차례 장르소설 채널을 공격한 전례가 있으며, 현재 모처에서 정보추출을 받고 있는 분탕충과 아는 사이로 확인됐다.

■ 이를 보고 받은 정보소비자(주딱)는 분탕충의 손가락을 다지고 있는 파딱들에게 '조사대상 oo#69740000에게서 악질 분탕종자에 관한 정보를 입수할 것'을 지시했다.

정보소비자의 SRI(특별첩보요구) : 악질 분탕종자의 예상공격 및 방식. 그와 연관된 모든 정보.


빡친 주딱의 지시를 받은 파딱A, B, C는 전술핵이 떨어지기 전까지 어떻게든 정보를 추출해야 한다.


하지만 가챈정보원이 제공한 정보에 따르면 공격은 36시간 내에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즉, 시간이 부족하다.


이렇게 당장 정보가 필요하다면 정보기관은 고문을 선택할 수밖에 없음. 효율성은 몰라도 가장 빠른 수단인 건 맞으니까.


그래서 국방부나 정보기관은 유사시 적에게 포로로 붙잡혀 고문 받는 상황을 가정한 훈련을 진행하고 있음. 그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SERE(Survival, Evasion, Resistance, Escape). 한국식으로 표현하자면 도피 및 탈출, 생환 교육 정도 됨(다만 도피 및 탈출이나 생환 교육 과정에는 고문 관련 내용이 없다. 예전에는 있었는데 사라짐.)


내가 알기로 국내에서 SERE처럼 포로수용소 체험을 하는 부대는 육/해군 특전쪽이 유일하다고 들음. 공군은 모르겠다. 나도 특수전에 있었던 사람한테 들은 내용이라 확실한 건 아니지만, 어쨌든 그런 훈련이 못해도 최근까지 이루어졌던 모양이더라고.


반면 정보기관에서 하는 훈련은 군에서 교육하는 것과 조금 결이 다름. 큰 틀은 동일한데 심문/고문에 조금 더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거짓말 탐지기를 우회하는 훈련이라든가(옛날에 군에서 교육했음. 지금은 몰?루)


'고문에 저항하는 훈련이라면 진짜 고문도 받나?'

- 당연하지.


'지랄도 풍년이다. 개소리도 정도껏 해야지 어떤 미친놈이 고문을 진짜로


시발 이게 뭐고?'

위 영상들은 예전에 올렸던 BBC영상임. 관계자들의 도움을 받아서 BBC 시사다큐팀이 직접 고문을 체험하고 취재한 내용인데 영국 애들이 생각보다 이런 걸 자주 찍음(SERE 포로수용소 과정도 기자가 체험하거나 군 관계자들이 직접 나와서 보여주는 식. 보안성 검토 얻따 팔아먹었냐;;;)


정보기관의 훈련도 위 영상의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음. 영상 속 복면단처럼 전문기술자가 나와서 교육생을 고문하면, 훈육관은 이를 지켜보며 평가하는 식이지. 아니면 훈육관이 직접 심문할 때도 있고. 물론 교육생이 북에서 내려온 간첩도 아니니 심하게 다루지는 않음.


여기서 말하는 '심하다'의 뜻은 아예 병신 만들 작정하고 어딜 자르거나 조지는 고강도 고문을 의미하는데, 저번 정보글에서 예시로 다룬 손가락 자르기 혹시 기억함?


그거 실제로 냉전 때 KGB수사관들이 동유럽 출장 다니면서 서방 정보관들 상대로 하던 고문이었다.

(명목상 동구권은 소련과 별개의 나라지만 KGB는 동유럽 정보기관들을 실질적으로 통제하는 경우가 많았다. 예산도 주고, 불법적인 작전에 대한 협조도 얻어내고, 언급한 것처럼 동유럽 애들이 잡아둔 스파이를 자기들이 직접 심문하기도 했음.)


하지만 이건 고문저항'훈련'이라 거기까진 가지 않음. 훈련의 목적은 교육인데 진심으로 고문해서 장애를 얻으면 그건 훈련이 아니자나...


화생방 교육 때 CS말고 진짜 생화학무기를 터트리지 않는 거랑 똑같은 이유임.


고문저항훈련의 목적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됨.


1. 지원자의 자질 파악.

- 정보기관은 줄 세우기를 좋아하는 집단임. 국정원이 국가정보대학원에서 양성 받는 신입 정보요원들을 모아두고 매주마다 사격평가를 돌려서 줄 세우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임관 직후 초급반/초군반 성적이 간부의 남은 군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양성시절에 이루어지는 모든 평가, 측정, 기록은 정보관의 남은 회사 생활을 좌지우지하는 요소가 됨. 당연히 고문을 얼마나 버티느냐도 중요하지.

★ 단, 고문저항훈련은 단순히 교육생이 고문을 버티느냐 못 버티느냐를 두고 평가하지 않음. 평가방식이 조금 복잡한데 이건 뒤에서 자세히 다룸.


2. 나중에 '하게 될'지도 모르는 고문을 미리 체험.

- 모든 정보기관은 공식적으로 고문을 부인하지만, 그게 구라라는 건 나도 알고 장붕이도 아는 사실이다. 좋든 싫든 정보관은 언제라도 방첩기관에 체포되어 고문을 받을 수 있고. 반대로 누군가를 족쳐야 하는 입장이 될 수도 있다.


이때 고문저항훈련에서 얻은 경험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함. 고기도 씹어본 놈이 맛을 안다고 고문도 당해본 사람이 더 잘 알지 않겠냐? 물론 경험과 기술은 다른 영역이긴 한데, 훈련에서 얻은 경험이 아주 도움이 되지 않는 건 아님.


나에게 가장 고통스러웠던 고문은, 남에게 가장 큰 고통을 줄 수 있는 고문이 되니까.


3. 정보기관 내부 연구.

- 고문에 대한 연구는 냉전 시절부터 쭉 이어져왔음. 어떤 고문이 효과적인가? 인간이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은 무엇인가? 등등. 정보기관은 붙잡은 간첩의 입을 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여기서 얻은 경험과 노하우는 체계적으로 정립되어 심문기법으로 편입됐음.


하지만 모든 정보기관이 무제한적인 고문을 할 수 있느냐?라고 묻는다면 글쎄다. CIA, SVR, MSS, SIS, DGSE 같은 선진국 정보기관들이야 경험도 풍부하고 테러와의 전쟁을 거치며 데이터가 많이 쌓였지만, 다른 정보기관들이 얘네처럼 테러리스트 수백명을 잡아다가 고문하고 그럴 수 없거든(아니면 그럴 필요가 없거나)


따라서 정보기관은 매년 들어오는 교육생들을 대상으로 고문저항훈련을 진행하면서 쌓이는 데이터를 갖고 연구함. 연령 다르지, 성별 다르지, 학력도 다르고, 직업도 다르고, 건강이나 신체조건은 말할 것도 없고... 다양한 배경을 지닌 교육생들이 들어와서 훈련을 받으면 그만큼 다양한 데이터가 쌓이는 셈임.


국방부가 KCTC 훈련 결과를 모아서 전투승리요인을 분석하거나, 겜챈에 정보글 올리는 애들이 택틱 하나를 짜기 위해 리트 오지게 박아가며 연구하는 거랑 비슷하다고 보면 이해가 빠르다. 정보기관은 자체 연구를 활발하게 하는 곳이라 교육생들의 데이터를 모아서 분석해도 딱히 이상하지 않음.


참고로 작년이었나? 용산 전쟁기념관에 정보사령부가 자기들 총기를 쭉 전시한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쓰지도 않는 2차대전 시절 권총과 기관총, 군대에서 볼 일도 없는 데린저 같은 호신용 권총, 이라크에서 굴러다니던 타리크 권총을 정보사가 굳이 수집한 이유가 뭐겠음?


그거 사다가 도입할 것도 아니고. 정보관들은 죄다 글록, 시그, 콜트에서 출시한 서브컴팩트 권총이나 암시장에서 구하기 쉬운 PPK, TT-30, PM을 쓰는데. 전부 연구목적이라고 보면 됨ㅇㅇ



요약하자면, 고문저항훈련은 교육생의 자질 파악/선행학습(물리)/기관 내 연구 등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실시되고 있다는 거임.


이 고문저항훈련에는 딱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는데.


그건 바로 교육생이 절대 버티지 못할 걸 상정한다는 것이다.


'못 버틸 걸 가정하고 훈련한다고? 그럼 의미가 있나...'

- 의미는 있음. 교육생이 포기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상황을 대하는 태도/개선의 여지가 있는 문제점을 파악할 수 있으니까. 무엇보다 강도가 덜 할지라도 고문/심문을 극복하는 노하우를 습득할 수도 있고.


물론 그걸 다 떠나서 훈련 자체가 버틸 수 없는 구조이긴 함ㅇㅇ

방첩기관은 정보관이 병신이 되든 말든 관심 없고 오로지 정보를 얻는데만 집중하니까. 어차피 외국인이고, 간첩이잖아?


막말로 방첩기관 입장에서는 체포하다 일이 꼬이면 간첩을 쏴 죽여도 그만임.


(위 - 2023년 폴란드 정보기관 ABW가 자국 내에서 활동하는 러시아 정보요원들을 체포하는 장면. 아래 - 영국 공항에서 러시아 정보요원으로 의심되는 인물이 입국하자 출동한 런던광역경찰과 MI5. 외국 방첩기관은 간첩 체포 작전에 중무장한 병력을 보내기도 한다.)

그래서 방첩기관의 고문을 버티지 못하고 순직하거나, 중간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실토하는 사례가 굉장히 많았음. 수사관은 간첩을 사정 없이 족쳐도 문제될 게 전혀 없는 입장이니까.


한쪽 안구를 파열시키고 '평생 장님으로 살래? 아니면 순순히 불고 여기서 나갈래?' 따위의 선택지를 강요받았을 때 장님으로 살겠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


물론 정보기관은 정보를 실토하는 행위=배신이나 다를 바 없다고 강조하고, 정보관들 스스로도 수 틀리면 자살할 각오를 하지만. 만약 자살에 실패해서 붙잡혔는데 방첩기관이 가족을 가지고 협박하면?


실제로 모 정보관은 제3국에서 활동하던 방첩기관 직원들에 의해 OO으로 납치되어 거진 1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고문을 받았음.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는데 가족을 납치해오겠다는 협박에 결국 포기했고, 전향했음(아마 기억으로는 이때 자녀를 찍은 사진을 들이밀었나 그럴 거임. 정확하지는 않다.)


'그래도 이 악물고 어떻게든 버티면 구하러 오지 않을까?'

- 포로교환은 사안에 따라 다르지만 못해도 열흘, 길면 수 개월이 걸릴 수도 있다.


정보기관도 직원이 외국에 붙잡혀있는 걸 원치 않고, 스파이를 붙잡은 국가도 자기네 정보요원들이 외국에서 체포된 적이 있다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음.


지금 당장은 갑과 을이 명확한 상황이지만 방첩기관이 그랬던 것처럼 상대방은 외국 간첩을 납치하거나 체포할 수 있고, 갑을관계는 역전될 수도 있음. 그래서 어지간하면 포로협상이 들어왔을 때 응하는 편임.


(2000년대 이후 가장 유명한 정보기관 간 포로교환 장면. 미국은 메드베데프 러시아 연방 대통령이 미국 순방을 마치고 출국한 직후, 미리 파악해둔 러시아 정보관 십여명을 체포해 포로교환을 요청했고 러시아 정보기관은 몇년전에 체포한 이중첩자, 민간인 등을 석방해 미국으로 보내는 조건으로 응했다.)

위 사진처럼 정보기관장끼리 쇼부쳐서 열흘만에 포로교환을 성사시킨 사례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협상은 이런저런 문제로 질질 늘어지기 일쑤임.


그래서 교육생이 버티지 못할 걸 가정할 수밖에 없는 거지. 고문저항훈련은 훈련이지만, 실전은 진짜니까.


그리고 애초에 교육생이 고문을 버티는 것도 신기한 일인 게, 아무리 공채를 통과했다지만 교육생은 불과 몇 개월 전까지 민간인이었잖아? 대학 졸업하고 국정원 학원 다니던 학생, 기업에서 일하다가 지원해본 회사원 등등. 이런 사람들이



도란스로 전기고문.

- 내 기억이 맞다면 XXmA까지는 근육경련 증상만 일어난다. 그걸 넘어가면 심장에 치명적인 무리가 오기 시작하고, 조금 더 넘어가면 중추신경이 녹아서(전류는 신체를 통과할 때 혈관을 따라서 한바퀴 도는 특성이 있음. 그러니까 국토대장정마냥 온 몸 구석구석을 조진다는 뜻) 언어장애, 마비 같은 장애를 유발함. → 하지만 기준점을 넘지 않으면 후유증이 남지 않도록 잘 조절할 수 있음. 그래서 예전에는 '딸딸이'라고 부르는 전화기로 훈련했다.


손톱 뽑기.

- 손톱을 뽑는다는 말도 있고 손톱 밑에 살을 찌른다는 얘기도 있던데 확실하진 않지만 손톱 가지고 고문하는 훈련이 과거에 있었다. 참고로 이거 대한민국 얘기야.


좆만한 상자에 강제로 쑤셔 넣어져서 버티기.

- BBC 영상에서도 나온 고문. Hot Box, Sweat Box라고 부르는데 이거 한번 당하면 정신이 쏙 빠짐ㄹㅇ. 비유하자면 여름철 땡볕이 내리쬐는 주차장에 방치된 차량에서 좌석 사이에 몸을 쑤셔넣고 버티는 느낌? 조금만 있어도 호흡곤란 오면서 정신이 희미해진다.


물고문.

- 전통적인 국밥픽인데 효과가 상당히 좋음. 무슨 느낌이냐면 수영장에서 물이 코로 들어갔을 때 느낌 알지? 그게 쉬지 않고 이어진다보면 됨. 숨이 쉬어지지 않는 건 둘째치고, 몸을 딱 뒤집으면 비강이 시큰시큰거리는데 뜨듯한 물이 쭉 떨어지면서 이게 뇌수가 흐르는 건지 생수가 빠져나가는 건지 모르겠더라.


탈구.

- 흔히 말하는 관절빼기. 옛날에 대공경찰들이 하던건데 관절을 빼고, 해당 부위를 잡아서 천천히 늘리면 한 1-2cm 가량 신체가 늘어나는 기적을 볼 수 있다. 탈골된 관절과 연관 없는 신체부위는 움직일 수 있지만 관절과 연결된 부위는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팔꿈치가 빠지면 손가락은 움직이는데 팔을 접지는 못함) 시각적으로 몸이 망가졌다는 걸 보여줄 수 있음. 당연히 무섭겠지 내 몸이 말을 듣지 않는데.



이런 걸 끝까지 버텨내면 ㄹㅇ웹소설 주인공급으로 심지 굳은 사람이거나 다른 정보기관에서 공채로 넘어온 사람일거임.


바꿔 말하자면 그정도 수준이 아닌 이상 버티는 게 불가능하다는 말도 되고.


그래서 대다수의 교육생은 고문을 극복할 수 없는 것임.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훈련이고, 훈육관들은 수사관이 아니라 교육자이기 때문에, 되도록 교육생이 견딜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는 편임. 문제점이 보이면 바로 피드백을 해주기도 하고.


교육생은 고문 당하는 와중에도 수사관이 던지는 핵심질문(방첩기관이 반드시 알아내고 싶어하는 정보)을 파악하는 연습을 하거나, 나중에 수사관이 됐을 때 조사대상을 흔들 수 있는 화법을 직접 체험해보거나, 고문을 최대한 오래 견디면서 동료들이 탈출할 시간까지 혹은 포로교환이 성사될 때까지 버티는 방법들 등등을 배울 수 있지.


앞서 언급한 부정적인 요소와 달리 나름대로 긍정적인 요소가 많기 때문에, 고문저항훈련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정보기관에서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거임.


애초에 쓸모 없는 짓이었으면 진작에 도태돼서 사라졌겠지만.



내용도 길어지고 조금 중구난방으로 쓰긴 했는데 그래도 궁금증을 해소하는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네


13,000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녁 먹으러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