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글 모음


메뉴를 보던 손님이 메뉴판을 덮고 말했다. 


" 여기 있습니다. "


주인장이 내놓은 것은 물 한잔이었다.


" 구천원입니다. "


뭐? 손님은 아까 봤던 메뉴판의 가격이 떠올랐다.

지금 마신 물의 가격이 김치찌개와 같았다. 


" 지금 장난하나? 메뉴판에도 없는 이런 엉터리 메뉴가 구천원이라니? "

" 손님께서 메뉴판에도 없는 메뉴를 요구하시길레 , 저도 방금 만들었습니다. "



이런 미친, 이이제이란 말인가? 

손님은 자기가 분명 약간 이상한 주문을 한것은 인정하면서도, 


그 의도가 주인장에게 많은 이윤을 남겨주기 위한 호의였기에 이런 처우는 상당히 억울하고 모독적이라서 속이 끓어 올랐다. 호의, 즉 선의에서 비롯했던 일이란 말이다...!


하지만 차마 이를 대놓고 드러낼 성격이 아니었던 그는 속으로 분을 간신히 삼키며 점잖게 말했다


" 자네는 악인이군 "

" 죄인이지요. 하지만 어르신은 선인이지않으십니까? 비록 몇백 원의 호의는 배풀 순 있지만 9천원의 호의는 배풀지 못할만큼 작은 선인이시지만요. 그런 분에게 어울리는 메뉴라고 생각합니다. "


하지만 곧바로 청산유수처럼 하지만 논리정연히 날아오는 반격에 분을 삭이고 있었다는 사실도 잊은 채로 손님은 그저 멍하니 주인장을 바라봐야 했다. 


어느새 주인장에 손에는 김이 새나오는 검은 뚝배기가 들려있었고, 그것을 손님이 앉은 상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 이 김치찌개는 서비스입니다. 원래는 9천원이지만, 호의를 배풀어드리죠. 아, 그리고 호의는 감사합니다만. "


남이 바라지 않았던 호의를 선의로 포장하여 자신을 선인이라고 생각하는 가면놀이는 그만두십시오.


이어서 얉트막한 미소를 짓던 청년, 아니 주인장의 말이 이어졌다.


" 어디까지나, 어르신이 더 큰 선인이 되고싶으시다면요. "


어르신은 이미 선인이시니까요. 주인장이 떠나갔다.

남아있는 것은 어르신과 김치찌개. 우두커니 김치찌개를 바라보던 노인장은 새삼 다르게 보이는  김치찌개를 멍하니 보며 중얼거렸다



" 그렇군 "











오늘 점심은 판모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