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고?”
“말 그대로야. 이미 절차는 마쳤으니까. 내일 바로 떠날 예정이야.”
옅게 빛나는 검은 머리의 사내가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그다지 밝은 표정은 아니었지만, 또 나쁜 얼굴은 더더욱 아니었다.
당연하지만, 그는 모든 함선 소녀들의 존경과 애정을 우러러 받는 존재, 지휘관이었다.
“편지로 남길까 했지만, 그래도 사람 얼굴 보고 말하는 게 도리라 생각해 특별히 찾아왔어. 그래도 너는 나랑 가장 친했으니까.”
과거형으로 서술하는 까닭은, 이젠 아니기 때문이다.
“응. 그동안 고마웠어 울리히.”
희미한 미소를 그린 사내가 덤덤한 목소리로 말한다. 일말의 미련도 없는 그 목소리는 도리어 후련함마저 느껴졌기에.
“……아.”
그녀에게 절망을 선사하기 더없이 충분했다.
팍, 하고, 무언가 박살 나는 소리가 들린다. 당연히 지휘관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오로지 울리히에게만, 마음이 깨져가기 시작한 그녀에게만.
파르르 떨리는 입술, 미친 듯이 흔들리는 동공, 마찬가지로 울리히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이었다. 지휘관은 지극히 담담했고, 울리히는 떨고 있었다.
빛이 사라진 눈은 토악질 나올 정도로 검었다. 심해에 비유하고 싶다.
허나 지휘관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알면서도 무시하려 하는 모습이었다. 눈을 감고 있는 것이 그 증거였다.
미친 듯한 갈증이 느껴진다. 울리히는 그렇게 생각했다. 타는 듯한 느낌이 들어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열, 열이 났다. 지독히도 고열이었다. 쿵쿵, 가슴도 울리기 시작했다.
흐트러지는 마음에 그를 시선에 담는다. 애써 고개를 돌리는 모습.
“거짓말……이지?”
설마, 장난이겠지, 그래. 조금 짓궂은 장난일 거야. 이번에는 화내야지, 응. 꼭 그래야지.
상기하며, 울리히는 어떻게든 떨리는 마음을 다잡았다.
제발, 거짓말이어야 해. 거짓말일 거야. 거짓말이 아니면 안 돼.
쥐어짜 낸 목소리는 초라하기 짝이 없었지만, 아직까지도 그녀는 희망을 놓지 않은 상태였다. 그렇게 믿고 있었다.
“……미안.”
그의 손으로 직접 끊어버렸다.
툭, 실이 끊긴 마리오네트 마냥 초라하게, 울리히는 그대로 고개를 숙였다. 지휘관의 미간이 살짝 좁혀지는 순간이었다.
“할 말은 여기까지야. 그동안 즐거웠고, 미안해.”
그리 말하며, 지휘관은 그대로 몸을 일으켰다. 동작이 약간 굼뜨긴 했다만, 그렇다고 망설이는 것은 아니었다.
이어, 지휘관은 그대로 문고리에 손을 올렸다. 저 문을 여는 순간, 지휘관은 더 이상 이 모항의 지휘관이, 울리히의 지휘관이 아니게 된다.
-쿵!
“……아.”
그녀가 두고 볼 리 없었다.
갑작스러운 충격에 지휘관은 자신의 머리로 손을 옮겼다. 따듯한 무언가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선혈이었다.
털썩, 쓰러진다. 흐려지는 의식에 눈동자를 굴려 자초지종을 확인한다.
“이, 이건, 네가 잘못한 거니까……그, 그래. 나는 아무 잘못 없어, 이건……이건 전부…….”
이것이 그의 마지막 기억, 천천히 눈을 감은 그에게 더 이상의 의식은 없었다.
“네가, 네가 잘못한 거니까…….”
형용할 수 없는 표정으로 지휘관을 끌어 안으며 읊조리는 울리히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는 뜻이다.
삭제된지 거진 1년이 넘은 글이 언급 됐다는 게 놀라워서 딴 데 쓴 글 중에 얀데레 느낌 나는 거 몇 개만 들고 와봤읍니다. 구럼 2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