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청한 윗사람들이 내린 지시 맞지?"


"그렇슴다."



공문을 보고 나는 오랜만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경험을 했다.

내 약점을 스스로 찾아서 윗선에게 알리라는 내용의, 어이없는 그 요지는 둘째치고, 현실조작이 할 수 없는 걸 찾으라니.



"'현실조정자' 라는 말의 정의를 모르는건 아니지?"


"낸들 알겠슴까? 원래 이쪽 바닥은 까라면 까는검다."



한숨을 쉬는 소장과, 다시 정신을 붙잡은 나. 

둘은 결은 다르겠지만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봐도 되겠지.

솔직히 이 내용을 직접 보기 전엔, 뭐랄까, 머릿속 그 한 구석에 이런 생각의 아주 자그마한 편린조차 담아두고 있지 않았던 주제였는데, 문구를 보고 나니 정말로 궁금해지긴 했다.

내가 불가능한게 뭘까?



"민트초코를 맛있게 만드는거?"


"그건 호불호의 영역이 아닐까 싶슴다."


"그래. 그럼 '내 입맛에' 를 덧붙여야지."


"아, 확실히. 세라 씨 스스로 바꿔봐야 결국 맛없을거라고 느끼면 그게 현실이 되니까 말임다."



생각해보면 나도, 엄밀히 따지면, 불가능한 영역이 존재한다.

흔히들 말하는 열역학 법칙과 같은 이 우주의 물리에 대해서, 국소적인 범위 내에선 분명 그걸 거스를 수는 있다.

그러나 그 물리법칙의 변화를 이 우주 자체에 영구적으로 적용할 수는 없다.

적어도 현실조작을 가하는 나의 인지가, 일단 이 우주보다 커져야 시도라도 해볼까 말까- 이긴 한데.

윗선에서 말하는 '약점'이란, 필시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아니겠지.



"멍청한 윗대가리들한테 지성이라는걸 심는 건 나도 어려워."


"푸핫, 맞는 말임다. 이능관리부가 괜히 불가침의 영역으로 인식되는게 아닌데 말임다."



...인식과 범위, 라.

머릿속에 불현듯 스치는 구절 덕분에 나는 스스로도 모르게 입으로 중얼거렸다.



"그런건 불가능할지도."


"예?"


"정보가 없는 것에 대한 조작."


"...아, 확실히. 세라 씨는 위험한 행위는 안 하려고 하시니까 말임다."



정보가 거의 없는 것을 건드리는 건 정말로 위험한 행위다.

예를들어, 이 자리에 그대로 서있는채로 가나에 있는 어떤 아이를 부자로 만들어주려고 현실을 건드린다면, 그 반동으로 눈 앞의 소장이 갑자기 여자가 될수도, 염소가 될수도, 혹은 녹아내리는 무언가가 될수도 있다.



"이것도 일단 적어놓고."


"음... 그런데 그거 빼면 세라 씨는 약점이 없지 않슴까?"


"주시아 주무관은 어때?"



주시아 주무관.

말 그대로 '평범해지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만약에 그녀와 내가 싸운다면 말 그대로 칼로 물 베는 꼴이 되니.



"세라 씨가 주시아 주무관을 좋아하시는 건 암다."


"그거 말고."


"...아니었슴까? '사랑하는 사람이 약점' 같은 클리셰를 말하는줄 알았지 말임다."



소장은 아무래도 다른 뜻으로 내 말을 받아들인듯 하지만.

주시아 주무관이 약점, 이라.

애초에 그녀를 건드릴 간 큰 인간이 있는지 모르겠네.

그녀가, 누군가에게...


쿠구구구-



"어어, 진정하십, 사무실 다 무너짐다, 세라 씨!"


"...아, 미안. 감정 조절이 안 돼서."



정신을 차려보니, 책장에서 책들이 죄다 쏟아져나왔다.

...아무래도, 소장의 말대로 그녀가 내 약점이 맞는 듯 하다.

이건 적지 않는 게 좋겠다.

내가 아무리 날고 긴다고 해도, 감정이 거세된 냉혈한 사람은 아닌가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