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일본과 불가침 조약을 맺었다. 얼마 후 루거우차오 사건이 일어나자 일본은 불가침 조약이 없는 중공을 공격하였다.

모든 군벌들은 장제스와 손을 잡았지만 적대적인 중공은 역시 혼자라서 그런가 다구리를 맞았다.

중공이라는 공공의 적이 생겼기에 중국은 일본의 세력을 들어가 함께 중공을 공격했다.


중공을 성공적으로 처리했지만 중-일 동맹은 영원하지 않았다.

중-일 동맹이라는 거대한 동맹이지만. 양측 모두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있는데.


영토 문제였다. 만주와 칭다오, 홍콩, 광저우만.

만주는 원래부터 큰 문제였지만 칭다오,홍콩,광저우만은 유럽의 열강이 외계인의 침략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을 틈타 침공하였다.


그리고 한가지 더

같은 세력이지만 여전히 일본은 중국을 공격할 생각이 있었다.


그들이 공격하기 전에 손을 잡아준 군벌들을 통합 시키고

국가를 산업화를 해서 국력을 키웠다.


그렇게 꾸준히 한 노력은

1941년 4월 말이 될때 쯤

일본은 망명을 떠난 서양 열강들의 식민지를 손에 넣을려고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와 네덜란드 식민지등을 공격하고, 인도에서는 

파시즘 성향을 가진 인도가 점점 뜨고 있다.


얼마 후 당연히 인도는 일본과 손을 잡아

인도 - 중국 - 일본이라는 대규모 대동아 세력이 만들어졌다.


일본은 미국을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미국령 필리핀을 침공하여 미국을 전쟁으로 끌어들였다.


한편 인도는 파키스탄,미얀마를 합병하기 위해 공격을 해버리는 바람에

연합국 회원이 늘어났다.


발빠른 연합국은 그들을 세력에 초대하고 발판을 마련했다.



마침 "기회가 찾아왔다"라는 소식과 동시에 중국군은 대동아공영권을 상대 할만한 병력이 모아졌고


군벌이 통합이 되었고 군비 증강에 걸림돌이 되던 "9개 조약"마저 해결된 상태였다.





"때가 되었다."


연합에 바로 가입하고 즉시 선전포고하여 공격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국경엔 일본군이 배치가 안되었고


아랫쪽 전선도 쉽게 밀수 있었다.


사실상 고속도로가 되어버린 만주를 통과하며 부산으로 한반도로 진격할때 쯤


미친련


그래도


중국에게 털린 일본은 한국,타이완을 해방하고 

김용하를 볼수 있었다.


 

인도 아랫쪽 지역은 상륙작전을 통해 연합국이 진입하였고

약해진 일본은 일본 열도를 영국에게 상륙당하여 함락 당했다.




완쑤이! 아시아가 평화가 찾아왔다.

중국의 안정기가 찾아오자 훈정이 끝나고, 

다시 공식적으로 민주주의 중화민국은 연합국의 회원으로 들어갈수 있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유럽의 망명 정부가 집에 못간 상태에 련이 미국에게 선전포고하는 대시련이 찾아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