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글 모음


임시 회장 Z는 낡은 연단 위를 올라서 의사당, 정확히는 의사당으로 쓰이던 폐건물 내부를 바라보았다. 한때 의사당을 가득채웠던 수백 명의 사람들 대신 백명도 안 되는 인원이 반파된 의사당을 겨우 채웠다. 천장에 난 큰 구멍을 거쳐 미약한 햇빛이 들어왔다. 정오에 가까운 시간이라 원래는 더 강하게 들어와야 했지만 날씨가 흐린 탓이였다.



Z는 그 모습들이 높은 곳에서 모두 보였다. Z는 우울감이 느껴졌지만 날씨탓이라 생각하고 애써 느끼지 않으려 했다. 





"회의를 시작하기 전에, 이미 아시는 분들도 있으시겠지만 좋은 소식을 공식적으로 전해드리려 합니다."





오늘은 그녀에게, 재단 모두에게 축일이였다.





"재건의 손 잔당의 수장인 포겟미낫이 사흘 전 타임키퍼 소대에 의해 사살됐습니다. 따라서 재건의 손은 완전히 와해됐습니다. 오랫동안 평화를 위해 싸워왔던 성 파블로프 재단이 마침내 승리한 것입니다."





잠깐의 정적 이후 좌중이 웅성거리는 소리 들였고, 이내 박수소리로 바뀌기 시작했다.박수소리는 커지다 의사당의 빈자리를 가득 채우는 수준이 되었다. 모두 기쁨의 미소와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Z는 무표정한 얼굴이였다. 침체된 분위기는 사라지고 밝은 분위기가 맴돌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기쁠 수 없었다. 아마 연설의 다음 문장때문이였을 거다. 박수소리가 잦아들자 Z는 다시 입을 열었다.





"정말...정말 많은 희생이 있었습니다."





Z를 계속 우울하게 했던 문장은 들떠있던 의사당의 분위기도 다시 우울하게 만들었다.





"마크,버나드,카츠,그리고 콘스탄틴 회장님. 바로 떠오른 사람들은 이 정도입니다. 저와 가까웠던 자들이죠. 물론 이 사람들말고도 더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별반 다르지 않으시겁니다. 폭풍우로 역행하는 시간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재단을 위해, 인류와 마도학자 모두를 위해 죽어가고, 사라져갔습니다." 이 말을 끝으로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거의 모든 인원들이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몇 달전, 갑작스런 재건의 손의 대규모 기습으로 성 파블로프 재단은 큰 타격을 입었다. 사실 큰 타격이라는 말도 당시 상황을 표현하는데 적합하지 않다. 괘멸이라는 말이 더 적합했다. 





"제노 군사 아카데미 그리고 라플라스 연구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쪽도 많은 분들이 희생하셨죠."





교장과 소장을 포함한 제노 군사 아카데미와 라플라스 연구소,그리고 재단의 고위 인원들이 한 때 모여 중요한 회의를 하던 시간에 불운하게도 재건의 손의 대규모 공격이 시작됐다. 아니 그들은 그때를 노렸던 것이다. 어디서 정보가 유출됐는지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어차피 지금은 의미없다. 어째됐든 재건은 그들의 적 수뇌부들이 모두 모였을 때를 알고 공격했다. 





"우리는... 재단은 재건의 손을 너무 앝보았었습니다."





상황이 악화되자, 살아남은 인원들은 재단 기지 밖으로 도주했다. 아마 최선의 결정이였을 것이다. 결론적으론 최악의 결정이 돼버렸지만 말이다. 





"몇달 전 대규모 공격 때, 재건의 손이 노렸던 건 우리의 피가 아니였습니다. 우리의 공포였죠. 그들은 우리가 공포에 잠식되어 자멸하길 유도했습니다."





절묘하게, 아니 정확하게 폭풍우가 발생했다. 이또한 재건의 완벽한 노림수이자 계획이였다. 재건은 매시대마다, 인위적으로 원할 때마다 폭풍우를 발생시키려 했다. 몇 번은 재단이 저지했지만 나머지는 아니였다. 불행히도 몇 달전의 재단은 폭풍우 저지시키지 못했다. 재단 기지 밖, 폭풍우 면역 구역밖에 있던 모든 것들이 수많은 시대처럼 사라졌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날 때마다 소름이 끼칩니다..."





다시 짧으면서도 긴 정적이 흘렸다. 분위기는 연설을 시작할 때보다 어두워졌다. 





"하지만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재단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위기를 기회로 바꿨습니다. 그들도 우리를 너무 과소평가했죠. 그것이 그들의 패착이였습니다. 희생 속에서, 희생을 통해 우리는 항상 발전했습니다. 가장 먼저..."





Z는 상투적이고 수사적인 어구들과 함께 그 희생 속에 재단이 얻은 것들을 늘어놓았다. 썩 내키진 않았지만 승리의 연설인 만큼 안 넣을 수가 없었다. 대부분 정말 희생을 통해 얻은 건지, 그것이 승리의 비결인지 의문스러웠던 것들이였지만,  지금은 재단의 이상과 방식에 의문을 제기할 수 없는 자리에 있었다. 그녀가 의문을 가질 수 있고, 하고 있는 것은 오직 하나뿐이였다. Z는 아직도 몇달 전, 대공격때 어떻게 승리할 수 있었는지를 다 알지 못했다.





20집이 밀린 상황에서 역전할 수 있는가?



아무리 최고 수준의 바둑 기사들이라도 불가능이라고 답할 것이고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이변은 언제나 존재한다. 적어도 2차원의 격자 위에서보단 3차원에서 더 많이,더 자주, 더 크게 존재한다. 













"버틴, 그거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아르키나를 제거해 재건의 손을 와해시킨다. 


참 간단한 방법이였다. 그녀가 없었다면 그녀의 마도술과 통솔력을 기반으로 한 재건의 손도 와해됐을 것이고 그럼 폭풍우가 가속화될 일도 없었을 것이다. 폭풍우를 연구할 시간과 예산이 늘었을 것이고, 갑작스런 폭풍우로 인한 인력손실도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폭풍우의 해결책을 찾았을 것이다. 그러나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방법이였다.


재단은 수십 차례 제거 계획을 오랜 시간 공들려 세웠다. 그리고 모두 실패했다. 당연한 결과였다. 참수작전은 쉽지 않았다.





"타임키퍼! 그건 너무 위험해요. 게다가 재건은 타임키퍼도 노리고 있다구요!"



"하지만 그것말고는 방법이 없어. 아무리 위험하고 성공확률이 희박하더라도 아무것도 안하는 것보단 나아."






 재단이 세운 마지막 제거 계획은 정말 무모한 계획이였다. 충분한 인력도, 장비도 없이 적의 수장과 맞서겠다니? 





"제정신 아닌 소리긴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을 타파할 방법은 그거 말곤 방법이 없어보이긴 하네."



"좋아! 난 찬성이야! 반드시 애플에 복수를 하고 말겠어!"



"타임키퍼가 정 그러시겠다면... 저도 따르겠어요."





하지만 마지막 '계획'은 성공했다. 타임키퍼와 소대원 몇 명이 몇 분간 논쟁해 얻은 결론을 계획으로 부를 수 있다면 말이다. 





"좋아 시작하자. 먼저 소네트는..."













Z가 아는 건 그 정도였다. 버틴은 아르키나를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 지도자이자 힘의 원천을 잃은 재건의 손은 도망치듯 재단 기지에서 후퇴했고, 어마어마한 인적, 물적 자원 손실과 함께 재단은 괘멸 위기에서 벗어났다. 재단은 임시 회장 Z를 필두로 빠르게 재정비되었고, 다시 재건의 손과 맞서 싸운 끝에 그들을 역으로 궤멸시켰다. 20집 차이를 완전히 뒤집은 것이였다.



Z는 그것이 가능한 일인지는 아직도 믿기가 힘들었다. 한 번 의문이 들자, 의문은 계속 생겨났다. 어떻게 재건은 회의가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는가?,원래 지금 시대에 존재하는 사람들은 어디있는가?,폭풍우의 원인은 무엇인가?,재단은 어떻게 최초의 폭풍우가 올 것을 알았는가?,몇 년 전 콘스탄틴 부회장의 그 행동은 의미가 있던가?



모두가 오래전부터 가졌던 의문부터, 불현듯 떠오른 그녀 혼자만의 의문까지 모든 것이 Z의 머리를 해집어놓고 혼란스럽게 했다. 최대한 정리하려 했지만 머리 속은 끝없는 의문들로 어지렵혀졌다. 



마치 모두가 바쁘게 살아가던 90년대처럼, 광란의 20년대처럼, 전쟁의 포화로 가득했던 세계 대전의 시대처럼, 마녀 사냥의 광풍이 유럽을 휩쓸었던 때처럼, 기독교인과 이교도가 이베리아 반도를 두고 다퉜을 때처럼, 빠르게 지나갔던 시대들처럼, 수많은 질문들과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사라진 시대들같이 사라져야할 것들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지금 연단 위에 Z에게는.





"이것들이 우리와 그들의 차이였습니다. 그리고 승자와 패자를 결정짓게 한 것이였습니다."






혼란한 머리 속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연설의 가장 핵심인 부분을 모두 말했다. 그녀 스스로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딴 생각을 하는 중에도 말실수없이  낭독할 수 있었던 이유일지도 모른다. 그저 녹음기처럼 외우면 되니까.






"앞서 말했듯, 우리가 이것들은 배우고 얻을 수 있었던 건, 승리할 수 있었던 건 수 많은 희생이 있었기때문입니다..."





그래도 이 말은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들에게 평화가 영원히 함께하길..."






다시 한 번 긴 정적이 맴돈 후 또다시 박수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이번엔 처음보다 크고 길었다. 심지어 몇몇 청중은 눈물까지 흘렸다. 말로 감동시키는 게 그녀의 취미는 아니였지만, 그걸 본 Z는 그날 처음으로 기분이 약간 좋아졌다. 



박수 소리가 잦아들 때즈음 Z는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투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재단은 너무 많은 걸 잃었다.





"여러 번의 조사 결과 지금 이 시대에 인류 문명은 물론이고, 인류 자체가 존재하지 않다는 결과가 잠정적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재건은 그들이 바라던 것을 거의 창조하는 데 성공했다.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시간상 인류 문명이 아직 성립되기 이전인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인류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건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재단은 그토록 수호하려던 인류를 거의 완전히 잃어버렸다. 재단의 구성원도 인류이니 완전은 아니지만 한때 수십 억명에 달했던 그들의 목표는 이젠 천명을 조금 넘기는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확실한 건 재건의 손이 원했던 것은 바로 지금 이 시대였습니다. 마도학자도 인간도 존재하지 않는 지구. 그곳에서 그들은 마도학자들만에 세상을 '재건'하는 것이 그들의 근원적 목표이자 악행에 동기였던 것입니다."





인간과 마도학자는 오래 전부터 함께 진화하고 공존해왔다. 과거로 갈수록 마도학자들이 시대의 중심이였었지만 인간의 존재를 간과할 수 없었다.





"참으로 끔찍한 생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것이 재건이 모든 시대를 부정한 이유였다. 인간이 중심인, 인간이 존재하는 모든 시대를. 





"그들은 악행의 대가를 치뤘습니다. 시대를 소멸시킨 대가를 말이죠."





하지만 결국 역사의 승리자, 시대의 구원자는 성 파블로프 재단이였고, 반대로 패배자이자 반역자인 재건의 손은 이제 그들이 없앤 시대들처럼 사라져버렸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였다. 





"재단 최대의 적 재건은 사라졌지만 새로운 적이 등장했습니다. 바로 현실입니다. 이제 물자를 조달해주는 문명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보충할 만한 추가 인력도 없습니다. 원시인조차도요. 이제 모든 걸 자급자족 생산해야합니다. 




이제 과거는, '미래'는 중요하지 않았다. 적어도 지금은 말이다. 사라진 시대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생존자들은 그나마 남은 시대의 파편들로 현재를 살아가야만 한다. 





"좀 더 세부적으로 말씀들이자면 가장 시급한 자원은 식량입니다. 외부에서 최대한 채집하고 있지만 역부족한 상황이며 길어도 3년 안에 식량 위기가 닥칠 것으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선 전문 농업 부서를 창설해..."





Z가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끝내고 현재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자 천장에서 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런..." 





그녀의 어깨에도 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비가 내리기 시작한 것이였다. 낡고 버려졌던 의사당은 물이 새는 걸 막지 못했다. 곳곳에서 불평의 소리가 터져나왔다. 





"나름 역사적인 순간이라 생각하고 이곳에 모이시라고 말씀드렸는데 잘못된 선택이였나봅니다. 이거 죄송하게 되버렸군요."





Z는 떨떠름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회의는 임시 의사당으로 이동해 다시 진행하겠습니다. 모두 이동해주시고, 다시 한번 사과의 말씀 전합니다."





그렇게 모두가 낡은 의사당을 떠나갔다. Z도 이동하려던 참에 그녀는 한 가지 이상한 것을 보았다.





"저건...?"





커다란 구멍 밑에 의석에, 한 소녀가 앉아있었다. 구멍 밑에는 어떠한 비막이도 없었고 소녀는 그대로 앉아 비를 맞고 있었다.






".......버틴."





소녀의 옷이 점점 젖어가고 있었지만 소녀는 그저 고개를 숙인체 말 없이 앉아있을 뿐이였다.








전에 누가 릾 결말 어떻게 날건지 추측해서 글을 올린 적 있는 데( 한두달 전인 듯) 나도 생각해본 게 있어서 소설로 써볼 생각 있다고 하니까 써보라고 제안해봐서 써봤는데 몇 줄 못 쓰고 유기해버림ㅋ


그러다가 트레일러 곡(symbiosis) 듣고 크게 삘받아서 후딱 끝내버렸어


이제 곧 있으면 스파게티나와서 덜 심심하긴 할 텐데 그래도 남은 몇 시간 즐거우라고 올려봄 


아직 초반이고 몇 개 더 쓸 거고  지금처럼 릾붕이들 지루함으로 폐사 직전 일때마다 올릴 거 같음


재미있게 봤으면 좋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