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입학하고 첫 중간고사가 끝났습니다. 그래서 4월 16일-18일간 제주도에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마침 화요일이라 항공권도 싸고, 최근 불안하고 우울한 마음을 내려놓고 쉬다 오고 싶어 유명 관광지가 아닌 한적한 '모슬포' 라는 곳으로 떠났습니다. 

16일 제주도로 떠나며.. 저녁 비행기라서 창문으로 일몰도 볼 수 있었습니다. 

151번 버스를 타고 모슬포로 향합니다. 미리 예약한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해서 짐을 풉니다. 원래 4인실인데 화요일이라 그런지 아무도 없어서 더 적막하네요. 그래도 방이나 건물은 꽤나 아담하고 좋았습니다.

다음날, 저는 뭔가 특별하고 기억에 남는 여행을 하고 싶었기에 역사적 유적인 알뜨르 비행장으로 향합니다.

운진항에서 도로를 따라 쭉 걷다 농로로 빠져줍니다.

산방산이 멀리서 보입니다.

비포장길을 쭉 걸어줍니다. 육지와 달리 지형 특성상 밭만 있는 풍경이 특색 있었습니다.


아침이라서 가는 길에 새소리가 많이 들렸는데 그것도 좋았습니다.

알뜨르 비행장 활주로가 보입니다. 아랫쪽 들판이라는 이름답게 훤하게 뚫려 있습니다. 


길이는 약 1km 정도이며 현재도 비상착륙 정도는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남아 있는 비행장 구조물입니다. 설명문에는 관제탑 터라고 나와 있는데, 후술하겠지만 여기에는 반전이 있습니다. 

밭을 따라 쭉 걷습니다. 나무 판자를 밟고 내려가다 미끄러질 뻔했네요.

내려오니 이곳저곳에 격납고가 보입니다. 이글루라고도 불리는 콘크리트 엄체호입니다. 사진에 나오는 이곳은 주기장이였겠네요.

격납고 주변에는 밭이 들어서 있어 못 들어가지만 여기는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이 앞에는 조밭인 것 같습니다. 

안에는 철골로 된 제로센 모형이 있습니다. 

이곳은 그 유명한 난징 대학살과 관련이 있는데 중국으로 가는 비행기들이 재보급하는 곳이었습니다. 


밖은 정말로 한적하고 평화로운 농촌의 모습이었는데 80년 전에 전쟁의 광풍에 휩싸이고 학살까지 겪다니 믿기지 않습니다. 가만히 눈을 감고 군인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엔진 소음으로 가득 찼을 이곳의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제로센이 있는 곳에서 내려와 좌회전하면 섯달오름으로 가는 길이 나옵니다.

길 끝으로 가면 이런 추모비가 나옵니다. 고무신이 있는 이유는 죽음을 직감한 희생자들이 끌려가면서 가족들에게 신원 확인을 위해 던지고 간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추모비 옆에 할아버지가 있길래 혹시 유족이신가 했는데 맞더라고요. 명함을 주시길래 보니 무슨 유족회 대표단에 4.3 관련 해설사 명찰을 달고 있었습니다. 


그 분은 중학생 때 학살로 형제를 잃었습니다. 추모비 뒤에 구덩이가 있는데 그곳에서 시신 백 수십 구를 인양했으나 다 꺼내지 못하여 일부는 아직도 물웅덩이 밑에 있다 합니다. 시신들은 대부분 신원 파악이 불가능하여 모두 합장했는데, 백 명이 한번에 죽어 후손들이 한 자손과 같다 하여 백조일손지묘라 부릅니다.

참고자료


그리고 아까 관제탑이라고 했던 구조물은 그 분 말에 따르면 그냥 물탱크 받침대라고 합니다. 자료가 부족해서인지 몰라도 도에서 잘못된 설명을 고쳐달라 민원을 해도 듣지를 않는다는군요. 하기사 생각해보니 명색이 대륙 진출 거점지인데 2차대전 항모 함교만도 못한 크기의 구조물이 관제탑이라 하면 납득이 가질 않겠네요..


마지막으로 대학생이라고 하니 혼자 왔냐, 친구를 데리고 오지 그랬냐, 학생들이 더 많이 관심을 갖고 연구에도 힘써 주면 좋겠다고 말하셨습니다. 저는 공대생이라 연구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사건을 기억해 주는 사람이 많아지기를 바라시는 듯 합니다.

추모비 뒤편에는 웅덩이가 있습니다. 이곳에 백 몇십명을 죽이고 묻었다는 것이 감이 잘 안 잡힙니다.

구덩이에 있는 풀들 사이에 꽃이 하나 피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간 그 자리에서 본 꽃은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위에서 본 모습입니다.

본래 이곳은 일본군 탄약고 진지였으나 미군이 폭파한 자리라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묵념을 드리고 이 곳을 떠납니다.

돌아가는 길에 비둘기 날개가 부러져 썩어가고 있었습니다. 죽음과 관련된 장소에서 이런 걸 보니 왠지 모르게 숙연해집니다. 


실제 유가족을 만날 줄은 몰랐는데 이야기를 들으니 이날 내내 착잡했습니다. 한적한 동네라 일상생활처럼 스트레스 받을 일도 없고 마음 편하게 쉬다 가는 곳이지만 같은 장소에서 과거에 잔인한 일이 있었다는 증거를 눈으로 보니 많은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