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arca.live/b/monmusu/103744058

지나가다가 해당 글 소재가 너무 맛있어보여서 못 참고 찍먹하려는 찍먹충 몬붕이임다. 시험기간이라 바쁘지만 최대한 맛있게 써보려고 노력해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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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무스 세상에서 '가장 높은 설산'.

'저 산은 언제부터 있었을까', '저 산의 꼭대기에는 무엇이 있을까.'

거대한 드래곤마저 고개를 치켜들게 만드는 설산은, 그저 그 자리에 우뚝 선 채로 많은 신비와 의문만을 남길 뿐이다.


"... 노을?"


어느 누구도 감히 짐작할 수 없을 정도의 시간과 그에 걸맞는 수많은 신비를 품은 새하얀 영봉(靈峰)의 꼭대기는, 어떤 존재가 정성스럽게 깎아낸 듯이 정교하고 평탄하다.

누군가는 그 모습이 전능한 신의 기적이라고 말한다.

누군가는 먼 과거에 있었던 인간과 몬무스의 전쟁이 남긴 상처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자연의 신비가 빚어낸 걸작이라고 말한다.

고서탑과 시계탑, 마탑과 신전, 왕국과 뒷골목에 이르기까지, 설산에 대한 수많은 논쟁과 루머는 아직도 진행 중에 있다.


"미친... 어제 적당히 마실 걸."


설산은 멀리서 즐기는 경치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곳이지만, '가장 높은 설산'이 품은 신비는 많은 이들의 호기심과 모험심을 자극하였고, 그것은 설산의 근처에 있던 작은 마을을 도시로 바꿀 정도의 힘을 가지게 될 만큼 커지게 되었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욕망을 가지고 설산의 정상을 향해 오를 것이며, 그들의 생명은 욕망과 함께, 설산의 위대한 품 안에 영원히 잠들 것이다.


'부디, 오늘은 아무도 발견되지 않기를.'


그리고 지금, 수많은 신비와 생명이 잠든 그곳을 향하여, 매를 닮은 한 명의 소녀가 비행을 시작한다.

태양은 벌써 서쪽으로 기울었고 붉은 노을이 하늘을 아름답게 물들이기 시작했지만, 설산을 향한 소녀의 날갯짓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유난히 강했던 어젯밤의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평소보다 더 독한 술을 마신 것도, 숙취 때문에 늦잠을 자버린 것도, '설산의 가장 좋은 동반자' 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소녀에게는 그저 변명밖에 되지 않았다.

그것이 그녀의 역할, '셰르파(Sherpa)'로서의 의무였기 때문에.


'... 오늘은 구름도 별로 없고 따뜻하네. 간만에 하늘을 보면서 커피를 마셔도 좋겠어. 잘 구운 토스트 한 장을 곁들인다면, 분명 보람찬 마무리가 되겠지.'


소녀를 반기는 것은 설산의 경이로운 경치가 아닌, 감히 자연의 신비에 도전하거나 영봉의 비밀을 파헤치길 원하는 모든 존재를 단죄하는 눈보라와, 사납게 날뛰는 파도마저 얼려버릴 듯한 추위.

그렇기에 평소에는 도수가 높은 독한 술로, 비교적 따뜻한 날에는 인스턴트 커피 따위로 몸을 데우던 소녀였다.

그러나 오늘은 추위와 눈보라가 완전히 숨을 죽인, 해가 지평선 너머로 고개를 숙이고 있음에도 어느 때보다 날씨가 좋은 따뜻한 날.

마치 오늘은 기분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고, 설산이 소녀에게 속삭이는 듯했다.


"루트 A, 탐구자 3명과 호위 5명... 루트 B, 도전자 4명... 이번 정찰에서도 두 자릿수인가."


마치 눈과 얼음으로 만든 것 같은 조각상에게서 그들이 한때 온기를 가진 존재였음을 알리는 '유품'을 수거하며, 소녀는 덤덤하게 중얼거린다.

'마력조차 얼려버릴 수 있는' 매서운 추위와 눈보라가 휘몰아친 자리에는, 설산의 위험을 경고하는 표지판이 되어버린 자들의 욕망만이 남는다.

그렇기에 하늘 너머까지 우뚝 솟은 설산은, 그것이 품은 신비를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간직하는 것이겠지.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부디, 따스한 온기가 있는 곳에서 안식하시길."


그러나 소녀는 익숙하다는 듯이, 해질녘의 설산이 보여주는 아름답고도 잔혹한 풍경을 두 눈에 담기 시작한다.

눈보다 더 하얗게 빛나는 작은 넝쿨들만이 유일한 주민인 영봉의 꼭대기부터, 무수한 도전자와 탐구자의 온기가 서린 설산의 입구까지.

설산에게 도전한 대가로 영혼마저 얼어붙었을지도 모르는 이들을 기리기 위해, 소녀는 보다 분주하게 날개를 움직인다.


"루트 C... 사망자 없음."


더 이상 사망자가 나오지 않길 바라는 소녀의 작은 기도가 누군가에게 닿은 것일까?

간만에 사망자가 나오지 않은 등정 루트가 있다는 사실에, 소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하지만, 그것이 소녀가 일을 게을리해도 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소녀는 언제나 그래왔듯이, 산의 정상을 확인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날갯짓한다.


'오늘은... 정말로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아.'


소녀는 절대로 설산에게 도전하지 않고, 그것이 품은 거대한 신비를 알아내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저 사흘에 한 번씩, 혹시 모를 눈사태를 막기 위해 설산에 쌓인 눈을 적당히 청소하고, 설산의 정상에 도달하기 위해 무모하게 목숨을 내던진 자들의 마지막을 애도할 뿐인 일상.

설산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살면서, 따뜻한 커피나 술을 마시며 하루를 보내는 수수하고 심심해 보이는 일상.

소녀는 그러한 일상에도 긍지와 보람을 느끼고 있기에 설산의 가장 좋은 동반자, 즉 '베테랑 셰르파'라고 불리고 있는 것이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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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도 안 돼."


소녀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무엇일까?

단언컨대, '이상현상' 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고요한 호수에 물결을 일으키는 트러블이자, 마음의 준비를 할 겨를조차 주지 않고 닥쳐오는 돌발 상황.

다시 말해, 평소와는 전혀 다른 '비정상적인 것'.

설산에서의 이상현상은 곧 죽음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소녀였기에, 소녀는 일상에서 벗어나는 모든 것을 싫어했다.


'평소보다 따뜻하긴 하지만, 눈이 녹을 정도는 아닐텐데?'


하지만 그런 소녀의 눈 앞에, 녹색의 잔디와 한 송이의 작은 들꽃이 바람에 살랑거리고 있었다.

하얀 넝쿨만이 서로 얽힌, 들판이라고 말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는 설산의 꼭대기에서, 녹색은 있을 수 없는 색깔.

땅의 깊숙한 곳까지 얼어붙어 대부분의 식물들이 자랄 수 없는 곳에, 잔디와 들꽃이 버젓이 피어있는 것이 정상적인 일인가?


"... 예쁘다."


물론, 비정상적인 일이다.

명백한 이상현상이자, 소녀가 싫어해야 마땅한 것이었다.

원래라면 이상현상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 소녀였으나, 녹색 잔디 사이로 머리를 내민 작은 들꽃은 소녀의 마음을 '아주 조금' 움직이기에는 충분했다.


'이 근처에선 본 적 없는 꽃이네. 어떻게 이곳에 핀 걸까?'


베테랑 셰르파라고 불리는 소녀는, 설산의 신비에 대해 처음으로 의문을 가졌다.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소녀의 몸조차 얼려버릴 추위와 눈보라가 설산을 뒤덮었건만, 쌓인 눈을 녹여가면서 잔디와 들꽃을 피워내는 설산의 경이로움은, 소녀의 얼어붙은 마음마저 녹이고 말았다.


'이렇게 예쁜 꽃을 보는 게 얼마만이더라...'


셰르파의 규율 첫 번째, '설산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 쓸데없는 의문과 관심을 가지지 말 것.'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는 상식 중의 상식.

선대 셰르파에게 지겹도록 들은 기본 중의 기본.

그러나 소녀는, 이름도 모르는 작고 예쁜 들꽃을 향하여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고 있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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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

"... 윽!"


소녀가 들꽃에 손을 대는 순간, 소녀의 피부에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는 바람이 닿기 시작했다.

낯선 느낌에 놀란 소녀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뜨자, 하얀 눈과 넝쿨로 뒤덮인 벌판은 어느샌가 잔디와 들꽃이 가득한 들판으로 바뀌어 있다.

소녀는 생명으로 가득 찬 화사한 들판 가운데에서 따스한 산들바람을 맞으며, 마치 무언가에게 마음을 빼앗긴 듯이 한 곳을 바라본다.

과연 소녀의 마음을 빼앗은 것은 무엇일까.

설산에서 바라보는 아름다운 노을일까? 따스한 온기와 생명으로 가득 찬 들판일까?


'... 어떻게 이런 곳에 저런 건물이?'


그러나 소녀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작고 예쁜 들꽃도,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는 따스한 산들바람도, 아름다운 노을 아래 펼쳐진 푸른 들판도 아니었다.

소녀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노을빛을 머금은 들판 위에 들어선 아늑해 보이는 목재 건물.

담쟁이덩굴이 작은 덩굴손을 뻗은 외벽과 저녁의 노을빛에 붉게 타들어가듯이 빛나는 새장, 그 안에서 소녀를 환영하는 황금빛의 작은 카나리아 모형과 낯선 색깔의 알 공예품.

무엇보다도 산들바람에 은은하게 퍼지는 커피의 향기가 소녀의 마음을 강하게 끌어당기고 있었다.

소녀는 마치 홀린 듯이 그곳으로 걸어가, 건물의 이름이 적힌 표지판 앞에 선다.


['가장 높은 카페', Café of Confession]

'카페...? 내가 알고 있는 그 카페가 맞나?'


소녀는 조금이라도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 분주하게 날개를 파닥거리며 주변을 둘러보지만, 끝내 유의미한 소득을 얻지는 못했다.

커피를 내리기 위해 필요한 각종 도구들과 어디에 쓰이는지도 알 수 없는 수많은 물건만이, 이곳이 카페라는 것을 소녀에게 강하게 어필하고 있었다.


"..."

'좋은 향기가 나고 있어... 어딘가 생소하지만, 완전히 낯선 향기는 아냐. 그래, 분명 관공서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나는 향기랑 비슷해.'


소녀에게 너무나 익숙해져버린 인스턴트 커피의 향기가 아닌, 생소하지만 완전히 낯설지는 않은 '커피콩을 볶는 향기'가 산들바람을 타고 소녀의 코를 간지럽히며 확신을 주고 있었다.

이곳은 카페가 맞다.

소녀가 말로만 들었던, 커피를 마시고 수다를 떨며 그럭저럭 시간을 보내는 곳.

셰르파의 업무를 보고하기 위해 관공서로 향할 때마다 맡았던, 은은한 커피의 향기가 사라지지 않는 곳.

카페를 경험한 적 없는 소녀에게, 이 상황은 일종의 모험이었다.


'신기한 것들이 잔뜩 있어... 카페는 원래 이런 건가? 하지만 관공서 근처의 카페는 좀 더 깔끔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마음의 준비를 할 겨를도 없이, 갑작스럽게 닥쳐온 '이상현상'.

눈 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이 '비정상적인 것'이라는 것을 알아버린 이상, 소녀는 이 모든 것을 경계해야만 했다.

그러나 소녀의 눈에는 경계와 긴장이 아닌, 순수한 '호기심'만이 가득했다.


'이 기계는 어디에 쓰는 것이지? 건물의 내부는 어떻게 생겼을까? 이 향기는 누군가 커피를 만들고 있기 때문에 나는 걸까?'


소녀는 더 이상 정찰을 하지 않는다.

지금, 소녀는 작은 '모험'을 하고 있다.

소녀는 베테랑 셰르파가 된 이후,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는 모험심과 호기심을 마음껏 불태우고 있었다.

그러나 그 순간, 소녀의 호기심을 단번에 깨트리는 소리가 들판에 울려퍼졌다.


[뻐꾹, 뻐꾹!]

"꺄아악?!"


아름다운 장식에 시선을 빼앗긴 소녀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카페의 지붕 밑에 걸린 뻐꾸기 시계.

아홉 시를 알리는 우렁찬 뻐꾸기 소리에, 소녀는 자리에서 폴짝 뛰어오른다.

혹시 누군가 이 목소리를 듣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붉어진 얼굴로 숨을 죽이면서, 한껏 주변을 경계하는 소녀.

아니나 다를까, 은은하게 울리는 청아한 종소리와 함께 카페의 문이 열리며, 꽤나 정정해 보이는 모습을 한 노년의... 아니, 어쩌면 중년일지도 모르는 남성이 걸어나온다.


"이런, 손님이 계셨군요. 마중을 나갔어야 했는데."

"...! 너, 누구야? 이곳에는 어떻게 왔지?"


마침내 발견한 경계 대상.

그것은 강철과도 같은 차가운 얼굴로, 모닥불처럼 따뜻한 미소를 지을 줄 아는 인간 남자였다.

그러나, 소녀는 노골적으로 남자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그가 이 '비정상적인 것'의 중심에 있는 인물일 테니까.

그는 마법사일까? 어떤 몬무스의 힘을 빌린 것일까?

... 그는, 인간이 맞는 걸까?

수많은 의심을 꽃피우며 날카로운 발톱과 매서운 눈빛으로 남자를 경계하는 소녀와 다르게, 노인은 따뜻한 미소를 잃지 않는다.


"어서 오십시오, 손님. 세상에서 가장 높은 카페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자, 계속 서 있기도 무안하니,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를 계속할까요?"

"... 안내해."


노인의 미소는 저물어가는 태양 만큼이나 희미하면서도, 노을 하늘 만큼이나 따스했다.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는 않지만, 어느샌가 매를 닮은 소녀는 노인의 뒤를 따라 카페의 안으로 발을 들여놓고 있었다.

비록 공식적인 손님은 아니지만, '가장 높은 카페' 라는 별명을 가진 신비한 카페가 첫 손님을 받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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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보니 4000자를 넘겨버려서, 일단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