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로이와 팬드가 서로 몸이 바뀌는 이야기
개념글 모음

난데없는 엘리자베스의 소신발언에 로이는 얼어붙었다. 

 

“네가 별난 여자라는건 적지 않은 시간 알아오면서 충분히, 그리고 뼈저리게 느낀바 있다만...“


로이는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다짜고짜 그런 말을 하면 내가 대체 어떻게 반응해줘야 하냐..? 공감? 축하? 격려?”

“저도 적지 않은 시간 당신을 알아오면서 충분히, 그리고 지금까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지만, 당신 사고는 참 일차원적이에요. 물벼룩.”

“그래, 일차원적인 내가 4차원인 너를 어떻게 이해하겠냐, 그래서 갑자기 그런 말은 왜 꺼내는 건데? 화장실에 손잡고 같이 가주랴?“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절대 익숙해지지 않을 것만 같던, 자신의 얼굴을 한 엘리자베스의 경멸어린 시선조차 어느샌가부터 익숙해지고 있었다. 

조금만 눈을 가늘게 뜨고 보면 익숙하다 못해 머릿속에 새겨져버린 그녀의 얼굴이 겹쳐져 보일 정도로. 


“제가 화장실에 가면, 좋든 싫든 물벼룩의 그, 그걸 보게 될거고.”


아차.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그제서야 로이는 자신이 놓치고 있던 수많은 가능성에 눈을 떴다. 

무엇보다 화장실에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것이었다.


“..생각해보니까 나도 화장실이 가고 싶어진 것 같기도 하고.“


엘리자베스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는 로이를 죽일듯 노려보았지만, 심증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그녀는 결국 꼬았던 다리의 방향을 반대로 돌리고 생각에 잠겼다.


“급한거 아니었냐? 얼른 갔다오지? 나부터 다녀오기 전에.”

“..룰을 정하죠.”

“무슨 룰?”

“화장실에가거나, 목욕을 할때의 룰.”


로이는 단번에 얼굴을 일그러뜨렸지만 엘리자베스는 아랑곳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전 당신이 제 몸을 보는 것이 불쾌해요. 당신도 역시 그러시겠죠? 그러니 화장실에 갈때나 목욕을 할때, 같이 들어가되 눈은 가리는 걸로 하죠.”

“뭐어? 그런 불편한게 어딨..”

“불쾌한 것보단 불편한게 낫답니다.”


엘리자베스는 단호했고, 로이는 말싸움으로 엘리자베스를 이겨낼 자신이 없었기에 이를 갈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룰이 얼마나 불편한지 몸소 깨닫고 나면 최소 조정이라도 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고서 그는 엘리자베스가 건넨 천으로 그녀의 눈을 가려주었다. 


“서둘러주시죠. 어서 화장실로 에스코트를.”


엘리자베스는 귀족아가씨다운 몸짓으로 손을 내밀었다.

내밀어진 손은 남자의 손이다만, 동작이 워낙 우아해서 그런건지, 손이 남자의 손 치고 고운 편이라선지 그닥 거부감이 들진 않았다.


“칫, 안내는 해주겠지만 발 밑은 알아서 조심해라, 홍차폭탄.”


투덜거리며 맞잡은 손.

아까 아티팩트때문에 투닥거리며 스친 적은 있지만 이렇게 대놓고 맞잡은 적이 없어서일까, 로이는 가벼운 긴장감마저 느꼈다. 


’..내 손, 홍차폭탄에겐 이렇게 크구나.‘


엘리자베스가 본인 몸으로 자신의 손을 잡으면 지금 그가 느낀것과 같은 느낌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로이는 기분이 이상해졌다. 


“..홍차폭탄, 다 왔다. 이 문턱 넘으면 변기 앞이야.“

”..네.“


하지만 엘리자베스는 화장실에 도착하고 나서도 그저 머뭇거릴뿐, 용변을 보기 위한 행동은 하지 않는 채였다.


”너 왜 그래? 급한 것 아니었어?“

”..나,남자의 몸으로 소변을 본 적 없다구요!”

“그거야 당연히 다른 사람들도...”

”그리고 꺼,꺼내야 하잖아요? 그러려면 그걸 만져야 하고..“


분명히 부끄러워하는 건 엘리자베스쪽인데, 어째서 로이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걸까.

목소리도 얼굴도 자기 자신의 것인데,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덕에 그의 머릿속엔 엘리자베스의 본 모습이 덧씌워그려졌다. 


“물벼룩, 빨리..!”

“아, 어,어.”


생각에 잠기는 것도 잠시, 한층 더 다급해진 목소리에 놀란 로이는 허둥지둥 엘리자베스가 입은 바지의 지퍼를 내리고, 팬티의 앞섶, 단추를 풀어 자신의 물건을 꺼냈다. 


바깥공기를 마주하자마자 기세좋게 뿜어져나오는 오줌줄기를 보며 로이는 적지 않은 현타를 느끼게 되었다. 

소변을 보는 동안 이리저리 튀지 않게 붙잡고 있어서 더욱 그랬다. 


‘..잠깐, 지금 그럼 엘리자베스의 손으로 내 거시기를 잡고 있는 꼴 아니야..?’


속의 내용물이 어찌 됐든, 분명 거울에 보이는 모양새는 그랬다. 

눈을 천으로 가린 자신의 물건을, 엘리자베스가 손으로 고정해주고 소변을 누게끔 도와주는 매니악한 모습... 


’이거 생각보다 배덕감이...‘


“..물벼룩, 언제까지 만지고 있을 건가요. 피치못할 사정이 있긴 했지만, 제 손으로 불결한걸 만졌으니 그 손 꼭 씻으세요. 박박.“

”내것도 안 더럽거든? 물론 손은 씻을거지만, 그렇게 더러운 물건 만졌다는 듯한 태도는 그만 둬 줄래?”

“알았으니까, 손 좀 떼 주시죠?“

“누군 만지고 싶어서 만진줄 아냐? 됐어, 더러워서 안 만진.. 아 씨,이렇게 말하니까 뭔가 기분이 이상한데.“


뭔가 패배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할건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로이는 휴지를 두어장뽑아 뒷마무리를 해주었다. 


”히야악?!”

“홍차폭탄, 너 지금 남자의 몸으로 남자 목소리 내고 있는걸 자각 좀 해주면 안되겠냐? 그런 여성스러운 비명을 내 목소리로 듣는 거 엄청나게 소름끼치거든?“

“가,갑자기 만져대니까!“


닦는 것만으로도 난린데, 털기라도 했으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최대한 신속하게 엘리자베스의 하반신 의상 상태를 원상복구시킨 로이는 물을 세게 틀어 손을 박박 씻어내고 이미 소파에 앉아있는 엘리자베스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하아.. 뭔가 진이 빠진다.”

“..그러게요.”

“너 이상하게 얌전하다?”

“진이 빠져서 그래요.“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로이는 거울로 봤던 매니악하고 자극적인 광경이 잊혀지지 않아서, 그리고 엘리자베스는,


난생 처음 겪는 남성의 ‘생리현상’에 어쩔줄을 모르고 있었다.

사실, 화장실로 안내 받기 위해 로이의 손을 잡았을때부터 조금씩 반응이 오고 있었다.


로이의 손, 그러니까 원래 자신의 손을 거의 집어삼키듯 쥐고 나서 비로소 로이의 손이 그렇게 크다라는 것을 체감한 그녀는 설명하기 힘든 간질간질한 감각을 느낌과 동시에 아랫도리에 자극이 왔다.

물론 그때는 엘리자베스의 머릿속 대부분을 채운 요의 탓에 그다지 대단하게 느껴지진 않았지만, 그가 물건을 잡는 순간 타인의 손이 자신의 가장 민감한 신체부위를 만지고 있다는 야릇한 감각이 들기 시작했고 그 이후부터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뇌가 성기에 지배당한다..라는 말이 있다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걸 몸소 체감한 것은 처음이었던 엘리자베스가 가까스로 위기를 넘겼다 생각한 찰나 민감한 곳을 부드럽게 닦아내는 로이의 손길에 스스로도 모르게 괴상망측한 소리를 흘리고 만 것이었다. 


엘리자베스가 지금 소파에 앉아 움직이지 않는 이유도, 이상하게 얌전한 이유도 모두 눈치 없게 우뚝 선 남성기때문이라는 걸 전혀 짐작조차 못 한 로이는, 그녀가 몸이 바뀌어 버린 것 때문에 우울해 하는 것이라고 멋대로 착각해 버리기에 이르렀다.


“그.. 뭣이냐, 생각해보니까 사과를 미처 못 한것 같은데, 미안하게 됐다. 나 때문에 우리 둘 다 이런 꼴을..“

”아닙니다. 당신같은 풋내기가 이런 실수를 벌일 가능성을 계산에 넣지않은 제 잘못도 있어요.“


이건 엿먹이는 건지, 아니면 격려해주는 건지.

어쨌든 지금 발끈하면 또 다시 언쟁이 시작될게 뻔하다고 생각한 로이가 입을 다물었고, 때 마침 괘종 시계가 밤 열시를 알렸다. 


“벌써 열시네요. 목욕할 시간이에요.“

”엣, 뭐? 뭐라고?“

”저는 늘 열시에 목욕하고 잠자리에 들었어요. 비록 지금 내용물이 물벼룩이라고 해도, 제 육체인 이상 늘 청결을 유지해야 해요.”

“그래? 알겠어. 좀 지쳐보이는데, 쉬고 있으면 내가 후딱.. 켁.“


로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엘리자베스는 그의 뒤를 잡아 그녀가 방금 썼던 천으로 로이의 눈을 가렸다. 


‘가차 없구만.’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드는 로이였지만, 애초에 룰에 대해서 말이 나올 때부터 그렇게 큰 기대를 한 것도 아닌 터라 아쉬움을 비교적 빨리 털어낼 수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능숙하게 로이의 드레스를 벗겼다. 

원래 자신의 몸이고, 자신이 입던 옷이라 막힐 것이 없었다.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드레스가 벗겨지고 난 후에 드러난 반라의 여체는 이제 막 남자의 몸에 적응하기 시작한 엘리자베스에겐 너무나 강렬한 자극이었다.

그것이 일평생 봐왔던 자신의 몸이라고 할 지라도.


들어갈 곳은 들어가고, 나올 곳은 적당하게 나온 조각같은 여체가 간신히 진정시켰던 엘리자베스를 다시금 흥분케 했다. 


자신에게 익숙지 않은 물건이 바지가 갑갑하게 느껴질 정도로 커진 탓에 엘리자베스는 로이의 눈을 가리길 잘 했다고 생각하며, 조금 떨리는 손으로 브래지어의 후크를 풀어냈고 브라끈을 풀어헤치자 드러난 탐스러운 유방과 분홍색 젖꼭지는 여자일때, 그리고 자신의 몸일때 느꼈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에로스를 선보이고 있었다. 


눈이 가려지면 다른 감각이 더 비상해진다고 하던가.

창작물에서나 나오는 설정이라면서 무시했던 로이는 지금 이 순간 그것을 어느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체감하고 있었다. 


하루동안 입고 있던 옷이 벗겨지자 원래 엘리자베스의 것이었던, 지금의 자신의 몸에서 은은하게 퍼지는 향긋하고 달콤한 살내음이 굳이 목욕을 해야하나?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코를 간질였다. 


맨살과의 접촉을 최소화하려는 엘리자베스의 손길이 의도치 않게 살갗을 스치는 순간마다 짜릿하게 퍼져나가는 감각은 그가 지금껏 알아왔던 세상 밖의 것이었다. 

게다가 왜인지 모르게 고조된 숨소리를 내뱉고 있는 엘리자베스도 그를 혼란스럽게 했다. 


’왜 네가 흥분하고 있는데..?‘


지금 로이의 가랑이가 허전해서 망정이지, 원래의 몸이라면 무조건 발기했을 상황이었다. 그것도 아마 인생 최대치로 말이다. 

자신의 의지는 아니지만, 어쨌든 자기 손이 엘리자베스의 맨 살에 닿고 있었으니까. 


‘몸이 바뀌지 않았더라면 이런 상황, 절대로 있을 수 없었겠지.’


빨리 원래대로 돌아가고 싶으면서도, 한 켠에서는 몸이 바뀌어서 좋았다라고 생각하는 자신이 싫었다.


“됐어요, 손 잡으세요.“


팬티까지 벗겨지고 난 뒤에 온전한 알몸이 된 자신(엘리자베스)의 몸을 직접 볼 수 없다는게 치가 떨릴만큼 슬펐지만, 엘리자베스가 건넨 손을 잡고 욕조에 몸을 담갔다. 


입욕제를 풀어서 올라온 따뜻하고 향기로운 거품이 온몸을 감싸고, 하루의 피로와 스트레스가 녹아내리는 느낌이 들었다. 


“허으어어...”

“제 목소리로 꼴사나운 소리 좀 내지 마세요.”

“아니 이거 너무 기분 좋잖아..“


부드러운 비누거품 향기가 몸에 배어들 만큼 몸을 불리고 난 후에, 

엘리자베스는 로이의 몸 이곳 저곳을 정성스레 닦아주기 시작했다.

커다란 남자의 손이 섬세하게 몸을 훑을때마다 로이는 신음소리를 참기 어려웠다. 


“홍차폭탄, 살살. 좀 살살 해라..”

“어머, 아팠나요?”

“너야말로 내 목소리로 ‘어머’ 같은 소리 좀 내지 마라..”


일부러 시비를 걸며 신경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 해봐도, 어떻게 딱 기분좋을 정도로만 힘을 조절하기 시작한 엘리자베스 덕에 매순간 위기에 처하는 로이였다. 


“너, 그거 내 손인데 네 원래 몸 만지는거 아무렇지 않은거야?”

“지금의 당신이 제 원래 몸을 주물럭거리면서 씻는것보단 나아요.”

“아, 그러셔. 아쉽게 됐네.”


엘리자베스는 새삼 자신의 몸이 이렇게 부드러웠나, 하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가슴은 말할 것도 없고, 허벅지면 허벅지, 팔뚝이나 종아리, 얇은 발목마저도 지금 남자인 자신의 몸에 비해 푸딩과 다를 바 없었다. 


사실 아까 두부다 뭐다 매도하긴 했지만 만졌을때 나름 단단하게 존재감을 어필해오는 로이의 잔근육에 사뭇 놀라기도 했었고. 


눈을 가리게 한 것도 너무 현명한 선택이었던게, 말랑거리는 원래 자신의 몸을 만지고 있는 현재 엘리자베스의 하반신은 아까보다도 훨씬 말이 안될 정도로 단단해져 있었다. 


이 꼴을 절대로 로이에게 보일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만일 로이가 자신의 알몸을 보고, 또 만지다 보면 이렇게 될 것이라고 상상하니 뭔가 야릇한 기쁨을 느끼고 있는 자신이 수치스러웠다. 






평소 걸리는 시간보다 다소 일찍 목욕을 끝마치고, 엘리자베스는 로이의 몸에 묻은 물기를 수건으로 닦아준 후 잠옷으로 갈아입혔다.


”고생하셨어요.“

”고생은 네가 했지. 누가 이렇게 씻겨주는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네.“


하긴 그렇다. 

로이는 가만히 있고 몸을 움직이는 건 그녀만 했다. 


”..따지고 보니 억울하네요.“

”뭘 억울할 것 까지야. 자, 너도 이제 목욕해야지.“


로이는 방금까지 제 눈을 가리던 천을 엘리자베스에게 건넸다.


”..싫어요. 오늘 목욕 안 할 거에요.“

“너만 깨끗한 줄 알아? 나도 하루에 한번 목욕하거든?”

“피곤해요. 잘거니까 말시키지 마세요.”


엘리자베스는 그 말을 끝으로 진짜로 이불을 덮고 누워버렸다. 


“아니 무슨.. 지 원래 손으로 내 원래 몸 만지는게 그렇게 싫은가.“


로이는 어이없단 표정으로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은 엘리자베스를 노려보았다. 


사실 엘리자베스에겐 목욕이 스트레스를 푸는 수단이기도 했기에 누구보다도 욕조에 몸을 담그고, 향긋한 비누거품을 끼얹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이렇게 ’흥분했다‘ 라는 사실이 투명하게 드러나는 남자의 신체로 로이와 함께 욕탕에 들어가 그의 손길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던 것 뿐이었다. 


그녀는 내일 아침 해가  밝자마자 ‘오래된 목소리’ 에게 자문을 구해야겠다고 다짐하고 애써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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