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글 모음

*페이트 그랜드 오더 2부 6장에 나온 '실의의 정원'이 모티브가 됨

*필자가 설정한 장치 ‘실의의 공간’

(1) 마주하고 싶지 않은 과거 표출(케이린)

(2) 자신이 소중히 여겼던 자들 또는 자신에게 조력해준 자들로부터의 폭언받기 (케이린 / 구원자)

(3) 자신 입장에서는 벌어질 수 있는 부정적인 if 세계선 제시 (구원자 - 케이린이 아군으로 들어와있다. 등)

*시점 변경이 수 많이 이뤄질 예정 (구원자 > 케이린 > 구원자 > 케이린 등)

*메인스토리의 구원자에게 가해질 수 있는 그리고 악역이라도 케이린에게 가해질 수 있는 모든 정신적 공격을 추산해서 창작해봄. 

*일부는 필자가 임의로 설정해둔 것이기에 맹신은 금물.

*필자가 썼던 창작글 중 '그들의 이야기 (下)'편에서 내용을 일부 따왔음

*창작글이지만 스포일러 요소가 일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주의해주길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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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어째서...! 우리들의 종말을 방해하는 겁니까 !!”

 

라리마에게 공격이 들어간 후 라리마는 치명상을 입었다. 케이린과의 연계 공격이 제대로 통해들어갔기에 곧 그녀를 쓰러뜨리고 아폴리온에게로 다가가 저지하고 다시 유리아를 구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다. 이제 앞으로 조금 남았다...!

 

“후...후후... 역시 제법이군요, 구원자. 그리고 그 옆의 조력 중인 또 하나의 인간. 설마 이 묵시룩의 기사, 그 중에 죽음을 관장하는 이 라리마를 이렇게까지 몰아세우다니...”

“대체...왜 그런거야 !!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 이들에게 왜 재앙을 내리려는거냐고 !!”

 

나는 분노를 담아 외쳤다. 정령연합군을 탈퇴하고 남은 아르카디아 대륙의 국가들을 전부 적으로 돌려버리고 날뛰는 것을 아직도 이해할 수 없었다. 이렇게 해서 과연 얻을 수 있는게 있는걸까.

 

“종말은 예정되어 있답니다. 지금 우리가 내릴 종말은 아주 필연적인 것. 이 세상은 마땅히 없어져야 옳은 것이니까요. 이런 종말을... 당신들은 결코 막을 수 없습니다 !”

“그 입 닥쳐라 ! 누구 멋대로 종말을 언급하는거지 ? 나의 백성들이 돌아올 이 땅을 네놈들이 멋대로 하도록 냅두지 않겠다 ! 너네 도구들이 이런 일을 벌인만큼 네놈들을 철저히 섬멸해주마 !”

 

케이린이 일갈하였다. 지금 현재로써는 내가 구원하려는 에덴 그리고 정령들에게도 문제지만 그녀가 데리고 오려는 인간들에게도 가장 크게 위협되는 요인이다. 어떻게 해서든지 막아야한다. 유리아... 이번에야말로 내가 벌인 실책을 다시 만회해야할 순간이다. 나 때문에 도대체 어느정도가 피해를 입어야되는걸까 ? 그렇게 생각한 순간 라리마가 섬뜩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말했다.

 

“예정된 종말은 여러분들이라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에덴의 구원자. 당신을 이 실의의 공간에 가둬놓도록 하지요. 어차피 저 여자는 영혼이라 소멸시키면 그만. 묵시룩의 기사들에게 현재 시점에서 가장 최대의 위협이 되는 당신만 없으면 모든 것이 해결되겠지요 ! 부디 이 공간에서 정신적 고통과 함께 에덴의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을 구경이나 하고 계시지요 !”

 

(번쩍)

 

라리마는 그렇게 말하면서 손을 튕겼다. 그러더니 갑자기 거대한 블랙홀이 나오더니 나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

 

“으아아아....!!”

“구원자님 !”


클레르와 클로이가 달려왔다. 그들이 손을 뻗었지만 내가 빨려들어가는 속도가 빨랐기에 닿지 않았다. 하다 못해 흑기사까지 자신의 검을 뻗어 잡으라고 외쳤음에도 나는 그걸 잡지 못하고 그대로 빨려들어가고 말았다. 하지만 그 순간.

 

“안 돼 ! 지금 그가 빨려들어가면 계획이 완전히 어그러지게 된다 ! 내가 그를 직접 구하겠다. 아담 ! 놈들의 대열을 맞춰놔라 !”

“폐하, 무모한 짓을...! 안됩니다 !!”

 

돌발상황으로 케이린까지 나를 따라 들어온 것이다. 뭘 할 새도 없이 우리 둘은 그대로 빨려들어가게 되었고 곧 눈앞이 캄캄하게 되며 그대로 의식을 잃게 되었다. 

 

“크윽... 네놈 !!”

“어머나.. 그 여자는 제가 손수 없앨 수 있는데, 뭐 상관 없겠지요. 절망적인 이 실의의 공간에서 어디까지 발버둥칠 수 있을지 이 세계에 종말이 내려앉는 것을 지켜보며 과연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을지 기대가 되는군요.”

“라리마...! 절대 용서하지 않겠어. 이 짓을 멈추고 구원자님을 돌려내 !”

 

클레르와 흑기사를 비롯한 정령들이 그대로 라리마에게 달려들었으나 이내 라리마가 술식을 부려 투명한 벽을 만들어냈다. 그들은 라리마에게 무기 한번 휘두르지 못하고 그대로 벽에 부딪히게 되었다. 그런 모습을 라리마는 비웃었다.

 

“안타깝지만 여러분들은 저를 이제 따라올 수 없습니다. 할 수 있는 것도 이제 없을 겁니다. 이제 저는 종말을 위해 가도록 하죠. 거기서 무의미한 저항을 계속하세요. 여러분들의 희망은 이제 사라졌습니다 !!”

“젠장... 안돼, 거기서 !!”

 

라리마는 그렇게 뒤로 돌아 아폴리온이 있는 곳으로 나아갔다. 구원자와 인간의 왕이 현재 라리마에 의해 납치된 지금 그들에게 희망이 사라져버린 것을 고하기라도 한 듯 라리마는 웃으며 나아갔다. 앞으로 종말까지 한걸음 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 이미 그곳에는 벽 너머의 정령들의 처절한 절규를 단순히 하나의 소음으로만 치부하고 아폴리온과의 협력을 위해 나아가는 잔악한 모습의 라리마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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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무엇인가 나의 마음을 갈아먹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눈을 뜨게 되었다. 눈을 떠보니 사방은 암흑 그 자체였다. 구원자 녀석이 놈에 의해 납치되려는 것을 구하겠다고 따라들어왔다. 그는 우리에게 필요한 존재이다. 설사 나중에 계약을 끊고 뒤를 친다고 해도 아폴리온을 다시 우리쪽으로 끌고 오기 위해서는 그가 필요했기에. 

 

그런데 지금 내가 있는 공간은 에덴이 아니었다. 아니 지구라고 할 수도 없는 하나의 가상 공간과 같은 곳이라고 해야할까. 순간 마음이 깎여나가는 느낌이 또 들었다. 대체 이 공간은 무엇을 하는 곳이지...? 가슴에서 느껴지는 고통을 부여잡고 주변을 둘러보니 갑자기 치지직 거리면서 내 눈앞에 어떤 장면이 보이기 시작했다.

 

“잠깐... 저건 나의 과거인가..?”

 

우리 인류가 멸망하기 전의 모습을 그리고 내가 겪어온 과거가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아까 녀석은 이곳을 ‘실의의 공간’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는 것은 지금 이 공간은 내가 떠올리고 싶지 않은 과거를 이용해 내 정신을 무자비하게 공격하는 공간인 모양이다. 정령 녀석들... 도구 주제에 이런 것을 만들어내다니 그야말로 어불성설 아닌가 ? 뭐 설사 그들이 이것을 만들어내던 나에게는 하등 중요하지 않다.

 

“어짜피 우리 백성들의 도구인 녀석들이 이걸 유지해봐야 얼마나 할 수 있다고... 버티면 언젠가 나갈 수 있겠지. 하지만 지금 나오고 있는 것은 내가 가장 보고 싶지 않은 과거야. 설사 못 볼 것 같으면 부숴버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 탈출은 어렵더라도 버티는 것보다는 나을지도 모르겠지.”

 

어짜피 도구들이 만들어낸 산물이라 해도 그리 대단한 것은 없을 것이다. 다만 인간의 왕인 내가 가지고 있는 위엄과 기개가 전부 거짓처럼 보이는 듯한 느낌도 들어 뜨끔해진다. 이런 느낌은 가히 불쾌하다. 그렇지만 아직 시작도 안하지 않았는가. 어차피 내가 버티기만 하면 여기를 나갈 수 있다. 그렇다면 구원자 녀석도 나에게 경외하며 나를 따르겠다는 선택을 할 수 있겠지. 그렇게 나의 과거가 재생되기 시작했다.

 

‘케이린, 너에게는 정말 중요한 역할을 맡겨야만 해. 힘들겠지만 그래도 들어줄 수 있겠어 ?’

 

‘당신은 선택받은 사람입니다. 함께 가시지요. 당신이야말로 우리의 미래를 이끌어갈 존재 중 한명입니다. 덕분에 우리의 미래에는 평화와 안녕이 존재하게 될겁니다. 이걸로 우리는 안심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능력을 우리를 위해 모두 사용해주십시오.’

 

‘내 도시가..아아 내가 살고 있던 곳이...! 그래 놓고 우리 미래를 위해 온 존재라고 ? 개소리 하지마 ! 너는 인간도 아니야... 책임져, 책임지라고 !! 너희들 때문에 내 도시가 통째로 사라졌으니까 !’

 

‘정령술사로서의 의무를 다하여라. 너야말로 미래를 이끌 존재이다. 그러기 위한 너의 능력은 이미 충분히 증명이 된 터. 다른 존재들의 목소리는 신경쓰지 마라. 오직 너는 미래를 위해 너만의 일을 할 뿐이다.’ 

 

‘증명해봐, 너가 정말 정령술사이고 미래를 위한 존재라면 증명해봐. 어떻게 증명하냐고 ? 파우스트에게서 정령들을 더욱더 많이 제작해달라고 요청해, 너의 어머니라 상관없을거 아냐. 안된다면 그녀를 죽이고 조수인 이브를 탈취해. 최초의 정령이니 그런 도구들을 많이 생산해 낼 수 있을 터. 그런 것들이 많아야 우리들의 미래를 지켜낼 수 있을 것 아니야 !’

 

‘아아 이들의 탐욕이 대체 어디까지 뻗어나가는 건지..!! 정령 따위...정령술사 따위... 죽어, 다 죽어버려 !! 너희들 없는 세상이 차라리 평화로울 정도였어 !! 그깟 정령이 뭐라고... 정령술사들이 뭐라고....!! 너네들이 미래를 이끌어나갈 존재라고 하더니 이게 무슨 개지랄이냐고 !!!’

 

“...젠장. 이거야 원 버티기가 참 힘들군..”

 

과거에 어머니로부터 받았던 사명 그리고 정령술사라는 직위 그리고 이를 맡으면서 들었던 여러 폭언들. 이것이 지금 내 눈앞에서 보이고 들려오고 있었다. 이전에도 겪은 적이 있었기에 그 때 당시에 받았던 고통이 엄청났었지만 다시 들어봐도 고통이 경감되지 않는 느낌이다. 정령술사를 맡아오면서 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끄덕이고 그리고 존중했다. 설사 저런 폭언들을 들으면서도 내가 맡아온 그리고 내가 해야할 일이었기에 마음이 꺾여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정령이라는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너도나도 정령들을 가지겠다고 대중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욕심들이 어느 순간 과하게 뻗쳐 나오면서 심지어는 나에게 어머니 보고 추가적인 정령 제작을 하라는 말까지 했었다. 어머니의 일이라 내가 함부로 관여할 수 없는 노릇이었기에 그냥 참고 무시하고 넘어가야겠다 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왠지 모르게 정령들을 많이 거느리고 있자면 미래에 가져다줄 플러스 요인들이 많아질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했었다. 

 

다시 돌아와서 그렇게 어느 순간 나 역시 이들의 욕심에 알게 모르게 동참하게 되었고 결국 미래를 이끌겠다는 사명은 처참하게 쓰레기통으로 던져졌다. 그리고 그저 ‘욕심을 부리는 녀석들을 제압한다’는 명목 하에 이들 간에 벌어졌던 정령 전쟁에 나 역시 참여하게 되었고 기어이 인류가 받는 피해는 엄청나게 커지게 되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나에게는 사명이 있었고 거기에 반하는 이들은 제압하는 것이 필연. 그런 나를 지켜주는 것은 정령들이었기에 나는 이들을 최대한 도구로써 활용하였고, 정령술사를 맡고 있는 지금 이들을 이용해 뽕이란 뽕은 다 뽑아먹어야겠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녀석들이 반항해서 따라주지 않는다면 목줄로 이들을 통제하면 될 일이었으니까.

 

물론 이것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라고 생각은 했었다. 그럼에도 나는 정령술사이고 인간의 왕이기에 이들을 위한 사명이 나에게 있었기에 그것이 선하던 악하던 상관없이 뭐든 해야한다 라고 생각하면 그 생각마저도 모조리 상쇄되었다. 그렇게 어찌저찌 하다가 아폴리온이 운석을 떨궈서 인류는 멸망하게 되었고 나는 남은 인간들과 함께 방주에 승선하게 되었다. 다만 동생하고는 떨어졌기에 좀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나에게 맡겨진 그 사명을 이번에야말로 다하기 위해 아담과 릴리트가 나를 불러내었던 것이다. 다만 지금 지구에 살고 있는 녀석들이 정령들이라니 참으로 어이가 없을 지경. 도구로 존재해야할 녀석들이 지구의 주인이 된다는 것이 참으로 허탈했다. 원래 주인이 따로 있는데 어딜 함부로 입주하는 것인가. 그러니 나는 이들을 완전히 없애버리고 다시 인간 세상을 도래하기 위해 지금의 구원자와 대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치지직)

 

“실망이군 케이린”

 

순간 나에게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에 누군가가 또 들어온 것일까 싶었지만 그 목소리는 가히 냉랭했기에 순간 움찔했지만 고개를 들었다. 거기에는 내가 보고 싶었던 어머니가 있었다. 게다가 옆에는 무려 에이미가 서있었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그들이 아직 살아있었던 것일까 ? 순간 나는 너무 안도하고 반가워서 그들에게 달려갔다.

 

“어...어머니....! 에이미...! 보고 싶었...!”

“가까이 오지 마라.”

 

순간 어머니의 차가운 말 한마디에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나를 반가워할텐데 어째서...? 게다가 가까이 오지 말라니... 그러면서도 나는 에이 설마 아니겠지 하면서 다가가려고 했지만 어째서인지 더 이상 그들을 향해 나아갈 수 없었다.

 

“어...어째서..?”

“케이린. 내가 너에게 정령술사를 맡긴 것을 넌 도대체 어떻게 생각한거지 ? 나는 분명히 이야기해주었다. 그런데 너도 결국 그들과 함께 동조해서 이 지경을 만들어놓다니.. 너에게 그런 중요한 것을 맡긴 것은 어쩌고 보면 나의 큰 실책이었어. 그런 인간들에게 너가 함께했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인류를 멸망으로 이끌었어.”

 

도무지 알 수 없는 말을 하고 있다. 대체 무슨 말일까 ? 인류가 멸망한 원인이 나에게 있다는 것일까 ? 아니 사실은 아폴리온이 운석을 떨궈서 우리를 멸망시킨 것인데, 어머니는 도대체 왜 그 책임을 나에게 그리고 인간들에게 돌리고 있는걸까 ? 알 수 없어서 반문했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설사 그렇게 되었다고 해도 아폴리온이 멸망시킨 거잖아.. 나는 인간의 세상을 다시 되돌리려고 하는 것 뿐이야. 이제는 인간의 왕으로써 지금 지구에 살고 있는 정령 녀석들에게 심판을 내리고 다시 인간들이 살 공간을 되찾으려고 하는 것일 뿐인데 그게 뭐가 잘못되었다는 거야...?”

 

하지만 나의 말을 들은 어머니의 표정은 점점 험악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실수인 건가 싶어서 수차례 다시 생각해 보았지만 아무리 봐도 알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도구가 인간의 터전에서 살고 있는 그 자체가 말이 안 되지 않은가. 그렇지만 생각하면서도 어쩐지 나의 정신은 점점 망가지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웃기는군. 그렇게 내가 만든 정령들을 그들과 함께 도구 취급해놓고 이제는 방해되니 전부 없애버리겠다 이건가 ? 결국은 내가 한 때 만들었던 조수 이브를 포함한 정령들을 너 역시 그들과 똑같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던거야 ?”

 

그 말에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여태까지 생각하고 있었던 ‘정령=도구’라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듯, 어머니는 나의 행동에 대한 죄목을 열거하는 듯이 말하고 있었다. 나는 분명 옳은 길을 걸어오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 그렇게 말하니 뭔가 내가 해오고 있던 것이 전부 부정당하는 느낌이 들었고 정령술사 그리고 인간의 왕이라는 사명에 대한 의욕이 사라지고 있는 느낌까지 들었다. 어머니의 일갈은 계속 되었다.

 

“그날 정령 제작을 거부했다고 나를 죽인 놈들이 공방에 쳐들어온 날, 너 역시 그곳에 있었다. 뒤에서 전부 지켜보고만 있었더군.”

“...! 그건...! 그러니까...!” 

 

이들로부터 어머니에게 도구의 추가 제작 요청을 하라는 말을 들은 날 나는 몇몇 인원들과 함께 어머니의 공방을 습격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원해서 한 것이 아니다. 이들이 나를 협박하여 강제로 대동되어 간 것이었다. 실제로는 내가 죽이지는 않았고, 나는 그들의 행위를 그저 보고 있기만, 아니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만약 한발짝이라도 내가 말리려고 움직이는 순간 그들은 나의 목을 벤다고 하였기에 그것이 무서웠고 어머니를 구해내지 못 했다는 것에 대해 분노하기도 했었다.

 

“아니 더 듣고 싶지도 않다. 기어이 이런 일까지 해낼 줄이야... 아니 대단하다고 해야하나 ? 그래놓고 인간의 왕이라느니 하며 정령들의 세계를 없애고 인간의 세계를 재건할 거라고 ? 웃기지마. 너의 마음은 어디 가지도 못해. 인류의 탐욕이 불러온 인과를 부정하면서까지 응보를 받지 않고 하는 일들이 그렇게 쉽게 될 거라 생각하는거야 ? 과거따위는 아무래도 잊어버리고 그저 남에게만 덮어씌우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그러므로 네가 하는 행동은 정당하다. 너만이 그렇게 믿고자 하는거 아니야 ?” 

“아니야 어머니...그러지마... 에이미, 너라도 말 좀 해줘...!”

 

점점 내가 어머니로부터 부정당하는 것 같아 정신이 버틸 수 없는 상황이 오게 되었다. 그러니 에이미라도 어머니를 말려줘야겠다는 생각을 해서 에이미에게 부탁했다. 동생과 나는 원만한 관계였었고 놀 때도 잘 놀았고 항상 의지가 되었던 아이였기에 그녀만큼은 나를 위해 뭐라고 말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 돌아온 것은 오히려 나를 무너뜨리게 만든 말이었다.

 

“언니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

“어...?” 

“언니 때문에 내가 죽었어.”

 

나 때문에... 동생이 죽었다고 ? 동생은 메피스토펠레스 녀석이 오퍼레이터로 있는 방주에 탑승하였다. 그러나 동생은 거기서 죽었다. 메피스토 녀석이 한 눈만 안팔았어도 죽지 않았을 수 있었던 것인데 어째서 내 탓이 되는 거지 ? 

 

소중한 가족으로부터 폭언이 나를 향해 연이어 날라오고 있었다. 나의 정신은 점차 무너져가고 있었다. 내 마음도 꺾이고 있었고 이대로 가다간 정말 이 공간에서 쓰러질 것만 같았다.

 

“그건... 메피스토 녀석이 한눈을 팔았으니까...!” 

“남 탓 하지마 !! 애초에 언니가 그들과 함께 그런 짓만 안 했어도 내가 방주를 탈 일은 없었어. 하지만 언니 같은 사람들 그리고 언니 역시 우리들을 죽음으로 내몰았어. 아무 죄없는 사람들은 도대체 뭔 죄야 ? 행복하던 생활에 갑작스러운 재앙이 덮쳐진 사람들의 심정을 언니가 아냐고 !

“에이미... 그러지마...”

“게다가 메피는 내가 죽을 때도 끝까지 옆에 있었던 아이였어. 죽기 전에 나의 곁에 함께 해주었다고 ! 10일 동안에 나는 메피와 함께 신나게 놀았었어. 내가 의지할 수 있었던 존재였고.. 그렇게 죽었어도 나는 그 아이를 정말로 친구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그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엄마와 언니에게 재밌게 들려주려고 한껏 들떠있었는데.. 언니는 그 아이를 그렇게 생각했던 거구나.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 인간의 왕인지 뭐시긴지 하는 걸로 왕놀이나 하며 그저 얼버무리고 있을 뿐이잖아.” 

“뭐...?” 

 

그 녀석이 내 동생이 죽을 때 같이 있어주었다고...? 말도 안되는 소리이다. 그 녀석은 동생을 죽인 녀석인데 어째서 내가 생각했던 것하고는 다른 이야기가 나오는 거지 ? 머리 속이 복잡해져만 간다. 대체 메타트론에서 동생은 무슨 일을 겪었던거지 ? 블리핑인 것일까 ? 정보가 부족하다...!

 

“나 죽을 때 언니는 어디있었어 ? 그저 정령들을 또 어떻게 다룰까 어디를 파괴해서 다른 정령들을 복종시킬까 이것만 생각하고 있었겠지. 그리고 더 나아가서 엄마를 위협하고 때려죽였던거야 ?” 

“아니야 오해야 !! 나는 그저...!!” 

“아니 지금 보니까 언니는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야. 내가 알던 언니는 이런 모습이 아니었는데...어쩌다가 이렇게 변해버린거야 ?” 

 

망연자실했다. 어머니도 동생도 결국은 내가 죽였다는 거라니. 억지라고 생각했다. 스스로도 부정하면서도 이들이 하는 말이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큰 충격으로 인해 어떤 말을 할지 조차 생각이 안 났고 간신히 동생의 이름을 불러보았지만 그 이후에 나온 말은 나를 산산조각 내는 것이었다.

 

“에이미...!”

“내 이름 부르지마 그리고 이제 말 걸지마. 당신은 내 언니가 아니야. 그저 내 언니의 모습을 하고 언니의 이름을 갖다붙인 또 다른 누군가니까.” 

“아....”

“들었나 ? 그렇다는군.”

“어째서...?” 

 

나는 점차 부서져가고 있었다. 하지만 방금 그녀의 말로 조금씩 금가고 있던 내가 이제는 완전히 박살나서 먼지가 되어 사라져가는 느낌이 들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고 마침내 나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인간들에게는 부정당해도 사명이라고 꾹 참고 할 수 있었던 것인데... 소중한 어머니와 동생에게 부정당하다니. 나는 조금씩 울먹이며 간신히 말을 이어나갔다.

 

“대체 왜 그러는거야...? 왜 나에게 그런 심한 말을 하는거냐고...! 다 오해야. 이럴 리가 없어...!! 다 설명할 수 있어.. 그러니 그런 말은 제발 하지 말아줘..!!”

“아직도 파악을 못했구나. 뭐 나 역시도 너를 더 이상 딸로 보지 않을거야. 너는 우리 가족에게 실망만 안겼어. 설사 너가 인간의 왕으로써 실패하더라도 에덴의 구원자의 손에 죽더라도 우리는 너를 보지 않을거다. 영혼 상태로 구천이나 떠돌아라.”

“아니야 !!!!!”

 

와장창 !!!

 

결국 나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주먹을 내지르고 말았다. 내 앞에서 어머니와 에이미의 모습이 산산조각 났다. 이들의 모습이 찢어진 종이조각처럼 허공에 흩날리고 있었다. 이렇게 박살냄으로써 실의는 간신히 끝났다. 아니 끝났다고 하기 보다는 내가 이 실의의 회선을 강제로 끊어버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결국 나의 정신은 끝내 붕괴해버리고 말았다, 

 

“하아...하아...! 아니야... 내가 그럴 리가 없어 !!!”

 

과호흡이 나오고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나왔다. 나는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 정령들이 결국 자신의 세계를 멸망으로 이끌었다고 반복해서 생각해서 한 말임에도 어머니와 에이미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은 나에게 충격으로 크게 다가왔고, 결국 인간의 왕이라는 말 자체가 무색하게도 나는 거기서 무너지게 되었다. 한참을 울고 한참을 허공에 소리를 질러도 어머니와 에이미는 다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긴 시간이 지났을까 ?

 

“아니야.. 이젠 되었어.”

 

이내 이를 어떻게든 떨쳐내며 이젠 되었다고 스스로에게 위안을 건네본다. 간신히 회선을 끊었지만 탈출은 불가하게 되었다. 차라리 그게 나았을려나 ? 오히려 이걸 계속 받아내고 있는다는 그 자체가 고문이자 처형이었을테니까. 어쩌면 내가 실의의 공간을 너무 우습게 본 것일지도 모른다. 아직도 잔상이 희미하게 눈 앞에서 아른거린다. 

 

“구원자... 네놈은 어떻게 하고 있는 것이냐... 너 역시 무너지겠지 ? 나도 이런데 너가 안 무너질 리 없을거다.” 

 

그렇게 무너져버린 나의 정신을 어떻게든 바로 잡아보려 하였다. 허나 어머니와 에이미의 말이 아직도 귓가에 메아리처럼 웅웅 들려온다. 더 이상 내가 딸과 언니가 아니라는 말 그리고 내가 결국 이들을 죽였다는 잔인한 사실들은 오히려 나의 정신에 금이 가게 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어떻게 해서든 추스려야 했다. 아니 그보다도 지금 구원자 녀석은 어떻게 하고 있는걸까? 그렇게 의문을 제기하며 구원자 쪽을 보았다. 하지만 그 역시 실의로 인해 무너질 것 같은 모습을 내 눈으로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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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케나인 성 내부-

 

“어...여긴 아케나인 성...?”

 

간신이 정신이 들었다. 그런데 깨어나보니 아케나인 성이었다. 실의의 공간이라고 하더니 오히려 내 집무실이 있는 성으로 보내진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방금 한순간 반대편의 차원에 케이린의 모습을 본 듯 한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여기서는 당연히 보일 리가 없었다. 차원 너머인데 보이는게 이상한 거 아닌가 ? 그렇게 허공을 보며 생각에 잠겨있는데 유리아가 나에게 말을 걸어주었다.

 

“괜찮으신가요 ? 환각이라도 있으신지 ? 뭔가를 너무 뚫어져라 보시는데 평소의 케이티 위즈님 답지가 않아요. 저희 에덴의 구원자님이시고 지금은 게이트 상황을 해결하러 가는 거잖아요. 그러고 있어서는 안되요. 물론 위즈님은 인간이시니까 저희가 보호해 드려야하죠. 아 그래도 본인을 대체할 구원자가 또 있으니 걱정은 안 해도 되요.” 

“대체할 구원자 ? 그걸 구할 수 있어 ? 날 소환한다고 마력을 대부분 썼다고 하지 않았어 ?” 

“무슨 소리세요. 며칠 전에 우리와 합류한 케이린 그 사람이 있지 않나요 ? 그분이 우리 쪽 구원자로 합류하였고 현재 신체 검사와 정령 술사 능력 등 검사 중이어서 끝나게 되면 본인 혼자만이 아니게 될 거에요. 아 구원자 후보라고 하는 것은 옳지 않을 것 같네요. 애초에 후보군은 위즈님이셨으니까 말이에요. 어? 전화가 왔네요, 잠시만요. 유리아입니다. 아 ? 케이린이 구원자 수행에 아무 문제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나왔다구요 ? 잘 되었네요 ! 앞으로의 일을 논의할 거니까 바로 성 집무실로 모셔와주세요. 위즈님, 좋은 소식이에요 ! 케이린이 드디어 구원자로 활동 가능하다고 해요. 이제 위즈님은 후보이시니 다음 호출 때까지 방주에서 계속 대기하시면 될 거에요. 나중에 뵈요. 후훗”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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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보라... 그렇게 나를 구원자라고 추켜세우더니 한순간에 대체될 자원을 찾았으니 마치 이제는 버려도 된다 라는 말을 돌려서 했다고 하지만 그렇게 쉽게 할 수 있는 것인가. 

 

(치지직)


-태양기사단 훈련장-

 

“케이티 위즈님 여기는 어쩐 일이신가요 ? 위즈님께서는 아직 대기 상태이십니다. 여기에 있으시면 안되요.” 

 

이번에는 또 클레르가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무슨 일일까 ? 

 

“그래도 앞으로 있을 게이트 상황 그리고 내부 분열 등에 대처해야할 능력 정도는 갖춰야하니 훈련 정도는 해야한다고 생각하는데 ?”

“훈련이요...? 그런 것은 이제 위즈님께는 옛말입니다. 왜냐하면 계속 내부에서 위즈님께 불만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구원자 교체 이야기도 나온 것이구요. 그러니 방주에서 편하게 있어주세요. 뒷일은 저희가 새로운 구원자님과 함께 해나갈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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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하게라... 정확히는 어떻게 있으라는거지 ? 여러차례의 전투에서 목도한 동료들의 부상과 여러 개의 정령석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들려오는 나에 대한 지적까지. 앞선 유리아도 그렇고 클레르도 후보와 대기라는 단어를 언급한 것을 보면... 여태까지의 내 행적이 너무 무능함을 보여준 것을 함축해서 이야기한 걸까 ? 그리고 반은 강요지만 반은 자발적으로 여러 훈련을 해왔는데 앞으로 어떻게 편히 있으라는걸까 ? 

 

(치지직)


-방주 메타트론-

 

“모르겠어...괜찮을까 ? 이렇게 있는 것은 의미 없지 않을까 ?” 

 

그렇게 혼잣말을 하는데 등 뒤에서 메피스토펠레스가 나타났다. 

 

“현재 상황에 대해 많은 걱정을 하고 계시는군요. 구원자님. 저 역시도 그런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에덴의 구원은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것인가.’ 라고 말이에요. 그도 그럴게 설사 '에덴을 비롯한 모든 존재의 멸망'이라는 배드 엔딩에서 벗어날지라도 사실 저희가 그동안 잃은 것이 돌아오지는 않아요. 물론 구원자님께서 에덴 구원 이후에 지구는 평화로운 에덴의 세계가 될 뿐 인류가 살 곳은 전혀 없게 되죠. 하지만 지금 상황은 그게 아니고 언제 끝날지 모를 터널의 중간부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어요. 게다가 현재는 케이린 파우스트와 연합을 하고 있다 라는 현재 상황이 가히 희망적이라고는 할 수 있겠죠. 그러나 사실 의미가 없는 것이 어차피 지금 연합하고 있는 것이 한가지 목표 때문인 것이지, 언제든지 파토 당하고 뒤통수를 맞을지 모르는 상황에 있어요. 또한 묵시룩의 기사들은 그 힘이 방대하기 때문에 알량한 인간 연합 따위로는 절대 상대할 수는 없을 것이구요. 또한 케이린을 비롯한 초인류들은 저희들의 적. 그렇기에 게이트를 통한 초인류의 침략은 더이상 있어서는 안되는 것이기도 해요. 다시 돌아와서 어찌되었던 같은 목적이라고 하지만 지금 연합은 하고 있고 그렇게 묵시룩의 기사들을 뚫고 아폴리온을 저지한다는 큰 산과, 그 이후 초인류를 모조리 없애버린다는 또 다른 산을 해결해야겠죠. 물론 이걸 넘는다면 에덴의 구원은 최종 종료될 거에요. 그럴 때는 아무리 인간의 왕이라고 할지라도 구원자님을 탓하지 못할 거에요. 이유가 무엇이냐고요 ? 구원자님을 원망하고 꾸짖을 케이린을 비롯한 초인류들은 이미 구원자님 손으로 전부 없애신지 오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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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려는 그를 보아하니, 왠지 나의 얼굴에 씁쓸함인지 재미인지 모르는 웃음을 짓게 되었다. 

 

“허 웃기는군. 내가 에덴의 구원자로 있다라... 별 괴상한 세계선이 다 있군. 설사 가능성의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if일 뿐 그럴 일은 하등 없을 것이다. 또한 메피스토 저 녀석은 정말 뻔뻔하게도 무슨 개소리를 지껄이는 것이냐.. 슬슬 이 장면을 끝내야겠군. 아무리 남인 입장으로 보면서도 의외로 보기가 힘들군. 정령 녀석들.. 그렇게 구원자로 불러다놓고 이후에 쉽게 팽할 녀석들임이 분명해지고 있어. 정령놈들도 결국 인간인 구원자를 도구처럼 쓰고 버릴 터. 서둘러 저걸 끊지 않으면 이 자도 무너져 버릴거야. 그의 상태를 그 스스로가 알지 모르겠지만 그는 지금 눈에 초점이 없고 호흡도 빨라지기 시작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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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지직)


-베르크 산맥- 

 

작전에 들어가려고 할 때 미리암이 나를 불러서 뭐라고 말하였다.

 

“케이티 위즈, 잘들어. 지금의 적은 현재 우리 에덴의 내부에도 있지만 최종의 적은 초인류 녀석들이야. 너는 에덴의 구원자이니까 확실히 그에 대한 중압감이 있는 것은 알아. 그렇지만 가끔 가다가보면 적극적이지 못한 것 같아. 초인류들에게 설마 동정을 느끼는 거야 ?. 물론 동정이야 느낄 수 있겠지. 그런데 사실은 쟤네들의 자업자득으로 멸망한 거잖아 ? 과거를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우리가 지구에서 살고 있다는 이유로 다시 탈환하겠다고 게이트를 열고 들어오는 것 자체가 오히려 뻔뻔한거 아니야 ? 엄밀히 말하면 그건 우리 책임이 아니야. 잘 생각해봐. 너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해도 그들을 돕겠다고 한다면 너는 에덴을 그리고 나를 비롯한 정령들을 모두 적으로 돌리는 거야. 너가 누구의 구원자로 불려온 것인지 잘 생각하고 행동해. 현재 우리들의 고통이 당시 멸망했던 초인류의 고통보다 훨씬 더 심각한 거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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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결국에는 초인류는 악, 정령들은 선 이라는 하나의 경계선의 형성. 그럼에도 나의 실책으로 인해 정령은 물론 인간들에게까지 불리하게 돌아가버린 상황이다. 적어도 같은 인류이기에 아폴리온으로부터 이들을 위험에 빠트리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에덴의 구원자라는 것이 오히려 발목을 잡는 것일까. 어쩌면 나는ㅡㅡ

 

“맞아. 너는 지금 이상해.” 

“!! 파우스트 박사..?!”

 

순간 내 앞에 파우스트 박사가 나타났다. 나를 위해서 조력해 준 또 한 명의 인물. 하지만 지금의 그녀가 말하는 이야기는 나에게는 너무나도 잔인한 이야기였다.

 

“정령들의 구원자로 왔으면서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스스로 활약한 지분보다는 정령들이 오히려 도와준 지분이 많았어. 또한 그런 정령들이 너를 보호하기 위해 희생하였고 때로는 너가 운좋게 살아남기도 했었지. 심지어는 너와 배터리를 이루고 있는 방주 오퍼레이터인 메피스토펠레스까지 죽음으로 내몰기까지 했어. 그럼에도 너는 아직까지 정상적으로 있다니,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 

 

“그만해” 

 

“아니면 정령들이 계속 도와주니까 이들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구원에 앞장서야지 하고 있는 것 같은 모양인데, 그들이 천년만년 너의 곁에 있어줄 것이라 생각하는거야 ? 그들이 죽으면 다시 돌아오기까지 수백년이 걸리는데 그 시점에서는 너는 이미 없어. 그럼에도 그들은 언젠가 돌아오겠지 라며 스스로에게 희망고문 하면서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는 거 아니야 ?” 

 

“그만해” 

 

“살고자 하는 이유로 단순히 '아무것도 모른다' 라고 말하는 것이 맞아 ? 그동안 이 곳 에덴에서 벌어져왔던 사건들 그리고 수정동굴, 잊혀진 영웅의 유적, 죽음굴, 가온의 유물 사원을 비롯해 심지어는 내가 유리아를 구하라고 내 잔류사념을 모두 희생하여 뚫어주어 들여보낸 그녀의 기원의 탑에도 다녀왔던 너인데 거기서 아무것도 깨달은 것이 없다고 ? 그것은 그냥 너의 안위만을 찾아서 구멍에 들어가고자 하는 하나의 도피성 발언일 뿐이야. 너는 이들의 구원자로 있음에도 그들의 구원에 전혀 진심이 없어. 자신감도 없고 그저 비굴한 모습으로 정령들 앞에 있어야할 너가 오히려 뒤에 숨어있기만 할 뿐이지. 그런 무능하고 간절함이 없는 너가 누구를 구하겠다고 구원자로 있는 것 자체가 뻔뻔하다는 생각 안들어 ?” 

 

“그만해” 

 

“모든 것을 알아야 구할 수 있다고 ? 그런 배부른 소리가 어디있어. 너의 마음은 그저 허울에 불과해. 너가 그동안 돌아다녔던 곳에서도 아무것도 깨달은게 없는데.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양은 엄청나게 방대한데 그걸 전부 안다고 뭐라도 할 수 있을 거라고 자신하는거야 ? 그 모든 것들이 다 진실이라고 생각하는거야 ? 그 중에는 거짓도 포함되어있어. 너가 그걸 다 알려고 하는 순간에도 종말은 이미 진행 중이야. 당장에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도 소중한 존재가 위기에 빠지면 그들 하나 구하겠다는 일념만으로 일단 뛰어들고 보는데 너에게는 그럴 자신감이 없는거야 ?” 

 

“그만해” 

 

“그래 전부 구할 수 없는 것은 그렇다고 쳐. 그래도 너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해봐야하는 것이 정상 아니던가 ? 하다못해 게임 캐릭터들도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본인의 몸 하나 불사해서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지. 언젠가는 에덴을 구원할 수 있다고 쳐도 지금 너가 하는 것을 보면 이미 세상에 종말이 온 이후에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것과 다름없어. 너는 결국 누구도 구하지 못했어. 구하려는 존재는 오히려 종말의 신이 되어버렸고 너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오퍼레이터는 이미 진작에 먼지가 되어 사라져버렸으니까. 실패를 계속해서 거듭한 너에게 더이상 커버가 될 만한 것이 있을 거라고 너 스스로가 그렇게 믿고 있는 것 아니야 ?” 

 

“ㅡㅡ제발 그만해 주세요.” 

 

그 순간 주변의 검은빛들이 하나둘씩 새어나오기 시작했고 파우스트 박사는 물론 그 주변 배경을 어둡게 만들었다. 

.

.

.

.

.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나온다.

 

모든 것이 

무너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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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럴 거라 생각했다. 아폴리온을 납치할 당시 그 녀석과 처음 조우했고 기선 제압하였을 때 그의 눈을 보았는데 그의 눈은 아무것도 모르는 눈치였다. 그저 '어째서 자신이 이런 일을 당해야하는 거지 ?' 라는 의문만을 가득히 채운 눈빛이었을 뿐. 그리고 비비안 녀석의 모략에 제대로된 판단도 하지 않고 나의 계획을 망친 것은 물론 자신이 그렇게 아끼고 있는 정령 놈들에게도 위협을 가져다 준 것이 되어버렸으니 얼마나 웃기지 아니한가. 그래놓고 말한 것이 '난 아무것도 모르니까' 라니. 그저 구원자의 이름 하나만으로 허세를 부려온 것 아닌가. 

 

그렇지만 나 역시 사돈 남말은 못하는 것이 나도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필요한 지식만 지닌 채로 사명을 다하기 위해 게이트를 이용해 에덴을 침공해서 살육전을 벌였을 뿐. 그런 그의 말에 나도 연합이랍시고 대답은 해줬지만 일부는 은폐했다. 어차피 적인 것은 변함 없기에 부족한 정보만을 던져주는 것만으로도 족하니까. 그렇게 정령놈들에게 강제로 구원자랍시고 끌려왔으면서 뭘 그렇게 저돌적으로 행동하는 것인지. 결국에는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 놈들을 자신도 모르게 도구 취급하고 있는건데. 그것 봐라, 네놈은 진작에 한계였다. 그렇기에 나는 그를 회유했다. 녀석은 구원자로써 확실하게 행동할 자신이 없어보이고 무서워하며 무엇보다도 지금 이런 상황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상태이기에 내 쪽으로 오면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런데 그의 눈 앞에 나타난 여성이 과연 내 어머니가 맞긴 한 걸까 ? 그저 나를 그리고 지금 여기에 있는 구원자를 무너뜨리기 위한 하나의 장치가 아닐까 ? 다시 생각해보니 도구들 주제에 이런 것을 만들어놓다니 너무나도 괘씸하다. 그런데 이 녀석에게도 어머니의 모습이 나왔던 것이라면 뭔가 있었을 것이다.

 

다른 생각으로 정령들의 세계 에덴은 우리와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어도 결국에는 우리 인간 세상처럼 거짓과 무시 그리고 배신과 차별, 범죄 등이 난무한 곳. 평화와 행복이 가득찬 세계라는 것은 그저 이를 감추기 위한 가면일 뿐. 그런 곳이라는 것을 본인은 알면서도 숨기고 그저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그는 정령들의 구원자로 활동하고 있다. 설사 에덴을 우리로부터 구해내기만 하면 모든 것이 끝날 것이고, 다시 평범한 본인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아닌지 싶기도 한다. 

 

사실 나 조차도 그랬다. 인간의 왕이라는 이 자리도 사실은 굉장히 불편한 자리다. 이들이 원하는대로 그들의 세상이 다시 돌아오기만 한다면 인간의 왕을 내려놓아도 될 것 같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의 그도 그럴 생각을 할 것이다. 구원자라는 것이 실제로는 섶나무 위에 눕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얼마나 불편하고 짜증나는 자리인 것인지. 그럼에도 그는 계속 버티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비웃음이 나온다고 하지만 한편으로는 안타까울 지경이었다. 결국 그의 사명은 '에덴과 정령들을 구원한다'는 것이지만 실상은 강제로 떠맡겨진 자리임이 분명하니까.

 

지금의 그는 무너지고 있었다. 그가 나와 대치하는 과정에서도 그리고 묵시룩의 기사 라고 자칭하는 녀석들과의 전쟁에서 벌어졌던 수많은 정령들의 희생, 그 중에 특히 메피스토펠레스 녀석의 희생은 녀석에게는 아주 큰 트라우마가 될 것이다. 거기에 자신의 무지를 저주하면서 울부짖는 것까지. 

 

적인 나조차도 그는 죽여야할 상대라고는 하지만 이 점만큼은 어쩌면 나와 닮은 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째서지 ? 이걸 이해한 것만으로 오히려 안심하다니. 이상하게 마음이 요동쳐온다. 어째서일까 ? 나는 대체...무엇을 하려고 하는 것인지... 그건 그렇고, 빨리 이녀석의 것도 부숴줘야겠어. 아폴리온을 저지한다는 공동의 목표 하에 녀석은 우리에게는 필요한 존재이니까.

 

“아니 그렇다고 해도 아직은 아니야” 

 

“...어 ?”

 

믿을 수가 없다. 방금의 공격이 구원자 녀석에게 치명타가 되었을 건데...

그렇게 정신적으로 심하게 공격받고도 일어날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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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 박사 옆에 메피스토펠레스가 나에게 말을 건넨다.

 

“본인도 잘 알고 계셨을거에요. 구원자의 역할이 많이 무겁다는 것을요. 그걸 저도 그리고 모두가 알고 있어요. 그러니 구원자님, 아니 케이티 위즈 님 버거우시다면 그만두셔도 되요. 본인이 무능해서 활약을 하지 못 하는 사실과 무지에 의해 남들에게 피해만 끼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괴로워하신다면 내려놓으시면 되요. 에덴의 구원... 어쩌면 케이티 위즈 님께서는 이를 처음부터 바라지 않으셨을 수도 있겠죠. 그걸 숨기면서까지 계속 아득바득 버티시는 것은 그렇게 좋은 것이 아니거든요. 저까지 마음이 아파지고 지금의 케이티 위즈님을 보면 더이상 에덴의 구원은 안될거라는 생각이 너무 크게 드네요. 그러니 다시 원래 세계로 보내드릴게요. 구원이라는 중압감에서 이제는 벗어나 주시길 바랄게요.”

 

그녀의 발언은 어쩌면 나를 배려한 발언이었을 것이다. 그렇다 사실 알고 있었다. 구원자의 역할이 굉장히 무겁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내가 누군가를 위해서 몸을 던진 적은 없었다. 그리고 나의 자의적 판단으로 인해 오히려 상황은 더 악화되었다. 결국 소중한 이들을 잃었고 유리아는 아폴리온이 되어버렸다. 이런 무능한 나를 위해서 메피가 몸을 던졌다. 그러나 실제로는 내가 그녀를 죽음으로 밀어넣은 것이나 다름 없었다. 정말로 내가 최선을 다했던 것일까 ? 그저 '아무것도 모른다'라고 말하면 나의 무능함 등 모든 것이 용서가 되는 것이었을까 ? 

 

그렇다고 구원자를 지금 여기서 그만둔다고 과연 나는 편해지는 걸까 ? 정답은 전혀 아니다 이다. 여태껏 그들이 나에게 해준 것 그리고 나도 그들을 지휘하면서도 느꼈던 것이지만 그것은 도피이고 나를 잘 대해주었던 이들을 내 손으로 직접 팽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 그렇기에 나는 다짐했다. 이번에야말로 나의 실패를 인정하고 반성하여 반등해보겠다고 또한 묵시룩의 기사들을 전부 타도하고 유리아를 구해내겠다고. 그리고 내가 아무리 인간이라 할지라도 에덴의 구원을 위해서 기꺼이 목숨까지 던지겠다고. 메피가 나를 위해 그랬듯이 이번에는 내가 소중한 이들을 위해서라도 절치부심 하겠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문득 케이린이 내 머리에 술식을 걸어놨다고 했던 어느날의 꿈에서 그녀는 나에게 이렇게 물었었다. 

 

‘그대도 여러 가지 생각이 있어서 ’구원자‘를 받아들였겠지. 말해줄 수 있겠느냐. 사명은 어떻게 해야 받아들일 수 있지 ? 그 과정에서 자신이 지은 죄는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냐 ? 현재 시점에서 우리가 서로 용서할 수 없는 자를 마주했을 때는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 자신이 ’선택받은 자‘로 간택받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 좋겠느냔 말이다...!’

 

그동안 나는 구원자이자 정령술사를 맡아오면서 케이린이 말한 고민과 비슷한 고민을 해왔다. 구원자라는 사명에 어떻게 책임을 지고 받아들여야 했는가. ’죄’라고 한다면 나는 게이트 상황에서 그리고 현재 묵시룩의 기사들이 모든 것을 끝내려고 하는 상황에서 모든 정령을 구하지 못한 죄 그리고 인류를 저버린 죄일 것이다. 과연 그 죄를 어떻게 속죄할 수 있는 것인가. 케이린과 싸우면서 이어지는 평행선을 어떻게 좁혀볼 수 있는가.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만 하는 것인가.

 

...그것은 ‘선택받은 자’라고 하면서도 내가 선택한 일. 

 

‘....미안해. 아무리 생각해도 나 역시 이렇다는 정답을 말해주긴 어렵네.’

‘그래도 너만큼은 뭔가 확신을 가질 줄 알았더니만... 뭐 그럴 수 있겠지.’

‘그렇지만..’ 

 

정령들을 구원한다면서도 여러차례 고민과 후회를 거듭하면서도 그럼에도 나는 계속해서 생각해왔다. 

 

“살고 싶어. 죄를 지었어도, 당신과 여러차례 싸우면서도 나는 내가 구원하려는 소중한 존재들과 함께 하고 싶어.” 

 

나와 함께 해준 이들을 위해 그리고 나 때문에 살고 희생했던 메피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게 하기 위해 나는 내가 구원하려는 소중한 존재들과 함께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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쨍그랑

 

그와 동시에 실의의 공간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나의 욕망이 어쩌면 여기를 탈출하려는 하나의 열쇠가 될지 모른다. 그렇기에 나는 이야기하기로 했다. 설사 그것이 비웃음을 살지라도, 불가능하다 라는 이야기를 들을지라도, 나는 그렇게 하고 싶다는 것을.

 

그렇게 파우스트 박사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래서 어떻게 할거지 ? 메피스토펠레스가 친히 너를 돌려보내 주겠다는데 이제 구원자라는 거창한 타이틀은 떼도 돼. 아무도 뭐라 할 사람이 없어. 왜냐하면 종말로 인해 에덴의 정령들이고 인간들이고 이미 싹 죽었으니까. 그러니 너에게는 타격이 없어. 너에게 에덴의 구원이라는 짐은 너무 과하였던 거니까.”

 

하지만 나는 말했다.

 

“아니 그렇다고 해도 아직은 아니야” 

“아직은 아니다 ? 넌 이미 한계를 충분히 노출했다. 그러고도 버티겠다는 소리야 ?” 

 

파우스트 박사의 말이 비수로 들려온다. 처음에는 그저 그들을 뒤에서 지휘하는 것만이 답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들을 지휘하면서도 결국 나는 이들을 지키지 못했으며 그들 역시 싸우면서도 '살고 싶다' 라는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그들을 비롯한 모든 이들을 내가 구원해내야겠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종말을 일으키려는 '악'에 대하여 '살고 싶다'는 '선'으로 타도하겠노라고. 그리고 제아무리 정령술사의 능력이 케이린보다는 떨어질지 몰라도 그것은 이유가 되지 않는다. 정령들이 나를 도와주고 있다고 하지만 결국 에덴의 구원은 내 손에 달려있다. 그렇기에 나 스스로도 답을 내려야한다. 

 

“그래, 답을 내리겠다고 한다면 말해봐라” 

“아직은 몰라. 하지만 나는 이들을 지켜내고 함께 살아가고 싶다는 욕망이 있어.” 

“하, 욕망이라. 욕망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않아. 그것만으로 뭘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거지 ?”

 

쩌저적... 

 

실의의 공간에 금이 더욱더 가기 시작했다. 나는 멈추지 않고 나의 생각을 또박또박 전달하였다.

 

내가 왜 구원자로 있어야 되는지를 증명하기 위해서.

 

 

“욕망을 내세우는 것이 뭐가 문제야 ? 사람의 욕망은 대개 자기편의적이야. 맞아, 지금까지의 행적으로 보면 워낙 실패한 것도 많고 오히려 정령들의 뒤에만 서있는 병풍처럼 있었기에 나는 구원자 낙제점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할말 없어. 그렇지만 거기서 깨달았지. 나를 지켜주는 이들 그리고 메피의 죽음까지 이들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겠노라고. 또한 에덴의 구원자로 불려온 만큼 나는 최선을 다하겠노라고. 설사 그 과정에서 내가 깨진다고 해도 구원해 낸 에덴에서 웃으면서 지내는 정령들을 생각하면 오히려 그것이 나을지도 모르지. 그러니까 나는 계속 버틸거고 계속 달릴거야. 그들이 믿어주고 나를 불러온 만큼 나는 해낼 거야. 무능하다고 할지라도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할 것이니까. 그러니 지금에 와서 중압감이니 뭐 내려놓으면 편하다느니. 그딴 달콤한 말로 끝낼 수 있을까 보냐 !!!” 

“!!!”

 

쩌저적 ! 쨍그랑 !!!

 

“그런가. 이거야 원, 내가 졌군.”

“네, 구원자님은 그렇게 쉽게 포기하실 분이 아닌걸 저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구원자... 생각 이상이었다만 저리 끈질긴 녀석이었던가. 그렇다면 지켜보도록 하겠다, 너가 에덴을 그리고 정령들을 구해줄 수 있는 진정한 구원자로 거듭날 수 있을지를 말이다. 한 말이면 당연히 지켜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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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실의의 공간은 깨졌다. 나와 케이린은 그렇게 탈출에 성공하게 되었다. 눈을 떠보니 라리마와 대치하던 곳으로 다시 오게 되었다. 함께 와준 정령들이 그런 우리의 모습을 보고 크게 놀랐다.

 

“구원자님 !!!”

“폐하 !!!”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상태를 살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우리를 실의의 공간에 가둬버리고 라리마는 투명벽을 세워 추격에 방해를 주었다는데 우리가 탈출하면서 그 벽도 같이 깨졌다고 하였다.

 

“역시 폐하십니다. 저 녀석은 당연히 이 공간에서 탈출을 할 수 없을거라 생각했는데, 어떻게 탈출하신겁니까 ?” 

“...아니 이번만큼은 구원자 녀석이 해낸 것이다.” 

“구원자님께서요...?!”

“저 거짓된 주인이...?”

 

정령들이 모두 놀랐다. 여태 그녀가 나를 인정한 적은 없었다. 물론 적으로써는 당연한 것이고 현재는 아군으로 있다고는 하지만 적장에게서 인정을 담은 발언이 나올 줄은 몰랐다. 그래서 나는 믿기지 않아 그녀에게 반문하였다.

 

“...내가 그랬다고 ?” 

“그렇다 너가 해낸 것이다. 나는 내가 겪었던 과거를 보면서도 그 과거를 다 악하다고 생각하였고 결국 이는 내가 외면해버릴 수밖에 없었던 과거가 되어버렸다. 하물며 내가 벌였던 일들 때문에 소중했던 이들로부터도 폭언을 들으며 정신이 무너져버리는 등 실의에 빠졌었고 나는 결국 버티지 못했었다... 회선을 끊으며 탈출의 의지를 셧아웃 해버리는 등 도망치게 되었다.”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표정은 어딘가 쓸쓸해보였다. 파우스트 박사에게서 안 좋은 말을 들었던 것일까 ? 하지만 그녀는 이내 표정을 펴며 나에게 이야기를 계속 했다.

 

“그런데 네놈은 어떻게 그런 강인한 정신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지 ? 너는 온갖 험한 말들을 들으면서도 정신이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맞서더라고. 포기하지 않고 거기서 다시 일어나는 모습은 가히 나도 놀라게 만들었다. 그래서 여기에 구원자로 불려온 것인가 ? 그 점은 친히 내가 높이 사도록 하겠다. 이번만큼은 내가 네놈에게 빚을 졌다, 다시 보았다 구원자.” 

“이거야 원.. 쑥쓰럽네. 뭐 그렇지만 나도 내 스스로에 대한 반성거리가 많기도 했었으니까. 이제는 정말 내 스스로도 증명해내고 싶어. 내가 구원자라는 것을. 그리고 모두를 구원할 것을. 이제는... 아무도 죽게하지 않을거야. 정령들도 그리고 당신도.” 

“....!” 

 

그녀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만큼 그 공간을 거치면서도 나에 대한 반성과 다짐이 오히려 나를 더욱더 용기를 내게 하였다.

 

“그런가. 포부가 대단하군. 그럼 증명하거라. 나에게 너와 함께하고 있는 정령들에게 실망을 안기지마라.” 

“...응, 물론이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나의 모습에 그녀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저런 표정도 지을 수 있는 거구나 싶었다. 나랑 대치했을 때는 워낙 악한 의미의 미소를 지었던 그녀였기에 더더욱.

 

“그럼 이제 나아가 볼까. 앞으로 얼마남지 않았다. 현재 라리마라는 녀석은 치명상을 입었기에 별로 버티지 못할 것이다. 가보자.” 

“아아... 가보자고. 이번에야말로 해내보자. 실수하지 않겠어. 가자 !!”

 

“돌격하겠습니다 !!”

 

정령들이 모두 외쳤다. 나와 함께 해준 클레르와 클로이를 비롯한 정령들은 물론 이 때만큼은 흑기사도 릴리트도 나의 말에 동조하듯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유리아.. 이제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와야 할텐데, 걱정이 있지만 그래도 맞서 싸울 것이다. 

 

그렇게 묵시룩의 기사들을 타도하고 아폴리온을 저지하겠노라고 다짐하면서 나는 케이린과 그리고 우리를 따르는 정령들과 함께 힘차게 나아간 것이다.

 

- 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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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일담>


이야기를 적으면서도 메인스토리의 주인공이 답답하게 느껴진 것이 컸었고 어쩌면 그 안에서의 행적들 자체가 본인에게는 대면하기 어려운 것이 될 수도 있을 뿐더러 얼마나 큰 잘못이었던 것인지를 깨닫는 과정이 필요했었음. 일전에 메인스토리 관련으로 한 유저 분과 이야기를 많이 한 적이 있었는데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그분이 느꼈던 것을 그리고 필자가 느꼈던 것을 이번 창작글에 담아보고 싶었음. 그분에게는 정말로 감사하다는 말씀 전해드리고 싶음.


또한 인연스토리에서는 주인공의 심리묘사가 잘 드러나는데 메인스토리에서는 그게 부각이 안되서 정말 아쉬웠었음. 비록 타게임에서 소재를 따온 것이긴 하지만 그것을 통해서도 주인공이 어떻게 그런 무너지는 정신을 다잡고 극복을 하느냐를 표현하는 장면이 메인스토리에 있었으면 하는 바람.


앞으로도 묵시룩의 4기사를 해치우고 아폴리온을 다시 되돌리는 이야기가 10장으로 마무리된다고 하는 것 같은데 부디 나머지 메인스토리에서는 주인공의 활약이 많이 담겨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일 따름임.


부족하고 긴 글이었을텐데 읽어주셔서 감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