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글 모음

골목대장이 사는 골목에는

게으른 친구도 뻣뻣한 친구도

뭐 암튼 부정적 인물상인 친구가 여럿 살었다


골목대장은 저랑 같이 얼음땡하는 친구보다 잘나야 했다


게으른 친구보다 잘나고 싶어서 부지런했고

뻣뻣한 친구보다 잘나고 싶어서 능글맞었고

싸움질하는 친구보다 잘나고 싶어서 중립했고

별별 것에 냉소하는 친구보다 잘나고 싶어서 세상을 끌어안었고

목적 없이 사는 친구보다 잘나고 싶어서 극기 시설에 제발로 가고

뭐 암튼


골목은 자리잡는 사람들이 오는 데가 아니었다

못난 친구들은 장성해서 하나 둘 골목을 떴다

더러는 반도체 굽는 법을 배워서

더러는 집안 덕을 봐서

더러는 여자가 생겨서

뭐 암튼 자리를 잡었다 서울에. 모든 남 이야기의 시발지인 서울에

골목대장은 그들 중에 여드름이 제일 많었다


골목대장은 그래도 골목대장이었다

잠시 부지런하러 갔을 데,

잠시 능글맞으러 갔을 데,

잠시 중립이러 갔을 데,

잠시 세상을 끌어안으러 갔을 데,

잠시 극기 시설에 제발로 갔을 때

어울렸던 남들이 몇 해간은 귀빠진날 서신을 보내었다.

술 잘 먹고 목소리 클 나의 왕성한 사회 활동 무대에

성실한 그들을 체스말로 세워놓고 정치극을 짜는 골목대장


그 체스말들도 각자 성실함을 보답받아서

반도체를 굽고,

덕을 보고,

여자가 생기고,

뭐 암튼 땡 해줄 애가 더는 없어서

아직도 골목대장인 슬픈 골목대장이

게을러지고, 뻣뻣해지고, 싸움질하고, 별별 것에 냉소하고, 목적 없이 살기까지는 머지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