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르크니프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 입은 딱 벌어져 다물지 못하며 주위에 있는 모두가 같은 반응이었다. 다가오는 언데드 군단이 사라지기까지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일 순간의 섬광과 함께 남아 있는 것은, 간당간당하게 서 있는 다섯 마리의 데스 나이트뿐. 그마저도 죽을 정도의 공격을 받아도 체력 1로 생존할 수 있는 데스 나이트의 특성 덕분에 살아있을 뿐 서 있는 송장, 아니 이미 송장인 언데드이니 만큼 서 있는 마네킹과도 같다고 볼 수 있었다.


" 몇... 만의... 군세가... "


제국에서부터 카체평야로 향하는 길은 제국에서 가까울수록 녹지를 띄고 있었으나 이제는 그마저도 완전한 사막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성벽에서부터 멀리 떨어져 있던 아인즈의 주변 일대는 모래로 가득해, 이곳에 더 이상 살아있는 존재가 없음을 실감시켜주었다.


" 이봐, 저건 도대체 무슨 마법이냐! "


급하게 트레이시와 아르셰를 번갈아 바라보며 지르크니프가 물었다. 그러나 그 둘 또한 놀라 입을 다물지 못 한 채였다.


' 굉장하다... 저렇게나 굉장하구나... 아버지는... '


만약 자신이 이대로 계속해서 강해질 수 있다면 언젠가 저 경지에 다다를 수 있을까. 그때가 되면, 당당하게 나서서 수호자들과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까. 그 길까지 도대체 얼마나 먼 여정이 기다리고 있을까.


" 이봐! "


" 아... 에? "


그런 저 먼 곳의 상상에서 빠져나와 지르크니프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아르셰를 툭 건드리자 아르셰가 고개를 옆으로 여러 번 흔들고는 또다시 위아래로 여러 번 흔든다.


" 도대체 무슨 마법이냔 말이다! 일격에 수만을 없앨 수 있는 마법이다. 대체 뭐냔 말이다! "


" 저야... 모르죠... "


순수한 대답이었다. 자신이 아인즈에게 기억 일부나 여러 성격 및 행동을 물려받았을지는 모르나 그것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뜻은 아니었다. 어렴풋이 느껴지는 바로는 8 위계나 9 위계 정도의 마법은 아니라는 것뿐. 아니 그 이전에 마법이라고 느껴지지도 않는 위화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 아르셰는? "


" 나도 몰라... 저 정도의 마법을 쓸 수 있는 사람이었다니... "


아르셰가 현재 느낀 감각은 이전에 그의 마력의 편린을 보았을 때 보았던 그 느낌이었다. 9나 10 정도의 수치로 환산할 수 있는 그런 마법이 아닌, 그보다 초월적인 단계. 초위급의 마법.


" 아니, 사람이 아니다 녀석은... "


공포인지 경외감인지 모를 감각에 조금씩 몸을 움츠려 떨고 있는 아르셰의 말을 지르크니프가 끊었다. 옆에 플루더라도 있었더라면 좋았겠건만 플루더는 혹시나 모를 공격에 대비해 제자들과 함께 비행으로 하늘로 올라가 있는 상태였다. 지금 지르크니프는 그저 그가 빨리 이곳으로 내려와서 저것이 무슨 마법인지 사용하는데 필요한 조건은 있는지 이것저것 묻고 싶을 뿐 이었다.


" 녀석은 마왕이다... "


' 쓰러뜨릴 수 있을까... 그 가능성이 서서히 멀어져간다. 이대로는 안돼. 시간을 지체하는 건... '


지르크니프가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데스 나이트들은 살아있었다. 그 일격에서 살아남아 있는 데스 나이트들이 공격을 눈치채고 아인즈에게 달려들었다. 처음으로 돌진한 데스 나이트의 공격을 아인즈는 가벼운 몸놀림으로 피했다. 데스 나이트의 공격 능력은 25레벨 수준으로 100레벨의 아인즈에게는 그 움직임이 아주 천천히 또렷하게 보였다.


' 자연 발생한 데스 나이트니까 바로 죽이기보다는 조금 관찰해볼까. '


" 자, 우선은 적당히 합을 이뤄볼까... "


아인즈는 인벤토리에서 딱히 마법이 부여되지 않은 검을 꺼내 방어를 준비했다. 단순히 내구도가 높고 그리 가치 있는 물건은 아니기에 이런 때에 사용하기 좋았기 때문이다. 사실 그의 방어구와 자체 능력치라면 공격을 곧이곧대로 받아도 좋겠지만 넓게 트인 장소라면 다른 누군가, 혹시나 있을지도 모를 특히나 월드 아이템을 사용한 플레이어에게 자신의 정보를 오인시키기 위함이다.


' 대 정보계 마법은 필수적인 부분만 해뒀으니까. 트레이시에 관한 내용은 퍼질 일은 없겠지. 그리고 오히려 내가 미끼가 되어 유도할 수 있다면 딱히 수호자들을 앞세울 필요는 없어. '


" 자, 오지 않는거냐? 신기하군, 자연적으로 스폰된 데스 나이트면서 마치 명령을 기다리는 것 같으니. 그게 아니라면 전략을 짜는건가? 언데드들 중에서도 엘더 리치같은 존재들은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지능이 뛰어나다고는 하지만 데스 나이트도 그러한가. "


아인즈의 수를 읽으려는 듯 데스 나이트들이 아인즈의 주위를 서서히 에워싸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씩 동시에 옆으로 움직인다. 그 틈 사이의 간격이 좁아지는 것을 보아 천천히 앞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아인즈가 어렴풋이 느꼈다.


" 뭐 하는거냐, 왜 마법을 쓰지 않지? "


그 모습을 지켜보는 지르크니프의 속은 타들어 가고 있었다. 매직 캐스터면서 검을 꺼내 드는 바보 같은 짓을 하는 멍청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니, 바보가 아니기에, 그렇기에 더더욱 무서운 것이다. 저리 강한 매직 캐스터가 제국 4기사가 한번에 덤벼도 이기지 못할 괴물을 다섯이나 동시에 검으로 상대할 수 있다면 그거야 말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 영감은 여전히 하늘에서 대기중인가... 지금이라면 마법으로 놈을 암살할 수 있는거 아니야? '


아인즈의 머리 위에서 제자 몇 명과 함께 상황을 지켜보는 플루더가 답답할 지경이었다.


" 마법따위 쓰지 않아도 이길 수 있다. 그게 아니라면 아까 전의 마법은 자신의 마력을 전부 소모한다던가? 그래 이쪽이 더 말이 되는군... 그 정도의 대마법이다. 아무리 괴물이라도 그걸 연발로 사용하지는 못하겠지. "


분명히 아까 전의 공격으로 그 데스 나이트들은 살아있다. 데스 나이트의 특성을 모르는 지르크니프는 지금이라면 저 데스 나이트들 또한 많이 약해져 있으리라 생각해 데스 나이트들이 아인즈를 쓰러뜨려주길 바랄 뿐이었다.


" 흠! "


" 말도 안돼! "


그러나 그런 바람도 무색하게 바로 다음 아인즈의 일격으로 그의 앞에 서 있던 데스 나이트가 그 자리에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마치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먼지나 재같은 무언가가되어 데스 나이트가 사라져 버린다.


' 소환수!? '


공격을 성공한 아인즈는 그때까지 갖고 있던 여유를 확 날려버렸다. 우선은 확실히 체력이 1이 남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살짝 휘둘렀을 뿐 이지만 방금 그 공격으로 데스 나이트의 체력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은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러한 것이 아니었다. 자연 스폰된 몬스터라면 그곳에 시체가 남을 터, 그러나 방금 자신이 쓰러뜨린 데스 나이트의 시체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모습을 지웠다. 자신의 무기가 그런 마법이 부여된 무기라면 이해할 수 있겠지만 꺼낸 무기는 평범한 무기. 즉 자신이 상대하고 있던 언데드의 부대는 자연스폰된 개체가 아닌 플레이어 혹은 이세계인중 그것을 다룰만한 강자가 소환한 존재라는 소리였다.


" 여유를 가질 틈은 아니었나! <마법탐지>! <공성방벽>! "


이전, 처음 이 세계로 넘어왔을 때 싸웠던 슬레인 법국의 니군과의 전투에서, 어딘가에서 자신을 혹은 상대를 감시하고 있던 자가 있었으니 지금도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그러나 그때처럼 공간이 갈라지는 효과나 딱히 어딘가 걸리는 듯한 감각은 없었다.


' 딱히 지켜보고 있지는 않는건가? 그게 아니라면 다른 곳을 보고있나? 이곳의 목적은 양동인가? 그렇다면 목적은 뭐지? 제국? 그게 아니라면 혹시 나혹은 나와 같은 플레이어? 그것도 아니라면 우연? 모르겠다... 머리가 돌아가지 않아... '


아인즈는 즉시 검을 집어넣고 양손을 들어 올렸다. 그와 동시에 검을 집어넣은 아인즈를 향해 데스 나이트가 동시에 네곳에서 달려들었다.


" 우선 너희들의 체력은 이미 1 이란 말이지. 빨리 처리하고 돌아가서 해결해야겠군. <핵폭발>! "


다시 한번 일어나는 거대한 폭발, 버섯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구름이 치솟아 주변 일대를 다시 한번 불태웠다. 이미 사막이 되어버린 땅에서 아인즈의 발밑 일대 수 미터는 그 모래조차 사라져 커다란 크레이터를 만들어냈다. 모든 언데드를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아 처리한 아인즈를 보며 지르크니프는 이것을 다행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그게 아니라면 새로운 벽이 한 겹 더 세워진 현실에 절망해야 할지 갈피도 잡지 못했다.


" 폐하! "


병사들과 함께 대기하고 있던 바지우드가 황급하게 계단을 통해 달려왔다. 전투를 대비하고 있었으나 전투는커녕 마치 제국의 투기장을 구경하듯 자신들과는 전혀 연관 없이 끝난 일에 놀라 지르크니프의 곁으로 달려온 것이다.


" 언데드는... 물리친 거 같은뎁쇼... "


" 나도 보고 있다... "


" 실로 무시무시한 마법이었습니다! 폐하! "


" 영감. "


그와 동시에 하늘로부터 플루더가 제자들과 함께 내려왔다. 제자들을 뒤로 물리고 플루더는 놀란 표정으로 쉴새 없이 입을 놀려 그 마법에 위대함과 위력에 대해 떠들기 시작했다.


" 처음에 그 분묘에 갔을 때부터 놀랐습니다만! 그것은 6 위계, 아니 8 위계는 족히 넘는, 대 마법이었습니다! 수많은 언데드를 무찌르는 마법은 『언데드 퇴치』 라던가 『신성한 광휘』 같은 신앙계 마법이 있습니다만, 그것은 그러한 신앙계 마법이 아닌 무언가 다른 초월적인 힘이 느껴졌습니다! 그야말로 11 위계! 위계를 초월한 급입니다! "


" 큭... 일개의 무력도 뛰어나고, 마법도 뛰어나고, 지략도, 통치도, 권력도 모두 뛰어나다는 거냐. "


" 지르크니프 공. "


" ! "


모두가 모여있던 성벽 위로 아인즈가 비행으로 황급히 날아와 착지한다.


" 후, 훌륭했네 아인즈 울 고운 공. 그렇게나 많은 언데드를 그렇게나 간단히...! "


" 고맙지만 지금은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


" 뭐... 무슨 소리지? "


" 이번 공격은 카체평야의 언데드의 군세라고 했던가, 내 생각에는 아니다. "


" 뭐라고? "


지르크니프는 이다음에 오는 그의 입에서 다음은 제국이나 군사 및 행정이나 감사에 대한 보답 같은 그와 관련된 이야기가 오갈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인즈의 행동은 어딘가가 다급하게 보였다.


" 이번 습격은 자연적인 언데드가 아니라 누군가의 지시로 습격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


" 그게 무슨 소린가! 자세히 말해주게! "


들려온 소식에 지르크니프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번 언데드는 두 가지의 경우, 하나는 자연적인 카체평야의 언데드, 또 하나는 아인즈가 만들어낸 언데드 그렇게만 생각하고 있었다. 아인즈를 앞에 두고 있는 공포 따위도 잊어버리고 지르크니프는 아인즈에게 물었다.


" 음, 방금 싸워보고 나서 알아낸 것이지만, 그 언데드들은 누군가가 직접 소환해 공격해 온 것이 틀림없다. 본래 소환수들은 쓰러뜨리면 사라지는 존재니까 말이지. 그 목적이 나는 바하루스 제국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짐작가는 것이 있나? "


" 제국에...? 그럴리는 없다. 언데드와 관련된 일이라고 해봐야... 아! "


지르크니프가 플루더를 떠올렸다. 그러나 이내 생각을 바꾸고 고개를 저었다.


" 뭔가 있는거군? "


" 아니, 그것과는... "


" 솔직하게 말해주게, 만약 데스 나이트를 사역할 수 있는 존재라면 나 정도의 강자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


' 넘어갈 뻔 했군. '


아주 잠깐, 지르크니프는 하마터면 그의 언변에 넘어갈 뻔했다고 생각했다. 이런 괴물이 하나 더 있으리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자작극임이 분명했다. 군사를 부르지 않은 이유는 이후 행정이나 군사적인 목적이 아닌 다른 목적이었음일 터다.


" 아니, 신경 쓸 필요 없네. 정말로 쓸데없는 이야기야. "


" 그런가. 자네들과 관련이 없다면 차라리 다행이군. "


" 무슨 소린가? "


" 그렇다면 상대는 나를 노렸음이 분명하다. 타이밍이 너무 맞아떨어진다. 그대와 내가 동맹을 맺고 얼마 지나지도 않았음에도 제국이 쓰러뜨릴 수 없는 수준의 군세를 보내왔다. 그렇다면 동맹국인 우리를 노린 것이겠지. 훗, 보기 좋게 걸려들어 버린 모양이다. 어쩌면 우리와 동맹을 맺은 그대들에게 우리가 피해를 입힌셈이군. 미안하게 됐다. "


정중히 고개를 숙이는 아인즈를 보며 바하루스 제국의 면면이 놀란다. 일국의 왕이라고도 할 수 있는 자가 스스로 동맹국을 도와주러 왔다. 그리고 멋지게 도왔음에도 오히려 사과를 건넸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바지우드와 플루더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바꾸지 못했다.


' 어째서... 사과를 하지? 여기서는 떵떵거리며 들어와야 하지 않나! '


그리고 그 당혹은 지르크니프 또한 마찬가지였다.


' 이대로 밀고 들어오면 나 또한 방법이 없다! 그런데 이미 절벽으로 밀린 나를 왜 붙잡고 있지? 설마... 설마... 아니, 진짜로... 그럴리는... '


" 급하게 와서 급하게 가는 것은 미안하네만, 이만 바로 돌아가 보겠네. 분명 혼자 나갔으니 그 녀석들이 나한테 화를 낼 테니까. 그리고 이번 군세를 그리고 전투를 건 자들에 대해 확인해 보겠다. 무언가 밝혀지면 즉시 알려주지, 제국에서도 그렇게 부탁하네. 그리고 또 그 정도의 언데드가 온다면...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부르게 놈들을 꾀어낼 함정을 팔 수도 있으니까. "


" 아... 알았네... "


조금 넋이 나간 얼굴로 지르크니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비행으로 저 멀리 사라지는 아인즈를 보며 지르크니프는 모든 것이 부정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럴 리가 없다. 언데드가 결코 그럴 리가 없다.


" 폐하, 괜찮으신거요? "


" 저놈은... 아니, 아인즈 울 고운은... 정말로 순수하게 도우러 왔다는 거냐...? "


"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


바지우드의 순수한 대답이었다.


" 영감은 어떻게 생각하나 방금전의 전투. 아니, 마법이라고 해야하나? "


"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순수한 마법이었습니다. 봐준다거나 그런 경지가 아닙니다. "


플루더에게서도 들려온 것은 순수한 대답이었다.


" 그럼, 자네들은 저 언데드에게 무엇을 당했지? 뭔가 꺼림찍한 이야기라도 해보거라. 그래, 동료들을 모두 잃었을 때라던가. "


" 아무것도. "


" 응, 아무것도 없었어요. 동료들 따위 애초에 그런 거 없었고. "


아르셰와 트레이시에게서도 마찬가지였다.


' ... 이상한 건 나 뿐이었나...? '


" ... 돌아가겠다... "


터덜터덜 무거운 발걸음으로, 황제 지르크니프는 성벽 위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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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즈가 검을 꺼내든 이유는 적당히 상대해주다가 1~2마리는 포획해서 자신이 소환한 데스 나이트 들과 비교해보려고 한 거지만 그 계획은 무산.


하지만 어차피 나자릭 휘하 데스 나이트니 별로 다를거 없었을 거라는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