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글 모음

 

 1

 

 인생을 현명하게 살아가는 방법.

 

 현재 자신의 상태에 만족하기.

 

 타인을 질투하거나 시기하지 않기.

 

 과한 욕심이나 이루지 못할 것에 집착하지 않기.

 

 유연하게 사고하기.

 

 “잡담 그만. 수업 시작했으니까 이만 앉으세요.”

 

 나는 그다지 성실한 학생이 아니다.

 

 우등생도 아니고.

 

 고등학교를 두 번 다녔고 배운 걸 또 배우는 데도 불구하고 성적은 중상위권, 즉 어디까지나 평범한 수준이다.

 

 하지만 요즘은 학교에 오는 게 그럭저럭 재밌다.

 

 “오늘 1교시는 수학 시간이지만... 제 임의로 교과를 변경하여... 어라? 아무튼... 보건 수업을 하게 됐습니다.”

 

 한소희.

 

 우리 반의 담임이다.

 

 주 교과는 이과 계열.

 

 무뚝뚝하고 차가운 성격이지만 동시에 어마어마한 미인이기도 하다. 사실 이 세계에 빙의한 이래 본 여자들은 대부분 미인이었다. 적어도 이전의 삶의 기준으론.

 

 소문이나 별명을 만들어내기 좋아하는 학생들로부터, 차가운 이과 여왕님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고 있는 그녀는, 지금 발가벗은 채 교단 위에 서있다.

 

 자각은 없지만 무의식적으로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일까, 얼굴이 새빨갰다. 호흡도 어딘가 거칠고.

 

 “여기는 그... 어라... 누구...?”

 

 선생님이 옆으로 돌아보더니 당혹스러운 표정이 되어 중얼거렸다.

 

 선생님의 옆에는 마찬가지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모습의 남자가 서있다. 피부는 구릿빛에 키도 크고 근육도 다부지며 머리는 금발로 염색한 남자였다. 무엇보다도 시선을 잡아 끄는 것은 그의 우뚝 선 물건으로, 감히 그것을 비유해 보자면 공성 망치에 가까웠다.

 

 “왜 알몸으로... 힉?!”

 

 선생님이 당황해 기겁한 것도 잠시.

 

 그가 휴대폰을 꺼내 얼굴에다 대고 빛을 터트리자, 선생님의 당황한 표정이 점차 누그러지더니, 이내 방긋 웃는 얼굴이 되었다.

 

 우와, 나 저 사람 웃는 거 처음 봐.

 

 의외로 상당히 귀여웠다.

 

 “어... 어라? 아하하? 아하하하? 내 정신 좀 봐. 여기 서계신 이 분께서는 오늘 새로 부임한 보조 교사십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저와 함께 여러분에게 올바른 성지식에 대해 알려주실 거예요. 다들 박수! 와아아아!”

 

 선생님이 혼자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다. 호응하는 학생은 없었다. 당연하다. 난데없이 1교시 과목을 바꾸지 않나 알몸으로 들어오지 않나, 학생들은 전부 적잖이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다.

 

 나야 뭐 익숙해졌으니까 그냥저냥 담담했지만.

 

 “어라, 반응들이 왜 그렇죠?”

 

 선생님이 고개를 갸웃했다. 잇따라 옆에 서있던 금발 태닝의 사내가 휴대폰을 들더니 이번엔 학생들을 향해 자줏빛의 빛을 비추었다.

 

 이른바 최면 어플이라는 것이다.

 

 정확한 원리는 모른다. 맞으면 어떤 기분이 드는지에 대해서도 모른다. 나는 저것에 대해 완전 면역이기 때문이다. 이걸 유감스럽다고 해야 하는지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러자 나를 제외한 반 전체 학생들이 한순간 멍한 얼굴을 하더니, 잇따라 쉬는 시간에 친구들이랑 잡담할 때처럼 활기가 넘치는 표정으로 돌아와 박수를 쳤다.

 

 “그만. 이러다가 옆 반에서 놀라겠어요.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보건 수업을 시작하겠어요. 자 그럼 책을... 어라...? 아 맞다. 책은 없어요. 어디까지나 급조된 수업이기에... 나도 참! 대신에 이번 보건 수업에서는 제 몸을 교재로 사용하여 여러분께 올바른 성지식을 알려드릴 거예요.”

 

 선생님은 그리 말하더니 조심스레 교탁 위로 올라가 다리를 활짝 벌리고서 앉았다.

 

 “자 여기 여성의 건강한 신체가 있습니다. 이처럼 성적으로 성숙한 여성의 몸을 두고 우리는 ‘육변기’라고 일컫습니다. 물론 변기라고 해서 오줌을 누는 장소는 절대 아니니 착각하면 안 돼요. 배출해도 되는 건 오직 정자 뿐입니다.”

 

 선생님은 그리 말하더니 교탁 한편에 놓인 지휘봉을 들어 자신의 다리 사이를 가리켰다.

 

 “정자는 보통 이곳에 배출합니다. 이곳을 두고 우리는 보지, 혹은 좆집이라고 일컫습니다. 좆집은 여자를 부르는 일반명사이기도 하지만 보지를 조금 더 성예속화시켜 부르는 일종의 대명사이기도 합니다. 잘 안 보이는 학생은 앞으로 나와서 봐도 좋아요.”

 

 그러자 뒷자리에 앉아있던 남학생들이 우르르 앞으로 나갔다. 나도 크흠 하고 헛기침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자리는 딱 중간에 위치해 있지만, 사사오입을 기준으로 하면 뒷자리로 분류해도 이상할 건 없다.

 

 가까이서 본 선생님의 그곳은 엄청났다. 쉽게 말해, 꼴렸다. 아직 이십 대이긴 하지만 백보지라니. 실털 하나 나있지 않은 걸 보면 최근에 면도한 듯했다.

 

 말끔하게 정돈된 선생님의 그곳은 흠뻑 젖어 있어 은은하게 반들거렸다. 내부로 이어지는 부분은 분홍빛으로 달아올라 있었고 내부가 꿀렁거리면서 애액을 조금씩 뱉어내, 그것이 허벅지를 타고 엉덩이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선생님! 이 물은 뭔가요?”

 

 학생 하나가 질문했다. 여학생이었다. 눈동자가 인형처럼 한없이 검고 깊었다. 최면 상태에 빠져 있다는 증거였다.

 

 “이것은 애액이라고 합니다. 여자가 음탕한 기분을 느낄 때 보지 안구멍에서 나오는 일종의 생리적 작용의 결과물입니다. 씹물이라고도 합니다. 애액은 보통 반투명하지만 보다시피...”

 

 선생님은 구멍 안쪽으로 손가락을 넣어 소음순의 양쪽 끝을 바깥쪽으로 당겨 넓히더니 안쪽을 지휘봉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미 저는 좆집으로서 정자를 받아 수용하고 있는 상태이기에 이처럼 누런 색을 띠게 된 겁니다. 참고로 이 정액은 옆에 계신 보조 교사 님께서 배출해 주신 겁니다. 아직 수업 시간이니 여러분은 참으세요.”

 

 선생님은 그리 말하고선 지휘봉을 거두었다. 안쪽에 살짝 들어갔다가 나온 지휘봉의 끝에 샛누런 색의 물이 묻어나 있었다.

 

 “다음은 육변기를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저나 다른 일반적인 육변기는 평상시 보지 구멍이 말라 있기에 바로 사용하기엔 뻑뻑하고 비좁아 매끄럽게 들어가지 않으며 무리하게 삽입 시 다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육변기의 사용 전에는 우선 충분히 젖어 있는지 확인하고 발정 버튼을 눌러 좆집을 충분히 예열시키는 과정이 요구됩니다.”

 

 선생님은 그리 말하고는 금발 태닝의 남자 쪽을 흘끗 보았다. 그러자 금발 태닝 남자가 선생님에게로 다가오더니 턱을 붙잡고 돌려서 입술을 포개었다. 동시에 한쪽 손을 들어 선생님의 클리토리스를 검지와 엄지로 마구 비벼댔다.

 

 “앙... 아아아아♡”

 

 선생님은 기쁨에 겨워 눈을 까뒤집더니 이내 앙탈을 부리듯 간드러진 목소리로 발성하며 가랑이 사이에서 물을 뿜어댔다.

 

 “지... 지금 보조 교사 님께서 만져주신 부분이 바로 대부분의 여성이 갖고 있는 발정 버튼입니다. 클리토리스라고도 합니다. 이와 같이 키스를 하거나 유두를 만지면서 클리토리스를 충분히 자극하면 육변기는 준비 완료 상태가 됩니다. 이때 보지에서 흘러나온 씹물의 양이나, 지금처럼 조수를 분사하였는지의 여부를 통해 확인이 가능합니다.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선생님은 끝에 가서 푹 녹아내린 얼굴을 하고서 달달한 목소리로 금발 태닝의 남자에게 속삭였다. 뜨거운 한숨과 함께, 목덜미에 홍조가 잔뜩 오른 얼굴을 비비적거리면서.

 

 푹 빠졌구만. 상당히 보기 좋은 광경이긴 하나 진실을 알기에 기분이 묘했다. 지금 선생님이 느끼고 있는 감정 대부분은 최면을 통해 주입된 것일 테니까.

 

 “선생님! 육변기도 사랑을 하나요?”

 

 또 한 명의, 최면이 걸린 여학생이 물었다. 양갈래 머리의 도도하면서도 장난기가 많아 보이는 여학생이었다.

 

 지금은 무표정 그 자체이지만.

 

 “크흠. 당연하지요. 육변기도 사랑을 합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사랑은 아닙니다. 육변기가 느끼는 사랑이라는 감정은 자신을 사용해 주신 분에 대한 추종, 감사, 그리고 보다 깊은 굴종에 근원을 두고 있습니다. 즉 육변기가 느끼는 사랑이란 그 사람에게 보다 깊이 속박되고 싶다는 예속화된 마음에 있습니다. 누군가의 전용 변기가 되고자 하는 것은 모든 육변기가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욕망으로, 즉 아주 당연한 감정인 것입니다.”

 

 선생님은 말을 마치고는 교탁에서 내려왔다. 교탁에 덮인 유리판에 물자국이 흥건하게 남아있었다.

 

 “그럼 마지막으로 육변기의 사용 예시에 대해 보도록 합시다. 보조 교사님♡”

 

 마치 곰이 꿀단지를 대하듯이 애틋한 눈빛으로 금발 태닝의 남자를 올려 보며 선생님이 말했다.

 

 금발 태닝의 남자는 선생님의 뒤로 성큼 다가와 서더니 콱 엉덩이를 손으로 잡아챘다. 선생님이 “앗♡” 하고 결코 싫지는 않은 태도로 짧게 소리를 내자 곧이어 검지를 펴더니 구멍 안으로 쑤욱 넣었다.

 

 금발 태닝의 남자는 뒤에서부터 선생님을 껴안더니 한손으로 D컵 즈음 되어 보이는 풍만한 살덩이를 콱 움켜쥐며 손가락 사이사이로 봉긋해진 유두를 이리저리 굴려댔다. 그러면서 가랑이로 넣은 손가락을 쉴 새 없이 굴리며 음핵을 자극했다.

 

 “음♡ 앗♡ 하으... 아앙♡”

 

 선생님의 표정이 점차 녹아내리며 달달한 한숨이 새어나왔다. 가랑이에서 흘러내린 물이 허벅지를 타고 떨어져 바닥을 적셨다. 바닥에 새겨진 물자국이 수십 개가 넘었을 즈음 금발 태닝의 남자가 마침내 자신의 우람한 물건을 선생님의 다리 사이 삼각주로 전진 배치시켰다.

 

 할 생각인가!

 

 네오 암스트롱 사이클론 제트 암스트롱 제노사이드 오메가 네온 포를.

 

 넣을 생각인 것이냐아앗!

 

 하고 생각하며 숨을 삼켰지만 저쪽에선 아직 예열이 충분치 않다고 판단한 것인지 삽입하지 않고 바로 아래에다 두고 허벅지와 대음순에 비비적거렸다.

 

 에이.

 

 짜게 식는구만.

 

 빨리 돌리기 버튼 어딨냐 이거.

 

 “남학생들은... 읏♡ 보면서... 자위해도... 앙♡ 괜찮습니닷...”

 

 선생님이 한껏 달아올라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바닥이 더러워질 수 있으니... 정액은 반드시... 앙♡ 변기인 선생님을 향해... 싸도록 합니닷... 아앙♡”

 

 거듭되는 애무와 성적인 쾌락에 선생님이 애가 타는 얼굴로 고개를 이리저리 비틀며 힘겹게 말했다.

 

 그러자 남학생들이 일제히 교복 바지의 지퍼를 내리고 다리 사이에 감춰두고 있던 준비 만발의 리틀 보이를 꺼내 붙잡았다.

 

 뭐하는 거냐. 지금은 수업 시간이라고. 게다가 남이 하는 걸 반찬으로 삼는 거에 만족할 셈이냐.

 

 하고 속으로 훈계를 하며 나도 지퍼를 내렸다.

 

 그렇다고 해서 하지 않으면, 저 녀석 최면에 안 걸린 거 아냐? 하고 의심을 받을 테니까.

 

 이런 젠장! 굴욕적이다!

 

 그 광경을, 여학생들은 얼굴을 새빨갛게 붉힌 채 어쩔 줄 몰라하며 지켜보고 있었다. 몇몇은 시늉이라도 내듯 다리 사이에 손을 파묻고서.

 

 뭐야, 해도 되는 거 아냐? 해버려!

 

 “앙♡”

 

 와중에 개시된 기습공격.

 

 네오 암스트롱 사이클론 제트 암스트롱 제노사이드... 아무튼 그 뭐시기가 육벽을 허물어뜨리며 안으로 밀고 들어오자 선생님의 눈이 순간 동그랗고 크게 뜨였다가 이내 환희의 빛에 잠겨 굴곡진 모양으로 가늘어졌다.

 

 “앙♡ 아앙♡ 하앙♡ 앙♡ 아아앙♡”

 

 마치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뻐하며 천박하게 신음하는 선생님.

 

 팟팟팟팟.

 

 그리고 열심히 손을 앞뒤로 움직이는 나와 남학생 일동.

 

 그리고 땀까지 흘려가며 선생님의 팔을 붙잡고 성실하게 허리를 앞뒤로 움직이는 금발 태닝의 남자.

 

 이제 보니 이거 일방적으로 한쪽이 손해 보는 구도 아니냐?

 

 “굉장해엣♡ 커어♡ 이 자지♡ 자궁까지 밀고 들어왓♡ 보지♡ 바보가 되어버렷♡”

 

 선생님은 야겜에서나 볼 법한, 즉 세계관에 지극히 어울리는 말을 했다.

 

 “소희 가요오오오옷♡”

 

 선생님이 눈을 치켜뜨며 소리쳤다. 동시에 금발 태양의 남자가 선생님의 목덜미를 손으로 콱 붙잡더니 깊이 삽입했다. 선생님의 허리가 덜덜 떨리더니 이내 아래의 두 사람이 접합해 있는 부분의 사이사이로 샛누런 액체가 뚝 뚝 떨어졌다.

 

 “흐헤에에에에...♡ 사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아...♡”

 

 금발 태닝의 남자가 목덜미를 놓자 선생님이 교탁에 얼굴을 박고서는 중얼거렸다. 그 모습에 나는 참지 못하고 사정했다. 다른 남학생들도 비슷한 타이밍에 사정했다.

 

 후우.

 

 후우우.

 

 이 얼마나... 끔찍한 광경인가.

 

 이 얼마나 타락한 세계인가.

 

 요상한 마도구로 하여금 그릇된 상식을 주입시켜 원치도 않는 관계를 강요받는 세계라니.

 

 어쩌다 이런, 마굴에, 흘러들게 됐단 말인가.

 

 침통하기 그지없다.

 

 창문 너머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을 맞으며.

 

 나는 안타까움에 잠겨 사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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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청춘의 꽃 부활동.

 

 나는 풍기 위원회에 가입했다.

 

 딱히 풍기에 관심이 있어서는 아니고.

 

 애초에 그게 뭔지도 모르고. 그보다 우리나라에 없잖아 그거. 존재하지 않잖아.

 

 아무튼 있길래 가입했다.

 

 나는 이 게임이 어느 야겜 안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실은 야설일지도 모른다. 실은 컨셉 AV일지도 모른다. 실은 야한 만화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픽션 안인 건 확실하다.

 

 왜냐면 이 세계는 존나 대충 만들어진 게 확실하기 때문이다.

 

 왜 대한민국에 풍기 위원회가 있냐고.

 

 아무튼, 예수를 형상화 한 종교화조차도 존나게 꼴릿하게 그려져 있는 이 세계에서, 풍기 위원회란, 마치 지옥에 있는 구세군 같은 게 아닌가 하고.

 

 그런 생각에 호기심을 느껴 가입했다.

 

 가입하고서 약 한 달.

 

 내가 느낀 바는, 그냥 일반적인 풍기 위원회라는 것이다.

 

 야겜에 흔히 나오는.

 

 “거기 너!”

 

 아침 8시.

 

 이 세계관의 기준으론 다소 성실한 학생들이 주로 등교하는 이른 시간.

 

 그 이른 시간에 울려퍼진 불호령.

 

 “옷차림이 그게 뭐야! 그러고도 학생이냐!”

 

 그리 외치며 호기롭게 손가락을 쳐들고서 여학생을 지목하고 있는 것은 우리 풍기 위원회의 위원장인 차도희 선배다.

 

 걸어다니는 교칙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사람.

 

 옷차림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세일러복은 밑가슴 언저리부터 잘려 있어 분홍색의 유륜이 슬쩍 비쳐 보이고, 치마 밑단의 길이는 칼같이 잰 듯한 5cm로, 안 그래도 키가 큰데다 다리가 길쭉한 도희 선배이기에 가만히 서있어도 팬티가 훤히 보인다.

 

 속옷은 끈으로 된 브래지어와 팬티로, 브래지어의 경우 색이 진해서 흰 색인 세일러복 상의 아래로 훤히 보인다. 마찬가지로 검정색인 끈 팬티의 경우 적나라하게 표현하자면 ‘보지가 먹었다’라고 할 수 있겠다.

 

 도희 선배는 전체적으로 잘 빠진 글래머 스타일이지만 그중에서도 허벅지가 유난히 굵고 엉덩이도 커서 끈 팬티가 살집에 파묻혀 언뜻 보기엔 입었는지도 모를 정도다.

 

 그리고 커피색 스타킹과 하이힐. 신발의 경우 굽이 워낙에 높아 안 그래도 큰 키가 더 커 보인다.

 

 “치마가 왜 그렇게 길어! 교복 상의는 또 뭐야? 배꼽 말고는 보이는 게 없잖아. 더 타이트하게 오려내지 못해? 게다가 속옷의 경우 검정색,빨간색,보라색,분홍색 네 가지 컬러만 입도록 교칙에 쓰여 있을 텐데? 뭐냐? 이 수수한 흰 색은?”

 

 위원장이 들고 있던 죽도 끝으로 여학생의 상의를 슬쩍 위로 들추며 소리쳤다. 그러자 수수한 디자인의 흰 색 브래지어가 드러났다.

 

 아니 근데 저 양반, 어떻게 들추기 전부터 알고 있던 거지?

 

 “꺅!”

 “뭐가 꺅! 이냐, 너 설마 남학생한테 자기 몸을 보이는 게 부끄러운 거냐? 그 글러먹은 사고 방식, 이 풍기 위원장인 차도희는 용납할 수 없다! 여자라면 여자답게! 자신의 아름다움을 어필할 수 있어야지!”

 

 위원장 선배가 가슴을 활짝 펴며 말했다. 그 덕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던 상의 끝부분이 살짝 올라가 검정색 끈을 매달아 놓은 동그랗고 말랑말랑한 분홍색 유두가 순간적으로 드러났다.

 

 “안 되겠군. 너는 정신 교육을 받아야겠어. 풍기 위원실로 데려가!”

 

 위원장이 지시하자 근처에 서있던 다른 풍기 위원들이 “넵!” 하고 경례를 하더니 신속히 여학생을 끌고 갔다.

 

 오오 두려워라, 아침 등굣길.

 

 참고로 남학생은 교칙 따위 딱히 없다. 금발에 태닝한 녀석들이 많은 걸 보면 유행은 있는 듯하다.

 

 “요즘 여학생들 사이에서만 왜 이렇게 빠진 녀석들이 있는지 모르겠어... 남학생들은 다 제대로 입고 다니는데.”

 

 도희 선배가 이마를 붙잡고선 크게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그야 뭐, 바뀐 지 일주일도 안 됐으니까요.”

 “응? 뭐라고?”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 혼잣말에 도희 선배가 즉각 반응했다. 나는 대충 얼버무렸다.

 

 풍기 위원회는 유행에 민감하다. 라고 해야 되나, 아무튼 뭔가의 개변이 일어나면 풍기 위원회도 그 즉시 영향을 받는다. 지금도 그렇다. 참고로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도희 선배는 일반적인 교복을 입었다.

 

 근데 만약 원래 상태로 돌아오게 되면, 저 교복은 어찌 되는 거지?

 

 이것도 게임적 허용의 일부로 취급해 주나?

 

 그렇다면 기념품으로 하나 보관해 두고 싶은데. 크흠.

 

 “그나저나 요즘 이상하게 덥군. 아직 4월인데. 일기예보로 봤을 때 기온도 그다지 높지 않았고.”

 

 도희 선배가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말했다.

 

 아마 옷차림 때문이지 않을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 저번에 선생님도 그렇고, 무언가에 의해 의식이나 상식 따위가 개변된 상태여도 무의식 중에 원래 정신이 영향을 끼쳐서 부끄러움 같은 걸 느끼는 듯하니까. 그조차도 인지하지는 못하지만.

 

 그 증거로 도희 선배는 얼굴이 새빨개져 있다. 몸에도 혈류가 과다하게 도는 듯하고.

 

 그 덕에 흘린 땀으로 교복 상의가 젖어서 브래지어가 더 선명하게 비쳐 보이는데다 안 그래도 글래머인 몸이 한층 더 육덕지게 느껴지긴 하지만.

 

 아 섹스 마렵다.

 

 하지만 도희 선배에게 그 말을 꺼내면 나는 그 즉시 죽도에 얻어맞고 위원회에서 쫓겨날 것이다. 도희 선배는 어디까지나 교칙을 따르고 있는 것이지 천성이 음란하거나 그런 식으로 개변을 당한 건 아니니까.

 

 나는 어디까지나 엑스트라. 즉 누군가 남긴 팥고물을 주워 먹는 입장이니까.

 

 

 풍기 위원회의 주된 업무는 두 가지다.

 

 하나는 등굣길의 복장 검사. 일반적인 선도부가 하는 그것과 같다.

 

 다른 하나는 학교 순찰. 점심 시간이나 부활동 시간, 혹은 하교 시간에 이상한 짓을 하는 사람은 없는지 감시하는 일이다.

 

 가끔, 원래는 ‘없어야 할’ 세 번째 업무도 간간히 생겨나곤 하는데, 나랑은 전혀 관련없는 것들이라 그냥 신경 끄고 있다.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리요.

 

 “순찰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점심 시간.

 

 먼저 순찰을 마치고 부실로 돌아와 늦은 점심을 라면으로 떼우고 있던 중에ㅡ참고로 우리 학교는 급식을 줄 때도 있고 안 줄 때도 있다. 세상의 어느 학교가 그러느냐 하고 묻는다면 이 학교가 그렇다.ㅡ부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여학생이 들어오며 말했다.

 

 이하은.

 

 풍기위원 중 한 명이다. 나와 같은 1학년 학생.

 

 그녀에 관해서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말 수가 적고 내성적이며 주위의 눈치를 많이 살피는 편이라고 할까. 좋게 말하면 공부를 잘 할 것 같은 인상이고 나쁘게 말하면 책벌레다.

 

 항상 단정하게 하고 다니고 소곤소곤 말하는 타입. 현실에 풍기 위원회란 게 있다면 어떤 부분에선 정말로 어울린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녀석.

 

 그랬는데.

 

 짧은 순찰 시간 동안 이미지 변신이라도 결심한 것일까. 지금의 그녀는 다소 쾌활해 보였다. 아니 그 이상으로 매우 과감했다.

 

 원래는 생머리였던 갈색의 장발을 양갈래로 묶었고 안경은 쓰고 있지 않았으며ㅡ몰랐는데 벗고 있으니 눈이 굉장히 동글동글하고 컸다. 흔히 픽션에서 나오는 ‘안경을 벗으니 굉장한 미소녀’란 느낌ㅡ교복과 몸 곳곳에 누런 무언가를 덕지덕지 붙이고 있었다.

 

 머리끈 대용으로 쓴 물건은 콘돔이었다. 것도 안에 뭔가가 담겨 출렁거리는. 그것도 모자라 치마 곳곳에도 묶어서 매달아 두고 있었다.

 

 입가에는 굵은 털 몇 가닥이 붙어 있었는데, 딱히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눈동자에는 동공 대신 별 같은 게 박혀 반짝거렸다. 진짜로. 큼지막한 별이었다. 렌즈라면 상당히 특이한 디자인이다.

 

 “컥... 케헥...”

 

 뒤편에서, 차를 마시던 위원장 선배가 갑자기 기침을 해댔다.

 

 오 뭐야, 설마 이변을 알아챈 건가? 싶었는데 위원장은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어 음... 안경은?”

 “버리고 왔습니다! 지금의 초 큐트한 저에게는 필요 없다고 생각했기에☆”

 

 이번에 뿜은 것은 나였다.

 

 나는 사레가 들려 연신 기침을 해댔다. 아 시발 코에 라면 쪼가리 들어갔어.

 

 “왜 그래 시윤아? 괜찮아? 천천히 좀 먹어. 누가 뺏어가는 것도 아니고.”

 

 하은이가 다가와 걱정스레 말했다. 가까워지니 정액 쩐내가 풀풀 풍겼다. 그 특유의 불쾌한 향이.

 

 나는 애써 불쾌한 표정을 억누르며 말했다.

 

 “좀 씻고 오는 게 어떠냐?”

 “응? 씻다니? 나 깨끗한데?”

 

 지금 자신의 상태에 대한 자각이 전혀 없는 것인지 하은이는 자기 팔에다 대고 코를 킁킁거리며 말했다.

 

 “그보다 실례잖아! 여자애한테 씻고 오라니, 마치 내가 더럽기라도 한 것처럼! 난 이렇게나 귀엽고 사랑스러운데!”

 

 하은이가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고선 당당하게 말했다.

 

 오우 쒜엣.

 

 순간 조금이지만 귀엽게 느껴졌단 사실이 매우 굴욕적이다.

 

 “아무튼... 그 수고했어 하은아. 좀 쉬어. 냉장고에 먹을 거 많으니까 배고프면 알아서 꺼내 먹고.”

 

 위원장이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마 뭔가가 굉장히 신경이 쓰이는데 그 뭔가가 대체 뭔지 몰라서 고민하는 것 같았다.

 

 안타깝게도 평생 대답은 찾을 수 없을 게 분명했다. 위원장부터가 옷차림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단단히 무언가에 의해 비틀려 있는 상태니까.

 

 “넵☆ 하은이도 그러면 이제 점심식사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스스로를 3인칭으로 부른 색기발랄한 소녀는 위원장의 앞으로 가더니 발표할 때처럼 오른손을 높이 들고서 말했다.

 

 “풍기위원 이하은! 지금부터, 순찰 중 주인님께서 여학생의 몸을 만지며 즐기시는 것을 감히 성추행을 한다고 오해해 건방지게 끼어든 점, 그러고도 자기 주제를 파악하지 못하고 훈계조로 말한 것! 그에 대해 깊이 사죄하고 반성하는 의미에서 원래의 저였다면 죽더라도 절대 하기 싫었을 다른 풍기위원들이 보는 앞에서 자위하며 분수쇼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된 거였군.

 

 유감스럽지만 어찌 할 방법이 없다. 만약 내게 최면을 풀 수 있는 모종의 수단이 존재했다고 해도, 그런 짓을 하면 그녀는 곧장 이 4층 창문에서 바깥으로 시원스럽게 몸을 던질 테니까 말이다.

 

 모든 것은 암암리에 묻어두는 것이 최선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러기만 한다면 이 세계관에서 피해자란 있을 수 없다. 다들 당시에는 자기가 원해서 한 거라고 굳게 믿으니까.

 

 “그... 그래? 뭔지는 모르겠지만 잘 해 봐.”

 

 위원장은 떨떠름한 얼굴로 말했다.

 

 아마 선배에게 씌인 개변 내용 중 하나는 ‘이상하다고 생각되는 일이 일어나도 그것을 자각하지 못한다’가 아닐까 싶다.

 

 “우선은 하은이 보지에 넣어둔 마개를 뺄게요오☆”

 

 하은이가 치마 아랫단을 손으로 붙잡아 넘긴 채로 말했다.

 

 드러난 구멍에는 휴지 같은 게 잔뜩 쑤셔넣어져 있었다.

 

 그것도 앞 뒤 전부.

 

 “저 이하은! 전국 보지 조이기 대회 우승자!”

 

 그런 뒷설정이?

 

 “주특기는 손쓰지 않고 코풀기! 지금부터 두 손은 가만히 둔 채 제 보지 안의 내용물을 빼내도록 하겠습니다!”

 

 이내 하은이의 표정이 굉장히 강경해졌다. 마치 화장실에서 힘을 줄 때처럼.

 

 “흐으으응... 크으으읏... 크흣☆”

 

 한참을 힘을 준 결과.

 

 토옥. 하고.

 

 젖은 휴지 뭉치 하나가 구멍 안쪽에서 바깥으로 밀려나 바닥에 떨어졌다.

 

 “하... 하나아... 이제 여덟 개 남았습니다...”

 

 남은 길이 먼데 하은이는 이미 탈진할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녀의 장대한 도전을 관심의 한편으로 밀어두고, 나는 남은 라면이나 마저 먹기로 했다.

 

 후루룩, 쩝쩝.

 

 “끄으으으응...☆”

 

 톡.

 

 후루룩, 쩝쩝.

 

 꿀꺽꿀꺽. 크으으으으으.

 

 “흐으으으으응읏...☆”

 

 톡.

 

 대체 어떻게 빼내고 있는 거냐.

 

 역시 뭐시기 대회 우승자, 놀랍다. 냠냠.

 

 “그... 미안하지만 시윤아 라면은 나가서 먹어 주지 않겠어? 하은이가 고생하고 있잖아.”

 “예? 제가요?”

 

 쟤가 아니라?

 

 이 양반이 돌았나.

 

 맞지.

 

 어쩔 수 없이 내가 일어나려고 하자 하은이가 기겁하며 말했다.

 

 “아냐! 먹어두 돼! 먹어도 되니까, 하은이의 추태 더 봐줘! 죽고 싶어질 정도로 부끄러운 짓을 하는 걸 모두에게 보여주라고 명령받았단 말야! 하은이는 주인님 말을 반드시 지켜야 돼. 그니까 봐줘. 제발. 보고 경멸해줘. 역겨워해줘!”

 

 하은이가 내게 매달리면서 말했다.

 

 오, 맙소사.

 

 이건 진짜 수그러드네.

 

 “아니, 곧 5교시도 시작하는데...”

 “넌 지금 그런 게 중요해?”

 “중요해 임마.”

 “걱정 마 하은아! 내가 지켜봐 줄게!”

 

 위원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당당하게 말했다.

 

 “네 추태! 네 끔찍한 모습! 내가 끝까지 지켜봐 줄게. 난 네 선배니까. 너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동료니까!”

 

 선배가 소년만화의 주인공처럼 외쳤다.

 

 “선배...”

 

 감동이라도 받은 것인지 하은이의 눈가에 눈물이 찔끔 맺혔다.

 

 “그럼 봐주세요! 하은이의 자위 분수 쇼를!”

 “응!”

 

 나는 달도 뜨지 않았는데 미쳐버린 두 광인을 뒤로 하고 부실을 나왔다.

 

 아.

 

 뒤늦게 드는 후회.

 

 전자레인지에 도시락 돌려둔 거 까먹었네.

 

 그렇지만 돌아가긴 싫었다.

 

 

 

 이튿날, 이하은은 등교하지 않았다.

 

 대략 일주일 뒤 오랜만에 그녀를 다시 봤을 땐 원래의 모습대로 돌아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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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3

 

 우리 가족은 4인 가족이다.

 

 어머니 아버지 나 그리고 여동생.

 

 참고로 아버지는 해외로 출장을 나가셔서 안 계신다.

 

 언제 돌아오는지는 모른다.

 

 아마 내가 죽기 직전까지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게 창작물에서 아버지의 위치니까. 보통 이런류의 세계관에선, 아버지란 직책의 역할은 두 가지다. 아내가 빼앗기는 걸 지켜보거나, 혹은 그냥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물주 역할을 하거나.

 

 아버지는 다행히도 후자인 듯했다. 안타깝게도 나는 아니다.

 

 여동생은 여러모로 나와는 정반대다. 고지식한 면이 있고, 성적이 우수하고, 친구도 많고, 책임감이 강하며, 리더쉽이 풍부하다. 초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반장을 여섯 번이나 맡았다.

 

 언뜻, 좋은 얘기만 늘어놓는 거 같지만 사실 또 그렇지도 않다. 이 세계관에서 유능하거나, 유별나거나, 아무튼 남의 시선이나 주의를 잡아 끌만한 무언가를 가진 여자라는 건 즉.

 

 “나 왔다.”

 “오빠 왔어?”

 

 집에 돌아오자, 거실 쪽에서 여동생이 대답했다.

 

 신발을 벗어 신발장에 둔 다음 안으로 들어가자, 웬 시커먼 것이 소파에 누워있었다.

 

 가장 알아듣기 쉬운 예시를 들자면 갸루라고 할까.

 

 그게 뭔지 모르는 사람을 위해 대략적으로 설명하자면, 여자 버전의 금발 태닝 양아치 같은 것이다.

 

 성적으로 음란하고, 머리에 든 거 없고, 다만 굉장히 섹시한, 그런 사창가 에이스 꿈나무 같은 여자애를 두고 일컫는 말.

 

 국내에선 보기 드물지만, 애초에 풍기 위원회도 보란듯이 있는 세계에서 그 부분을 지적해 봤자 아무런 의미도 없다.

 

 “뭘 쳐다봐?”

 

 내가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 여동생이 기분 나쁘다는 듯 말했다. 그러더니 누운 채로 스타킹을 신은 다리 한쪽을 소파 등받이에 걸치며 말했다.

 

 “설마 여동생을 보고 꼴린다고 생각한 건 아니지? 오빠 그 정도로 막장이었어?”

 

 음험하게 웃는 여동생. 스커트 끝을 살짝 붙잡고 들추어 안쪽의 다소 과감한 디자인의 팬티를 드러낸다.

 

 “보고 싶으면 봐도 돼? 어디까지나 보는 것만 허용이지만.”

 “오므려 임마. 냄새 나.”

 

 나는 여동생의 다리를 탁 치며 말했다.

 

 그러자 여동생이 못 마땅한 듯 볼을 부풀리며 노려봤다.

 

 “뭐야, 오빠 설마 남자한테 관심 있어?”

 “미쳤냐.”

 “그럼 왜 날 보고 반응 안하는데?”

 “여동생을 보고 반응하는 오빠가 어딨냐?”

 

 사실 조금 꼴렸습니다.

 

 “흥. 말은 그럴 듯하게 하네. 어차피 실좆일 거면서. 깜냥도 없고.”

 

 그리 말하는 와중에 휴대폰이 울렸다. 여동생은 소파 한쪽에 굴러다니는 휴대폰을 집어들더니 이내 헤벌쭉 웃었다.

 

 “혁이 오빠다♡”

 

 그러더니 펄쩍 일어나 마치 그쪽에서 보고 있기라도 한 듯 공손히 앉고서 답장을 보냈다.

 

 “너 남자 사귀냐?”

 

 내가 어이없어 하며 묻자 여동생이 휙 돌아봐 날카로운 태도로 답했다.

 

 “뭐래? 혁이 오빠는 그 이상이거든? 내 하나 뿐인 연인, 나의 반려자, 내 둘도 없는 그님이셔. 혁이 오빠는 내게 진정으로 중요한 게 뭔지 깨닫게 해주셨어. 지루한 일상, 목적 없는 나날들, 불필요한 인간 관계... 그 모든 걸 깨끗이 내려놓고 진정 내가 원하는 길로 나아갈 수 있었던 건 모두 혁이 오빠 덕이야.”

 

 대단한 칭송이었다.

 

 만약 내가 그 혁이 오빠였다면 듣고서 아연실색하며 헤어지자고 했을 것이다.

 

 “그 혁이 오빠란 사람은 혹시 금발로 염색하고 그을린 피부야?”

 “오빠가 어떻게 그걸 알아?”

 “전형적이구만.”

 

 이 세계에 대체 금발 태닝 양아치가 몇 명이나 있는 것일까.

 

 “아무튼, 엄마한텐 말하지 마. 입이라도 벙긋 했다간 죽여버릴 거니까. 진심으로. 농담하는 거 아냐.”

 

 여동생이 살벌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그래. 비밀로 해줄게. 단, 조건이 하나 있어.”

 “조건? 뭔데?”

 

 꺼림칙해 하는 여동생에게 나는 흐흐 웃으며 대꾸했다.

 

 “올 때 메로나.”

 

 

 

 나의 어머니 강예나는 전형적인 미시 느낌의 여성이다.

 

 즉, 아름다우시다.

 

 올해로 마흔이 넘은 나이지만 겉만 봐서는 이십 대라고 해도 충분히 믿을 것 같다. 아니 그 이상으로 사십 대라고 하면 오히려 믿지 못할 것 같다. 그 정도로 젊은 느낌이다.

 

 자기 엄마를 그런 식으로 얘기하면 낯간지럽지 않느냐고 할 수 있는데 그건 대단한 오해다. 나에게 있어 현재 어머니는 그다지 어머니란 느낌이 없다. 나는 이 세계로 들어온 지 이제 1년이 될까 말까 한 수준이다.

 

 즉 가족이라곤 하나 내게 있어 여동생이나 어머니는 일반적인 가족의 그런 느낌이 아니다. 오히려 익숙하단 느낌만 빼면 남남과 다를 바가 없다.

 

 즉 요컨대 나는 이번 생에선 패드립 면역인 셈이다.

 

 “오늘 무가 싸더라. 오랜만의 세일이라 잔뜩 샀지 뭐야.”

 

 저녁 식사 시간.

 

 나는 어머니와 단 둘이 마주보고 앉아 밥을 먹었다.

 

 후루룩. 오늘의 메인 디시는 이견 없이 무국이다. 국물이 따끈따끈하고 무가 신선하다. 소고기는 질기지만 육질이 살아있다. 그야말로 가정식의 교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깔끔하고 담백한 무국이다.

 

 “예지는 어디 갔대?”

 “몰라요. 아까 나가더라고요.”

 

 나는 무국을 그릇 채로 들어 마시면서 말했다.

 

 어디 갈지는 뻔했지만 구태여 말하진 않기로 했다. 올 때 메로나를 사온다고 했으니.

 

 “밥도 안 먹고?”

 “먹고 들어오겠죠.”

 “걔도 참, 요즘 들어 부쩍 불량해진 것 같아서 걱정이야. 머리를 염색하지 않나, 화장을 하고 다니지 않나, 손톱을 물들이지 않나...”

 “유행인가 보죠 뭐. 그럴 나이잖아요.”

 “그런가. 그랬으면 좋겠는데~. 시윤이 넌 유행도 안 타고 참 다행이야.”

 

 컥. 국을 마시다 말고 갑작스레 화살이 내 쪽으로 돌아오자 나는 그만 사레가 들려 뿜을 뻔했다.

 

 뭐지. 방금 그 말은 조금 아팠다. 분명 공격성이 없었는데도.

 

 “참, 그러고 보니 오는 길에 이상한 건물을 하나 봤다? 꽤 큰 빌딩인데 듣기론 어느 회사가 통째로 임대해서 쓰고 있다나 봐. 근데 간판도 없고 안내판도 없고 참 묘하지 뭐야.”

 “그래요?”

 

 그 정도로 이상하다는 표현을 쓰다니, 과장이 심하구만.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세계에서 이상하다는 표현을 적절히 쓰려면 빌딩을 강간하는 남자 즈음은 봤어야 할 것이다.

 

 “뭐하는 회산데요?”

 “그... 듣기로는 인형을 만든다나 봐. 인형 제조 회사라고 했던가? 업체명이 그거래.”

 “묘하네요.”

 

 인형이라. 이 세계관에서 인형이라고 한다면 리얼돌밖에 안 떠오른다.

 

 뭐 그 정도면 무난하지. 설마 살아있는 사람을 가지고 인형을 만들진 않을 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