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을 마치고 기숙사에 돌아온 저는 계속 그 날 일을 생각합니다. 더 이상 이야기하지도, 함께하지도 않는 우리를 생각합니다. 고개를 한 번 젓고 매정하게 돌아선 당신과, 그런 당신의 뒷모습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저를 생각합니다. 한 번 더 붙잡는 게 그렇게 쉬웠을 터인데, 그날따라 왜 발이 떨어지지 않았는지. 말이 나오지 않았는지.
어쩌면 제가 안일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붉은 실로 이어진 사이니까, 운명이니까. 지금 당장은 할 일이 있더라도 언젠가, 어딘가로 둘이서, 사랑의 도피를, 혹은 여행을 할 것이라고 믿었으니까. 당신께서 그렇게 말씀해 주셨으니까, 그 말씀을 믿었으니까. 그러니까 우리는 괜찮을 거라고. 내일 당장이라도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잘 지낼 수 있을 거라고 스스로 안심시켰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저 스스로가 가장 잘 알았는지도 모릅니다.
처음엔 당신이 미웠습니다. 너무 미워서, 당신을 부수고 먹어치울까도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건, 레이스와는 전혀 다르겠죠. 즐겁지 않겠죠. 누가 잘못했는가를 떠나서, 그런 행동을 했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죄책감 속에 살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날 아무 말 없이 돌아왔습니다. 꼭 지금처럼, 불 꺼진 기숙사 방에 홀로 앉아 생각했습니다. 당신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왜냐면 당신이 미운 이상으로 당신을 사랑하니까요. 그러나 사랑하는 마음보단 못해도 미워하는 마음이 커진 것도 사실입니다. 저는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꼭 미련처럼 당신이 제 이름을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와도, 마음 속에서 당신에게 가고 싶다고, 가야 한다고 말해도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건 그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항상 당신의 옆을 거닐던 저였는데도, 당신 곁으로 가기가 두렵습니다. 사랑이란 일방통행일 수 없고, 당연히 거절당할 수도 있다는 걸 알았지만, 막상 현실이 되니 충격을 감당하기 쉽지 않은가 봅니다. 네. 저는 당신에게 거절당했고, 또 거절받기가 두렵습니다.
작고 존재감 없는 저를 발견해주신 트레이너 님, 나의 당신. 제 속에 깃든 강한 충동, 먹이를 삼키기 위해 도사린 짐승처럼 어두운 마음까지 살펴주셨던 당신. 그마저도 아름답다고, 그마저도 아끼신다 말해주신 건 전부 거짓말이었던가요? 저는 지금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당신께서 하셨던 말을 아무리 곱씹어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저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당신의 마음만이 변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게 탓하려는 마음조차 죄스럽게 여겨지는 것은, 더 사랑하는 쪽의 죄책이려니 삼킬 뿐입니다.
네. 이 모든 것을 겪고도, 저는 당신을 더 사랑합니다. 적어도 당신이 절 사랑하는 것보다는 제가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큰 것은 확실합니다. 당신을 미워하는 마음보다도 사랑하는 마음이 더 큰 것도 사실입니다. 아마 당신에게 다시 돌아가도 열에 아홉은 저를 거절한다 해도, 저는 당신을 완전히 미워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저는 당신을 사랑했고, 지금도 당신을 사랑하고 있으니까요. 아직도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게 제 이름이니까요. 제 운명이니까요.
그러니 당신, 혹시 지금도 절 가끔이라도 생각하신다면.
함께 도망가고 싶으시다면, 제 이름을 불러주세요.
==========
붉은 색을 보면 그 아이의 얼굴이 떠오른다. 벌써 며칠째 담당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분명 부르면 갑자기 어디선가 튀어나오곤 했는데, 얘기는 커녕 목소리도 못 듣고 있었다. 빈 트레이너실에서 혼자 일을 하고 퇴근하다가, 한 디저트 가게를 지나갔다. 가끔 담당과 앉아서 다과를 먹곤 했던 가게에, 딸기 파르페가 새 시즌 메뉴로 올라와 있었다. 딸기가 맛있는 계절인가.
“스틸, 듣고 있니?”
지나가는 소리처럼 물어도 돌아오는 건 쓸쓸한 바람소리 뿐이라 그는 그저 웃을 수밖에 없다.
“하, 이거 단단히 삐졌네. 이거 어떻게 풀지......”
“......해.”
문득 바람의 흐름이 변했다. 손을 잡아채는 듯한 날카로운 바람에 그가 돌아서던 걸음을 멈췄다. 몸을 한 바퀴 돌려봐도 보이는 것은 텅 빈 거리 뿐이었다.
“말해.”
“......환청이 들리나.”
“.....고 말해......”
바람이 스칠 때마다 들려오는 소리가 점점 또렷해졌다. 마치 무엇인가를 권하는 듯한, 아니 명령하는 듯한 낮고 귀기서린 목소리였다.
“먹자고 말해...... 딸기 파르페......”
“이 녀석!”
트레이너가 바람이 부는 쪽으로 꿀밤을 먹였지만 그곳엔 아무 것도 없었다.
“......에헤.”
허공을 가른 그의 주먹을 비웃는 듯한 소리, 트레이너는 모든 것을 포기한 표정으로 손을 내밀며 고개를 끄덕였다.
“으휴, 그래. 딸기 파르페 먹자. 사줄 테니까 나와.”
곧 그의 손 앞에 베일을 쓴 키 작은 우마무스메가 볼을 잔뜩 부풀리고 나타났다. 그를 원망스러운 눈으로 째려보고 있었다.
“이제와서 뭔가요? 저번에는 매몰차게 제 마음을 거절하셔놓고.”
“하도 과자를 많이 먹어서 살찌기 직전이었다. 다과회에 2차라니 말이나 되는 소리냐?”
“절 진짜 사랑하신다면 납득이 가는 설명을 해 주세요.”
스틸 인 러브가 항변하던 그의 약지를 집어올려 입 안에 넣고 살짝 깨물어 상처를 냈다. 잽싸게 손가락을 빼 이마에 꿀밤을 먹이자 그녀가 황급히 베일을 벗어들었다. 침과 핏자국이 애매하게 남아 더러워진 베일을 내려다보며 울상을 짓는 스틸의 이마를 한 대 더 딱콩 치고 트레이너가 인상을 찌푸렸다.
“체중계는 거짓말 안 해. 네 체중이ㅡ”
“매혹적이라고요? 매혹적이라고 하시려는 거죠?”
공식 프로필 자료로 필사적으로 얼버무리려는 그녀의 이마에 다시 꿀밤을 먹이려다 말고 트레이너는 한숨을 쉰다.
“에휴. 됐다. 그러는 너야말로 삐져놓고 이제와서 뭐냐? 파르페는 못 참는다 이거냐?”
“파르페가 중요한 게 아니예요. 당신이 제게 화해를 요청했고, 그만큼 절 아직 사랑하신다는 게 중요한 거죠.”
“그래. 그렇겠지.”
“저도 당신을 사랑하니까 화해하고 싶어요.”
“화해가 하고 싶은 거야, 파르페가 먹고 싶은 거야?”
“같은 말이예요.”
수줍게 팔짱을 껴오는 그 모습이 싫지 않아서, 디저트 가게에 들어가기 전 트레이너는 그녀의 머리를 쓸어 정돈해준다.
“그래. 파르페도 먹고, 화해도 하자. 나도 널 사랑하니까.”
“......목소리가 너무 커요......”
새빨개진 얼굴을 소매에 묻으며 몸둘 바를 몰라 하는 스틸 인 러브와, 흐뭇한 미소를 짓는 트레이너가 디저트 가게에 들어간다. 과자로 상한 마음을 과자로 고치러 간다. 이대로 체중관리라는 현실에서 함께 도망치러 간다. 사랑의 도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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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딩이 뭔 피폐여 파르페나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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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문서
[괴문서] 그냥 스틸 인 러브 파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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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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