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글 모음

실바도르 아옌데 [1908—1973]


이 분의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1.뭐하는 분이신가요?


1908년 6월 26일,칠레의 도시 발파라이소에서

실바도르 아옌데라는 인물이 태어나게 됍니다

당시 아옌데의 집안은 19세기부터 유명한 정치활동가

집안이였으며 남미의 기득권집안중에 한명이였습니다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난 아옌데는 평범히 살수 있었지만

10대시절 집근처의 구두수선공을 통해

미하일 바쿠닌의 서적을 읽는등 무정부주의에

흥미를 갖게 됍니다.


1926년,군대를 갔다온 그는 좌익 사상에 더욱

관심을 갖게돼면서 칠레대학교에 입학하는데

이후 칠레대학교에 입학한 그는 의학부를 재학하면서

마르크스주의 운동에도 참여하며 반정부운동을 하다

2번을감옥에 투옥당하게는데 이후 가석방 후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면서

"나는 이 사회의 변화를 위해 투쟁하겠다"

라는 마음을 굳게 다지게 돼며 맹세하게 됍니다


체 게바라가 의사시절 처참한 삶을 보며

분노해서 사회주의자가 됐듯이,

아옌데도 칠레의 의료혜택을 못받고 죽어가는

하층민을 보며 칠레의 의료모순을 보고

더더욱 사회주의자가

돼기로 마음을 먹게 됍니다


2.칠레의 상황은 어땠는가?


당시 칠레에는 합법적으로 정치활동을 할수있는

칠레공산당이 있었지만 1932년,아옌데는

칠레사회당에 입당하게 됍니다

칠레의 상황을 모른체 코민테른의 지시를

받는 칠레공산당보다는 칠레의 상황을 더 잘아고

이해할수있는 사회주의정당이 필요한이유때문에

칠레사회당에 입당하게 됍니다.


그의 노력과 입당이 헛되지만은 않았던 것일까.

아옌데는 1937년 사회당 하원의원으로

정계에 진출하게 됀다.

이후 연립정부에서는 보건복지부 장관도 지내며

상원의원도 지내게 돼는데 하지만 운은 여기까지였을까.

대통령선거였던 1952년,1958년,1964년

총 임기6년인 대통령선거에 출마했으나 번번이

보수세력의 방해와 진보,좌익의 분열 때문에

낙선하고만 만 것이다 그러면서 세월은 빠르게

1970년 대통령 선거를 이끌고 오고있었다.


1960년대는 칠레의 불평등이 극에달해 

폭발하기 직전의 사회였다

당시 에두아르도 프레이 몬탈바 대통령은

농지개혁을 소극적으로 실행할려고 했으나

대지주들의 분노로 실패로 돌아갔으며

 엉성하고 어설프게 유치한 해외자본의 유치는

도시의 인플레이션을 촉진시켜 노동자들의

분노를 쌓고 있었고 결국이는 시위로 촉발되기

시작하는데 1969년만 해도 파업건수가

1900여건은 넘었으며 농민들은

토지점거 운동을 벌이며 자본과 지주를 향해

저항하는 동시에 선거로 심판하기로 분위기가

변하면서 칠레의 진보,좌익정당에게 표가 쏠리게됀다.


그러면서도 칠레의 좌익세력들은 고질적인

암덩어리나 마찬가지인 내부분열을 없애고

칠레의 6개 정파로 만든 인민연합이 탄생하였으며

칠레공산당후보이자 노벨문학상수상자인 시인

파블로 네루다는 출마를 반려하며 최종적으로

아옌데가 대통령이 돼는 기적이 생기게 됍니다.


하지만,아옌데의 득표율은 36프로 당시 칠레법상

과반수를 얻지못한 후보는 의회가 대통령을

결정할수 있었는데 아옌데는 칠레 기독민주당과

협상을하며 세계최초로 민주적이게 선출됀

사회주의자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가 당선됩니다.


3.개혁은 성공하는가?


1970년11월5일, 아옌데는 취임식에서

빵과 포도주가 넘쳐나는 국가로 만들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며 개혁을 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여러 남미국가가 그렇듯

대부분의 수입원은 외국,특히 미국자본이 

칠레의 구리광산을 소유하며 사실상

구리에서 나오는 부는 칠레민중이 아닌

다국적기업이 가져가는 형태였다.


하지만 이제 무언가가 달라지려는 것인가,아옌데 정부는

다국적 기업들이 소유하고있던 구리광산을 국유화하는걸

시작으로 노동환경 개선 및 노조의 활동이 강해지게

시행하였으며 보편적 의료복지,아동 우유배급

에두아르도 프레이 몬탈바 대통령 시절에

할려고했던 토지개혁을 하였으며 일자리가

없는 사람에게 공공근로사업,혹은 국유화된 기업에

일자리를 알아볼수있게 일자리문제도 해결합니다.


그러는한편 전기와 수돗물을 칠레전역으로

확대시킬려고 했으며 마을마다 보건소,법률상담소를

지었으며 집세는 가계수입의 10%를 상한선으로 정해

민중들이 집세에 부담을 갖지 않게 하였으며

집세가 더 인상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4.경제는 좋았나요?


당시 아옌데 정부의 경제정책은 경제부문을 3개로 나눠

나라를 이끌고 있었는데 사회부문,혼합부문,민간부문으로

나누어 민주적인 계획에 따라 모두 효율적으로

연결되는 방식을 취하였습니다.


그결과,임기 1년엔 성장율 8.6%를 달성했으며

이후엔 인플레이션,실업율도 줄어드는 쾌거를

이룩하게 됩니다.


그러는 한편,아옌데 정부는 컴퓨터를 통해

계획경제를 이끈다는 사이버신 계획이란

프로젝트도 진행하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평화롭게 진행돼었다면 좋았겠지만....


5.미국의 개입


남미에 영향력을 제일 끼치는 국가가 어디일꺼 같습니까?


바로 미국입니다.


당시 미국은 자신의 앞마당인 쿠바에 공산정권이

생기는걸보고 자신들의 패권에 유리하게 만들기위해

남미의 우익정권,혹은 군사정부를 대폭 지원을

하던 시기였습니다.


자,그런데 칠레가 사회주의 정부가 들어서고

다국적기업들이 국유화를 하기 시작하며

미국은 불안해지기 시작합니다.


미국은 국가안보회의에서 헨리 키신저를

중심으로 칠레문제를 어떻게 다스러야 하는지

의논하기 시작하였고 회의결과 2가지의 방법이

나오게 됍니다


1. 칠레경제를 수렁에 빠트려 몰락시키는 방법


2.군부를 전적 지원하며 쿠데타를 일으켜 바꾸는 방법


우선 미국은 칠레경제에 가장큰 비중을 차지하고있는

구리가격을 낮추기 위해 비축하고있던 구리를

시중에 풀어 구리가격을 하락시키기 시작한다

그결과,시중 구리가격은 15.7%나 하락해

칠레경제에 타격을 입히게 되었으며


한편으로는 뒤에서 군부한테 8백만 달러에

이르는 자금을 주며 군사쿠데타를 계획합니다

일단 사전준비를 할겸 칠레의 육군참모총장인

레네 슈나이데르를 암살을 하고 각종 

군인및 사회지도층을 암살및 납치하며

칠레에 수출돼었어야한 산업장비 의약품들 및

각종 필수품을 수출중단을 하며 칠레에 대한

대외봉쇄도 진행하게 됍니다.


그결과,1973년 상반에만 300%에 달하는 

인플레이션 폭탄을 맞게 되었으며

채권에 대한 디폴트를 선언까지 할 정도로

칠레경제를 수렁에 빠뜨리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러는 와중에 우익,군부,지주,사업가들은

분위기를 조장해 파업을 일으키거나

유통업자들이 운송중단같은 시위를 일으키는등

내부갈등도 일어나게 됍니다.


또한 아옌데 내각이 정책을 실행할려고 할때마다

야당은 끊임없이 아옌데의 발목을 붙잡으며 

괴롭혔는데 개혁을 저지시키기 위하여

안간힘을 다하였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칠레민중들은

아옌데 정부를 믿었으며 1973년 3월 선거에서

인민연합이 의회에서 과반수를 얻으며

민중들의 열망이 굳건하다는걸 보여주었습니다.

그결과로 아옌데의 정책이랑 개혁은 더더욱 탄력을

입었으며 개혁을 하기전에 국민들에게

재신임을 묻는 투표를 할려고 하였다

그러나.....


6.산티아고에 비가 내립니다


1973년9월11일,재신임투표 당일새벽

갑자기 칠레의 모든국경및 항공이 폐쇄되기 시작.

곧이어 라디오방송국,국회를 군이 점령하더니

산티아고에 있던 육군이랑 공군이 대통령궁을 향해

가기 시작합니다 즉,칠레에 쿠데타가 일어난 것입니다.


쿠데타의 주동자는 아우구스트 피노체트

미국의 지원을 받은채 쿠데타를 실행한 것입니다




모든건 허망하게 무너져버리는 것인가.

아옌데는 곧 일어날 일을 예감한 것인지

이러한 라디오 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동포들이여, 공군이 이미 <라디오 포르탈레스>와 <라디오 코르포라시온>의 송신탑을 폭격했습니다. 슬프다기보다는 차라리 실망스러울 뿐입니다. 조국을 지키겠다는 맹세를 배반한 군부에 도덕적 단죄가 뒤따르기를 바랍니다. 칠레의 병사들, 허울뿐인 지휘관들, 해군 참모총장을 참칭하고 나선 메리노 제독, 어제까지만 해도 정부에 대한 신의와 충성을 다짐하고도 쿠데타군에 가담해 경찰총장 자리를 차지한 멘도사 장군의 행태는 차마 입에 담을 수조차 없습니다. 이런 비열한 행태를 마주하면서 제가 반역자들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은 '나는 결코 사임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역사적인 순간을 맞은 지금 저는 인민들의 충정을 제 목숨으로 보답하려 합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우리가 수많은 칠레 인민들의 존엄한 의식 위에 뿌린 씨앗은 결코 파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저들이 무력을 장악했으니 우리를 짓밟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사회적 변혁의 과정을 멈추게 할 수는 없습니다. 범죄 행위로도 무력으로도 막을 수 없습니다. 역사는 우리 편이며 역사를 만드는 것은 인민입니다.


조국의 노동자 여러분, 그동안 보내주신 변치 않는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정의를 갈구하는 여러분의 의지를 옮기는 통역 구실에 불과한 제게 보내주신 무한한 신뢰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여러분께 헌법과 법률을 준수할 것을 다짐했습니다. 저는 헌법과 법률을 지키기 위해 지금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연설을 하는 이 결정적인 순간에, 여러분께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이번 사건을 교훈으로 삼아주십시오. 반동적인 무리들이 외국 자본과 제국주의와 결탁해, 헌정 질서를 존중해 온 군의 전통을 깰 수 있는 분위기를 조장했습니다. 시나이데르 장군과 아라야 사령관은 칠레군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다가 희생됐습니다. 저들은 지금 집 안에 숨어 자기들의 이익과 특권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 군부와 권력을 찬탈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조국의 겸허한 여성 동지들께 특별한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인민연합 정부를 믿어주신 여성 농민들과, 누구보다 힘써 일하신 여성 노동자들, 그리고 인민연합의 보육 정책을 적극 이해해 주신 어머니들께 감사드립니다.


이 땅의 모든 애국적 전문 직업인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은 전문가 집단 내부에서 터져나온 온갖 선동, 자본주의 사회가 제공하는 수많은 특권을 지키기 위해 혈안이 된 계급 집단에 맞서 올곧게 투쟁해 왔습니다.


노래와 흥겨움, 열정으로 투쟁을 지원했던 청년들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칠레의 모든 남성에게도 안타까운 인사를 전합니다.


노동자와 농민과 지식인 모두, 앞으로 파시즘 치하에서 탄압을 당하게 될 겁니다. 파시즘은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테러가 횡행하고, 교량이 파괴되고, 철로가 끊기고, 원유와 가스 파이프라인이 파괴돼도 이를 막아야 할 자들이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들 역시 똑같은 짓을 저지른 겁니다. 역사가 저들을 심판할 것입니다.


인민 여러분, 스스로를 보호해야 합니다. 하지만 절대 희생돼서는 안 됩니다. 저들에게 압도당해서도, 살육을 당해서도 안 됩니다. 저들의 모욕을 참지도 말아주십시오.


조국의 노동자 여러분! 저는 칠레와 칠레의 운명에 대한 믿음이 있습니다. 반역이 우리에게 강요한 이 잿빛의 쓰디쓴 순간도, 누군가는 반드시 이겨낼 것입니다. 그 점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그리 머지않은 장래에, 자유로운 인간이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당당하게 걸어갈 드넓은 길을 열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칠레 만세! 인민 만세! 노동자 만세!


이것이 제가 여러분께 드리는 마지막 말입니다. 제 희생이 헛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적어도 제 희생을 통해 범죄자와 비겁한 자, 반역자는 반드시 처벌받아야 한다는 도덕적 교훈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연설이 끝난 직후 아옌데는

자신의 가족,총을 다루지 못하는 사람 각 부처의

장관및 관료를 내보낸 이후


아옌데와 그를 지키는 지지자들.

군부와의 교전이 시작돼었다.


지지자들과 아옌데는 끝까지 싸웠으나,

세상은 힘있는 자들의 편이였는가.


아옌데의 지지자중 한명이 부상후 자살하고

점점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하는걸 보면서

희생을 원치 않았던 것일까.


곧이어 아옌데는 협상을 하겠다며 동료들을

밖으로 내보낸뒤 과거 카스트로가 선물해준

AK-47로 생을 마감한다.


그이후 피노체트는 쿠데타에 성공해 권좌에 오르고

1989년 하야할때까지 칠레는 유래없을 정도로

남미에서 피바람이 많이 불어오는 국가가

되어버립니다.



살바도르 아옌데, 

최초로 민주적으로 선출된 

사회주의자 대통령 


비록 실패했어도 자신의 이상을 칠레 민중들에게

나눠줄려고 했던자.


하지만 그에대한 꿈을 꾼 처벌은 너무나도 가혹했다


하지만 그는 패배자가아니였다 

역사와 칠레민중과

우리들의 기억과 역사에서는

승리자인 대통령으로 기억될 것이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