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글 모음

비오는 날 수기를 써본다.


나는 사실 글을 못쓴다. 그냥 못쓴다. 학교에서 백일장을 한 번 수상해 본적도 없다.

그래서 솔직히 글을 쓸때마다 두렵다. 내 글이 부끄럽고 창피했다.


근데 시간이 지날 때마다, 그러니까 내가 변해갈 때마다 이런 부분들이 변해갔다.


나는 변했다.

그래서 예전의 나를 기록하기 위해 글을 쓰고 있다.


최근 들어 나는 화장실을 자주 가는 일이 많아졌다. 익숙지 않았지만 익숙해져야 하는 것들이 계속 눈에 들어왔다.

남자일 때와 다른 것들 말이다. 


아참 피는 이제 조금 익숙해졌다. 배가 부풀고 몸이 더럽게 아프다는 건 익숙해지지 않았지만 말이다.

피를 보는 건 익숙해졌다. 원래 하던 일도 피를 보는 일이었으니까 내 몸에서 나오는 피에 익숙해지는 건 당연했다.


그렇게 피에 익숙해지니 여유가 생겼다.


거울 속에 비춘 내 얼굴도 보이기 시작했다.

나름 예뻤다. 그런 외모의 존재가 나라는 게 믿겨지지 않았다.


그래서 어제는 처음으로 길거리로 나가봤다. 이건 무려 3 개월 만이다.

3 개월 만에 바깥으로 나가니 기분이 이상했다. 그리고 남들이 쳐다 보는 느낌이 들었었다.


내 착각이겠지만 말이지만. 그래도 이 얼굴이면 누구의 이목은 사로 잡기 충분했다.

그렇게 나는 차분하게 걸었고 편의점을 갔고 5 천원을 썼다.


이 5 천원은 바나나 우유 하나, 그리고 고양이를 위한 츄르 하나였다.

고양이용 츄르를 산 건 딱히 이유가 없었다. 내가 편의점을 갈때 고양이 하나가 계속 달라 붙어서 떼어 놓기 위한 거였다.


다만, 이렇게 집까지 따라올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이 고양이는 내게 편견이 없어 보였다.

내가 전에 남자였던 말이다.


하긴 동물들이 그런 걸 생각할까?
그냥 저렇게 비가 싫다고 투덜대며 털이나 고르고 있는데 말이야.


아무튼 녀석의 이름은 나비다.

이유는 없다. 어릴 때 할머니 댁에 자주 오던 고양이 이름이 나비여서 그렇다.


이렇게 생각해 보니 대충 지은 느낌이 들었다.

글을 쓰니 이런 게 생각이 나네. 이왕 생각난 거 이름을 다른 걸로 지어 볼까.


"중구난방의 글이지만 나름 썼네."

나는 이런 말을 하며 내 수기를 바라보았다.

손이 뻐근했다. 원래 하던 일도 펜을 잡는 일을 하던 인간이 아니었다 보니 대략 10 분 정도 썼다고 벌써 손이 불편했다.


"에휴. 늙어서는."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머지 수기는 이따가 써야지 하고 냉장고로 향했다.


냉장고 안은 편의점 음식으로 가득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편의점 도시락이다. 간편하고 맛있고. 다만, 한 가지 단점이 있었다.


"살이 너무 빠르게 찌는 거 같은데."

나는 이런 말을 하며 내 뱃살을 바라보았다.

여자가 되니 살이 더 빠르게 찌는 느낌이었다.


"여동생이 뭐만 먹으면 살찐다고 말한 게 이해가 되네."


그 순간 벨소리가 울렸다.

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고. 


나는 문을 열었다.

그러자 교복을 입은 동생이 젖은 몸을 털며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가 들어오자 나비가 바로 하악질을 했다.

아무래도 비 때문이겠지. 나비는 물을 싫어했다. 모든 고양이가 그러하듯 말이다.


"빨리 빨리 열지. 도시락 먹으려고?"

"응."

"내껀?"

"넌 학교 식당에서 먹고 왔을 거 아니야."

"나참. 점심 시간이 4 시간 전이었는데 무슨 소리야. 나 한참 자랄 나이니까 빨리 줘."

"...불고기 아니면 제육?"

"상여자는 제육이지."

"..."

보시다시피 나와 성격이 정반대였다.

남자답고 활기차며 활동적이었다. 그래서 솔직히 여동생이 아니라 남동생 같았다.


아무튼 그렇게 도시락을 덥히려는데 동생이 밥상에 앉았다.

그리고 치마를 입은 상태로 다리를 올렸다.


"으...홀딱 젖었네."

"좀 가리고 다니면 안되냐?"

"왜? 어차피 오빠도 아니고 언니가 됐는데 그냥 좀 봐."

"보기 싫은데."

"설마 여자끼리 하는 그런 거에 관심 있는 거야?"

"절대로 아니거든. 그리고 발랑까져서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왜? 이제 2 개월 뒤면 성인인데."

내 동생은 학교를 늦게 갔다. 이유는 뭐 그런 것들이다. 불우한 가정 환경 같은 것들 말이다.

당장 나와 동생만 따로 사는 것도 그런 이유의 연장선이고.


그래서 동생은 뒤늦게 학교를 졸업했다. 그리고 2 개월 뒤면 성인이 되고.

내년이 되면 대학교를 간다.


"무슨 생각해?"

"다 키웠다 싶어서."

"하긴 오빠...가 아니라 언니가 나 업어 키웠지. 받은 은혜 꼭 갚는다 내가."

"안 갚아도 돼."

"에이 그럼 재미가 없지. 아무튼 나 대학가자마자 알바할 테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뭔 알바야. 돈은 내가 벌테니까 넌 공부나 해."

"공부 재미없어. 돈 벌래."

"공부할 때가 제일 편한 거야."

나는 돌아가신 엄마가 하고 있는 말을 하고 있었다.

아 이럼 안되는데.


"또 잔소리."

"그래 그래. 난 잔소리 대마왕이다."

이런 말을 하며 도시락을 건넸다.

이에 동생은 도시락을 받아든 뒤 말을 건넸다.


"오빠 근데 이번에 친구 데려와도 돼?"

"친구?"

"응."



* * *


대충 주인공과 여동생 친구가 그렇고 그런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