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하. 또 오빠 보러 온거야? 다행이다. 오늘 안오는 줄 알았어.'

'.......'

'그....탈리아.....미안....오빠가 숨이 차서 도저히 못 걷겠어...'

'괜찮아. 오늘은 그냥 집에서 쉬자.'

그 누가 봐도 생기가 넘치는 젊은 외모에 애쉬블론드 색 머리칼을 늘어뜨린 엘프 여성과.

그런 그녀를 탈리아라고 부름과 동시에 스스로를 오빠라 자칭하는 늙은 노인이 있었다.

앞뒤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노인을 보고 나이먹고 제대로 노망난 영감쟁이라 생각할수도 있을터. 

그러나 놀랍게도 두사람의 나이는 겨우 5살 차이였다.

오늘은.

83세의 나이인 어린 엘프와.

88세의 나이인 늙은 인간의 인연이 끊어지는 날.




첫 만남은 소년과 소녀로 만났었다.

"놓치지마!!! 잡아!!!!"

쐐액!

"꺄아아악!!!"

그저 강물에 떠내려가는 조그마한 잎사귀가 어디까지 떠내려갈까.

그 사소한 호기심이 13살의 아기 엘프의 발걸음을 엘프들의 마을에서 인간들의 마을로 옮겼고.

하필이면 같은 인간도 잡아다 팔아넘기는 질 나쁜 것들의 눈에 띄고 말았다.

겁에 질린 채 발바닥이 까지는 것도 모르고 달리던 어린 엘프를 구해준건.

"그만두지 못해!!!!"

태앵!!

날카로운 한손검을 들고 나타난 인간 청년이었다.

레온.

훗날 이 엘프 소녀를 아내로 맞이하고.

세상을 멸망시키려는 마왕을 토벌하는 용사로서 이름을 날리는 이 남자와 탈리아의 첫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러나 잔인하게도 시간은 레온과 탈리아가 사랑하는 모든 것을 하나하나 앗아갔다.

골드드래곤의 시험을 통과하고 얻은 용검을 자유자재로 다루던 레온의 팔은 점점 노쇠해 숟가락조차 오래 들지 못하였고.

그토록 이야기책을 좋아했던 흑요석빛 눈동자 역시 글은 커녕 사랑하는 여자의 얼굴도 못알아보기 시작했다.

"탈리아......정말 미안....."

".....레온 오빠."

보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제대로 익지도 않은 마수고기도 으적으적 씹던 그가 갈수록 이빨이 시원찮다고 투덜댔을 때부터.

탈리아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한다 생각했고. 수십년을 눈물을 흘리며 준비해 왔다.

그러나 정작 이별의 시간이 다가올수록.

"탈리아.....오빠 요즘 들어서 너무 피곤해.....오늘은 자고 내일 놀자....."

"........"

그녀는 도저히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레온이 최선을 다했다는 것은 안다.

다른 단명종 동료들이 하나 둘 흙 속에 묻혔음에도 그는 마지막까지 탈리아의 곁에 남아주었으니까.

그러나...

"흐윽.....우으으....."

그가 최선을 다해 벌어낸 수십년의 시간은 최장수종 중 하나인 탈리아에게 찰나의 순간이었다.

보내줘야 한다.

이 이상을 바라는 건 그를 위한게 아닌 자신을 위한 투정이다.

라고 수십번을 되새기며 연습해온 순간이건만.

"가지마....."

탈리아는 다시한번 투정을 부렸다.

자신의 곁에 있어달라고.

툭. 투둑..

자신의 손에 따뜻하고 축축한 감촉이 느껴지자 레온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울고 있구나....미안해....오빠가 더 오래 살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오빠....."

그순간.

"그래서.....오빠가 준비했어..."

"???"

영문모를 소리를 하는 레온의 모습에 탈리아가 시선을 그의 얼굴로 향하자.

레온은 자신의 가슴팍을 힘겹게 가리켰다.

"탈리아 너가.....울까봐.....다시 만나기 위해 준비한거야....."

레온의 말과 손짓에 탈리아는 그의 옷섶을 풀어헤쳤고.

"!!!!!"

동시에 그의 가슴팍에 그려진 마법진이 눈에 들어오자.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이건 윤회전생의 마법진...?"

윤회전생의 마법.

시전자의 기억과 영혼을 유지한 채 다른 생명체로 다시 태어나게 만드는 마법.

"오....오빠....."

"처음 만난 날부터 날 기억해주고. 다시 만나러 와줘서 고마웠어."

탈리아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이번엔 내가 찾아갈게. 반드시."

이별을 준비히고 있던 건 자신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스르르륵.....

자신과 달리 레온은 재회까지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러나 그가 준비한 재회 방법은.

"아......안돼....."

완벽한 재회를 약속하는 방법이 아니었다.

"왜 이런 짓을 한거야!!!!"

점점 눈꺼풀이 힘없이 내려앉는 레온의 모습에 탈리아는 그를 끌어안고 울먹이며 소리쳤다.

"그 마법은 미완성됐다는거 알잖아!!! 잘못하면 인간보다 더 수명이 짧은 코볼트나 고블린으로 환생할수도 있다고?!!!"

그러나 그녀의 울부짖음에 대한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아.....아....."

스스...스스스....

마른 모래로 만든 모래성이 바람에 쓸려 부스러지듯.

"오빠 제발....내가 잘못했어....."

레온의 몸은 바스라져 갔다.

"가지마...."

수십년 동안 마음을 정리해왔지만.

"레온....."

아직까지도 그를 향한 사랑만큼은 정리하지 못한.

"아아아아악!!!"

어린 엘프를 놔두고.




50년의 세월이 지난 후.

또르륵.

탈리아는 뼈 한조각 묻혀있지 않은 빈 무덤 앞에 세워진 비석 앞에 술잔을 내려놓고 그 안에 적포도주를 따랐다.

"대체 언제 올꺼야."

아직도 소식이 없었다.

처음 몇년동안은 다른 종족으로 다시 태어났어도 너무 어려서 찾아오지 않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그녀의 생각은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고.

이윽고 반백년의 세월이 지나자. 의구심으로 변질되었다.

마법이 실패한걸까?

아니면 추악한 몬스터나 더러운 가축으로 환생해 다시 죽음을 맞이한건가?

그게 아니면.....그것마저도 되지 못한 채 지렁이나 귀뚜라미 같은 걸로 환생한건가?

하루에도 수십번씩 끔찍한 상상을 하다가도 다시 고개를 내저어 지워버리기를 반복해갔다.

인간이라면 진작에 식어버리고도 남았을 시간이었지만. 장수종 답게 굳건한 기억력과 그것에 동반되는 뜨거운 감정은 쉬지않고 그녀의 심장을 지져댔다.

풀썩.

괜한 상심에 빠지게 하는 한심한 망상을 지워내기 위해 탈리아는 무덤 옆에 드러누웠고.

그런 그녀의 눈 앞에 푸른 물결이 연상되는 파란 하늘과 그 위를 떠다니는 구름 몇점의 모습이 나타났다.

'어머니. 왜 인간하고 같이 지내면 안된다는 건가요?'

'탈리아. 저 하늘을 보렴. 정말 아름답지?'

'네.'

'정말로 아름다운 하늘이지만 저 하늘과 같이 지내려고 하면 안돼. 저 하늘의 모습은 시간이 지나면 순식간에 사라질테고. 두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테니까.'

'하지만 비슷한 하늘이 나타날수도 있잖아요.'

'비슷한 하늘이지 같은 하늘은 아니니까. 그러다 하늘빛에 사로잡히기라도 하면 넌 그 하늘만을 그리워하며 남은 여생을 보내게 될꺼야.'

"필멸자도 마찬가지다. 우리보다 주어진 시간이 짧은 존재와 어울리거나. 같이 지내거나. 사랑하려들지 마라."

어렸을 때 부터 그녀의 어머니가 질리도록 해준 말.

"망할 할망탕구. 하늘에 사로잡혀선 안된다는 것만 알려주고. 벗어날 방법을 안말해주면 어떡해."

그순간.

"안녕 아가씨?"

"!!!!!!!"

갑작스럽게 옆에서 들려오는.

아니. 정확히는 어깨에 닿는 차가운 숨결과 함께 귓가에 들려오는 목소리에 탈리아는 황급히 목소리의 주인으로부터 멀리 떨어졌다.

"반응이 좀 너무한데?"

"너.....넌 누구야.....?!"

탈리아와 비슷한 뾰족한 귀와 날렵한 인상의 체형.

그러나 그녀와 정반대로 새카만 피부에 은색 머리칼을 흩날리는 다크엘프 남성의 모습에 탈리아는 그를 향해 단검을 겨누었고.

그런 그녀의 반응에 남성은 입꼬리를 씩 올리고 웃으며 말했다.

"여기에 왠 이쁘장한 엘프 아가씨가 아까운 술을 버리는 곳이라고 해서 와봤지."

"미친자식."

자신의 진심이. 자신의 연심이 담긴 추모를 모욕당했다는 느낌이 들자마자 탈리아의 입에선 욕설이 튀어나왔다.

"그레서 겸사겸사. 그 엘프 아가씨가 엄선해 준 포도주를 마실수 있을까 해서 말이야."

"너 따위가? 불가능한 소리를 하는군. 다크엘프."

은은한 분노가 섞인 탈리아의 매도에 다크엘프는 뒤로 숨기고 있던 손을 꺼내며 말을 이어갔다.

"맞아. 불가능한 일이지."

"!!!!"

더 정확히는.

"고결하신 하이엘프가 인간남성에게 반한 것 만큼 말이야."

어느새 비석 앞에 놓여있던 술병을 낚아챈 손을 꺼내들면서 말을 이어갔다.

"손대지마!!!!!!"

슈악!!

술병이 다크엘프 손에 들린 것을 보고 이성을 잃은 탈리아는 그를 향해 달려들었고.

덥석!

"!!!!"

다크엘프는 단검이 들린 그녀의 손을 잡아 제지했다.

"이렇게 궁상맞게 굴줄 알았으면 무리를 해서라도 더 빨리 찾아왔어야 했는데."

한편 다크엘프에게 붙잡힌 탈리아는 그를 뿌리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속으로 생각했다.

대체 뭐지? 정체가 뭐야?

백년이 넘는 세월이 지나긴 했지만 자신은 마왕 토벌에 일조한 인원 중 하나였다.

그런데 이런 나를 이토록 쉽게 제지한다고?

그런게 가능한건.....

머릿속으로 한가지 가정을 세운 탈리아는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애써 부정한 뒤. 

그의 다리사이를 노리고 발차기를 날리려 했지만.

"약속대로 이번엔 오빠가 찾아왔어."

멈칫.

그녀의 다리는 그가 오직 자신과 약속대상을 제외한 그 누구도 알수 없는 약속을 언급함과 동시에 멈춰섰다.

".......레온 오빠?"

혹여나 하는 마음에 던진 그를 부르는 자신만의 호칭.

그리고 그런 그녀의 기대는.

"오빠 왔어. 탈리아."

그녀가 50년 동안 기디려왔던 익숙한 미소로 돌려받았다.

"레온....."

기쁨. 분노. 안도감. 원망. 슬픔. 

수많은 만감이 교차했지만 탈리아는 그것을 말로 표현하지 않았다.

그저 구슬같은 눈물이 맺힌 두 눈으로 그를 한참동안 쳐다본 뒤.

스윽...

그대로 몸을 기대 방금전만해도 분노를 쏟아내려 했던.

지금은 그와 상반되는 감정을 쏟아내고 싶은 자에게 몸을 기댔을 뿐.

풀썩.

서로 겹쳐진 두 엘프의 몸이 풀숲 위로 쓰러졌다.

"기다려 줘서 고마워. 탈리아."

".....어서와....레온..."







수명물의 옳게 된 엔딩이란.

장수종과 단명종의 사랑이 단명종 연인의 죽음으로 이별했다가.

 장수종으로 다시 환생해 다시 만나는 것.

이게 옳게 된 엔딩이다. 

반박시 님말이 맞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