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마약, 이 둘은 겉 보기엔 별 상관 없을 것 같지만 실제론 아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독버섯의 대명사 광대버섯. 환각성분을 갖고 있다.


고대의 용맹한 바이킹 전사로도 유명한 노르만족. 이들은 과연, 무엇 때문에 이토록 용맹했을까? 다마스쿠스검 같은 명검? 뛰어난 전략? 그 비결은 바로 광대버섯이었다. 네셔널지오그래픽에서 2000년대 중반에 실험해 본 결과 방패는 특정 각도에선 참격을 막지 못하고 부서지고, 갑옷은 화살 앞에서 힘없이 뚫렸다. (아무리 얕아도 3cm, 이건 그나마 튼튼해서 그런거고 일반적으로 그들이 많이 차던 사슬 갑옷류는 깊게는 무려 12cm 까지 뚫렸다.) 

하지만 바이킹은 이를 광대버섯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생성하는 환각 성분으로 해결했다. 광대버섯을 죽지 않을 만큼만 먹으면 환각 성분으로 인해 두려운 감정이 억제되고 그야 말로 세상 무서울 것 없이 미친듯이 날뛰게 된다. 화살에 맞아도, 칼에 찔려도 고통스러워 하거나 두려워하는 기색 없이 맹렬히 적을 향해 돌진하는 그들을 보고 충분히 두려워 했을 만 할 것이다.


양귀비 열매에서 나오는 유액. 저 유액 안에 아편이 있다.

필리핀의 모로 반란을 계기로 개발된 .45 ACP탄. 대구경 저속탄의 컨셉으로 관통력이 낮은 대신 높은 대인 저지력을 보여준다.


근대와 현대에도 이런식의 마약류 이용은 계속 되었고 특히 아편이 많이 쓰였다. 두려운 감정을 없애고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성질이 있기 때문이다. 필리핀이 미군에 대항한 모로 반란 (1899~1913) 에선 반란세력이 아편에 취한 채로 M1892 리볼버 권총을 쏘는 미군 병사들에게 달려들어 공격하는 일도 있었고 이로 인해 미군은 당시 쓰이던 제식 권총탄이던 .38 LC 탄을 대인 저지력이 부족하다 판단하여 도태 시키고 총기의 대부 존 브라우닝이 1904년 설계한 자동권총탄인 11.43×23mm 규격의 .45 ACP를 9×19mm Parabellum이 NATO 표준 규격탄이 된 현재까지도 제식 자동권총탄으로 애용하고 있다.


7.62×51mm NATO (좌)와 5.56×45mm NATO (우). 무겁고 자동 사격이 불편하며 명중시키기 힘들단 이유로 7.62mm를 사용하는 소총은 도태 되었으나 최근 중동에서의 전훈을 바탕으로 다시 부활했다.

독일 H&K (헤클러 운트 코흐)에서 개인방어화기 (PDW) MP7 용으로 개발한 4.6×30mm (좌), 벨기에 FN 에르스탈에서 P90 용으로 개발한 5.7×28mm PDW탄 (우) 


현대 중동의 전장도 마찬가지다. 서방권 특수부대원들이 중동 분쟁지역에서 탈레반 같은 무장 세력이 아편에 취해 (까트에 취해서 저런다고 알려져 있기도 하나 사실 까트는 그정도로 강력하지는 않다고 한다.) M-4 같은 AR-15 계열의 5.56mm 돌격 소총이나 4.6mm PDW인 MP7 으로 여러 발을 들이 부어 명중 시켜도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 달려들어 공격하는 위험천만한 상황이 벌어지는 일이 비일비재 했다. 결국 이로 인해 미군은 베트남전 이후 명중률도 낮고, 무겁기만 한 실패작으로 낙인 찍혀 창고에 들어가 있던 M-14 전투소총을 개조해 Mk. 14 EBR 같은 반자동 지정사수 소총으로 개량하고 FN 에르스탈과 헤클러 운트 코흐사도 다시 7.62 나토탄을 사용하는 특수전 용 전투소총을 개발해 여러 나라의 특수부대들이 채택중이다. 탄자가 더 크고 탄피가 길어 더 강력한 운동 에너지를 낼 수 있는 덕에 어느 거리에서건 약에 취한 무장 테러단을 저지할 수 있는 대구경 고위력 탄이 다시금 빛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얼핏 보기엔 관련 없어 보이는 전쟁과 마약은 이렇게 역사는 물론 무기 개발과 발전에도 알게 모르게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전설을 만들고, 제식 탄종을 바꾸고, 실패작에게 다시 기회를 주고... 하지만 사람을 죽이는 전쟁과 무기가 겉 보기에 상관 없어 보이는 마약으로도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 어떨 땐 정말 씁쓸 하다. 어차피 다 사람이 죽고 고통 받긴 마찬가진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