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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을 들은 마을의 존경받는 사제이자 소꿉친구가

신비로운 색의 눈동자를 크게 드러냈다.



"..안타까운 일이군요...어머님이.."



그녀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 내 손을 살짝 포개며 위로의 말을 건네었다.



"..염치없지만.."



"네 괜찮아요 기도할게요 오늘부터 어머님이 쾌차하시도록..매일"



그녀는 10년 만에 찾아와 뻔뻔한 부탁을 하려는 나의 의중을 미리 읽고

나의 미안함을 덜어 주려는 듯 나의 말을 채갔다.



"그러니..오늘부터 매일 같이 기도해요..어머님이 괜찮으시도록.."



맞잡은 손에서 느껴지는 그리운 온기에 기대며 나 역시 간절히 기도했지만



어머니는 한 달 뒤 돌아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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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감이예요..진심으로"



어머니를 땅에 묻은 뒤 그녀가 내게 다가왔다.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어쩔 수 없는 일도 있는 거니..."



흙이 묻은 삽을 툭툭 털어내고 수레의 짐칸에 대충 던져넣고 말하자 그녀의 입에서

작은 탄식이 세어 나왔다.



"벌써 가시나요? 잠깐 이야기를.."



"집에 가족이 기다리고 있어서요..아내가 감기에 걸려서"



"..가족....결혼...하셨군요.."



그녀의 낯빛이 살짝 어두워지며 목소리가 떨렸다.



"..혹시 그동안 저를 만나지 않으신 건...가족분들과 관련 있을까요?"



"..네?"



"아..죄송해요 이상한 질문을 했네요..."



그녀는 미안하다는 듯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저..오랜만에 당신과 시간을 보내다보니..저도 옛날로 돌아 간 것 같아 좋아서 그럤어요"



"...."



그 말에 가슴이 쿡 찌르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가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가 버렸단 생각에 겁쟁이처럼 도망치고

가족을 꾸리며 내 인생에서 천천히 그녀의 존재를 지워간건 사실이었기에



"그러니 괜찮으시다면 앞으로도.."



"감사했습니다."



조심스럽게 꺼내는 말을 끊어 버리며 등을 돌렸고

그녀를 다시 찾아간 건 2년이 지난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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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은 들었습니다..아내분이 습격을 당하셨다고.."



"...."



행운은 자격이 있는 자에게 찾아가지만 불행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찾아온다.


나무를 베러 간 사이 집에 십자가 모양의 자상을 내는 광신도스러운 강도가 드는 것도 그런 흔한 불행 중 하나였다.



"전..."



"괜찮아요..아무 말씀 안 하셔도"



몇 년 전과 같이 그녀는 내 손을 살포시 감싸며 이마를 살짝 맞대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뭐든 해드릴게요..뭐든.."



속삭이는 상냥한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고


매일 같이 그녀가 있는 곳을 찾아가 기도했지만



아내는 일주일 뒤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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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자주 오시네요"



"하하.."



그 뒤로부터 매주 그녀를 찾아갔다.


의미 없는 멍청한 짓일수도 있지만 어쨋든 사람이란건 감당할 수 없는 불행엔 기댈 곳이 필요했다.



"요즘은 특별한 일 없으신가요?"



"일단은..별일 없이 그럭저럭 살고 있어요"



"다행이네요"



그녀는 내 앞에 옅은 김이 나는 작은 찻잔을 툭 내려놓았다.



"저도..당신이 이렇게 매주 찾아와주니 전보다 마음이 편하답니다."



"...."



"오래 알고 지낸 사람만큼 좋은 사람은 없으니까요"



그녀는 살짝 미소 지으며 우아한 손길로 살짝 찻잔을 잡아들었다.



"...그래서 말하는 겁니다만...혹시 이곳으로 들어오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그리고 그 찻잔을 입에 가져다 대기 전, 그녀가 나의 눈을 살짝 흘겨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곳으로요?"



"네, 이곳은 넒지만..저 혼자 뿐이니까요...뭐든지 과하답니다? 도와줄 사람이 한 명 있었으면 좋겠다고..매일 생각하거든요"



"....."



갑작스러운 제안에 잠시 사고가 멈췄다.



"그리고..이런 부탁을 드릴 사람은..저에게 아마 당신 뿐일거예요"



"..마음은 감사합니다."



조심스럽게 나의 눈치를 보는 그녀에게 찻잔을 툭 내려놓으며 사과를 전했다.



"딸은...그 집에서 키우고 싶어서요"



".........그렇군요"



"...?"



나의 눈치를 보던 그녀의 눈이 차가워졌지만



"이해해요 추억이 머문 집이니깐요"



언제 그랬냐는 듯 따뜻한 눈길로 싱긋 미소 지으며 부드러운 손길로 찻잔을 입에다 가져다 대었고


그 모습이 아름다워 그녀를 멀리했던 과거의 내가 떠올라 자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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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엔 꽤나 잘해 주셨어요"



"이단을 처단하는게 제 역할니깐요"



새하얀 옷을 입은 사제와 대비되는 새까만 옷에 위압적인 체격을 가지고 있는 사내가 중후한목소리로 대답했다.



"하지만...한 가지 놓친 게 있더군요"



하지만 그 체격이 무색하게 사내는 가녀린 사제의 한마디에 몸을 움찔 떨곤 무릎을 꿇었다.



"잘못한 게 있다면 즉시 바로잡겠습니다!"



"괜찮아요 별건 아니니까"



-쿵



두꺼운 성경을 닫자 나무로 된 책상에 소리가 울렸다.



"...전에 그 나무꾼의 집...딸이 있다고 하더군요"



"...!"



"아마 전의 그 여자가 숨긴 듯 한데...이번엔"



그녀가 뒤를 돌아보자 이미 사내는 자신의 할 일을 하기 위해 사라진 후였고

그녀는 그 빈 공간이 만족스러운 듯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이번에야말로....당신을.."



매끄럽고 새하얀 손이 한 명의 여성과 소년 그리고 소녀가 그려져 있는 작은 종이를 살며시 쓰다듬었다.



"다시 너와 만나게 해준건...어머님이 주신 마지막 선물이겠지?"



언제나 자애롭고 따뜻했던 그녀의 미소에 광기가 녹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