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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내가 모델이 되어 입고 있긴 하지만... 언젠가 나도 이 드레스를 입어볼 날이 올까?"]



나른한 폰타인의 오후.


태양이 대리석 질감의 성벽을 새하얀 눈보다 더 빛나게 비추던 무렵,

나는 한가해진 시간을 녹이려 폰타인 성 내부를 돌며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우와, 역시-"


주변을 돌아다니던 순간, 어딘가에서 감탄사가 계속 흘러나온다.

찬송가를 부르는 예배인들처럼, 갈채와 환호성이 치오리 부티크의 앞에서 끊이질 않고 있었다.


'왜 저 사람들이 치오리 부티크에 저렇게 몰려있는거지?'


나는 순간적인 흥미에 이끌렸다.

흥미로움은 곧 호기심으로 변했고, 나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발걸음을 옮겨 치오리 부티크 앞에 몰린 인파 속으로 천천히 녹아들었다.


'이렇게까지 손님이 몰린적은 드문데...'


나는 몰려있는 인파를 겨우 뚫으며 가게 앞 유리창에 찰싹 붙어 내부를 들여다 보다, 믿을수 없는 풍경이 두 눈동자에 맺힘을 느낀다.


새하얀, 순수함이라는 단어만으로는 모자랄 정도로 빛나는 백색의 드레스.

푸른빛과 하얀빛의 색감이 조화로운 부케.


그리고... 푸른빛의 은발을 흩날리며 우아하게 서 있는 그녀.


그녀를 두 눈동자에 담은 순간, 정신이 아득할정도로 새하얀 빛만이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바다보다 깊은 푸른빛의 두 눈동자.

별빛보다 짙은 하얀색의 피부.


눈 앞에서 펼쳐지는 이 '비현실적인'광경은, 나의 혼을 쏙 빼놓기에 충분했다.


그때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처음엔 그녀도 반가운 기색을 보이다, 부담스러운 나의 시선을 바라보며 부끄러워하기 시작했다.


"...뭐해? 그렇게 넋 놓고 바라보지 말고, 들어올거면 들어와."


날카로운 말투의 대답이 나의 머릿속을 가볍게 툭툭 친다.

약간의 충격에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단도를 들고 서있는 치오리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긴 말 안해. 들어올거야, 말거야?"


그녀의 대답에 기세가 조금 눌려버린 난 얼떨결에 가게의 안쪽으로 끌리듯 들어오게 되었다.


.

.

.


"...그래서, 왜 푸리나가 드레스를 입고있는건데?"


단순한 호기심은 점점 더 커져간다. 어쩌면 상상조차 하기 싫은 일들까지 점점 머릿속을 간드러지게 만든다.


설마 아니겠지. 설마 그녀가-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마. 그저 모델이 필요해서 부른거니까."


불행중 다행인건 치오리가 빠르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그녀를 천천히 위 아래로 훑기 시작했다.


다시한번 그녀의 모습을 바라봐도 아름답다는 한마디로는 그녀를 전부 표현 할 수 없었다.


그녀의 모습은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도 그녀의 앞에선 한풀 꺾였다.


"...내가 이런걸 입게 될 줄은 몰랐는데, 어때, 어울려?"


그녀의 대답조차 들리지 않는다. 어쩌면 닿지 못했다고 표현하는게 더 정확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만큼, 그녀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있었다.


"...정신 차려."


치오리의 박수소리가 귓속을 찢는듯하게 울려퍼진다. 

나는 겨우 정신을 차렸다. 그제야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겨우 이해했다.


"아..? 아, 미안."


"...부탁으로 입어봤는데.. 어울... 리려나?"


한번의 대답이 닿지 못한 그녀는 어느새 자신감을 조금 잃은듯한 목소리로 나를 올려다 본다.


깊은 바다보다 더 짙고, 푸른 하늘보다 더 눈부신 그녀의 눈빛이 나를 주시한다.

그녀의 모습에 하마터면 한번 더 정신을 잃을 뻔했다.


조용히 심호흡을 하며 정신을 가다듬는다.


조금이라도 정신을 놓았다간, 또다시 마음을 뺏기고 말겠지.


나는 그녀의 눈빛을 필사적으로 피하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쳐다볼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이런 드레스를 입는 사람은 행복할것같아."


예상과는 다른 답변에 푸리나도, 치오리도 조금 당황한듯한 눈빛을 내게 보인다.


"...정말 특이한 평가네. 동문서답이긴 하지만."


치오리는 나의 평가를 나름대로... 인상깊게 생각하는 듯 했지만, 푸리나는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확실한 평가를 원하는듯, 어느새 나의 팔을 붙잡고 질질 끌며 애처로운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 본다...


"뭐야, 어울린다는거야 아니라는거야? 확실하게 말해줘-!"


어딘가 억울해보이는 그녀의 말투.


그녀가 아름답지 않아서, 그녀가 싫어서, 그녀가 어울리지 않아서 이런 대답을 한 것은 아니다.


"어울리지 않는다는게 아니야. 아직 네게 어울릴만한 대답을 찾지 못한 것 뿐이니까."


"...뭐야 그게."


어느새 그녀는 고개를 숙여 바닥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의 생각에 바닥을 바라보면 얼굴이 보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녀의 귓가는 어느새 잘 익은 풍선귤처럼 주홍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연애질은 다른데 가서 하지? 평가때문에 들여보냈는데, 이러면 곤란하거든."


서로 묘한 기류를 풍기던 그때, 치오리가 어물쩍거리는 우리를 향해 한마디를 날린다.


그녀의 대답을 듣게된 나와 푸리나는 순식간에 고개를 들어 그녀에게 소리친다-


""아니거든!""


그녀와 내가 동시에 대답한 덕에 묘한 기류는 더더욱 무거워졌다.

그럴수록 치오리는 "그럴줄 알았어."같은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며 미소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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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시험이야 공부 하나도 안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