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살이었나.
가장 오래된 기억은 그쯤입니다.
아무것도 모른 채로...
내가 왜, 어쩌다 이 시체 구덩이 속에 있는건지...
부모가 날 버린 건지. 내가 부모의 시체 속에 숨어있던 건지. 부모가 나를 죽으면서까지 감싸던 건지. 아니면 난 그전부터 고아였던 건지.
전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어쩌다...
그렇게 숨이 꺼져가던 사이. 저는 한 전령이 구해주었습니다.
지령 때문이랍니다. 그래서인지 모든 게 대충이더군요.
삼시 세끼 챙겨주는 게 라면이었으니...
어릴 때부터 대행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지령 때문이랍니다.
받으라는 시술을 받고. 쓰라는 대검을 쓰고. 죽이라는 사람을 죽이고. 따르라는 명령을 따르고.
하라는 대로 살았습니다. 그러면 살 수는 있을 거 같았습니다. 즐겁지도. 딱히 행복하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살수 있었습니다.
삶이 싫었습니다. 아프고, 힘들었죠.
하지만 가장 힘들었던 건 돌아갈 곳이 싫었던 것입니다.
다쳐도, 슬퍼도, 항상 지령이 정해준 좁은 월세방에서 혼자 숨죽이는 것 말고는 할 수가 없었죠.
지령을 따르는 동안은 그것에만 몰두하면 됐습니다. 그래서 좋았습니다.
외로움도 고통도, 맹목으로 잠시 잊을 수 있었거든요.
갑자기 이런 추억 팔이나 하는 이유는... 도대체 뭘까요.
이제는 오늘의 지령이 끝나면 할 게 없는 허무함과 막막함이 들지 않기 때문일까요?
지령이 끝나면 다시 돌아갈 곳이 좋기 때문일까요.
오히려 이제는 지령이 빨리 끝나길 바라기 태문일까요.
잠을 청하면서도 외로움과 고독감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일까요.
띵동-
"알랭?"
"....."
띵동-
"알랭!"
"....."
그 미친놈이 없네요. 집에.
"아..."
다시, 돌아갈 곳이 없어졌네요.
"........"
*****
"으휴... 망할 야근...."
난 집으로 지친 발걸음을 이끌었다.
눈꽃이 나무에 맺힌 그런 겨울밤. 낭만이고 뭐고 힘들어 죽겠다.
음.. 그 미친년은 나보다 빨리 왔겠지?
에이 뭐, 나 없으면 알아서 원래 집으로 갔겠지.
혹시 늦었다고 뭐라 하려나? 스튜 하나 해주면 풀리려나?
아니.. 아, 왜 그 사람 생각을... 어휴, 어차피 바게트 하나 샀으니까 이거면 되겠지.
춥다, 그냥 빨리 집에 가자.
그리고.
마침내 집에 도착한 나에게 보였던 건.
잠긴 내 집 문 옆에 쪼그리고 앉아. 추위에 떨던 세실리아였다.
볼이 빨갰다. 눈은 떨렸고. 온몸을 작게 웅크리고 있었다.
마치,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부모님을 기다리는 겨울날 아이 같은 모습이었다.
... 그러니까. 어릴 때의 나 같은 모습이었다.
"세실리아..?"
"아..."
"아니 좀.. 늦는 거 같으면 다른 데라도 좀 가있지... 원래 살던 곳도 있잖아요?"
"..."
"얼마나 있었어요? 감기 걸리겠네."
부축을 해보았다. 바게트는 바닥에 대충 던져 놓은 채로.
몸이 얼음장처럼 차갑다.
"괜찮아요? 말 좀 해줄래요?"
"아직 안 죽었어요."
"글쎄, 이런 추운 날 그렇게 하루 종일 기다릴 정도면 뇌는 죽은 거 같은데."
"칫..."
"그래서, 왜 다른 데는 안 간 거래요?"
"... 이제 싫어요."
"뭐가요?"
"돌아가기 싫은 곳으로 가기 싫어요. 이제는."
나 참.. 뭔 소린지...
아무튼, 코코아 한잔해주니까 좋아했다.
그리고...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부축할 때 봤다, 그 추운 바닥에 앉아있었으면서도. 내가 온 걸 본 순간부터 웃고 있었다.
... 아무튼 집 열쇠 복사본을 하나 주었다. 나름 기술이 들어간 집이라 열쇠 없이는 못 들어가니까.
원래 안 주려고 했는데...
아니다, 줘야겠다. 주고 싶다.
***
다음날
"세실리아, 편ㅈ-... 아니, 지령 왔어요."
"네."
"음.."
-세실리아에게, 이제 보호를 그만해도 괜찮다.-
"..."
"뭐애요?"
"아..."
세실리아는 잠시 고민하더니. 뭔지모를 종이를 구기고는 쓰레기통에 넣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나저나 오늘은 카레해 주시면 안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