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1회

2회

산허리의 노르드 유적에서

엄청난 숫자의 트롤들을 마주한 나는 두려움이 앞섰다.

아침에 모탈 인근에서 조우한 트롤은 협공으로 빠르게 처리했었지만 이번엔 숫자가 너무 많다.

하지만

아무리 저들이 뛰어난 용사라고 해도,

저 많은 괴물들을 다 상대할 수 있을까?

하지만 전투가 시작되자 그딴 생각할 겨를 따위는 진즉에 사라져버렸다.

용케 살아 남아 악전고투를 펼치고 있는 노르드인 전사들과

그들을 죽음의 위협에서 건져내기 위해 제 한 몸을 던져 싸우는 동료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가슴 속에서 끓어오르는 무언가를 느꼈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평생을 들여 완성한 파괴마법의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그동안 말로만 자랑했을 뿐, 단 한 번도 그녀들에게 보여주지 못했던 나의 힘을...

나는 그때가 돼서야... 

비로소 발휘했다.

그리고 나의 마법은 놈들에게 아주 즉효약이었다!

놈들은 내 마법에 불타며 극심한 고통에 몸부림쳤고 내 앞에서 싸우던 용사들은 그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았다.

내 머리속에 떠오르는 주문은 그 어떤 글귀보다 선명했으며,

벌써 몇 번의 화염구를 투사했는데도 나의 매지카에는 아직 여유가 넘친다.

그리고 내가 주문을 외우고 화염구를 날릴 때마다

놈들의 숫자가 줄어드는 것이 확연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전투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었다.

셰자드는 그 무시무시한 장대무기로

놈들의 팔다리를 잘라냈고

탈리에는 민첩한 몸놀림으로

놈들의 허를 찌르며 숨통을 끊는다.

앨프윈은 정확한 사격 솜씨로 

놈들의 눈알과 머리통에 볼트를 꽂아댔다.

덩치가 큰 노르드 전사는 묵직해 보이는 장대도끼로

끊임없이 놈들의 사지를 끊고

단발의 전사는 짐승같이 울부짖으며

도끼와 칼로 트롤들을 마구 난자했다.

검은 머리 노르드 전사는 방패와 창을 이용해

놈들의 공격을 민첩하게 흘려내면서 심장부를 찔러댔다.

나도 매지카를 회복하는 동안에는 검으로 놈들을 찔렀다.

그리고 그때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나와 함께 하고 있는 이 사람들이

다들 평범한 자들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내가 스무 번 째의 주문을 외우려고 했던 그 때에는 이미 주변의 모든 트롤들이 쓰러져 있었다.

누구도 빠져나올 수 없었던 것만 같았던 죽음의 문턱에서 빠져나온 것이다.

위험천만했던 전투가 끝난 후, 모든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세 명의 노르드인 전사들은 모두 여자들이었다. 모두들 격렬한 전투 직후였기에, 다들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 중에서 장대도끼를 휘두르던 장신의 전사가 셰자드의 앞에 선다.

그리고 세상에, 노르드인들이 다들 크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이 여자는 셰자드만큼이나 크다!

장신의 노르드인: 후우... 탈로스시여... 정말 위험했군. 도워줘서 고마워. 이름을 알 수 있을까?

셰자드: 헉... 헉... 난... 셰자드야. 우린 모험가고, 이쪽은 내 선원들이지.

장신의 노르드인: 셰자드... 해머펠에서 왔나 보군. 난 라그닐드(Ragnhild)야. 여기는 내 친구들이지. 헤르타(Hertha)!

온 몸에 문신이 새겨져 있는 여전사 라그닐드는 방금 전까지 짐승같이 울부짖으며 싸우던 단발머리의 여전사를 불렀다.

그 여자 역시 온 몸에 문신이 새겨져 있으며, 아직도 늑대마냥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그러다 나를 보더니, 갑자기 날 죽일 기세로 노려보기 시작했다.

헤르타: 크르르르....

라그닐드: 야 인마! 싸움 끝났어! 여기 이 사람들이 우릴 도와줬다구!

라그닐드가 그녀의 따귀를 한 대 때리고서는 그녀의 몸을 붙잡고 흔들자, 잠시 숨을 고르더니 드디어 표정이 바뀌고 '사람의 말'을 하기 시작했다. 

헤르타: 하아...하아...하아...헤르타...야... 하아...하아...

아직도 숨이 찬 헤르타가 말을 잇지 못하자, 검은 머리의 여전사가 앞으로 나왔다.

검은 머리 여전사: 하아...하아... 나는 프레위디스(Freydis)야. 프레야(Freya)라고 불러도 돼. 도와줘서 정말 고마워.

그 여자도 몸에 문신이 보이기는 하지만... 앞선 두 사람보다는 훨씬 적었다.

그리고 다들... 몸매들이 엄청났다.

노르드인들 특유의 새하얀 살갗은 조금 어둑어둑해진 지금도 밝게 빛났고 그녀들의 복장 때문에 그 몸매가 더 도드라져 보였다.

특히 저 헤르타라는 여자는 자기 머리통 보다 큰 젖가슴이 먼저 눈에 들어 온다.

그 다음으로는 내가 그녀들에게 이름을 밝혔다.

레피카: 나는 마법사 레피카야.

프레위디스: 아, 아까 그 기묘한 화염구를 날려대던 마법사가 너였구나! 처음엔 우릴 죽이려는건가 싶었는데 조금도 뜨겁지가 않아서 놀랐어.

라그닐드: 역시 마법에 통달한 엘프라서 그런건가? 정말 대단하군.

헤르타는 엘프라는 그 한 마디에 나를 다시 노려보기 시작한다.

헤르타: 엘프....

그리고 나는 일부러 그녀를 바라보며 소개를 이어간다.

레피카: 그리고 한 가지 말해두겠는데, 난 탈모어가 아니야. 내가 탈모어였으면, 지금 여기 있는 이 '선장'이 날 배에 태워주지도 않았을테니까.

그러자 헤르타의 표정이 바뀐다.

헤르타: 탈모어가... 아니야?

레피카: 탈모어... 그 새끼들은 나와 내 가문의 '원수'거든. 그 개같은 새끼들만 생각하면 사지를 다 찢어버려도 시원찮을 정도라고.

헤르타: 탈모어... 원수...

헤르타가 뭔가를 생각하는 사이, 옆에 있던 라그닐드가 끼어들었다.

라그닐드: 아하! 그럼 너는 우리의 '친구'로군, 엘프 아가씨. 레피카...였지? 잘 부탁해.

그녀는 내게 손을 내밀었다. 엘프라면 치를 떨 노르드 사람이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내 말을 믿어주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그녀의 손을 흔쾌히 잡아주었다.

프레위디스: 뭐야? 탈모어 놈들, 같은 엘프들한테도 그러는 놈들이었던 거야? 진짜 악질적이네...

레피카: 그 새끼들은 자기들 사상에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모조리 '이단자'로 몰아서 죽여. 엘프냐 아니냐는 그 다음 문제야.

헤르타: 라그닐드가 말한 게... 사실이었구나... 탈모어를... 싫어하는 엘프들도 있다고...

레피카: 싫은 걸 넘어서, 다 죽여버리고 싶어. 내가 죽기 전에 그 새끼들이 파멸하는 꼴을 꼭 내 눈으로 보고 말거야... 

그렇게 우리와 노르드 전사들은 통성명을 마치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러던 중, 라그닐드가 셰자드에게 말한다.

라그닐드: 그런데 '모험가'라고 했지? 길드에 등록은 하고서 활동하는 거야?

엥? 이게 무슨 소리야? 여기도 길드가 있다는 얘긴가?

셰자드: 길드? 그건 시로딜에나 있던 거 아니었나? 

라그닐드: 스카이림의 몇몇 족장(Jarl)들이 나서서 조합 신설을 추진했었던 모양이야. 벌써 세워진 지가 꽤 됐어. 그것도 너희가 지금 가려고 하는 화이트런 홀드에 있지.

셰자드: 그것 참 다행이군. 혹시 그쪽으로 가는 길을 좀 알 수 있을까? 사례는 하지.

그러자 라그닐드는 셰자드에게 손사래를 치며 말한다.

라그닐드: 사례는 우리가 해야지. 너희들이 우리를 도와줬으니, 우리가 안내해줄게. 마침 해도 넘어갔으니 우리도 겸사겸사 거기서 좀 쉬었다 가려고.

그렇게 우리는 라그닐드 일행을 따라, 모험가 길드로 향한다.

그리고 함께 걷는 내내, 우리는 그녀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적어도 나와 셰자드, 그리고 노르드인 여전사들은 서로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탈모어가 원수라는 것이고, 놈들과─그것이 좋든 싫든 간에─어울리고 있는 무능한 제국 또한 증오하고 있다는 점이다.

셰자드는 '백금조약'으로 인해 그녀의 고향인 해머펠 남부가 탈모어에게 넘어가버리는 바람에 30년 가까운 인생 내내 그들과 투쟁을 벌여야 했다. 그 때문에 탈모어는 물론, 자기 고향을 멋대로 탈모어에게 넘겨버린 시로딜의 제국 역시 뼛속 깊이 증오하고 있다.

동향에서 같이 자란 라그닐드와 헤르타는 탈로스 신앙을 문제 삼아 자신들의 고향 사람들을 학살하고 마을을 불태워버린 탈모어를 증오하는 한 편으로

탈모어와의 전쟁에서 무능하게 밀리며 굴욕적인 조약으로 자신들의 신앙마저 강탈해 간 제국을 증오하고 있다.

프레위디스는 탈로스 신앙을 지키려다가

탈모어 놈들에게 잡혀서...

성노예 신세가 되었던 것을 라그닐드와 헤르타가 구해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탈모어에게 모든 것을 잃은, 나 역시 그녀들의 대화에 자연스럽게 섞여들 수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그녀들과 대화를 이어가며

화이트런 홀드의 드넓은 평지를

걷고, 또 걸었다.

그렇게 걷던 우리는 어느덧 모험가 길드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 때, 라그닐드가 셰자드에게 말을 건넨다.

라그닐드: 오늘은 이미 날이 저물었으니, 여기서 머물다 가. 시설도 좋고, 대욕탕에서 목욕도 할 수 있다구.

뭣?! 목욕이라고!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그거야! 여기선 일부러라도 응해줘야 인지상정이지!

레피카: 뭐? 목욕을 할 수 있어? 정말이야?

프레위디스: 물도 깨끗하고 온도도 따뜻해서 추위에 지친 몸을 회복시키는 데 최고야. 스카이림의 온천수는 탐리엘 최고라구.

셰자드: ...근데 여기 시설물을 이용하려면 돈을 내야 하잖아? 건물도 번듯하니, 비용이 제법 나갈 것 같은데...

셰자드의 의문에 라그닐드가 이 때다 싶은 투로 말한다.

라그닐드: 아니, 꼭 그렇지만도 않아. 그리고 여기는 우리가 낼테니까, 마음 편히 쉬어. 약소하기는 하지만, 내 성의 표시야.

셰자드는 잠시 고민하는 듯 하는듯 싶더니...

셰자드: 좋아. 감사히 받아들이지. 

다행히도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라그닐드: 여기는 한 번 비용을 지불하면 3일 동안 이용할 수 있어. 그러니까 여유롭게 쉬다 가라구.

우리는 함께 길드 내로 들어가

등록 절차를 마치고 다같이 목욕을 하러 들어갔다.

그날 저녁, 모험가 길드 대욕탕

하... 정말 끝내준다.

프레위디스가 말한 대로, 스카이림의 물은 정말 뭔가 다르다는 느낌이 든다.

앨프윈은 자기 고향인 하이 락의 물보다 훨씬 개운한 느낌이라며 좋아했고

탈리에도 다른 지역의 물보다 훨신 깨끗하고 개운하다고 말해주었다.

그런데 두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셰자드, 그리고 라그닐드다.

셰자드는 '신체의 문제'가 있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라그닐드는 어째서...?

같은 시각, 모험가 길드 로비

셰자드: 어라? 왜 애들이랑 목욕 안하고 혼자 있어?

라그닐드: 그러는 너는? 왜 혼자 있는 거지?

셰자드: 나는 사람 좀 빠지고 난 다음에 들어가려고. 목욕할 땐 좀 조용히 있고 싶거든.

라그닐드: 그렇구만. 자, 그럼 저쪽으로 가서 벌꿀술 한 잔... 아니, 해머펠에서 온 사람한테 술을 권하다니, 이거 실례 했군.

셰자드: 이거 왜 이래? 나 이래봬도 뱃사람이야. 술은 내 친구라구. 하하하...

잠시 후...

라그닐드: 그러고 보니, 선장이라고 했지? 배는 지금 어디다 두고 온 거야?

셰자드: 어찌저찌 하다보니 솔리튜드에 접안해 있어. 

라그닐드: 어이쿠야, 멀리서도 왔군.

셰자드: 그 말대로야. 나도 맘 같아선 내륙으로 더 들어오고 싶었는데, 내 배는 원래 원양항해용이라서 말이지. 덩치도 크고 흘수선도 깊어서 너희 노르드식 배들처럼 내륙까지는 들어올 수가 없겠더라고.

라그닐드: 내륙으로 배를 들이고 싶다면 윈드헬름으로 오면 될텐데? 강폭도 크고 선착장도 커서 괜찮을거야.

라그닐드: 그곳에는 동제국회사의 상선들도 빈번하게 드나들었었거든. 전쟁이 벌어지기 전까진.

셰자드: 그래? 그렇지만 걱정이네...

라그닐드: 왜, 무슨 문제라도 있나?

셰자드: 레피카 녀석이 걱정돼서 말야. 엘프라면 치를 떨 인간들로 그득할테니...

라그닐드: 아니, 모두가 그러지는 않아. 윈드헬름 시내에는 꽤 오랫동안 장사를 하고 있는 하이엘프도 있다고.

셰자드: 뭐야? 의외인데?

라그닐드: 그러니 배로 돌아가게 되면, 꼭 윈드헬름으로 와줘. 윈드헬름의 선착장 바로 건너편이 우리 집이야. 우리와 함께 있으면 그 엘프 친구는 안전할거야. 약속하지.

셰자드: 그래, 알았어. 꼭 갈게.

라그닐드: 고마워, 친구.

1시간 후...

뭐야? 저 두 사람, 자기들끼리 뭔 얘기를 저렇게 하는 거야?

거기다 둘이서 술이라도 거하게 마셨는지, 분위기도 굉장히 화기애애해 보인다.

레피카: 셰자드. 사람 다 빠졌어. 얼른 들어가.

셰자드: 그래, 알았어. 그럼...

두 사람의 분위기가 뭔가 이상하다. 하지만 나는 너무 피곤했기에, 서둘러 숙소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다음 날,

나는 준비를 마치고 로비로 나갔다. 셰자드와 다른 선원들, 노르드 여전사들은 해가 중천을 넘어가고 나서야 일어난 모양이다.

그런데...

셰자드와 라그닐드, 두 사람의 상태가 이상하다. 

전날까지만 해도 오랜 친구처럼 함께 술을 들이키며 껄껄거리던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알 수 없는 미소를 주고받고 있었다.

그리고 라그닐드의 친구들이 그녀에게 보이는 태도 또한 달라져 있었다.

특히 헤르타 녀석은 어제까지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다정하고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셰자드에게 말하고 있다.

헤르타: 셰자드... 다음에 우리 집에 꼭 와줘야해? 기다리고 있을게. 헤헷...

셰자드: 알았어. 이번 건만 정리되고 나면, 꼭 갈게. 우리 예쁜이...

셰자드는 헤르타의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그러더니 헤르타 저 녀석이... 실실 웃더니 셰자드의 뺨에 입을 맞췄다!

프레위디스: 고마워, 셰자드. 어젯밤도 그렇고... 헤르타를 예뻐해줘서 고마워. 이건 우리 모두가 주는 선물이야. 받아줘.

셰자드: 으응? 아, 이건...

프레위디스: 우리 노르드의 전통 장신구야. 본래 이건 가족에게만 주는 거지만, 셰자드는 충분히 받을 자격이 있어.

셰자드: 고마워, 프레야. 소중히 간직할게.

레피카: 뭐...뭐야, 너희들?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 때, 셰자드는 내게 말한다.

셰자드: 아, 네가 어젯밤에 코 드르렁드르렁 골면서 자는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지. 하하핫...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