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롱한 상태에서 어딘가에서 짐승의 울음 소리가 들려온다.

가깝다. 무언가가 있다.

눈을 떠서 앞을 바라보자...

거대한 짐승이 자신을 쳐다보며 사납게 으르렁 거리고 있었다.

정말 당장이라도 달려들것 처럼.


불행히도 그 예상은 곧 바로 적중했고... 

눈 앞의 괴물은 순식간에 달려들어 아가리로 내 목을 잡아 비틀어 뭉개 버렸다.


거대한 몸통으로 나를 들이박을때의 몸안에서 무언가 부러지고 터지는 감각

이빨이 파고드는 곳마다 느껴지는 뜨거운 격통

목뼈가 부러지자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가고 감각이 사라지는 느낌

살점과 뼈가 괴물의 입안에서 뭉개지는 소리와 떨어지는 핏발울의 소리

그 모든것들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끔찍한 고통속에서 흐려져 가는 의식 안에서

내가 놓고 온 것들이 자꾸만 떠올랐다

자기전에 하던 스마트폰과 침대에 눕기전 까지 하던 컴퓨터 

저녁으로 먹고 냉장고에 다시 넣어놨던 김치찜과 장조림

보다가 만 전공 과목의 중간고사 족보들

이제 그 모든 것들이 내게 무의미한 것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사실이 잔혹하게 다가왔다.


'어머니... 아버지...'

마지막으로 가족의 얼굴이 떠올랐다.

내가 사랑하는 이들의 표정을 상상하자, 슬픔과 괴로움이 나를 휩쓸었다.

'죄송ㅎ...

누구에게 들리지도, 입밖으로 내뱉지도, 끝맺지도 못한 사죄를 뒤로하고

나의 의식은 완전히 사라졌다.................













익숙한 목소리와 함께 의식이 다시 되살아난다.

어느새 끔찍한 고통은 말끔히 사라지고 몸의 감각도 다시 선명히 느껴진다.

"방금 그건 뭐였던 거지?"


조금 전까지 선명하게 느껴지던 고통은 결코 꿈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 이게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고?"


옛날 괴담에서나 들을 법한 이야기다... 

하지만 그게 사실이라는 것이 방금의 경험으로 자연스럽게 믿어진다.

나는 그딴 이야기의 주인공 따위 되고 싶지 않다.

떨리는 목소리를 쥐어짜내 그녀에게 집으로 돌려보내 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진심어린 간원에 대한 대답은 내 외침보다도 큰 비웃음이었다.


그럴수는 없다... 나한테는 돌아가야 할 곳이 있다.


무슨소리일까? 애시당초 여기는 내꿈도 아닌 모양이다...

도대체 어쩌다가 내가 타인의 꿈에 갇히게 된걸까?


받아들일수 밖에 없는 제안이다...

이대로 아무것도 없이 갔다가는 방금처럼 몸이 찢겨져 나가는 일이 또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애시당초 선택권이 없는것 같은데..."


주변을 둘러보았다. 집은 2층으로 되어있고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도 보인다. 바닥에는 용단이 깔려있고 안은 생각보다 깨끗하다.

...자그마한 선물이라기에는 꽤나 파격적이다.

눈앞의 이 소녀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일까?


...? 그녀가 나를 유심히 살펴본다. 


일단 신검 1급이었는데...


그녀가 손을 다시 한번 까닥거리자 온몸에 벌레가 기어다니는 듯한 소름끼치는 감각이 덮쳐왔다.

시간이 지나자 그 기분나쁜 감각은 옅여졌지만...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일부는 가슴속으로 파고들어가 계속해서 불쾌한 기분을 주며 저주처럼 남아있었다.


무엇을 한거냐고 채 묻기도 전에 메이벨은 자기 할 말만 남긴 채 떠나 버렸다.

홀로 남은 나는 망연자실한채 자신의 상황을 되새겨 보았다.

도대체 나한테 무슨일 일어난걸까... 

갑작스러운 상황변화로 끊임없이 생겨나는 근심과 의문에 머리가 깨질듯이 아프다.

그냥 이 바닥에 누워서 아무것도 하고싶지 않다. 잠이라도 자면 나아지지 않을까.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이렇게 가만히 앉아 있어서는 안된다 

깊은 한숨을 내쉬고 일단 내게 주어졌다는 이곳을 둘러보기로 결정했다.


주변을 둘러보다 옆에 서있던 사람에게 우선 말이라도 걸어보려고 다가갔다.

...가까이서 보자 내가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그녀의 인공적인 피부와 관절의 틈새가 선명히 보였다.

내가 다가가자 그 인형은 내쪽으로 눈동자를 굴리며 스스로 움직이더니 소리내어 자신을 우므르라고 소개했다.


...사이비인가?


무슨 마법 같은것도 이세상에는 존재하는것같다.

없던 몸뚱아리가 생기고 죽었다가 살아난 상황에서 그렇게 믿기 어려운 말은 아니다.


그런 뉘앙스의 말은 들은건 오늘만 벌써 3번째다.

내가 살던 곳의 사람들은 얼마나 예의가 바른 사람들이 었는지 강하게 체감이 된다.

...인터넷 속에서는 제외하고


서약이 정확히 어떤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힘을 빌려준다면 거절할 이유가 없다.

흔쾌히 승낙했다.


공짜가 아니었다.

그리고 애시당초 소울이 뭐지?

의아한 표정을 짓고있는 내게 우므르는 이정도 싼 편이라고 말했다...

밑에 있는 인형들에게 말을 걸어볼까


우선 무기와 갑옷앞에 서있는 인형에게 말을 걸었다.

자신을 안드레아 라고 소개한 인형은 내 성장을 돕겠다고 말했다.

단련이라도 시켜주는건가?


안드레아는 선물이라며 코트 한벌과 나무방패와 부러진 검을 가방에 담아 내게 주었다.

...그녀가 검과 방패를 내게준 이유가 무엇일까. 방금 보았던 괴물이 떠올랐다.

무거운 감정을 느끼며 감사를 표하며 가방을 주워 들었다.

부러진 검은 칼날의 절반이 없음에도 생각보다 묵직했다. 방패는 그보다 훨씬 더 무거웠다.


메이벨... 그녀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일까?


자신을 창고지기라고 소개하는 플로라.

아쉽게도 무일푼인 나는 당분간은 그녀에게 신세를 질일이 없을것 같다.


다음은 꺼져버린 모닥불 옆에있던 인형에게 말을 걸었다.

화톳불을 지킨다라... 근데 지금 꺼져 있는데.


화톳불은 상처를 치유하고 시간이동도 공간이동도 가능하게 해준다고 한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걸까?


납득은 간다 그런 특별한 화톳불을 피우기 위해서는 특별한 연료가 필요한건 당연하겠지...


가죽 주머니 같은걸 받아서 안을 들여다 보니 희고 고운 분말이 담겨있었다. 5회분의 분량이라고 샬롯이 설명해주었다


1회분에 얼마냐고 묻자 10000소울이라고 말해주었다.

이 가루 한좀에 우므르 서약 한번인가.

이거 5분의1 정도 줄테니까 서약하자고 하면 실례겠지...


우선 시험삼아 눈앞의 화톳불을 밝혀보기로 했다.

그전에 일단 샬롯에게 여기 건물인데 불을 피워도 괜찮은거냐고 물어보았다.

...샬롯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상식적인 질문이라고 생각하는데.


화톳불 중앙에 가루를 뿌리자 저절로 불꽃이 뛰며 불이 일어났다.

불꽃이 커져가며 순식간에 모닥불 정도의 크기로 커졌다.

가까이 다가가서 화톳불의 쬐어보자 정말 몸이 치유되는 것 같았다.

이동은 어떻게 하는거냐고 샬롯에게 묻자 이동은 내가 불을 붙인 화톳불 간에서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영혼을 기록하는것은 1000 소울을 따로 지불해야 된다고 말했다.

영혼을 기록한다는것이 무슨 말이냐고 묻자 때가되면 알것이라고만 대답하였다.


시녀까지 붙여줄거라고는 생각 못했는데...

시녀란것은 어떻게 대하면 되는걸까. 21세기 사람이 그런걸 알턱은 없었기에 어쩡정하게 인사만 했다.


다시 메이벨의 이름이 나온다. 우므르가 말한 궁긍의 허무또한 그녀를 지칭하는 말일까?

그건 그렇고 나는 지금 무일푼인데.


당연히 그렇겠지. 그리고 소울은 역시 이곳의 화폐 인가보다.


동전 같은걸 생각하고 있었으나 세리아에게 받은것은 무정형의 연기 같은것이었다.

받겠다고 생각하고 손을뻗자 소울이란것은 내게 흡수되어 사라졌다.

소울은 자연스럽게 받았던 것처럼 무의식중에 다시 꺼내는 방법을 알것같았다.

이걸 화폐로 사용하는건가.


내 감사인사에 세리아는 그저 미래를 위한 투자일 뿐이라고 대답했다.

자주 이용해주도록 하자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일단 받은 1000소울은 화툿불에 사용했다.


마지막으로 지하실로 내려가보기로 했다.

지하실 입구에 다가서자 안쪽에서 무언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지하실 안으로 들어서자 소리는 시끄러울 정도로 커졌다.

지하실 안쪽에서 무언가가 날뛰고 울부짖고 있었다.

걸음을 느리게하고 조심히 내려가 보기로했다.


안쪽 통로에는 흰 연기 같은것이 끼여있었다.

그 연기 너머로 거대한 그림자가 날뛰며 울부짖고 있는것이 보였다.

...아까 전의 죽음의 기억이 생생히 떠올랐다.

저것에게 들키기 전에 조심히 지하실을 빠져나왔다.

왜 지하실에 저런게 있는걸까...


불안해져서 일단 이곳을 나왔다.

...알수 없는것이 너무나도 많다.

내가 이곳에 어째서 오게 되었는지. 이곳에서 나가는 방법은 무엇인지.

나를 한번 죽였던 괴물도 지하실의 괴물도 메이벨도 방금 만난 움직이는 인형들도 그리고 이 꿈의 주인도 모두 정체를 알수없다.

소울이라는것도 화툿불이라는것도 그리고 이 괴물이 돌아다니고 인형이 움직이는 이상한 세계도 낯설기 그지없다.

문을 나서자 앞에는 길이 펄처져 있다.

이길은 어디로 이어질까?


그 어떤 단서도 주어지지 않고 의문으로 가득차 한치 앞도 알수 없는 미래에 관자놀이가 아파온다.

반복되는 단조로운 일상이 벌써부터 그리워진다.

...그 일상으로 돌아가는 방법을 찾기위해 다시 한번 깊은 한숨을 내쉬고 발을 내딛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