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호라이즌대회] 뽑았습니다, 휴먼.






[호라이즌대회] 뽑았습니다, 휴먼. (3)

― AI가 기린 그림








“오, 뽑았다.”


“뭘 뽑았다는 겁니까?”


“AI그림. 요즘 AI그림이 성능이 그렇게 좋대.”


“그림?”




나는 방금 뽑은 AI그림을 호라이즌에게 보여주었다.

물론 다른 지식 없이 맛보기 정도로만 해본 거였기에 잘 나왔다고 볼 순 없었지만⋯⋯.




“⋯⋯.”


“⋯별로야?”




왜인지 호라이즌은 눈도 깜빡이지 않고, 물끄러미 내가 들이민 핸드폰 화면을 조용히 보고 있었다.


음⋯ 호라이즌은 자긴 생각 따윈 하지 않는다고 말했었지만, 이런 모습을 보면 한없이 사람과 다를 바 없단 말이지.


그럼 호라이즌도 멍을 때리는 건가?


내가 장난스럽게 눈앞에 들이밀었던 화면을 흔들자, 호라이즌은 나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호라이즌에게서 나온 대답은 꽤 부정적이었다.




“형편없군요.”


“그래? 내가 잘 못 다루나 봐. AI가 그리는 거 자체는 문제가 없는 것 같은데.”


“부정. AI가 형편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리는 것이 아닌 생성에 가깝군요.”


“뭣.”




하긴, 생각해보면 호라이즌은 자기 외의 다른 AI들에겐 평가가 좀 박했지.

그럼 대화 주제를 살짝 다르게 해볼까⋯




“그러고 보니, 호라이즌도 고성능의 AI잖아. 그럼 호라이즌이 그린 그림도 AI그림이야?”


“진공관 맙소사. 지금 저 허접한 그림 생성기와 저를 비교하는 겁니까?”


“어? 비교하는 건 아니고 그냥 궁금해서.”


“일종의 복제조합을 거친 이미지 생성물과 제가 직접 손으로 그리는 그림이 같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입니다. 굉장히 실망스럽군요, 휴먼.”


“그치만 호라이즌도 AI잖아? 그럼 AI가 그린 AI그림아니야?”




쾅!


호라이즌이 마시던 윤활유 캔을 세게 내려놓고는 나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으, 안돼. 저번에도 이러다 식탁 부쉈던 것 같은데.




“으악! 호라이즌⋯ 살살 내려놔 주면 안 될까?”


“그 저열한 AI는 학습된 양질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재구현하는 것뿐이지, 펜과 상상력을 사용한 게 아닙니다.”


“이미 내 말은 듣질 않고 있어⋯!”


“진정하십시오, 김카붕. 제가 누누이 말하지 않았습니까? 사용 설명서를 읽었으면 이런 불필요한 논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아무래도 휴먼에 대한 평가를 바꿔야겠군요.”


“진정해야 하는 건 호라이즌인 것 같은데⋯ 그리고 그 설명서 너무 두꺼워! 거의 무슨 법전 수준이라고.”


“휴먼에 대한 기대지수를 너무 높게 설정한 모양입니다. 됐습니다, 제가 직접 보여드리죠. 펜과 종이는 어디에 있습니까?”




마치 나에게 맡겨놓은 것처럼 호라이즌은 손을 내밀었고,

난 물끄러미 나를 올려다보는 호라이즌을 내려다보았다.



“끄응⋯⋯.”




언제나의 무표정이었지만 왠지 가져다주지 않으면 내밀은 손을 곧장 식탁에다 꽂아버릴 것만 같았다.


에휴, 그래⋯ 

이런 말싸움 아닌 말싸움이 큰일이겠어, 가구 부숴 먹는 게 큰일이지⋯




“알겠어. 호라이즌이 그려주는 그림, 기대되는걸?”


“긍정. AI가 그린 AI그림이 아닙니다. 제가 그린 그림이죠.”




자신이 있는지 씩 웃어 보였다.

그 탓일까. 나는 내심 호라이즌이 직접 그린 그림이 궁금하기도 해서 나는 무지 연습장과 서랍장 안에 방치되고 있던 사인펜을 가져다주었다.




“그림도 안 그리는 휴먼이 24색 사인펜은 왜 가지고 있는 겁니까? 의외군요. 문화생활에 관심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뭐⋯ 어릴 때 쓰던 거 그냥 안 버린 거지.”


“그럴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휴먼이 의외로 예술에 조예가 있을 수도 있으니, 혹시나 해서 떠봤습니다.”


“어허!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내가 그린 그림은 무.조.건 교실 뒤쪽에도 걸렸었거든?”


“휴먼들은 유년 시절부터 자존감을 배양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자존감 높이기 위한 수업 지도법이었을 것 같군요.”


“크윽⋯ 너무해⋯”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내 마음을 두들겨 팬 호라이즌은 뭔가 골똘히 생각하듯, 턱을 매만지며 무지 연습장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젠장, 나도 질 수 없다.


이 겨 야 한 다.




“나도 한 장 뜯어줄래?”


“유년 시절의 실력을 발휘하는 겁니까, 김카붕?”


“오냐! 덤벼랏!”




호라이즌은 묘하게 가소롭다는 미소를 지으며 종이를 건넸다.

비장하게 받아든 나도 호라이즌과 같이 식탁에 앉아 뭘 그릴지를 고민했다.


한 5분 정도 더 지났을 시점.

마땅히 생각나는 주제도 없고 실없는 말장난이 머릿속에서 떠다녔다.




“내가 그린 기린 그림은 잘 그린 기린 그림이고, 네가 그린 기린 그림은 잘 못 그린 기린 그림이다.”


“진공관 맙소사. 휴먼도 언어 모듈이 고장 나기도 합니까? 이해할 수 없는 문장이군요.”


“인간들의 오래된 말장난이지. 좋아, 정했다.”


“저도 정했습니다. 순식간에 그려드리죠.”


“오, 호라이즌도 공상이나 상상을 하는 거야?”


“⋯⋯.”




호라이즌은 대답 대신 바쁘게 손을 놀리기 시작했다.

뭐, 특별한 대답을 기대한 건 아니니까 상관없었다. 오히려 집중해서 그리고 있는 호라이즌을 보면 그 답은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는 거니까.


⋯⋯아마도?

그냥 내 말을 씹은 걸 수도 있지만⋯


아무튼 나도 말장난 한 번에 소재가 떠올라 묵묵히 종이에 생각한 것을 그려 나갔다.



⋯⋯.



비록 그림은 초등학교 때가 최고 전성기였지만⋯

아무튼 나는 5분 만에 역작을 탄생시켰다.




“난 다 그렸어.”


“느리군요. 휴먼. 저는 진작에 다 그렸습니다.”


“호라이즌이 빠른 거지, 내가 느린 게 아냐. 자, 봐! 내 회심의 역작을!”




우리는 서로가 그린 그림을 나란히 들어 보였다.








  




“오.”




알 것 같기도 하고⋯ 누굴 그린 건진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잘 그린 그림에 나는 짧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리고 호라이즌은⋯

항상 표정이 시니컬한 탓에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었다.


호라이즌은 내 그림을 두세번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나에게 물어왔다.



“의문. 그림의 의도가 뭡니까.”


“제목은 AI가 기린 그림 상상도. 귀엽지 않아?”


“구리군요. 현대미술이라고 부르기도 부끄러운 수준입니다.”


“그야, 나는 초등학교 때 그린 게 다니까⋯ 그, 그래도 너무해, 이거 귀엽지 않아?”


“귀엽다는 표현에 대한 예시가 언제부터 키메라였습니까?”


“아오⋯ 기린이거든!?”


“머리가 저와 유사하게 생겼으니 기린은 아닌 것 같은데, 혹시 휴먼의 시각센서에 문제가 생겼습니까? 진지하게 정비를 권유해 드리죠.”




내 회심의 역작을 몰라봐 주다니!

괘씸죄다, 호라이즌⋯!


나에게 마상을 입힌 대가를 받아라!




“허, 그렇게 말하는 거치고는, 호라이즌도 나랑 별다른 바 없는 실력 같은데?”


“⋯⋯.”


“AI그림처럼 따로 학습한 자료가 없어서 그런 걸까?”


“⋯⋯.”


“그래도 상상력은 초등학생과 견줄 만하다고 할 수 있겠네.”


“⋯⋯.”


“⋯⋯.”


“머리 대십시오, 김카붕.”






그날 해가 떨어질 때까지, 난 쇠파이프를 들고 쫓아오는 호라이즌을 피해 동네를 세 바퀴를 뛰어야 했고,

붙잡힌 순간 무릎을 꿇고 손발이 닳도록 싹싹 빌고 나서야 용서를 받을 수 있었다⋯⋯.












+)

짤 레이첼은 내가 옛날에 아찐콘돚거한거

기린호라이즌그림은 내가 1분만에 그린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