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글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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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씹어 먹어 본 적이 있나?”

팔린이 체리곤에게 물었다. 물론, 체리곤의 영이 육신의 앞으로 나와 있었기에 그는 체리곤의 입만 빌려 말해야 했다. 식사 이외의 목적으로 입을 쓰는 일이 낯설었기에, 체리곤은 자신의 비늘 덮인 입술이 멋대로 뻐끔거리는 감각을 신기한 듯 관망했다.

그는 오랜만에 아름다운 목소리를 내어 팔린에게 답했다. 그가 있는 심장탑 1층에는 수호자들이 몇몇 있었지만, 소리에 귀 기울이는 자들은 없었기에 마음 놓고 대화할 수 있었다. 만약 청각이 멀쩡한 생물이 있었다면 똑같은 목소리로 자문자답하는 나가의 모습이 기괴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없습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데요.”

나가의 입은 크고 나가의 배는 소화 능력이 뛰어나다. 발자국 없는 여신의 신랑다운 냉철한 대답에 팔린은 쓴웃음이라도 짓고 싶은 마음이었다. 다만 그에게는 육신이 없었기에 그것은 시도에 그쳐야 했다. 잠시 침묵하는가 싶던 팔린이 다시 체리곤의 입을 조종했다.

“내 몸을 처리할 때도 그랬나?”

체리곤은 심장병을 나르던 걸음을 무의식적으로 멈추었다. 손에 들린 병들이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새삼스레 천둥처럼 크게 느껴졌다. 혹여 제 모습이 의심을 살까, 주위를 두리번거린 그는 태연히 다시 계단을 오르며 팔린의 질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짧게 고민했다.

팔린은 북부인이었다. 삼십 년 전 대확장 전쟁이 한창 벌어지고 있었을 시기, 그는 포로가 되어 나가들의 도시에 끌려와 노예가 되었다. 그는 쇠사슬에 묶인 채로 밀림을 베었고 벽돌을 쌓았고 심장탑을 세웠다. 하지만 삼십 년이 지나 쇠약해진 그는 노예로서 가치가 없어졌다.

쓸모없는 것은 나가들의 도시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던 팔린은 최후의 발악으로 탈옥을 시도했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소드락을 복용한 나가 정찰대들의 눈을 피해 밀림을 벗어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치명상을 입고 가까스로 절벽 아래로 뛰어내린 그를 발견한 것은 체리곤이었다.

팔린은 죽기 직전이었다. 간신히 숨만 붙어있는 육신의 주변을 죽음이 배회하고 있었다. 체리곤은 그에게 두 가지 선택지를 주었다. 다른 불신자들과 함께 공허로 돌아갈 것인지, 아니면 체리곤의 몸에 전령할 것인지. 팔린은 주저 없이 후자를 택했다.

그렇게 팔린의 영혼은 체리곤의 몸에 거주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의 망가진 육신은 여전히 밀림 한가운데 남아 있었다. 그의 몸에서 풍기는 피비린내가 정찰대들을 끌어들인다면, 몰래 도시를 나와 약초를 채집하던 체리곤에게도 좋을 것이 없었다.

시신을 처리하기에는 시간이 없고, 그대로 두고 가기에는 자신의 흔적이 발각될 위험이 있다. 체리곤은 이성적인 판단을 내렸다. 그는 팔린의 시신을 먹었다.

다행히 체리곤에게는 소화를 촉진하는 약초에 관한 지식이 있었다. 절벽 근처의 동굴에 반나절 동안 숨어 팔린의 살을 전부 소화한 체리곤은 남은 뼈를 뱉어두고 다시 도시로 돌아왔다. 그리고 팔린은 체리곤의 눈을 빌려 그것을 전부 지켜보았다.

팔린은 죽음이 두려워 체리곤을 택했다. 체리곤은 그가 가진 나가의 건축물에 대한 지식과 기술이 필요해 팔린을 택했다. 그들은 서로가 필요했다. 그것이 그들의 공생관계를 형성했다.

그런데 팔린은 무언가 앙금이라도 남아 있는 것일까. 체리곤은 그가 갑자기 과거의 일을 꺼내는 이유에 대해 짐작할 수 없었다. 계단을 걸어 올라가던 체리곤은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멈춰서 팔린을 불렀다.

“팔린, 아직 듣고 있습니까?”

“그래.”

“혹시 당신의 시신을 처리한 방식에 대해, 내게 말하지 않은 불만이 있습니까?”

북부의 장례 문화에 대한 지식은 체리곤도 어느 정도 가지고 있었다. 그의 몸에 거주하는 영들 중에서는 이백오십 년 전 죽은 북부의 한 학자가 있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북부인들은 마치 나가들이 죽은 나무에게 그러하듯, 죽은 인간을 위해 장례식을 치른다고 했다. 사자의 몸을 엄숙히 정돈하고 불에 태워 보내는 것이 그들의 문화였다.

자신의 영혼이 거주하는 새로운 몸의 식사가 되는 것은 확실히 멀쩡한 최후는 아니었다. 다만 체리곤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는 자신이 비밀리에 진행하는 약학 연구가 얼마나 큰 중죄인지와, 그것이 들킨다면 자신은 물론 팔린에게도 좋을 것이 없다는 사실을 명백히 전달하기 위해 입술을 달싹거렸다. 하지만 팔린이 먼저 그의 입을 차지했다.

“불만이 있는 건 아니다. 보기 좋은 꼴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덕분에 영혼만큼은 무사히 살아남았으니까. 다만……, 그냥 실감이 아직 잘 나지 않을 뿐이다.”

체리곤은 뭐가 말입니까? 라고 캐묻고 싶었지만, 팔린은 말을 계속 이어갔다.

“인간은, 비단 인간뿐 아니라 나가를 비롯한 모든 사람은, 바뀐 환경에 적응하기가 늘 쉽지 않지. 나이를 먹은 인간일수록 더 그렇고. 다른 종족의 몸으로 전령한 인간이라면 더더욱. 나는 육십 년 동안 음식을 이로 씹고 혀로 맛보는 삶을 살아왔다. 최근 삼십 년 동안에는, 특히 그나마 그것이 내 빈곤한 삶의 유일한 낙이었지. 너희 나가들의 식사는 한결같이 끔찍했지만, 먹으면 살아있다는 감각을 잠시나마 느낄 수 있었으니까. 나는 먹는 것 말고 무엇으로부터 즐거움을 느껴야 하는지도 잊어버렸다. 그런데 이제는 그것조차 할 수 없게 되어버렸군. 네 입을 빌린다면 억지로 쥐나 아르마딜로를 씹어먹을 수는 있겠지만, 나 혼자만 이 몸을 쓰는 것도 아니니까 매번 그럴 수는 없지. 나는 망령이 되어 이따금 네 몸을 조종해 지껄이는 것 빼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제 내가 인간이었다는 증거조차 남지 않겠지……. 그런 생각이 들어 잠깐 아이처럼 투정을 부린 것뿐이다.”

체리곤은 주의 깊게 그의 말을 경청했다. 심장병을 계단에 잠시 내려놓은 그는 계단 벽에 기대어 손으로 턱을 짚었다.

“……요컨대 당신은 인간이었을 때로 돌아갈 수 없어 아쉬운 거군요.”

“그래, 니미럴. 간단히 말해서 그런 거다.”

“하지만 여건이 된다면, 당신도 얼마든지 앞으로 나와서 제 몸 전체를 움직일 수 있습니다. 인간처럼 피리를 불 수도 있고, 어렵겠지만 요리를 만들어 먹을 수도 있을 것이고, 당신이 조금 더 연기에 능숙해진다면 밖에 나가, 노예였을 때는 갈 수 없었던 곳들을 더 자유롭게 구경할 수도 있을 겁니다. 쾌락을 원한다면, 양상은 조금 다르겠지만 행위를 할 수도 있…….”

“그런 걸 말하는 게 아니다! 젠장, 삼십 년 동안 나가가 얼마나 눈물 없는 정신병자들인지 질리도록 봐 왔지만, 이럴 때마다 치가 떨리는군! 너는 다른 종족의 몸에 기생해 본 적이 없으니 이해하지 못하겠지.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느낄 수 있는 것에 대해 말하는 거다! 나는 영혼이라 아무것도 제대로 느낄 수 없어. 운 좋게 네 몸을 빌린다 해도 눈앞에 보이는 것은 불그죽죽한 아지랑이들뿐이고, 혀와 귀는 거의 쓰지도 않아 퇴화해 있고, 추위에 더럽게 민감해서 움직일 때마다 스치는 바람도 칼날처럼 느껴지지. 내가 전에는 맡지 못했던 온갖 역겹고 신물 나는 냄새들이 매 순간 코를 찌르고! 빌어먹을, 이건 마치 꿈속에 갇힌 기분이라고. 무슨 염병을 해도 깨어날 수 없는, 멍멍하고 흐릿한 꿈!”

고함을 지른 팔린은 그대로 체리곤의 내면 깊숙한 곳으로 내려가 버렸다. 둔감한 귀청이 멍멍해질 만큼 큰 소리에 얼굴을 찡그리고 있던 체리곤은 잠시 그 자리에 그대로 서서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느낄 수 있는 것이라……. 여전히 팔린의 불만이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납득은 할 수 있었다. 논리적 이성과 감각적 본능 사이의 무게중심은 종족마다 크게 달랐으니까.

중요한 건 팔린을 저대로 불안정하게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군령자들은 하나의 몸에 비좁게 붙어살기에 서로 간의 균형과 조화가 중요했다. 저렇게 감정적인 상태로 내면에 침잠해 버린 팔린이 정작 그가 필요할 때 앞에 나오기를 거부한다면, 체리곤의 몸과 영혼들 모두가 피해를 입을 수도 있었다.

그를 달래야 했다. 인간의 감정을 달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던 체리곤은 문득 자신의 것이 아닌, 오래된 기억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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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린, 거기 있습니까?”

체리곤은 자신의 목소리가 떨린다는 것을 알아채고 비늘을 조금 세웠다. 밀림의 밤은 나가에게는 온몸의 비늘이 일어설 만큼 추웠다. 그가 있는 도시는 한계선에 가까운 북부에 위치해 있었기에 더욱 그랬다.

그는 온몸을 두꺼운 천으로 감싼 채 지붕에 올라와 있었다. 다른 나가들의 시야에 띄면 안 되었기에, 불을 피우거나 뜨거운 물주머니를 들고 올라올 수는 없었다. 소드락을 복용할 수도 있었지만 이미 해가 진 직후 멀리까지 나가 약초를 채집하기 위해 이미 먹어 버린 후였다. 하루에 두 번 소드락을 복용하는 것은 미친 짓이었다.

때문에 수호자 체리곤은 이름 모를 가문의 생쥐 사육장 지붕에 웅크려 숨어 추위에 떨고 있었다. 만약 이 일이 발각된다면, 남자가 함부로 사택에 침입한 죄는 물론이고, 수호자의 품위를 내버린 것 때문에 더없이 난처한 상황에 놓일 것이다. 비에나가나 할 법한 짓을 저지르자니 문득 자괴감이 들었지만, 체리곤은 스스로 이것이 어디까지나 팔린을 달래기 위한 이성적인 판단이라며 합리화했다. 그는 제 몸을 부둥켜안고 재차 팔린을 불렀다.

“팔린, 제 목소리 들립니까?”

“……왜 불러?”

그의 입에서 퉁명스러운 대답이 튀어나왔다. 체리곤은 그가 무의식 속으로 가라앉아 버리지 않았음에 안도감을 느꼈다. 약학을 연구할 수 있는 은신처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그가 필요했다. 체리곤은 고개를 위로 쳐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 눈을 빌려드리겠습니다. 하늘을 보세요.”

팔린의 영혼은 잠깐 망설이다가, 체리곤의 눈을 통해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고 싶은 기분에 빠져 있던 그는 시야에 들어오는 풍경에, 잠시 말을 잃고 멍하니 위를 쳐다보았다.

인간의 눈은 가시광선을 보지만, 나가의 눈은 적외선을 본다. 때문에 하늘의 별들이 뿜어내는 빛은 그들의 눈에 다르게 보인다. 평생 인간의 눈으로 밤하늘을 봐 온 팔린이었지만, 지금 그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마치 만화경처럼 끝없이 펼쳐진 무지갯빛의 은하수였다.

인간은 볼 수 없는 별들. 인간은 알 수 없는 별빛들. 하늘을 흘러가는 구름과 바람의 온도가 달라질 때마다, 별들의 색도 물 위를 떠도는 기름처럼 변화한다. 안개가 걷힌 듯 완연히 들여다보이는 밤하늘엔 빈틈없이, 저마다의 색과 빛을 뽐내는 별자리들이 가득하였다.

수천 개, 수만 개의 별들이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조화를 이룬다. 왕들의 무덤처럼 장엄하고 어미의 품처럼 포근한 광경이었다. 은은하게 푸른빛으로 빛나는 달 옆에서 샤나가 성이 반짝였다. 속살거리는 별빛들이 어둠을 밝혔다.

하늘의 온도. 팔린은 그것을 느꼈다. 나가의 눈은 아무리 멀리 있는 대상의 체온이라도 인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팔린은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순수하게 경탄했다, 그는 붉은빛의 밤하늘 속으로 가라앉았다. 수백만 년의 세월을 품은 별들이 그를 감싸 안았다.

팔린은 체리곤의 눈에서 영혼의 눈을 떼지 못했다. 시간이 흐르는 것도 잊고, 마치 불타는 것처럼 아른거리는 하늘을 올려다보던 체리곤의 얼굴 위로 무언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은빛으로 흐려진 시야를 훔쳐본 체리곤의 영혼이 입을 들썩였다.

“팔린, 우는 겁니까?”

“……나가의 눈도 눈물은 흘리는군.”

체리곤이 비늘 덮인 손으로 은루를 닦아냈다. 팔린은 하늘을 올려다보길 멈추지 않았다. 두 영혼 사이에 대화 없는 침묵이 맴돌았다.

“나한테 어째서 이걸 보여준 거지?”

팔린이 문득 물었다. 체리곤은 군령자들 중 하나의 기억을 떠올렸다. 나가의 몸에 전령한 직후,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던 인간 학자의 기억을.

세상은 하나가 아니다. 만물이 모든 이의 눈에 다르게 보인다는 사실은, 그 학자의 오랜 학구열을 다시 불태웠던 것 같았다. 체리곤은 그때의 그 경험과 감정이, 같은 인간인 팔린에게도 유효하리라는 추측에서 그를 지붕으로 데려왔다.

“당신이 좋아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체리곤은 굳이 자세한 내막을 밝히지 않았다. 인간은 감성적인 존재니까. 그들은 무미건조한 진실보다는 화려한 거짓을 선호했다. 여전히 이해가 가지는 않았지만, 체리곤은 문득 그러한 삶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면, 죽음이 두려워 군령자가 되는 행위를 조금은 정당화할 수 있을 테니.

“……너는 나가치고는 인간적이군, 체리곤.”

“그런가요?”

체리곤은 동의하지도, 부정하지도 않는 애매한 답으로 대화를 끝맺었다. 팔린이 스스로를 치유하는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가 정신적으로 안정되어야 자신에게 더 좋은 일이었다.

다만……. 체리곤은 문득 자신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한 가지 의문에 빠져들었다. 과연 자신이 언젠가 여신의 곁으로 가는 것을 미루고, 인간이나 레콘의 몸으로, 하다못해 도깨비의 몸으로 전령하게 된다면. 그렇다면 그때, 그들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과연 어떨까.

차가운 밤의 밑바닥, 뜨거운 별빛에 둘러싸여, 체리곤은 가만히 앉아 나가답지 않은 공상에 빠져들었다. 다른 종족이 되어보는 것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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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교양 시간에 적외선으로 관측한 밤하늘 사진을 보고, 나가의 눈에는 밤하늘의 아름다움이 다르게 다가오지 않을까...싶어서 써본 짧은 글. 써놓고 보니까 단편이라 하기도 뭐할 만큼 짧구나.

글쓰는 건 어렵ㄷ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