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크들이 서식하는 숲속에 인접한 마을.

"돌격하라!!!"

"꺄아아악!!!"

"으아아아악!!!!"

사방에서 들려오는 발소리와 함성소리에. 수많은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고.

그런 인간들의 뒤를 수많은 오크들이 쫓아갔다.

"부히히힛!!! 잡아라!!!"

"잡히는 인간은 싹다 잡아가고 식량은 남김없이 털어가자!!"

병사라곤 한명도 없는 

농사꾼들만 모여있는 마을이라 그런지 인간들은 싸워볼 생각도 하지 못하고 달아났고.

오크들은 인간들이 버리고 간 식량과 도구들을 약탈하며 즐거워했다.

그리고 그런 오크무리들의 후방에선.

"하암...."

거대한 양손도끼를 지팡이처럼 짚은 채 지루하다는 듯 하품을 하는 오크소녀가 한명 있었다.

연분홍색 피부색에 토실토실한 체형인 다른 오크들과 달리 까무잡잡한 피부색에 딱 봐도 근육질인 몸매. 

머리에는 멧돼지가 연상되는 흰 투구를 쓴 하이오크소녀. 오클리는 태어나서 첫 약탈에 나섰지만 일이 상상이상으로 쉽게 풀리자 지루함을 참을 수 없었다.

"내가 나설법한 강한 인간이 나오길 기대했는데. 싸우기는 커녕 도망가기 바쁘잖아."

"어쩔수 없잖슴까. 너무 큰 마을을 건드리면 인간들이 작정하고 토벌군을 조직해서 올텐데 그럼 저희 다 죽습니다 꿀."

그순간.

"!!!!!"

"저리가지 못해!!!"

작은 판잣집 앞에서 긴 양날검을 들고 싸우는 인간 소년을 본 오클리는 입꼬리를 씩 올리고 웃더니 도끼를 고쳐잡았다.

"재밌어 보이는게 있네. 나 갔다올게."

"네에?!"

오클리가 도끼를 들고 뛰쳐나가자. 그녀의 옆에 팔짱을 끼고 서있던 오크가 사색이 되어 소리쳤다.

"아가씨 그게 대체 무슨 소립니까?!! 그냥 구경만 한다고 족장님께 허락 맡아 오신건데 직접 나서면 제가 혼납니다!!!"

"혼나면 되잖아. 내가 혼나는 것도 아닌데."

"아가씨!!!!!?"

처절한 비명을 지르는 시종의 말을 무시한 채. 

"받아라!!!"

콰앙!!!

오클리는 소년을 향해 도끼를 휘둘렀다.

그리고 이것이.

오클리와 인간소년. 오스카의 첫 만남이었다.



오스카는 수많은 오크들을 뚫고 튀어나온 오클리와 사력을 다해 싸웠지만.

카앙!!!

"아아아아악!!!"

비슷한 나잇대라 해도 인간의 힘으로 하이오크를 당해낼수는 없었기에 결국 패배하고 말았다.

"우윽.....으으으......"

오클리가 전력으로 휘두른 도끼를 받아치려다 역으로 손목이 꺾인 오스카가 한손으로 손목을 잡고 쓰러지자. 

오클리는 싱글벙글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제법이네 적어도 싸울 생각도 못하고 도망치는 인간들 보단 훨씬 나아."

터벅터벅.

"어디 뭘 그렇게 애지중지 지키고 있었는지 한번 볼까?"

이윽고 오스카가 손이 삐어가면서 까지 지키고 서있던 판잣집에 다가간 그녀는 자물쇠가 걸려있는 문을 그냥 힘으로 잡아뜯었다.

우드드득!!

쿠웅!!

이윽고 낡은 문이 부서지며 모습을 드러낸건.

"응?"

"히. 히이이익!!!"

담요를 뒤집어 쓴 채 덜덜 떨고있는 코볼트 소녀였다.

그와 동시에.

"손대지마!!!!!!"

흙바닥에 쓰러져있던 오스카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아. 아니 손대지 말아주세요....제 여동생이란 말입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유일하게 남은 가족이에요!!!!"

그러나 오스카의 간절한 목소리가 무색하게도 그녀는 인간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의 말에 오클리는 고개를 몇번 갸웃거리더니 곧 옃에 서있는 오크를 손가락으로 찌르며 말했다.

"너. 인간의 말 할줄 알지? 쟤 지금 뭐라고 하는거야?"

"꿀. 들으실 필요도 없습니다. 아가씨 그냥...."

그순간. 

콰앙!!!

오클리가 든 도끼가 오크의 발끝을 스치고 땅에 꽂히는 것과 동시에.

풀썩.

그가 들고 있던 몽둥이가 두동강이 난 채 땅에 떨어졌다.

"난. 지금. 저 인간의 말이 쓸모 있고 없고를 물은게 아니라 무슨 말을 했냐고 물었어."

스릉..

"보니까 네 귀는 주인 아가씨의 말도 제대로 못 듣는 모양인데 그대로 잘라버려도 되겠지?"

"아....아니 그런게 아닙니다. 저 코볼트가 자기 여동생이니 살려주면 무엇이든 하겠다고...."

"동생?"

자신의 시종의 말에 오클리는 고개를 조아리며 알아듣지 못할 말로 싹싹 비는 오스카에게로 다가가 몇번 냄새를 맡아봤다.

킁킁.

'아하. 그런거였나.'

코볼트 쪽 외형이 거의 남아있지 않아 헷갈렸지만 이놈도 혼혈이었네.

"이봐 너. 이놈이 왜 나한테 이런 부탁을 한건지 알아?"

"글쎄요 저는 잘....."

시종이 머리를 긁적이며 한 말에 오클리가 대답했다.

"이녀석은 도박을 한거다 지금 자신의 요구를 받아줄 가장 힘이 센 녀석을 고른거지. 그런 눈으로 봐줬다는게 나쁘지는 않네."

스릉.

땅에 박힌 도끼를 다시 뽑아 어깨에 짊어진 오클리는 시종을 둘러보며 말했다.

"여자애는 내버려둬라. 저 남자애는 잡아오고. 우선 오크어부터 가르치도록 해."




오크들의 마을에 잡혀오고 나서.

오스카는 오클리가 이 마을 족장의 딸이자. 몇 안되는 하이오크 여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스카는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오크들을 대신해 서적을 읽고 더 좋은 무기를 개발하거나.

독침같이 사냥에 도움이 되는 도구를 만드는 일을 했다.

'제가 그런 일을 맡으면. 제가 만든 도구로 또 인간들을 약탈하려는 것 아닙니까?'

'싫어? 네 여동생과 마을사람들을 지키기위해 뭐든지 하겠다고 하지 않았나?'

'.......'

'네 마을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다른 마을사람들을 해친다. 간단하지?'

'그래도 이건..'

'싫다면 지금 당장 니 머리를 도끼로 쪼개버리고 네 마을부터 약탈할거야. 내가 할수 있는 최선의 설득을 했는데 안통하면 포기해야지.'

'......하겠습니다.'

그렇게 오스카가 오크들의 노예생활을 한지 어느덧 7년.

펄럭.

"오스카~"

자신이 있는 천막 문을 젖히고 들어온 오클리의 모습에 오스카는 뚱한 표정을 지으며 대꾸했다.

"아가씨께서 이런 누추한 곳엔 어쩐 일입니까."

"너무하는거 아니야? 명색이 수컷이면서 이제 막 성인식을 치른 농익은 암컷을 이렇게 매몰차게 대하고."

오클리의 말에 오스카는 곁눈질로 그녀의 몸을 훑어봤다.


군살이 포동포동하게 찐 다른 오크들과는 달리 잘 달련되어 잘록하게 들어간 허리에 너무 부담스럽지 않게 날카롭게 짜인 복근.

몸통에 가야할 지방이 전부 한곳에 모여 만들어진듯한 풍만한 가슴까지.

사내라면 다들 군침 한번 흘릴법한 육감적인 몸매였다만. 오스카는 다시 고개를 돌려버렸다.

"아가씨는 아가씨. 전 부림을 받는 노예입니다. 수컷이 어디있고 암컷이 어디있습니까. 장난칠 사람이 필요하면 다른 곳으로 가십시오."

"다른 이는 필요없어."

그순간.

"오스카."

풀썩.

"나랑 같이 도망가지 않을래?"

오클리는 어느덧 자신과 덩치가 맞먹을 정도로 성장한 오스카의 품에 몸을 기댔다.

"아버지가....아버지가 날 다른 부족장과 결혼하라고 하셔...."

"....."

"내가 그 오크의 아내가 되고. 그 오크가 족장이 되면 아버지는 족장의 장인이 되겠다는 속셈인가봐."

"잘 됐네요. 족장 아내가 되면 족장 딸이었을 때보다 더 많은 이들을 부릴텐데요."

"그....그렇지만 싫어. 차라리 나랑 같이 도망가자. 너도 노예생활이 지겹....."

그러나 평소와 달리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는 오클리의 애원에도.

툭.

"일 없습니다."

"앗?!"

오스카는 매정하게 그녀를 밀쳐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딴 농담할 시간 있으면 나가 주십시오."

터지기 일보 직전의 물주머니가 폭발하듯.

"정 결혼이 싫다면 성노예 한놈 잡아다 일 치루시면 되잖습니까."

오스카의 입에서 폭언이 쉴새없이 쏟아져 나왔다.

"오크 부족장이 인간의 씨를 품은 암컷과 사귈리는 없으니까."

노예 이전에. 남자로써 여자에게 해서는 안되는 말까지 포함해서.

"뭐.....라....고...?"

"제가 미쳤다고 제 여동생과 고향사람들을 버리고 도망칩니까? 그것도 당신을 데리고?"

"너...."

"무슨 착각에 빠진건지 모르겠지만. 저에게 당신은 고향에서 잘살던 절 잡아다 노예로 부린 불구대천의 원수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닙니다."

난생처음으로 듣는 폭언.

심지어 그 폭언이 자신의 사랑고백을 들은 남자의 입에서 나온 순간.

쿠당탕!!!

"커헉?!"

"죽여버릴꺼야!!!"

오클리의 이성은 마비되었다.

순식간에 오클리에게 멱살을 잡힌 오스카가 고통스런 신음을 토해내는 것과 동시에 그녀는 비명과도 같은 소리를 내질렀다.

"날 거부하고 니가 무사할것 같아?! 다 죽일거야 전부 다!! 너도 니 고향에 남은 인간들도 니 여동생도!!!"

"끄윽...이...이거 놔..."

"마을사람들은 전부 산채로 배를 갈라 내장을 끄집어내고 여동생은 목을 잘라 벽걸이 장식으로 만들거야!!"

"이.....이익...."

"내가!!! 이 내가 너에게 마음을 주겠다는데 노예주제에 날 거부해!!!!!"

"이이..."

그러나 분노로 길길이 날뛰는 오클리가 방심한 사이.

"닥쳐!!"

푸욱!

"끅?!"

오스카는 호주머니에서 침을 하나 꺼내 그녀의 목을 찔렀다.

철푸덕.

"아...으으....다....다리가...."

침이 목을 찌르는 것과 동시에 오클리는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고.

그런 그녀의 뒤통수에 오스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 새로 구해온 독인데 당신에게 쓸줄은 몰랐군요."

"이.....이게 뭐 ..."

"맹독입니다. 먼저 사지를 마비시키고 목이 잠기게 해 천천히 죽게 만드는 독이죠."

"이.....이러고도 무사할 것....."

"저도 죽이고 제 고향사람도 죽이겠다면서요? 멍청하게 당하느니 당신도 죽여버릴겁니다."

턱.

"날 노예로 만들고 실없는 장난 안받아줬다고 죽이려고 할정도로 날 미워한 당신을 말입니다!!!"

무서웠다.

처음으로 겪는 죽음의 공포에 손발이 떨려왔다.

그러나.

"아....아니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입에서 나온 건 목숨구걸이 아니었다.

"난 그냥.....너한테.....사랑받고.....싶었어...."

"....네?"

조금도 예상 못한 대답에 오스카는 당황했지만.

오클리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처음봤을 때.....부터 니가.....마음에....들었어...."

감당할수 없는 상황에서도 동생을 지키려둔 그 씩씩한 모습에 호감이 생겼었다.

그와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우리 말을.....가르쳤어....."

그가 다른 오크들과 교미하는걸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성노예가 아니라 글을 읽는 노예로 만들었어..."

정신이 점점 혼미해져 갔다.

이미 살해협박까지 해 머리끝까지 화가 난 상태에서 말하면 오히려 화를 부추길게 뻔했다.

그러나 오클리는 사력을 다해 말했다.

"미....안해....잘못했어....나....미워하지마....."

이젠 눈꺼풀을 뜨고 있지도 못할 정도로 기운이 빠진 오클리의 눈이 감기는 것과 동시에.

스륵.

'응?'

츄읍.

"우읍?!"

뒤통수를 받치는 부드러운 손길이 느껴지는 것과 동시에 입술에 따뜻한 감촉이 느껴졌다.

쪽...

"우음....츄읍....웁...."

혓바닥이 이빨 사이를 비집고 들어옴과 동시에 달콤한 액체가 들어오자. 오클리는 저도 모르게 그 액체를 삼켰다.

"푸하!"

"해독제입니다."

독에 중독돼 쓰러진 오클리에게 해독제를 입으로 먹여준 오스카는 힘없이 천막 밖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다시는 이런 장난치지 마십쇼. 제가 또 무슨 무례를 저지를지 모르니까."




오스카의 말은 거짓말이었다.

그 독침은 맹독 같은게 아닌 우연찮게 얻은 호넷의 독침이었으니까.

간단한 마비증세와 발정을 이끌어내는 효능이 있어도 생명에는 손톱만큼도 지장이 없었다.

"됐어. 이대로 쫓겨나든 오클리의 도끼에 머리가 쪼개지든 하겠지."

어찌되든 노예생활은 벗어날수 있을거야.

다만 한가지. 마음에 걸리는건....

오스카는 왼손에 쥐어진 빈 약병을 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너무 심한말을 해서 해독제를 먹이긴 했는데 전용 해독제가 아니어도 상관 없겠지? 급해서 일반 해독제를 먹이긴 했는데...."

같은 시각.

"하아.....하아....."

오클리는 해독제 덕에 마비가 풀렸음에도 좀처럼 자리에서 일어서질 못했다.

"하으윽.....우으.....가.....가슴이 왜 이렇게 답답하지...?"

'아니. 가슴 뿐만이 아니야.....'

오클리는 붉게 상기된 얼굴로 아랫배를 살살 쓰다듬으면서 말을 이었다.

"배.....아랫배도 왠지 모르게 너무 뜨거워....."








나는 1화 빌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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